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9화
139. 어딜 내놔도 부끄러운 우리 스승님(3)
“목표를 확인했습니다. 지금 덮칠까요?”
-기다려라. 목표가 카페 안에 들어갈 때 계획을 이행한다.
“알겠습니다.”
은신으로 무성한 나무에 숨어 있는 한 남자.
샬런이 카페에 들어가자 곧바로 발걸음을 움직였다.
-계획을 이행해도 좋다.
“알겠습니다.”
전달받은 계획을 이행하기 위해서.
‘이날만을 기다려 왔다. 중국을 위하여!’
그가 쨍쨍한 햇빛이 비치는 아침부터 한 남자를 미행하는 이유가 있었다.
많은 헌터 인재를 양성하는 중국조차 이기지 못하는 괴물. 샬런의 제거가 아닌…….
“여기 케이크가 맛있다고 들었는…….”
“이 카페에 있는 디저트, 모두 주십시오.”
“……?”
그를 중국으로 오게 만들기 위해서.
굳이 싸울 필요는 없다. 어차피 진다는 걸 알고 있으니 다른 걸로 그를 유혹하면 된다.
알아본 바로 샬런이 가장 좋아하는 건 먹는 것.
“에이, 그걸 다 사 버리면 어떻게 합니까. 다른 데 가야겠네.”
다른 가게에서 음식을 사려던 그때…….
“잠시만요.”
“음? 무슨 일입니까?”
디저트를 다 산 남자가 샬런을 불러 세웠다.
이제는 한국말에 익숙해진 샬런이 유창하게 물었다.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고개를 돌려보자.
“이 디저트, 다 드셔도 좋습니다.”
“뭐라고? 내가 잘못 들은 건 아니겠지? 당신이 산 디저트를 다 먹어도 된다고?”
“예, 그렇습니다. 그 대신 한 가지 부탁만 들어주시면 됩니다.”
디저트를 다 먹어도 된단다.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이상한 부탁만 아니라면 뭐든지 가능했다.
도를 넘는 부탁을 하면 가차 없이 돌아설 예정이다.
남자는 잠시 숨을 고르고는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혹시 저희 중국 소속에 오실 생각이 없으십니까?”
“중국 소속?”
“예. 저희의 모든 전력을 동원해 샬런, 당신을 캐어할 예정입니다.”
“오호…….”
남자가 꺼낸 이야기는 누가 봐도 달콤한 사탕 같았다. 먹으면 이가 썩는다는 걸 알고 있어도 넘어갈 수밖에 없는.
긴 고민 끝에 샬런이 물었다.
“그쪽에 혹시 쓸 만한 운동 기구가 많느냐?”
“네, 당연하죠! 당신이 원하는 운동 기구는 모두 준비할 것입니다!”
운동 기구를 준비하는 것쯤이야 일도 아니다. 지금 그가 사용하는 것과 비교해 몇천 배는 고급진 운동 기구들이 즐비할 테니까.
“그러니 저희 중국 소속으로…….”
“흠, 그렇다면 한 가지만 더 질문하겠다.”
하지만 질문은 아직 끝난 게 아니었다.
남자의 인상이 찌푸려졌지만, 이것도 끌어들이는 과정이라 생각하고 잠자코 들었다.
“무엇을…….”
“아령은 몇천 t까지 준비되어 있지?”
“……?!”
잠시 멍하니 있다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무리 다시 생각해도 샬런의 질문을 이해하지 못한 까닭이다.
“그게 무슨 소리인지…….”
“다시 설명해 주지. 아령의 무게가 산 하나를 넘어가는 게 있냐는 거다.”
“주택 무게 정도는 있습니다! 산 무게는 아직 없고요!”
샬런의 말을 이해한 남자가 힘차게 대답했다.
당연히도 그런 아령 무게는 없다. 애초에 그걸 드는 것도 불가능하고.
그저 농담으로 내뱉은 말이라 생각했지만…….
“내가 갈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겠군.”
“예, 예?”
“음식은 다른 곳에서도 먹을 수 있다. 그럼, 이만 가 보지.”
“…….”
자신이 가진 것보다 몇 배는 후진 장비밖에 없으니, 갈 필요 없다고 생각했다.
한국에 있는 것도 제자 때문에 있는 거니까.
카페에서 나가려던 그때…….
“자, 잠시만요!”
“무슨 일이지? 배가 등에 붙을 지경이다. 빨리 말해라.”
“그것이…….”
다시 샬런을 붙잡았다.
하지만 마땅히 답해야 할 말이 없어 거짓을 말하기로 했다.
“이만 가 보도록 하…….”
“잠시만요! 있습니다! 그 정도 무게를 가진 아령이라면 있습니다!”
“진짜인가?”
그런 아령이 있다는 말에 발걸음이 멈췄다.
한국을 아무리 뒤져봐도 그런 무게는 없었으니까.
