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6화
146. 두 번째 보석(4)
“더럽게 깊네.”
“조용히.”
시끄럽게 떠드는 양유혁의 입을 막았다. 깊숙한 곳으로 들어갈수록 무엇이 나올지 모르니까.
‘깨끗해진다.’
깊숙이 들어갈수록 질척거리는 피와 시체의 수는 적었다. 냄새 또한 점점 맑아지고.
10분 더 들어가자 보이는 건.
“라이언 큉?”
이곳 던전의 최종 보스. 라이언 큉의 배가 갈라진 채로 쓰러져 있었다.
양유혁이 빠르게 달려가 라이언 큉의 상태를 확인했다.
“얼마나 지났어?”
“얼마 안 됐어. 한 시간도 안 됐다.”
“한 시간도?”
죽은 지 한 시간도 채 지나지 않은 라이언 큉.
‘죽었는데 던전이 클리어되지 않았어?’
문제는 라이언 큉이 죽은 지 고작 한 시간밖에 지나지 않았다는 것이 아니다.
던전의 보스가 죽었는데, 던전이 클리어되지 않았던 것.
‘뭐가 문제인 거지?’
인상을 찡그리며 한참을 고민했다.
보스 몬스터가 죽었는데도 던전이 클리어되지 않았다는 것.
이런 일을 겪어본 적은 없지만…….
‘비밀이 숨겨져 있다는 건데.’
던전의 다른 클리어 조건이 있는 게 분명했다. 마인들도 그것 때문에 온 게 확실했고.
“찾았다.”
그 비밀을 라이언 큉의 시체 뒤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라이언 큉의 시체 뒤에서 보라색 빛을 내보내며 자신을 밝히는 비밀의 문.
“다들 준비해.”
하지만 방심은 금물.
비밀의 문에서 역겨운 마기의 기운이 느껴지고 있었다.
스르릉.
“준비 완료.”
무기를 꺼내 준비를 마쳤다.
‘처음인데…….’
이수현의 덜덜 떨리는 손.
온실에서 인간의 손에 의해 안전하게 자라온 꽃이 처음으로 밖으로 나와 자연을 느껴본 것이니까.
* * *
“기분이 좋긴 좋은데……. 이건 좀 아닌데?”
“하하하하.”
“너도 그렇게 생각하지?”
“그래, 이 미친 보석 더미에서 어떻게 찾냐.”
B급 던전에 B급 최상위 몬스터.
그런 던전을 마독까지 덮어씌우며 막은 이유가 있었다.
“첫 번째 보석을 얻지도 못했는데, 두 번째 보석을 얻으라니.”
시련을 열리게 만드는 두 번째 보석. 그것을 얻을 수 있는 던전이었으니까.
“두 번째 보석?”
“맞다, 안 가르쳐줬지?”
두 번째 보석이라는 말에 옆에서 색다른 보석을 찾던 마인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두 번째 보석이 뭔지 정확히 듣지 못했으니까.
처음 말을 꺼낸 마인은 여전히 보석을 찾으며 두 번째 보석에 대해 말해 주기 시작했다.
“시련을 열기 위한 두 번째 열쇠. 시련은 들어봤지?”
“아하, 그런 거야?”
그 대답만으로 쉽게 알 수 있었다. 시련에 대해선 이미 알고 있으니까.
“그것보다…….”
반짝거리는 보라색 보석함을 뒤지던 그가 인기척을 느끼고 고개를 뒤로 돌렸다.
“현상 수배범이 왔네.”
“마침 몸풀기 딱 좋은 상대가 왔네.”
허리를 펴며 아는 체했다.
문 바로 앞에 선 네 사람. 두 명은 몰랐으나, 나머지 두 명은 아주 잘 알고 있는 자들이다.
“강수호랑 배신자 새끼.”
“이왕이면 다른 편으로 넘어갔다고 해 주지?”
“닥쳐라, 배신자.”
그들은 강수호보다 양유혁에게 짙은 살기를 내뿜었다.
예전부터 마인이었던 존재. 그런 존재가 다른 편으로 갔으니, 살의를 내뿜는 건 당연했다.
“수호야, 그런데…… 이게 다 뭐야?”
하지만 중요한 건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방 전체에서 뿜어지는 보라색 빛이 너무 밝아서 눈이 다 아플 지경이다.
‘그건 나도 모르지.’
물론 강수호도 모르는 부분이다.
짐작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면…….
“두 번째? 아니면 세 번째 보석인가?”
“……!!”
강수호의 대답에 마인의 두 눈이 크게 뜨였다. 이리도 빨리 눈치챌지는 몰랐던 탓이다.
“착각은 자유다.”
“아니면 말고.”
말은 그렇게 했지만, 눈으로는 이미 보석을 찾기 위해 바쁘게 움직였다.
