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0화
140. 어딜 내놔도 부끄러운 우리 스승님(4)
두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이제 한국 생활에 익숙해졌다 생각해서 밖으로 자유롭게 내보냈는데…….
“스승님?”
“으흠, 무슨 일이지? 제자.”
또 큰일을 만들었다.
모른 척,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리고 있었지만.
“뭐 때문인지 아시죠?”
“왜, 왜 그런가? 나의 제자야. 이상한 놈 한 번 만나고 컵케이크를 먹고 있는데.”
“…….”
떨리는 목소리. SNS에서 발견할 수 있는 샬런의 얼굴.
증거가 명확하니, 변명할 수는 없을 거다.
“그놈들이 먼저 시비를 걸었다.”
“뭐라고요.”
“내가 가진 운동 기구보다 좋은 운동 기구를 준다길래…….”
“…….”
“그런 운동 기구, 필요 없어서 됐다니까, 저놈들이 먼저 검을 휘둘렀다.”
샬런도 억울하다. 상대방이 먼저 공격했으니까.
“그래도 그렇지. 하아…….”
다시 한번 이마를 짚었다.
아무리 그래도 지킬 선이란 게 있다. 상대방이 시비를 걸었다고 해서 반죽음 상태로 만드는 법은 없다.
헌터에 관한 일이 SNS로 다 퍼졌기 때문에 스승님을 대신해 고개 숙여 사과했다.
“허허, 사과하지 않아도 되네.”
“예? 사과하지 않아도 된다뇨? 협회 측에서 큰 타격을 받았을 건데.”
오히려 사과하지 않아도 된다는 답변을 받았다.
고개를 갸웃거리자 이용욱이 직접 휴대폰 화면을 보여 주며 설명해 주었다.
“이거 보게나.”
“……?”
그 이유를 금방 깨달을 수 있었다.
[국가대표 선발 예선전을 끝내고 나온 **씨는 무고한 시민의 머리를 바닥에…….]
-무고한 시민 : 중국인 S급 헌터.
-무고한 시민이 S급 헌터냐 무슨 ㅋㅋㅋㅋ
-대충 봐도 저놈이 치근덕댔잖아. 기사 내려라ㅋㅋㅋ
-애초에 무고한 시민이 어떻게 은신 스킬을 사용하고 칼을 들고 다니냐고 ㅋㅋㅋㅋㅋ
“…….”
기사의 반응이 그다지 좋지 않았다. 물론 기사가 이상하다는 쪽으로.
“다…… 기사 욕을 하네요?”
모든 댓글이 기사를 욕하고 있었다.
이딴 기사를 쓸 시간에 방구석에 앉아 게임이나 한 판 돌리는 게 낫다면서.
“당연하죠. 댓글 보시면 이분이랑 시비 붙으신 분이 중국 헌터입니다.”
“중국 헌터요?”
“예, 특히 암살계에서 유명한 S급 헌터입니다. 세계 헌터로 나아갈 가능성도 있고요.”
“아하…….”
협회 회장 말을 들은 강수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무작정 스승님에게 화부터 내면 안 됐었다.
‘잘한 거였네.’
협회 회장이 설명하지 않아도 눈치챌 수 있었다. 중국 쪽에서 몰래 샬런을 스카우트하려다가 실패한 거라고.
“저, 스승님…….”
“스승 삐졌다. 착한 사람을 욕하다니.”
“…….”
제대로 알아보지 못한 강수호의 잘못이 확실했다.
샬런은 팔짱을 끼고 입술을 불퉁하게 내밀고 있었다.
“뭐 드시고 싶으세요? 오늘 먹고 싶은 거 다 먹게 해 드릴게요!”
“그건…… 달콤한 유혹이군.”
먹을 것으로 그를 꼬셨다.
충분히 오해할 만한 소지도 있었으니 샬런도 제자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했다.
“그러면 봐주도록 하지. 나도 실수를 하는데, 제자라고 해서 실수를 하지 않을까.”
“아, 예…….”
사실상 강수호보다 실수를 많이 한 것이 샬런이다.
그래도 일단 그의 기분을 풀어주기 위해 그 이상의 말은 하지 않았다.
“그러면 뭐부터 먹으러 갈까?”
“저는 아직 경기를 다 안 마쳐서 조금만 더 기다려주십시오.”
“그래? 벤치에 앉아서 케이크를 먹으며 기다리도록 하지.”
밥을 먹으러 가기 전에 예선전부터 끝내야 했다. 아직 1승밖에 따지 않았으니.
“여기서 기다리고 계십시오. 금방 끝내고 오겠습니다.”
