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4화
144. 두 번째 보석(2)
“한국 협회 회장님, 지금 장난치시는 겁니까?”
“제 의견은 여전히 변함없습니다. 완강히 거부합니다.”
“흐하하하!”
웃음소리로 가득한 회의장.
일본 측 협회 회장의 웃음소리였다.
웃음소리가 한참이나 이어지더니, 이내 회의장이 침묵으로 잠겼다.
농담이 아니라는 걸 인지한 까닭이다.
“고작 유물 한 개를 가지고 있는 한국이 뭘 할 수 있다는 겁니까?”
다른 나라치고는 적은 유물의 수. 한 개밖에 되지 않아 일본의 밑으로 들어오라는 건데…….
‘협회 회장이 이리 멍청해서야. 떠먹여 준다는데 거절하다니.’
멍청해도 이리 멍청할 수 없을 거다.
안 그래도 미국, 중국이 압박하기 시작해서 한시가 급한 상황인데 말이다.
‘여기서 시간 끌 여유는 없다. 최대한 빨리 해결해야 해.’
일본 총리가 심하게 재촉하고 있으니, 최대한 빨리 해결하고 싶었다.
“좋습니다, 나나호까지 한국에 파견 드리겠습니다.”
파격적인 제안을 던졌다. 한국에 세계 랭킹 10위, 나나호를 직접 보내겠다고.
“그 헌터 말씀이십니까?”
“저희 일본의 거의 유일한 세계 헌터입니다. 이 정도 제안이면 충분하리라 생각이 듭니다만?”
지금의 중국보다는 아니지만, 한국도 마인의 수가 많아 심각한 상황이다.
유능한 이구호, 신하림 같은 헌터도 한계가 존재한다.
이 정도 제안이라면 누구든지 거절하지 못할 거라 생각했지만.
“그러면 계약…….”
“사양하겠습니다.”
“예? 방금 뭐라 말씀하셨습니까?”
“계약을 사양한다고 말씀했습니다.”
5초도 안 되는 짧은 시간 안에 거절 의사를 밝혔다.
다시 한번 침묵으로 잠긴 회의장.
한국에게는 이보다 유리한 제안이 없을 거다. 원래 같았으면 계약을 승인하고 밑으로 들어가겠지만…….
“한국 대통령께서도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렇죠.”
대통령도 받아들이지 않은 일본의 제안.
헌터 협회 회장이라고는 하나, 거절할 권리는 없었다.
“하지만 굳이 헌터를 이렇게까지 큰 피해를 감수하면서 데려올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나나호 하나로 큰 피해를 감수할 수 있습니다.”
마인 밭인 한국에 나나호는 꼭 필요한 인물이다. 광역으로 마인과 몬스터를 쓸어 버릴 수 있는 헌터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생각이 바뀌었다.
“저희도 유물은 충분합니다.”
“유물이 충분하다고요? 풉, 죄송합니다. 워낙 어이없는 이야기인지라.”
일본 헌터는 필요 없단다. 미국 헌터를 빌리는 것이 워낙 비싼지라 일본에 요청한 걸 텐데…….
“이걸로 국가 간의 회의를 마치도록 하겠…….”
지원 따위 필요 없었다.
생각 없이 빌렸다가는 옛날처럼 될 수도 있을 테니까.
회의를 끝내고 자리에서 일어나려던 그때.
“이용욱!”
“여기서 더 추해지실 예정입니까? 후회하실 텐데요.”
“후회? 그건 내가 할 말 아닌가?”
의자를 박차고 일어난 일본 협회 회장. 예의 따위 신경 쓸 순 없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한국을 밑으로 데려가야 한다.’
방파제가 하나 생긴다는 것. 그것만으로 일본은 어떤 짓이든지 할 수 있었다.
그런데 그런 기회를 지금 놓치게 생겼다. 이대로 일본으로 돌아가면 총리한테도 욕을 먹고, 권력도 내려놓아야 할지 모른다.
‘이 회의에서 결단을 내야 한다.’
한국 협회 회장의 얼굴을 보니 뭔가 있는 건 분명해 보였다. 나중은 없을 것이다.
“이용욱 협회 회장님. 다시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가 지켜준 다잖습니까? 한국을.”
겉으로만 보면 몇 가지 사항만 잘 지켜준다면 안전을 얻을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이용욱은 알고 있었다.
‘한국 전체를 일본 방파제로 삼으려 하는군. 그건 안 되지.’
일본의 잔혹한 수법을.
옛날처럼 똑같이 당할 일은 없을 거다.
