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0화
160. 일본(3)
‘뭐야 이놈? 왜 반응이 없어? 사람이 아닌가?’
보통 바로 옆에서 나타나면 깜짝 놀라게 마련. 더군다나 단검까지 던졌으니, 화를 내야 하는데…….
‘아무 반응이 없네.’
어떠한 반응도 없었다.
그저 조금 귀찮아 보일 뿐. 그 이상의 반응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너무 심심한데…….’
이러다가 재밌는 인간 장난감을 놓치게 생겼다.
여기서 더 건들다가는 약속을 어기게 생겼지만.
‘혼나면 되지.’
혼나면 되는 일이다.
양손에 단검을 쥐고 강수호를 향해 던졌다.
“히익!”
오랜만에 느끼는 짜릿한 쾌감. 고슴도치가 되어 피를 뚝뚝 흘릴 거라 예상했지만.
“……?!”
예상과는 전혀 다른 일이 벌어졌다.
검을 휘두르는 것과 동시에 단검을 요리조리 피한다. 맞을 것 같으면서도 아슬아슬하게.
‘오호.’
신기했다.
여유 있게 데크루의 단검을 피한 헌터는 일본에 나나호 빼고는 없었으니까.
‘조금 더 빠르게 해도 되겠는데?’
강도를 처음보다 몇 배는 더 높였다.
단검을 쉴 새 없이 던졌지만…….
툭!
툭!
“…….”
날아간 모든 단검은 벽에 꽂힐 뿐이었다. 살갗을 스치지도 못하고 허무하게 벽에 꽂힌 단검.
“신기할 놈일세?”
더 신기한 점은 검을 휘두르며 마치 연습하듯 피하고 있다는 것.
‘이건 못 참지.’
일본 암살자의 자존심이 걸린 일이다. 적당히 하려 했으나, 안 될 것 같았다.
‘죽인다.’
죽일 마음으로 단검을 던지고 휘둘렀다.
패턴 따위 존재하지 않는 어지러운 단검이 흩날리자.
‘너도 눈치챘지? 한 번 발버둥 쳐 보라고!’
강수호도 눈치챘는지 검의 날을 세웠다.
던지는 이가 암살의 대가인만큼 단검의 경로를 쉽게 예측할 수는 없었지만.
‘이 정도쯤이야, 스승님의 칼춤에 비해서는 별거 아니지.’
깡!
단검을 정확하고 놓침 없이 튕겨내었다. 그와 동시에 발을 움직였다.
‘뭔 이런 괴물이!!’
데크루가 눈을 크게 떴다. 튕겨내는 것도 모자라 자신에게 다가오는 건 전혀 예상 못 했으니까.
점점 다가오는 몸. 재빨리 몸을 피하려 했지만.
퍽!
“으윽!”
이미 가까이 다가와 턱을 올려 치는 강수호. 데크루는 반응할 새도 없이 바닥에 처박히고 말았다.
“후우, 몸 잘 풀었다.”
강수호는 검을 넣고 스트레칭을 했다. 정말 몸을 푼 듯.
“아저씨, 괜찮으세요?”
“…….”
비꼬기까지 완벽했다. 20대 청년이 아저씨라는 소리를 듣다니.
‘빌어먹을 놈!’
정신이 나가 버렸다.
최후의 수단인 독을 사용하려 했으나…….
-독이 통하지 않습니다.
“…….”
“따거라.”
독 따위 통하지 않았다.
강수호는 어느새 다시 훈련을 하고 있었다.
“허…….”
싸움에 미친 그도 압도적인 힘에 정신 나갈 정도였다.
* * *
“정식으로 사과드립니다. 저희가 제어했어야 했는데.”
“괜찮습니다. 훈련도 하고 저야 좋았는데요.”
사과까지 받을 필요는 없었다. 스승님과 하던 훈련과 비슷해서 몸도 잘 풀었고.
“……훈련요?”
그 대답에 아이오는 꽤나 당황했다. 일본의 국가 전력을 고작 훈련용 봇 취급하다니.
“아, 비하할 의도는 없었습니다.”
비하할 의도는 전혀 없었다. 오히려 꽤나 감탄하는 중이었다.
‘강하네.’
스승님에 비해서 한참이나 뒤떨어졌지만, 강했다. 순한 맛(약한 버전) 칼춤 정도 되는 수준.
“그럼 오늘은 쉬겠습니다. 먼저 들어가죠.”
“예, 들어가십시오.”
간단한 인사와 함께 호텔 방으로 올라갔다.
