제162화
162. 유물(2)
“으으…….”
일어나자마자 머리가 어지러워 토할 것 같았다.
각성제를 너무 받아들인 부작용. 그래도 전보다는 낫다.
“그때의 고통에 비하면 이 정도쯤이야.”
죽을 고비를 넘긴 고통에 비해서는 아무것도 아니다.
“일어났느냐?”
“예, 몸이 좀 어지럽긴 하지만.”
일어나자 때마침 그를 반겨주는 아힐런.
앞에는 다양한 음식이 놓여져 있었다.
“일단 밥부터 먹거라.”
“잘 먹겠습니다!”
식탁 가득 놓인 보양 음식들.
국물 한 방울 남기지 않고 먹어 치웠다.
“후우, 배부르다.”
통통한 배를 두드리며 천천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아힐런이 사는 깔끔한 주택.
“스승님이 사시는 곳이네요.”
“기절했길래 데려왔지. 그 음식은 앨런이 차려준 거고.”
식사를 다 하고 나자 어지러운 느낌이 조금씩 사라지기 시작했다.
그 상태로 의자에서 일어나 허리춤에 있던 검을 꺼냈다.
코코는 아니다. 자신의 힘을 연습해 보라면서 아힐런이 준 검.
휘이익!
‘조금 더 가벼워졌어.’
그 검을 빠르게 휘둘렀다.
처음 휘두를 때 남아 있던 이물감이 씻은 듯이 사라졌다. 신기할 따름이다.
‘부작용 없이도 할 수 있을 것 같아.’
유물의 힘을 제대로, 부작용 없이 끌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빠르게 집을 빠져나와 자세를 갖췄다.
“후우…….”
심호흡을 반복하며 눈을 감았다.
그 모든 걸 보고 있던 아힐런.
‘완벽하다.’
지금 저 자세는 옛날 자신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았다.
자신만의 기술을 처음으로 제대로 발현했을 때.
휘이잉.
순간적으로 주변에 바람이 휘몰아쳤다.
전보다 큰바람이 휘몰아치더니.
‘강타.’
강수호는 마음속으로 검기의 상위 버전인 ‘강타’를 떠올렸다.
휘이잉!!
검을 꺼내어 빠르게 휘둘렀다.
아힐런의 눈에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른 속도.
강타는 산을 향해 날아갔다.
스걱!
콰르르르릉!!
“됐다.”
다시 한번 반으로 베어지는 산.
저번과 다른 점이 한 가지 있다면.
“안 쓰러졌습니다!”
“오호, 대단하군.”
강수호가 쓰러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 덕에 각성제를 맞을 필요도 없었고.
더군다나.
“안 아파요.”
“오호…….”
몸 또한 고통에 익숙해졌다.
이전엔 고통으로 인해 기절까지 했지만, 지금은 전혀 아프지 않았다.
‘신기하네.’
몸이 뻐근할 뿐.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내 힘에 완벽하게 적응한 듯하구나. 고작 하루 만에.”
감탄하기 바빴다.
자기 기술을 하루도 아닌 고작 열 번 만에 숙달했으니까.
“스승님 덕분이죠.”
물론 강수호가 재능이 있어서 그런 건 아니었다. 유물의 주인인 그가 직접 앞에서 가르쳐 줬기 때문이다.
“그럼 이번에는 발검이겠구나.”
“……예?”
하지만 고작 강타 하나를 완벽하게 익혔다고 해서 끝이 아니었다.
유물에 남은 한 가지 스킬.
“‘예?’라니? 아직 한참은 부족하다. 그래도 전보다는 나을 거야.”
하나뿐만이 아니었다.
바로 앞에 검의 주인이 존재했다.
“강타와 발검으로 끝이 아니기도 하고.”
이제 시작일 뿐이다.
지옥 훈련보다 더한 지옥 훈련이 될 거다.
* * *
“빌어먹을!!”
콰쾅!
업무를 보고 있던 책상을 엎어 버렸다.
큰 이유는 없었다. 단지 일이 제대로 풀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죄송합니다…….
휴대폰에서 들려오는 작은 목소리. 그 목소리 때문에 더욱 돌아 버릴 것 같았다.
“어떻게 아무 데도 없냐고!”
밖에 나갔다는 흔적, 안에 있다는 흔적조차 없었다. 그것도 한 달 동안.
총리님에게 어떻게 보고를 해야 할지 몰라 머리를 굴렸다.
‘거짓말을 해? 그건 안 되는데…….’
뭐든지 진실만을 말해야 한다. 밑에 있는 놈들 모두가 그와 연관되어 있으니까.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 거지?’