“그래, 빨리 갔다 오거라. 되도록 다 먹기 전에 갔다 오거라.”
근처 벤치에 앉은 샬런을 내버려 두고 예선전을 치르러 이동했다.
* * *
“뭡니까? 무슨 일이라도 일어났습니까?”
“금방 올 것 같습니다. 잠시만 기다려주시면…….”
아홉 개의 검을 띄운 채로 강당에 심판과 서 있는 한 남자.
방금까지만 해도 강수호와 싸웠던 그였지만…….
“더럽게 늦네.”
뭔 일인지 강수호는 협회 회장과 어디론가 가고 돌아오지 않았다.
심판의 말을 들으며 의자에 누워 있자.
“큰일은 아니라서 정말 다행이었습니다. 또 스승님이 깽판을 쳐 놓으나 어쩌나 걱정했는데.”
“힘이 강한 만큼 판단력도 뛰어나신 분입니다. 실수를 조금만 줄이시면 괜찮으실 겁니다. 아, 물론 사회의 실수 말입니다.”
협회 회장과 강수호가 이야기하며 걸어오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괴물이 될 녀석이 협회 회장과 친하다고 하더니…….’
소문이 사실인 걸 확인했다.
하지만 대결의 승패 여부에는 큰 상관이 없었다.
‘협회 회장이 이 대결에 끼어들 이유는 없다.’
아무리 인맥이 좋아도 국가대표를 고르는 예선전에 협회 회장이 끼어들 일은 99.9% 확률로 없을 거다.
끼어들더라도 방금처럼 다 끝난 후일 것이다.
“드디어 왔군.”
“일이 있어서 말입니다.”
강수호가 강당 안으로 들어오자 벤치에서 일어났다. 다시 대결을 준비해야 할 테니까.
“그러면 다시 시작하도록 하지.”
“저도 좋습니다.”
이용욱도 자리를 잡고 마지막 예선전 경기를 바라봤다.
S급 헌터, 세계 1등으로 자리 잡을 수 있는 헌터. 그런 새로운 헌터가 경기를 치르고 있었으니까.
“바로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심판이 두 헌터를 살펴보더니.
“시작!”
휘이잉!
시작을 알렸다.
시작을 알리자 불어오는 거친 바람.
심판이 낸 게 아니었다.
“이번엔 전력으로 바로 가지. 저번 경기에는 봐줬다.”
“맘대로 해.”
남자가 강수호를 향해 빠르게 달려오며 낸 풍압.
묵직한 풍압에 놀랐지만…….
‘이 정도쯤이야, 엘프 스승님에 비하면 별것도 아니지.’
아직도 기억난다. 정령을 다루기 위해서는 어떤 자연환경이든 견뎌내야 한다고.
이 정도 풍압쯤은 산들바람과 같았다.
“이건 또 어떻게!!”
놀란 그를 뒤로 이전의 기억을 떠올렸다.
‘그때 본 감각을 그대로 되살려서…….’
암시장에 갔을 때 마인이 유물을 사용했던 것처럼 아힐런의 옛 검을 사용했던 그때의 그 기억을 되새겨…….
“절대로 내 검을 뚫지 못할 것이…….”
“발검.”
그때 그 자세 그대로 가져와 검을 휘둘렀다.
보일 듯 말 듯 투명하게 변한 검기를 가진 검을 휘둘렀다.
‘보이지 않는다!’
많은 괴물들을 봐 온 이용욱조차 눈에 보이지 않은 검의 속도.
발검이라고는 하나, 이렇게까지 빠른 발검은 난생처음 본다.
심지어 빠르기만 한 것뿐이 아니었다.
“말도 안 되는…….”
“오, 이게 되네. 팔이 좀 욱신거리긴 하지만.”
쿵!!
강당 전체가 반으로 베어졌다. 그것도 아주 깔끔하게.
아힐런의 힘을 약간 카피하긴 했지만, 힘 조절이 부족했다.
“…….”
“어…… 이긴 거죠?”
“S, S급 헌터! 강수호의 승리입니다!”
정신을 차린 심판이 그제야 승리라는 확신을 던져주었다.
지금 서 있는 원은 그냥 원이 아니었다. 강한 헌터들이 스킬들을 남발하는데 일반 강당이 버틸 리가.
‘원을 특별하게 세팅을 해 놔도 저 정도의 힘이라고?’
이용욱의 입이 쩍 벌어졌다.
신체 초월을 가진 이석현을 처음 봤을 때보다 격한 반응이었다.
저 공격이 원래의 반이라는 건데.
‘원이라도 설치하지 않았으면 강당 전체가 무너질 뻔했군.’