“죄송합니다만, 제 대답은 변함이 없습니다. 그리고…….”
말끝을 잠시 흐린 이용욱이 휴대폰을 꺼냈다.
그리고 흘러나오는 말.
-협회 회장의 말에 동의합니다.
“누구십니까?”
익숙한 목소리였다.
혹시 몰라 예의를 갖춰 묻자.
-대통령입니다.
“……!!”
휴대폰 목소리의 주인은 다름 아닌, 대통령이었다.
-대통령으로서 말합니다. 일본 측의 제안을 거절하겠습니다.
대통령이 휴대폰을 통해 직접 말했다. 녹음한 목소리도 아닌, 자신이 직접 목소리를 내어서.
“하, 하지만 대통령님. 한국 측은 유물이 고작 한 개밖에 없지 않습니까? 그 한 개도 힘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고요.”
하지만 그냥 돌아가선 안 된다. 어떤 일이 있어도 한국이 일본의 제안을 받아들여야 한다.
결국 최후의 방법을 사용하기로 했다. 이구호가 가진 그 유물이 가짜라는 사실을 알리는 것.
“정확히 말하자면 그 유물은 가짜입니다. 제힘을 발휘하지 못할.”
그 말을 끝으로 일본 협회 회장이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회의장에는 일본과 한국만 있는 게 아니었다.
이 사실을 알면 다른 나라 협회에서도 한국에 손을 내밀 거다. 안전이라는 보상 안에 시한폭탄을 숨기고 말이다.
“이미 알고 있는 부분이었습니다.”
“예? 그게 무슨…….”
이용욱은 일본 협회 회장의 비릿한 미소에 웃음으로 화답했다.
이미 잘 아는 부분이었다. 강수호가 직접 와서 유물을 보여줬으니까.
“이 제안은 없던 거로 하겠습니다. 저희끼리 막을 수 있습니다.”
회의장에서 유유히 사라지는 한국 협회 회장.
일본 협회 회장은 의자에 멍하니 앉았다.
‘이런 젠장!!’
한국 포섭에 실패했다.
저 계약서에 사인만 하면 모든 일이 일사천리로 진행됐을 것이다.
‘빌어먹을 협회 회장. 저놈만 아니었어도.’
옛날 협회 회장이면 이렇게 귀찮은 일이 생기지도 않았을 것이다. 돈과 권력만 주면 술과 여자에 빠져 흥청망청 살 게 분명했으니까.
‘이용욱, 저놈이 다 망쳤어.’
두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성공할 수 있었는데. 아니, 애초에 이용욱이 협회 회장이 아니었으면 됐는데.
“회장님, 괜찮으십니까? 총리께서 전화를 거셨습니다.”
“총리님께서?”
때마침 총리가 일본 협회 회장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긴장되는 상황.
“후우……. 빌어먹을.”
“받지 말까요?”
“뭘 받지 말아. 받아. 죽이지는 않겠지.”
한숨을 내쉬며 휴대폰을 들었다.
초록색 버튼을 끌어당기고 귀에 휴대폰을 가져다 대자.
-어떻게 됐나?
“총리님, 저기 그게…….”
분노에 가득 찬 총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기서 실패했다고 말하면 불같이 화낼 게 뻔했지만…….
‘맞는 게 낫겠지.’
끙끙 앓고 있다가 더 세게 맞는 것보다는 나을 터.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실패했습니다.”
-…….
“총리님?”
실패했다는 대답에 한참이나 목소리가 들려오지 않았다.
휴대폰이라도 던졌는가 싶었지만.
“총리님? 괜찮으십니까? 총리…….”
-닥쳐라.
“아, 옙!”
얼마 지나지 않아 들려오는 날카로운 대답. 그에 빠르게 입을 다물었다.
여기서 입을 더 열었다가는 목이 잘릴 것이다.
-후우…….
“…….”
휴대폰 너머로 들려오는 한숨 소리. 입을 다물었다.
한참이나 침묵이 이어지더니.
-죽여라.
“예, 예?”
짧은 대답.
그 대답을 마지막으로 전화가 뚝 끊겼다.
뭔 상황인가 싶었다.
갑자기 ‘죽여라’라는 메시지 하나를 날리고 전화가 뚝 끊기다니. 전혀 이해되지 않은 상황이었지만…….
“협회 회장님.”
“음? 무슨 일이야?”
상황을 파악하는 데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부하 한 명이 뭔가를 전하기 위해서 가까이 다가오더니.
“또 전할 거라도 있……. 커헉!”
푸욱-!