한참 고민에 빠져 있었다.
한 달 동안 일본 전체를 뒤져봐도 찾을 수 없었다.
‘도대체 어떻게…….’
한참을 고민에 빠져 있던 그때였다.
띠리링!
“뭐야?”
휴대폰에서 벨 소리가 울린다.
부하에게서 결려온 전화였다. 또 무슨 개 같은 일을 보고 할지 궁금해서 전화를 받자.
“뭐야?”
-찾았습니다.
“……뭐? 다시 한번 말해 봐.”
-강수호 헌터님을 찾았습니다.
“…….”
예상하지 못한 일이 발생했다.
강수호를 찾았다니.
“거기가 어디냐?”
잔뜩 흥분하며 물었다.
일본 전체를 뒤져도 보이지 않은 강수호. 그런 그가 발견됐다고 한다.
-호텔 방에 있습니다.
“…….”
부하가 말도 안 되는 개소리를 늘어놓았다. 일본 구석에 박힌 시골도 아니고, 호텔 방이라니.
“……나, 나랑 장난하자는 건가? 그게 무슨 개소리인가!”
흥분을 가라앉히며 소리쳤다. 이보다 더한 개소리는 없을 테니까.
‘호텔을 먼저 뒤진 것 같은데, 무슨 소리인 거야? 이 녀석, 정신 병원에 데리고 가든지 해야겠군.’
그저 정신 나간 놈이라 생각했다.
한 달 동안 한 사람만 찾았는데, 보이지 않으니 충분히 정신 나갈 수 있다 생각했지만.
-사실입니다! 아마 곧 있으면 호텔 측에서 연락이 올 겁니다.
“뭣이?”
미쳐도 단단히 미쳤다 생각했다. 망상에 빠졌다고 생각하여 전화를 끊었지만.
띠리링!
“또 뭐야?”
다시 한번 울리는 벨 소리. 부하 놈이 다시 전화를 걸어댄 것 같아 무시하려 했지만.
“호텔 관리자?”
휴대폰 화면을 보고 생각이 달라졌다. 정말 부하의 말처럼 호텔 관리자에게서 전화가 온 것.
망설임 없이 초록색 버튼을 끌어당겼다.
“무슨 일입니까?”
특별한 목적이 없이 그냥 전화한 걸 수도 있었기에 전화를 건 이유를 물었다.
-강수호 헌터가 호텔 방 안에 있습니다.
“……예?”
그런 게 아니었다.
강수호 헌터가 호텔 방에 있다는 것.
그 말을 듣는 즉시 사무실을 뛰쳐나왔다. 무엇에 홀린 듯이.
‘호텔 방에 있다고?’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다. 강수호 헌터가 정말 호텔 방에 있는지.
* * *
“허헉!”
“협회 회장님? 여기는 무슨 일로…….”
“비키십시오!”
호텔 관리자를 밀치고 호텔 방으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인사 따위는 천천히 해도 된다. 지금은 강수호 헌터가 더 중요하다.
‘내 눈으로 봐야 해……. 내 눈으로!!’
흥분에 가득 찬 얼굴로 강수호 방으로 이동했다.
띵!
엘리베이터를 타고 얼마 지나지 않아 도착한 강수호의 방.
“후우……. 후우…….”
가쁜 숨을 진정시키며 문 앞에 섰다.
한참을 심호흡만 반복하던 그가 문을 두드렸다.
똑똑.
“강수호 헌터님? 안에 계십니까?”
꿀꺽.
모여 있던 침이 삼켜지며 저절로 식은땀이 흘렀다.
손이 떨리고 긴장이 고조 될 때쯤.
우당탕탕!
“……!?”
방 안에서 들려오는 소리.
얼마 지나지 않아 조심스레 문이 열렸다.
“누구세요?”
“…….”
한 달 동안 찾던 사내. 강수호가 해맑게 웃으며 바로 앞에 있었다.
“류헤이 님? 무슨 일이시죠?”
“아……. 별일 아닙니다. 준비가 다 되었나 궁금해서 와 봤습니다.”
“준비야 다 되었죠. 내일이 아닙니까?”
흥분을 가라앉히고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자신이 그를 애타게 찾고 있었다는 걸 들키면 안 된다.
“그렇죠. 아, 깜빡했군요. 여기 저희가 만들 수 있는 최고의 물약입니다.”
뇌물 겸, 인사 겸 물약 두 병을 주었다. 의심도 받지 않을 테고.
‘이런 물약은 구하기 힘들 테지.’
감시에는 실패했지만 일본이 이 정도의 능력은 있다는 정신 승리.