강수호가 사라진 훈련장. 아이오와 데크루만 남은 훈련장에서는…….
“데크루, 그새를 못 참고 덤벼들면 어떻게 합니까?”
“몰라, 심심한데 어쩌라고.”
“이렇게 두면 총리님이 곤란해하실 겁니다. 삼 일 징계 처분 내리겠습니다.”
“뭐?”
아이오가 한숨을 내쉬며 그에게 징계 처분을 내렸다.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언론이 주목할 만한 사건을 만들면 안 된다.’
강수호를 몰래 데려왔다고는 하지만, 세상에 비밀 같은 건 없다.
몇몇 세계 언론사들은 눈치채고 먼저 일본에 와 있지 않았는가.
‘조심해서 나쁠 거 없지.’
사소한 문제라도 확실하게 처리해야 했다.
“아아! 뭔 개소리야! 뭘 징계 타령이야? 네가 협회 회장이야?”
“그 정도 권한은 있습니다. 그러니까 상황에 맞게 행동해 주십시오.”
그 말을 끝으로 아이오는 사라졌다. 데크루가 벌어들인 뒷 일을 수습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놈이 뭐라고.’
인상을 잔뜩 찌푸리고 이를 가는 데크루. 조선 놈 하나 건드렸다고 저러는 것이 전혀 이해되지 않았다.
‘어차피 내일 다시 만나게 되겠지.’
하지만 징계까지 받은 상황에서 더 나섰다가는 잘못되면 영구 징계다. 적어도 삼 일 뒤에 움직여야지.
“밥이나 먹고 자야지.”
앉아 있던 벤치에서 일어나 식당으로 향했다.
배가 고파 잠이 오지 않았으니까.
* * *
“아침부터 회의라…….”
식당에서 닭가슴살 샐러드를 한가득 입에 집어넣으며 중얼거렸다.
아침이 되자마자 시작되는 간단한 회의 내용은 이번에 클리어해야 할 솔플 던전에 관한 것이라 한다.
‘일반 던전과 다르게 빠져나올 수 없는 던전. 그래서 정보가 많이 없다고 했지.’
회의라고 해 봤자, 원하는 대답은 나오지 않을 거다.
일본이 1년간 클리어하지 못할 A급 솔플 던전. 그걸 한국의 S급 헌터가 해낸다는 건 불가능할 테니까.
“상태창.”
호텔 밖을 나가 차에 오르는 것과 동시에 상태창을 열었다.
[강수호]
레벨 : Lv.110
체력 - 321 민첩 - 324 힘 - 326 마나 - 321 감각 - 312 친화력 - 150
스탯 포인트 : 0
재능 : 차원 이동(SSS급)
스킬 : [피닉스의 재생력(SS급) : Lv.2], [철옹성(SS급) : Lv.2], [미스릴의 신체(B급) : Lv.MAX], [괴물 같은 체력(C급) : Lv.MAX]…… [약점 파쇄(S급) : Lv.1]
“역시 스탯이 안 올랐어.”
보통 스승님의 가르침을 받았을 때는 조금이라도 스탯이 올라가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 오른 스탯은 0.
친화력 20 오른 것이 고작이었다.
“도대체 뭐가 문제인 거지. 열심히 훈련하는데.”
그 사달이 났는데도 아직 벽을 부수지 못한 것 같다. 훈련으로 될 게 아닌 것 같다.
‘유물의 힘을 다뤄야 하나.’
중국 협회에서 처음으로 유물의 힘을 사용해 보았다. 그걸 익숙하게 만들어야 한다.
‘한두 번 해 버리면 물약으로도 치료를 못 하니.’
하지만 함부로 사용할 수 있는 기술이 아니었다. 두 번 정도 사용하면 기절해 버리니.
‘회의 끝나고 마을에 가서 연습해야겠네.’
익숙해지기 위해서는 많이 부딪혀야 하는 법. 기절해도 안전한 장소로 옮기면 그만이다. 사용하는 유물의 주인이 눈앞에 있기도 하였고.
“도착했습니다.”
“딱 맞춰서 도착했네요.”
생각에 잠긴 채로 치킨 샐러드를 먹으니, 금세 회의장에 도착했다.
일본 협회의 건물은 꽤나 거대했다.
“들어가시죠.”
인사 팀장의 말에 따라 조심스레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협회 건물 내의 풍경은 어느 나라나 다 비슷한 것 같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곧장 회의실로 이동했다.
“A급 솔플 던전은 워낙 위험해서 고위층분들은 모두 모일 겁니다.”