전 세계적으로 마인이 문제가 되고 있지만…….
‘시련, 그게 뭔지 모르니까 이것부터 어떻게든 해결해야 해.’
마인 협회에서 시련을 먼저 여는 건 안 된다.
먼저 여는 쪽은 무조건 강수호여야 했다.
‘시련엔 스승님들의 비밀이 있어.’
스승님들의 비밀이 가득 들어 있는 게 확실했으니까.
“저놈은 내가 상대할게. 네가 저 못생긴 마인을 상대해 줘.”
“아니, 그건 나중.”
싸우는 건 나중이었다.
마인들이 두 번째 열쇠, 보석을 먼저 찾고 도망치면 일이 더 복잡해진다.
“일단 보석부터 찾자!!”
보석부터 찾아야 했다.
마인들도 눈치를 챈 것인지 싸운다기보다는 보석을 찾기 위해 몸을 돌렸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나머지는 달려들어!!”
“예!!”
두 번째 보석을 아는 놈들이 보석함을 뒤지기 시작했다.
나머지 마인들로 그들을 밀어붙일 수 있었으니까.
“모두 준비……!!”
시련이 어떤 건지 정확히 모르기 때문에 최대한 빨리 먼저 찾아내야 한다.
보석함을 뒤지다가 코코를 들려던 그때.
“내가 상대할게. 찾고 있어 봐.”
“혼자서 가능하겠냐?”
양유혁이 당당하게 앞으로 나섰다.
조금은 의문이 들었다. 아무리 천마의 아들이라도 그렇지, 이렇게 많은 수의 마인을 한꺼번에 상대하기에는 버거울 테니까.
‘제주도 공항에서 봤던 마인들도 아니고.’
약한 것들도 아니었다. 보통 B급 헌터 이상 되는 마인들.
“너만 강해진 줄 아냐?”
물음에 양유혁이 가볍게 미소 지었다.
강수호만 강해진 것이 아니었다. 양유혁 또한 강해지고 있었다.
콰직!
“끄아악!”
“이런 잔챙이 정도는 몇 분이면 충분해.”
오른손이 빠르게 움직였다. 강수호조차 놀랄 정도의 속도.
‘놀지는 않았네?’
의외였다. 놀 것만 같았던 놈이 이리도 강해지다니.
‘아빠 때문인가…….’
짐작하기로는 천마 때문.
아빠에게 복수하고 싶을 거다.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다든가…….
어쨌든…….
“얼마나 버틸 수 있어?”
“찾기나 해! 다 조질 수 있으니까.”
보석부터 찾아야 한다.
양유혁이 달려드는 마인들을 막는 동안 강수호와 이수현, 최서현은 보석함을 빠르게 뒤졌다.
“마인들이 표시된 곳 빼고 다 뒤져봐!”
X 표시가 된 곳 빼고는 전부 뒤지기 시작했다.
‘어디지? 분명히 이 근처에…….’
강수호는 무작정 보석함을 뒤지고 있는 이들과 다르게 감각으로 찾았다.
두 번째 보석이 감각으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이건 아니고, 이것도 아닌데.’
빠르게 눈을 돌렸다.
그렇게 한참을 몸과 눈을 움직여 찾은 결과.
“저기다!”
감각이 말해 주고 있었다.
저 보석함이 두 번째 보석이 있는 보석함이라고.
빠르게 발을 놀려 보석함 앞에 도착했을 때.
“흐흐, 찾았다!”
“……!!”
마인이 두 번째 보석을 손에 넣었다.
마인은 바지 주머니에 보석을 넣고 귀환석을 꺼내 들었다.
‘나만 나가면 된다!’
어차피 간부들로 인해서 억지로 만든 동료애.
지금 마인 협회에게는 두 번째 보석이 더 중요하다. 동료 따위, 죽어도 전혀 상관없었다.
‘귀환만 하면!!’
이걸 든 채로 귀환한다면 엄청난 보상이 주어질 거다.
잘하면 간부 자리에 앉혀줄지도.
그런 망상을 하며 귀환석을 부수려던 그때.
“그건 안 되지.”
“……!!”
강수호가 귀환석을 부수려던 마인의 손을 잡았다.
쩌적.
하지만 이미 힘을 줘 버려 금이 가기 시작한 귀환석.
이대로라면 이 마인은 두 번째 보석을 들고 도망치게 된다.
‘그럴 수는 없지.’
왼손으로 마인의 손을 강하게 붙잡은 채로 오른손으로 코코를 꺼냈다.
스르릉!
아름답게 울리는 쇳소리.
쇳소리가 울리는 것과 동시에…….
스걱!
“끄아아악!”
귀환석을 잡고 있던 손을 깔끔하게 베었다.
슈아아악!
그에, 파란빛을 내뿜으며 마인의 잘린 오른손이 사라졌다.