날붙이가 일본 협회 회장의 복부를 찔렀다.
“이게 무슨 짓인가!!”
소리쳐댔지만, 소용없었다.
복부에 날붙이를 쑤셔 넣은 그가 가벼운 묵념 후 말했다.
“총리님의 지시입니다. 이 사실을 알 사람이 없어야 한다면서.”
“……그러면 너는!?”
“제가 협회 회장 자리에 앉게 되었습니다. 입 싹 닫고 있어야죠.”
회의장에 존재하는 사람은 고작 둘뿐. 누구도 일본 협회 회장이 죽었다는 걸 알지 못했다.
털썩.
피를 흘리며 쓰러진 일본 전 협회 회장.
피 때문에 더러워진 손을 닦은 그가 종이 한 장을 꺼내 천천히 글을 써 내려갔다.
“하이츠, 일본 전 협회 회장. 사망. 사안, 누군가의 암살 습격으로 인한 죽음.”
탁!
마침표까지 찍으며 글을 마무리했다.
쓸모없는 인간은 버려야 하는 이곳.
“시간이 다 됐군.”
종이와 볼펜을 내려놓으며 귀환석을 사용했다.
슈아아악!
파란빛을 내뿜으며 사라지는 남자.
회의장에서는 싸늘한 전 협회 회장의 시체만이 남아 있었다.
* * *
-정말 괜찮은 건가? 자네를 믿어도 되겠지?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다 방법이 있습니다.”
-그래, 자네만 믿겠네. 처음으로 이리 좋은 협회 회장을 얻었는데, 믿어봐야지.
“감사합니다, 대통령님. 이만 들어가십시오.”
툭!
그 말의 끝으로 전화가 끊겼다.
어느새 헌터 협회 회장의 사무실에 도착했다.
“잘한 거겠지?”
턱을 괴며 자신에게 물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이 잘한 건지 잘 모르겠다. 도박에 가까운 행위였으니까.
“정말 그 아이. 아니, 그 헌터가 할 수 있을까.”
아직도 의문이 들고 의심이 들었다. 그 헌터가 잘해 낼 수 있을지.
“내가 할 일은 다 했다. 이제 강수호 헌터가 해 내는 수밖에 없겠지.”
한국 헌터 협회 회장,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다 했다.
자신의 자리를 지키며 일을 처리할 수밖에.
“바둑 좀 두자고 해야겠군.”
전화기를 들어 이석현에게 전화를 걸려 했다. 쉬는 시간에는 바둑을 두며 생각을 정리하는 게 좋았으니까.
번호를 눌러 막 전화를 걸려던 찰나.
덜컥.
“음? 비서 아닌가? 무슨 급한 일이길래 노크도 안 하고 문을 연 건가?”
누군가 회장의 문을 벌컥 열고 들어왔다.
매일 업무를 관리해 주는 김 비서가 땀에 젖어 숨을 헐떡이며 회장실에 급하게 들어 왔다.
“회장님!”
“무슨 일이길래 이렇게…….”
“일본 협회 회장이 죽었습니다.”
“……!!”
비서의 말에 두 눈이 크게 뜨였다.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싸웠던 그 일본 협회 회장이.
‘죽었다?’
차가운 시체가 발견되었단다.
그것도 대화를 나눴었던 회의장에서.
“사안은?”
“습격입니다.”
“협회 회장들이 다니는 곳에 습격을?”
“옙.”
“돌아 버리겠군.”
쉬기는 그른 듯하다.
누가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위험한 상황이다.
‘날 잡으려면 S급 헌터, 그 이상의 괴물을 보내야겠지만…….’
이용욱은 트롤보다 더욱 뛰어난 재생력을 가지고 있다. S급 헌터 여럿이어도 죽이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일단 알겠다. 이만 쉬거라.”
“회장님도 쉬십시오.”
상황 파악은 되었으니, 다급히 왔던 비서를 내보냈다.
쉴 시간 따위 없었다.
“빌어먹을 업무나 봐야겠군.”
바둑을 두기보다는 새로 생긴 업무를 보기로 했다.
“어디 보…….”
띠링!
띠링!
띠링!
“…….”
메일함을 열자 무수하게 떠오르는 메일들.
벌써부터 머리가 지끈거린다.
“오늘도 밤을 새워야겠군.”
시간을 확인한 그가 한숨을 내쉬며 키보드 자판을 두드렸다.
오늘도 쓸쓸히 컴퓨터 모니터 앞에 앉아 늦은 업무를 시작했다.
강수호 헌터가 이 판을 뒤집길 기다리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