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7화
157. 지옥 훈련(3)
‘분명히 이렇게 했는데…….’
집에 돌아오자마자 식칼 모형을 들고 연습했다.
스승님과 똑같이 하기 위해 미친 듯이 연습했지만…….
“안 되네.”
금런 스승님처럼 쉽게 되지 않았다.
아무리 연습해도 그를 똑같이 따라 할 순 없었다.
‘조급해지지 말자. 충분히 할 수 있어.’
조급해질 필요 없었다.
천천히, 정확하게. 머릿속에 이미지를 그리며 움직였다.
“완벽해질 순 없어.”
그 동작을 똑같이 따라하기만 하면 된다. 처음부터 완벽하지 않아도 된다.
“후우…….”
숨을 깊게 들이마시고 검을 쥐어 도마를 향해 휘두르자.
핏.
“……안 되네.”
될 리가 없었다.
몇만 년이나 갈고닦은 실력. 그 실력을 그저 본 것만으로 익힐 순 없을 테니까.
“오늘은 이 정도만 하자.”
무리하게 하다가는 몸만 상한다.
“잠시 쉬었다가…….”
쉬기 위해 침대에 누워 낮잠이라도 자려 하자.
“아빠!”
“용용아, 아빠 좀 잘게. 너무 피곤해.”
“누가 왔어!”
용용이가 방문을 열고 누가 왔다는 말을 하며 다급히 들어와 현관문으로 향했다.
“수호야!”
“음? 서현아?”
최서현이 강수호의 집에 방문했다.
몸이 다 낫지 않아 쉰다고 했는데, 벌써 다 나은 듯싶었다.
“여긴 왜 왔어?”
“왜 왔긴! 오랜만에 데이트할래? 날씨도 좋고.”
온 이유는 별거 없었다. 연인 대 연인으로 오랜만에 데이트하기 위해서.
“데이트? 괜찮을까. 요즘 다들 마인 때문에 밖도 잘 안 나가던데.”
“안에서 데이트할 건데?”
물론 밖에서 데이트는 하지 않을 것이다. 요즘 마인 때문에 위험하기도 하고.
“안에서 할 게 있나?”
“그럼! 내가 이미 준비해 놨거든? 몸만 와!”
걱정할 건 없었다. 그녀가 모든 걸 준비해 놨다고 하니까.
‘기대되네.’
꽤나 기대되었다. 도대체 뭘 준비해 놨길래 이리 밝은 표정인지.
“그래, 가자!”
“야호!”
엄마는 이웃집에 수다를 떨러 간다고 했으니, 데이트를 하러 나가는 데 문제는 없었다.
“용용아, 아빠 잠시 나갔다 올게. 집 잘 지킬 수 있지?”
“웅! 용용이 잘 지킬 수 있어!”
집도 용용이가 지킬 테니, 걱정할 필요 없었다.
“갔다 올게.”
“아빠, 잘 갔다 와!”
간단한 인사와 함께 곧장 데이트 장소로 향했다.
* * *
“후우! 후우!”
“…….”
땀과 뜨거운 열기가 주변을 가득 채웠다.
그 시간이 몇 분 정도 이어지고 나서야.
“끝!”
쿵!
100kg 봉을 지지대에 걸쳐 두었다.
그녀에게 땀을 닦아낼 수건을 건네주자 기쁜 목소리가 들려왔다.
“커플 운동이라는 거 정말 좋다!”
“그러게. 하하하.”
안에서 하는 데이트는 카페 데이트 같은 게 아니었다. 흔히 운동 중독, 헬창들이 자주 하는 헬스 데이트. 그것도 그녀의 전용 헬스장에서.
“무게 좀 더 늘려줄래?”
“그래, 400kg 판 양쪽에 한 개씩 끼울게.”
400kg 판을 들고 양쪽 봉에 400kg 판을 끼웠다.
“이제 먹는다!”
“음? 뭘 먹어?”
최서현이 알 수 없는 문장을 내뱉었다.
뭘 먹는다는 걸까? 그 말의 의미를 생각하는데…….
“후우!”
그녀는 봉을 잡고 두 번 들었다 놓기를 반복했다.
‘아하…….’
보통 음식을 먹을 때나 하는 말. 하지만 헬창들에게는 쇠질이 먹는 것과 같다.
“운동 끝!”
몇 번 더 들어 올리고는 봉을 내려놓았다.
운동을 시작한 지도 벌써 세 시간이나 지났다.
잘 쉬는 것도 운동이다. 운동을 끝내고 간단한 샤워와 함께 밖으로 나가 이야기를 시작했다.
* * *
“낚시?”
“어, 아파트랑 비슷한 크기의 물고기가 낚이거든. 그리고 그 물고기는 단단해서 내 검기로도 못 베어내더라.”
“그 정도라고?”