“빌어먹을!”
귀환석 하나가 날아가 버렸다.
재빨리 나머지 귀환석을 꺼내려 했지만.
“그건 안 되지. 음속의 발걸음.”
빠르게 발을 움직여 검을 휘둘렀다.
스걱!
반대쪽 팔까지 베어 버려 귀환석을 꺼낼 수도 없는 상황.
푸욱!
“커헉! 서, 선배님…….”
“…….”
남은 마인도 없다.
피를 흘리며 차가운 살점이 되어 바닥에 널브러진 마인들.
“빠져나갈 곳은 없는데?”
그들의 말대로 아무리 주변을 살펴도 빠져나갈 구석이 보이지 않았다.
“한 번만 봐주면 안 되냐?”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이대로 생을 마감하기에는 이른 나이었지만…….
“안 돼.”
“아놔…….”
스걱!
강수호에게 그런 것 따위는 상관없었다.
정확히 목을 향해 코코를 휘둘렀다.
툭.
목을 베자 떨어지는 머리.
코코의 날에 묻은 피를 털어내며 주변을 둘러봤다.
양유혁은 마인을 모두 쓰러트리고 숨을 고르고 있었다.
“끝냈냐?”
“약한 것들이라 의외로 빨리 끝났다.”
이 정도로 강할 줄은 몰랐다. 몇 달 만에 말도 안 될 정도로 강해졌지만…….
“더 강해져서 와라.”
“너보다 강하거든?”
“그래도 내가 더 강하다.”
강수호만큼은 아니었다.
신체 능력은 뛰어날지 모르나, 스킬과 경험은 아니었다.
‘나에 비해 부족해.’
한참까지는 아니었다.
두 끗 차이.
“그것보다…….”
하지만 지금 강함의 차이가 중요한 게 아니었다. 목이 사라진 마인의 바지 주머니에 존재하는 시련의 열쇠.
“여기 있다.”
첫 번째 보석보다 몇 배는 더 빛났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띠링!
-첫 번째 보석의 상태창이 열람 가능해졌습니다.
“……!?”
첫 번째 보석의 열람이 가능해졌다.
기다려왔던 일.
일단 그전에…….
-던전이 클리어되었습니다.
“던전부터 나가자.”
던전부터 나가기로 했다.
* * *
“괜찮을까요?”
“내 알 바냐. 어차피 타국의 헌터라 다쳐도 우리가 보상해 줄 이유는 없지.”
중국 협회 팀장과 직원이 벤치에 앉아 한숨을 내쉬었다.
마독으로 가득 찬 던전. 그런 던전을 아무런 장비 없이 맨몸으로 들어갔으니까.
하지만 걱정할 필요 없었다. 다친다고 해서 보상해 줄 필요는 없었으니까.
“쟤들이 들어간 건데 뭐. 우리가 걱정해야 할 건 마인이다.”
걱정해야 할 건 따로 있었다.
던전 안에 존재하는 마인들은 던전에서 나오는 즉시 처리해야 한다.
타국의 헌터 생존 따위 상관없었다. 오히려 던전 안에서 죽었다면, 나중에 이득으로 돌아올 것이다.
‘차라리 죽었으면 좋겠군.’
비릿한 미소를 지은 채 한참을 기다렸다. 언제 마인들이 나올지 생각하며.
헌터들이 이기리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은 채로 말이다.
슈아아악!
“음? 뭐야?”
하지만 생각과는 다른 광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터질 것 같던 던전이 완벽하게 클리어되었다. 마독 또한 깨끗하게 사라졌고.
‘클리어했다고?’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마독으로 범벅이 된 던전. 어떤 헌터가 와도 클리어할 수 없는 던전을 클리어해 낸 것이다.
‘말도 안 되는…….’
말도 안 되는 일이다.
이번 던전은 마독 때문에 클리어 불가 판정이 났다.
‘괴물이야? 아니, 마인인가?’
생각할 건 들어간 이들이 마인이라는 것밖에 없었다.
‘내 눈으로 봐도 믿기지 않는군.’
하지만 놀람은 이제부터가 시작이었다.
“수고하셨습니다. 저희 중국 헌터 협회에서 많은 보상이…….”
툭.
“……?!”
“이것까지 처리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던전에서 나온 강수호의 손에서 뭔가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처음에는 너무 붉은 통에 보지 못했지만.
“이, 이건……!”
가까이 다가가 살펴본 후에야 뭔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마인?”
그것이 마인의 시체라는 것.
잘못 본 게 아니었다. 잘린 얼굴에서 보이는 붉은 광기의 눈.
‘정확하다. 마인이야.’
그 눈을 보고 마인인 걸 확신할 수 있었다.
“꿀꺽.”
저절로 마른침이 삼켜졌다.
건드리지 말아야 할 헌터를 건든 건 같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