“예, 무리하게 하지 않을 테니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당부를 받고 거대한 회의장 안으로 들어갔다.
끼이익.
먼저 자리에 앉아 있는 사람들.
‘TV에서 본 사람은 다 있네.’
모두 유명한 정치가와 헌터들이다.
일본에서, 또는 세계에서 이름을 날린 사람들.
“앉으시죠. 강수호 헌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
긴 탁자의 제일 앉아 있던 원형 탈모의 남자가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총리?’
금방 누군지 눈치챌 수 있었다.
일본의 총리, 한국으로 치면 대통령이 자리에 앉아 있었다.
‘큰일은 큰일인가 보네. 대빵이 나서는 것 보면.’
천천히 주변을 살피며 의자에 앉았다.
‘그때 본 헌터도 보이네.’
유명한 사람이 많아서 그런지 어제 본 사람도 있었다. 치킨을 준 사람도 있었고.
‘저 여자가 나나호였나.’
세계 랭킹 10위, 자연이라는 신기한 재능을 가진 그녀.
어제 볼 때는 평범한 대학생 같았는데, 여기서 마주치니까 느낌이 달랐다.
“이제부터 A급 솔플 던전, 회의를 시작하겠습니다.”
총리의 말에 나나호가 앞으로 나섰다.
회의장 불이 꺼지더니 하얀 불빛이 켜졌다.
‘통계 같은 건가.’
1년간 솔플 던전에서 일어난 일들을 적어놓은 적은 통계를 천천히 읽어나갔다.
“A급 솔플 던전은 지금까지 130번의 시도가 있었습니다.”
뛰어난 S급 헌터부터 시작해서 유망주라 할 수 있는 어린 헌터들, 다른 나라의 헌터도 들어갔지만, 모두 실패했다.
“하지만 모두 실패했죠.”
하지만 실패가 나쁜 것만은 아니었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
“수많은 희생 덕분에 지금까지 어느 정도 데이터가 쌓여 있었죠.”
희생 덕분에 얻은 데이터.
대부분 던전 안에서 죽었지만, 아이템을 통해 데이터는 전송되었다.
“나오는 몬스터는 오크입니다.”
“……오크?”
오크란 말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A급 던전에 고작 오크라니?
처음에는 의아했지만.
“처음에는 저도 이해할 수 없더군요. 지능을 가진 오크라니…….”
평범한 오크 따위가 아니었다. 인간처럼 도구를 사용할 줄 알고, 공동체를 이루는 오크라고 한다.
“처음을 조심하라 하더군요. 데이터의 말에 따르면.”
나나호는 말을 이어가다 그래프 하나를 보여주었다.
“입구에서 129명이 죽었고, 딱 한 명만이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죽었지만.”
입구에서 한 명 빼고 모두가 죽었단다. 그것도 들어온 지 고작 한 시간 만에.
‘입구부터 대량의 인원이 지키고 있는 건가.’
금방 눈치챌 수 있었다.
지능을 가진 오크들이니만큼 입구가 뚫리지 않아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을 아는 것이다.
“이상입니다.”
던전에 관한 브리핑이 끝나자 회의장이 정적에 잠겼다.
총리가 먼저 입을 열었다.
“강수호 헌터, 이 던전을 클리어할 수 있겠습니까?”
“…….”
솔플 던전을 클리어할 수 있겠냐 물었다. 전 세계의 헌터들이 입구조차 뚫지 못한 곳을.
“흠…….”
모두가 강수호에게 시선을 집중했다.
한 달 몇 주 뒤면 솔플 던전이 클리어된다.
물론 클리어하든 말든 상관없다.
‘클리어하면 우리에게 이득이고, 클리어하지 않아도 이득이지.’
이득이지 않은 경우가 없었다. 일본 측에선 모든 경우의 수가 이득이다.
깊은 고민에 잠긴 강수호가 주변을 둘러보며 입을 열었다.
“충분히 클리어할 수 있습니다.”
“충분히요?”
“예.”
자존심 따위를 챙기려는 것이 아니었다. 충분히 클리어할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어느 정도 시간이 필요하십니까?”
“……한 달 정도 시간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그것도 한 달 안에.
대부분의 이가 의문을 가졌지만, 고개를 끄덕였다. 클리어할 수 있다는 데 뭘 바라겠나.
“좋습니다. 일단 회의는 계속 진행하도록 하죠.”
총리가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이곳에서 가장 높은 사람. 일본 협회 회장 또한 고개를 끄덕였기에 반대하는 사람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