원래는 이 물약을 받고 쓸데없이 감사의 인사를 늘어놓으리라 생각했지만…….
“괜찮습니다.”
“역시 받아들이셨군요. 많은 도움이 되실…… 예?”
“물약은 괜찮다고요.”
완전히 거절했다.
예매한 거절도 아닌, 완전히.
‘필요 없는데.’
충분한 이유가 있었다.
레릴 아줌마가 준 SSS급 물약이 넘치도록 있는데, 왜 받겠는가.
“그럼 이만 들어가겠습니다. 좀 바빠서요.”
“아…… 예! 들어가십시오! 내일 회의장에서 보겠습니다!”
쿵!
그 말을 끝으로 닫히는 문.
“…….”
호텔 방 앞에서는 정적만이 돌았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상황이었으니까.
“이런 개 같은!!”
쨍그랑!
무시 받았다는 생각에 그만 물약을 던져 버렸다. 자그마치 500만 원이 넘어가는 고급 물약을.
“헉……. 헉…….”
눈이 빨갛게 변했다.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은 핏줄.
“뭐 하나 제대로 된 게 없군.”
그가 계획한 일 하나도 제대로 된 게 없었다.
물약을 준 이유도 뇌물을 주기 위한 것만이 아니었다.
범죄자로 몰아갈 스토리. 그런 스토리를 구상했지만, 낚이지 않으니 소용없었다.
“내일 회의나 준비해야겠군.”
손에 박힌 유리 파편을 빼며 호텔을 나섰다.
내일이 아주 바쁜 하루가 될 테니까.
류헤이의 모든 행동을 지켜보고 있던 강수호.
‘역시 보고 있었나.’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류헤이, 일본 협회 회장이 자신을 감시했다는 것.
물론 계획대로 되지 않았을 거다. 한 달 동안 차원 이동을 하여 모든 걸 마을에서 해결했으니까.
“준비는 끝났다.”
침대에 누워 검게 변한 조명을 쳐다봤다.
길면서도 짧은 한 달간의 훈련.
지옥 훈련이라 생각할 수 있겠지만, 스킬 몇 번 사용하고 기절. 그것의 반복이었다.
“시험해 봐야지.”
작은 깡통을 식탁 위에 두고 코코를 들었다.
전과는 확연히 다른 몸의 기운.
“후우…….”
안정적으로 심호흡을 내뱉었다.
검을 살짝 꺼내니.
스걱.
툭.
“됐다.”
깡통이 정확히 반으로 갈라졌다.
반으로 갈라진 것뿐만이 아니었다.
스윽.
“깔끔해.”
아무리 깔끔히 베려 노력해도 울퉁불퉁, 깔끔하게 벨 수가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 부분을 손으로 쓸면 베일 정도로 말끔히 깔끔하게 잘렸다.
“충분하고도 남는다.”
해맑게 미소 지었다.
처음에는 힘들 것 같던 A급 솔로 던전. 지금은 충분히 클리어할 수 있다. 아니, 가능하고도 남았다.
반으로 잘린 깡통을 쓰레기통에 넣고 밖을 쳐다봤다.
“벌써 밤이네.”
어둑어둑해진 도쿄.
벌써 잘 시간이 다가왔다.
“잠시 몸 좀 풀고 자야겠다.”
하지만 강수호는 곧바로 침대에 누워 잠을 청하지 않았다.
밤 9시. 늦은 시간이긴 하나, 깡통 하나 깔끔하게 베었다고 해서 능력을 확인한 거라 할 수는 없었다. 직접 두 눈으로 강해진 능력을 확인하고 싶었다.
“컨디션도 좋으니 바로 사용해도 되겠지.”
이제 부작용이 없다시피 하다.
“날뛰어 볼까나.”
한껏 미소를 지은 강수호가 곧장 지하 훈련장으로 향했다.
띵.
엘리베이터 도착 알림이 울렸다.
승강기에 오르자 천천히 내려가기 시작하는 엘리베이터.
얼마 지나지 않아 지하 1층에 도착할 수 있었고.
“음?”
그곳에서 익숙한 여자를 발견할 수 있었다.
여러 자연을 다스리는 익숙한 여자.
“나나호?”
“강수호 헌터?”
일본의 헌터, 나나호가 훈련장에서 있었다.
그녀는 꽤나 반가워하는 눈치였지만.
‘연습 상대로 딱이겠네.’
강수호는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지난 한 달간 고생한 결과를 그녀에게 시험할 수 있을 테니까.
세계 랭커 10위, 나나호. 지금 그가 얼마나 강한지 측정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