훈련 내용에 관한 이야기를 했다.
물고기를 낚지도 못하고, 낚는다고 하더라도 쉽게 해체하지 못했다.
“그런데 스승님은 별로 힘을 강하게 준 것 같지 않았거든?”
하지만 그와 반대로 금런은 힘을 주지 않았는데도 비늘을 잘 벗겨내었다. 약점을 알고 베어내는 듯.
“부드러운 부분이 있는 건 아닐까?”
“그런 건 아니었어. 나랑 똑같은 곳을 베었거든.”
물론 그것도 아니었다. 금런 스승님은 강수호가 휘둘렀던 부분을 정확하게 베어냈다.
그렇다면 기술적으로 다른 부분이 있을 것이다.
“스승님과 뭔가 다른 게 있을까?”
그녀에게 물어본 건 풀리지 않을 궁금증을 풀 수 있을까 해서였다. 큰 이유는 없었다.
“잘 모르겠네…….”
“그래? 뭐, 벌써 알았으면 이런 고생도 안 했지.”
모른다는 대답에 아쉬워하진 않았다. 벌써 알았으면, 이런 고생도 하지 않았으니까.
“더 갈 데 있어?”
“응! 헬스 데이트를 했으면, 칼로리 보충해야지!”
“…….”
역시나 그다음 질문은 생각하던 것과 비슷했다.
열심히 운동했으니, 칼로리를 채워야 하는 법. 단백질과 야채만 먹기에 헌터들은 몸을 너무 많이 쓰니까.
“가자! 마라탕 집으로.”
“그래…….”
강수호도 어쩔 수 없이 그녀를 따라갔다.
평소에 데이트를 많이 하지도 못했고.
* * *
깡! 깡!
“아직도 안 되냐? 이틀밖에 안 남았는데.”
“울고 싶네요.”
어떤 방법을 사용해도 기갑 물고기의 비늘은 뚫리지 않았다. 눈물샘이 터질 정도였다.
“왜 안 되는 거냐고.”
이제 남은 훈련 시간도 이틀밖에 남지 않았다. 시간이 촉박해 초조해졌다.
스승님 없이 바다로 갈 수는 있겠지만.
‘그걸로는 안 돼.’
그것만으로는 강해질 수 없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는 수밖에 없었다.
“낚시부터 다시 하게?”
“예, 혹시 비밀이 있을 수 있으니까요.”
“좋아, 마음대로 해.”
금런은 별 신경 쓰지 않았다.
오히려 처음부터 하는 것이 좋을 거다. 지금은 모르는 비밀을 알 수 있을 테니까.
“낚였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처음과 다르게 물고기가 잘 낚인다는 거다. 두 시간에 하나씩.
점점 물고기가 쌓여 가자.
깡!
다시 검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전과는 변함이 없었다.
땅에 털썩 주저앉아 고민에 빠져 있자…….
“가르쳐 줄게.”
“가르쳐 주신다고요?”
이대로 가다가는 평생 비늘만 치고 있을 것 같아 금런이 나서기로 했다.
“다시 한번 잘 보거라.”
이번에는 해체하기 힘든 녀석을 잡았다. 골든 피쉬라는 대단한 녀석.
“힘이 중요한 게 아니야. 기술이 중요한 것도 아니고.”
식칼을 잡아 든 그가 웃으며 말했다.
힘, 기술은 중요한 게 맞다. 하지만 그것에 너무 치중하지는 말라는 거다.
“집중해서 봐봐. 이 녀석이 흐르는 독맥이 있거든?”
손으로 독맥이 흐르는 부분을 가리켰다. 빠르게 움직이긴 하지만, 피해서 휘두르면 그만.
“이렇게.”
스걱.
부드럽고 빠르게. 마치 아이를 대하듯, 섬세함에 감탄했다.
그리고 10초도 채 지나지 않아.
슈아아악!
황금빛을 내뿜었다.
눈이 부실 정도의 황금빛.
“마지막 힌트를 주자면, 내가 약하면 상대방을 더 약하게 만들면 되는 법이다.”
“내가 약하면 상대방을 더 약하게…….”
힌트를 던져주었다.
자기 자신이 약하면 상대방을 약하게 만들면 되는 법. 그 뜻을 이해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해 보겠습니다.”
“좋아.”
일단 행동으로 옮기기로 했다. 가만히 생각만 한다고 해서 답이 나오는 것도 아니고.
기갑 물고기 앞에 선 강수호.
“후우…….”
심호흡을 반복하여 검을 들어 올렸다.
눈을 부릅뜨고 약점을 살폈다.
‘어디를 찔러야 약해질까.’
한참을 살펴본 끝에 별처럼 살짝 빛나는 부분을 찾을 수 있었다.
여긴가, 하고 쑥 집어넣자.
푸욱.
“……?!”