멍한 표정으로 반으로 갈라진 강당을 쳐다봤다.
그것보다 더욱 소름 끼치는 건…….
‘강수호 헌터보다 몇백 배는 강한 남자가 벤치에 앉아 컵케이크를 먹고 있으니…….’
이런 걸 가르쳤다는 스승의 모습에 놀라고 있었다.
베기를 가르치기 위해서는 그보다 더한 것들을 알아야 한다. 그래야 정확한 베기를 가르쳐 줄 수 있을 테니까.
‘과연 샬런이란 자의 능력의 한계가 어느 정도일지 궁금하군.’
강수호의 힘을 보니 스승님이란 자가 얼마나 강한지 궁금해졌다. 전보다 몇 배나 더, 한계가 어느 정도인지.
“보니 샬런이란 자와 같은 스승이 더 있는 것 같고…….”
더군다나 샬런 말고 새로운 스승님이 있다는 걸 눈치챌 수 있었다. 마법부터 다양한 능력까지.
‘최소 재능이 30가지가 아닌 이상에야 불가능한 일이지.’
강수호는 정말 많은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 재능이 30가지는 아닌가 생각이 들 정도로.
하지만 이용욱은 모르고 있었다. 스승님이란 자들이 100명이 되어 가는 것을.
“경기는 끝난 것 같군.”
경기가 끝난 것까지 확인한 이용욱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늘 여기까지 와서 예선 경기를 본 이유는 저 둘, 강수호와 그의 스승님, 샬런을 보기 위해서.
“오늘 일이 뭐가 있지?”
“일본 총무와 회의가 잡혀 있습니다. 대통령님과 함께.”
“유물 때문이지?”
“그렇습니다. 유물 문제 때문에 급히 국제회의를 여신 거로 예상됩니다.”
“할 일이 많겠군. 이만 들어가도록 하지.”
“차로 모시겠습니다.”
이용욱과 협회 비서가 자리를 떠났고.
“스승님이랑 밥 먹으러 가야지. 서현아! 너도 갈래?”
“그, 그래…….”
최서현과 함께 벤치에 앉아 있는 샬런에게로 발걸음을 옮겼다.
* * *
“지금 몇 번을 실패하는 거지?”
“죄송합니다. 뭐라 할 말이 없습니다.”
“할 말이 없으면 입을 찢어줘야 하나?”
“…….”
입을 다물었다. 이 이상 말을 한다면 정말 입이 찢어질 수도 있을 테니까.
“그래서 샬런이라는 자는 어떻게 됐지?”
“별 관심 없어 보입니다.”
“한국보다 몇천 배는 좋은 대우를 해 준다고 해도?”
“그렇습니다. 그다지 좋아하는 눈치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오히려?”
잠시 말끝을 흐리며 눈치를 살폈다.
다음 말을 기대하는 눈치가 보이자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한국 협회에서 뭔가를 주는 건 아닌가 봅니다.”
“그런데도 우리 쪽으로 오지 않는다고?”
“예, 마치 자신이 다 가지고 있는 것처럼 전혀 신경 쓰지 않았습니다.”
“…….”
그의 말대로 샬런은 누군가에게 지원받을 필요 없었다. 먹을 걸 주면 좋아하겠지만.
“능력치를 올려주는 것에 관한 흥미는 없어 보입니다.”
“그런가…….”
턱을 쓰다듬으며 고민하다가.
“이번에는 봐주도록 하지. 어차피 가능성이 크진 않았어.”
“가, 감사합니다.”
참았던 숨을 내뱉었다.
턱을 쓰다듬던 손이 자신의 목을 향해 날아올 수 있을 테니까.
“그 방법밖에 없겠군.”
“국가 대항전이 미뤄질 수 있습니다.”
“그 정도쯤이야 괜찮다.”
중국의 밤 풍경을 쳐다보며 말했다.
그 정도쯤이야 그의 재력으로 충분히 가능한 행동이다.
“1년 뒤 치러질 국가 대항전에서 온갖 수를 사용하여 이겨야 한다.”
“알겠습니다.”
“그만 들어가 보거라.”
“감사합니다.”
“그래, 꼭 1등이어야 한다. 무조건.”
말이 끝나는 것과 동시에 재빠르게 그 방에서 나왔다. 목이 사라지는 아찔한 느낌을 느끼기 싫었으니까.
“정신 차려라. 멍청한 놈.”
“……죄송합니다.”
“다음의 실수는 죽음뿐이다. 아직 죽기에는 이른 나이니.”
“옙.”
그 말의 끝으로 둘은 건물에서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