힘을 주지 않았는데도 기갑 물고기의 비늘이 뚫렸다.
직접 했어도 신기할 따름이다. 이렇게까지 부드럽게 들어가다니.
“됐네요?”
“뭐가 돼?”
“들어갔잖아요!”
하지만 스승님의 표정은 밝지 않았다. 화장실을 갔다 왔는데 손을 씻지 않은 찝찝한 듯한 표정.
“한 번 쑥 밀어봐라.”
그 사실을 늦지 않게 알 수 있었다.
스승님의 말대로 검을 움직이려 했지만…….
“…….”
“안 움직여지지?”
“예.”
1mm조차 움직여지지 않았다.
“큰 이유는 없어. 그냥 약점을 잘못 짚어서 그렇지.”
“…….”
그래도 성공했다는 게 어디냐. 이제 연습만이 살길이다.
‘대충 감은 잡았어.’
어디를 찔러야 할지 감을 잡았다.
미약하게 흐르는 곳. 계속 바뀌어서 눈치를 채지 못한 것 같았다. 약점을 찔렀는데도 계속해서 약점이 변하고 있었다.
‘여기.’
코코를 빼고 이번에는 다른 곳을 찔렀다.
타이밍 맞춰 검을 넣자.
푸욱.
“감 잡았지?”
“예, 좀 어렵긴 한데, 할 만합니다.”
부드럽게 비늘이 뚫리며 검이 살을 파고든다. 하지만 여전히 두 번째 방법은 모르겠다.
“힌트는 없다. 그 정도면 됐지?”
“옙! 그 정도면 충분합니다!”
두 번째 방법은 천천히 알아보면 되는 법. 걷는 법을 배웠으니, 뛰는 법은 직접 알아야 한다.
“그전에 물고기부터 정리하고.”
“…….”
물론 정리부터 하고 훈련을 시작해야 했다. 주변에 널브러진 물고기들.
강수호가 잡은 물고기는 몰라도 스승님이 잡은 물고기의 크기는 20층 높이의 아파트와 비슷했으니까.
* * *
“허리야…….”
평균 스탯 300을 찍고 처음 아파본 허리.
물고기가 얼마나 큰지, 쉽게 옮겨지지 않았다. 그래도 이득이 없는 건 아니었다.
-스킬, ‘약점 파쇄(S급)’을 획득하셨습니다.
새로운 스킬을 획득했다.
해체보단 낚시를 더 많이 해서 낚시 관련 스킬을 얻을 줄 알았는데…….
“역시 스승님이네.”
괴물은 괴물이다.
요리만 하는 앨런조차 강수호를 한 손가락 만으로 이긴다.
“씻고 쉬어야지.”
상태창 정리까지 마치고 샤워실로 들어갔다. 땀과 바닷바람에 절어 있었으니까.
“으하. 시원하다.”
시원한 물로 몸을 적셨다.
한참 즐거운 샤워를 하고 있던 그때.
띵동.
“이 시간에 누구지?”
현관문에서 초인종 소리가 들린다.
지금은 늦은 밤. 이리 늦은 시간에 올 사람은 없었다.
오늘 데이트도 해서 최서현은 아닐 테고, 엄마도 주무시고 있어서 그녀도 아닐 거다.
“누구지?”
젖은 머리와 몸을 대충 닦고 옷을 갈아입었다.
누군지 알기 위해 인터폰을 켜 보았지만…….
“가려서 안 보이네.”
인터폰이 뭔가에 가려서 잘 보이지 않았다.
마기는 느껴지지 않아 문을 열었다.
“반갑습니다.”
“협회 회장님?”
익숙한 목소리가 강수호를 반겨 주었다.
한국 협회 회장, 이용욱. 중국에서 돌아온 그가 강수호 집 앞에 서 있었다.
“거의 한 달 만에 뵙는군요.”
“그렇네요. 벌써 오셨습니까?”
“한국에 일이 있어서 바로 왔습니다. 몸은 괜찮으십니까?”
“그럭저럭 좋습니다. 훈련도 잘하고 있으니까요.”
간단한 안부 인사가 시작되었다.
“일단 안으로 들어오시죠.”
“아, 예.”
안부 인사나 전하기 위해서 집까지 온 건 아닐 터. 분명히 다른 이유가 있는 게 분명했다.
“어머님은 주무시고 계시는군요.”
“예, 그런데 여기까지는 무슨 일로…….”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겠습니다.”
안부 인사는 지나치고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다크서클이 가득한 얼굴을 보니, 무슨 일이 있는 게 분명했으니까.
“마인 때문입니다.”
역시 마인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가장 큰 문제는…….”
마인을 뛰어넘는 가장 큰 문제는 따로 있었다. 바로 바다 건너 있는…….
“일본 때문입니다.”
빌어먹을 외놈들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