“그럼요! 중국 쪽으로 오시면 바로 지급해 드리겠습니다.”
“그래도 됐다.”
“예? 왜요?”
샬런은 잠시 고민해 봤지만, 이내 거절했다.
남자가 이유를 묻자 인벤토리에서 아령 하나를 꺼내 보여 주었다.
“원래 있어서. 이만 가 보지.”
“…….”
이때까지 장난을 친 거다.
이미 산 무게와 비슷한 아령이 있단다.
남자는 멍하니 생각에 빠졌다.
‘장난을 쳐?’
중국에서는 엄청난 대접을 받는 신생 S급 헌터.
세계 헌터까지 올라갈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진 헌터에게 모욕을 주었다.
‘나에게 모욕감을 주다니…….’
분노가 머리끝까지 쌓였다.
협상의 대상이라고는 하나 참을 수 없다.
“그건 좋지 않은 선택인 것 같은데?”
“나에게 그런 모욕감을 주다니…….”
암살 재능으로 유명한 남자가 몸을 빠르게 놀렸다. 육안으로 전혀 쫓을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뭐 하는 거지?! 지금 당장 멈춰! 계획을 다 망칠 생각인가?
그때 마침 들려오는 상부의 목소리.
하지만 그의 정신은 이미 나가 버렸다. 난생처음 받아 본 무시였으니까.
“죽어라!”
“제자가 이상한 일이 있으면 되도록 피하라고 했는데…….”
인상을 찡그렸다. 귀찮은 일에 휘말렸다가는 강수호에게 혼날 수도 있으니까.
하지만 이럴 때는 제대로 상대해야 하는 법.
“가만히 있어라.”
“……!!”
은신 상태인 그의 얼굴을 감쌌다.
“힘 조절 못 해서 죽을 수도 있으니까.”
살짝 힘을 주고 머리를 바닥에 내리꽂았다.
쾅!!
“커헉!”
-이런…… 멍청한 놈.
몰래 보고 있던 남자의 인상이 찡그려졌다.
샬런에 대해 알아봤기에 그가 얼마나 강한지 알고 있었다.
중국 S급 헌터를 모두 데려와도 이기지 못하는 강자 중의 강자를 섭외해 와도 대우해 주기 힘들 지경인데…….
‘내가 해결해야겠군.’
발이 무겁기로 유명한 그가 움직이기로 했다.
이대로 가다가는 큰 사고가 터질 것이다. 한국에 몰래 들어 온 것이니까.
“잠시 멈춰 주시기 바랍니다.”
“넌 또 누구지?”
“이 녀석의 상사입니다. 죄송합니다. 상사로서 사과드리겠습니다.”
일단 고개부터 숙였다. 여기서 고개를 숙이지 않으면 목숨이 위험해진다.
‘더 가다가는 죽겠어. 거기다가…….’
주변이 샬런 때문에 점점 소란스러워지고 있었다.
주변에 사람이 모여 저들의 사진까지 찍고 있기 때문에 불법으로 입국한 것을 들킬 확률이 높다.
‘일단 작전상 후퇴다.’
여기서 더 작전을 이행했다가는 일이 커진다.
반쯤 얼굴이 부서진 그를 데리고 사라졌다.
“나 참, 배고픈데 움직이게 만들다니.”
샬런이 인상을 잔뜩 찌푸렸다.
움직이면 음식이 소화된다. 안 그래도 배가 고픈데, 남은 음식마저 사라지게 했으니 화날 수밖에.
“그래도 선물은 주고 갔네.”
하지만 굳이 그들을 쫓아가진 않았다. 카페에서 산 다양한 디저트를 선물로 주었으니까.
“딸기 생크림 케이크는 맛있겠군.”
시선이 집중된 곳을 벗어나 다른 곳에 자리를 잡았다.
그러고는 딸기 생크림 케이크를 한입에 베어 물었다.
* * *
깡까라랑!
쇠와 쇠가 부딪히는 고막이 터질 정도의 큰 소리가 강당 전체에 울린다.
‘검이 여러 개라서 쳐내는 게 힘드네.’
하지만 충분히 버틸 수 있었다. 검을 쳐내지 못할 수준까지는 아니었으니까.
“오호, 실력은 나쁘지 않군.”
“실력 운운할 레벨은 아닌 것 같은데.”
“하! 나 정도면 헌터들 중에서 검을 가장 잘 다루지! 이 재능은 검을 잘 다뤄야만 사용할 수 있으니까!”
“…….”
정신 나간 녀석의 말은 더 이상 듣지 않기로 했다.
누구보다 뛰어난 검술 실력을 갖춘 사람은 아힐런 스승님이다.
‘스승님과 저놈을 비교하기에는 한참 부족하지.’
이 녀석의 검은 지쳐도 평생 피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에 반해 아힐런 스승님의 검술은 아니었다.
스승님이 본인의 힘을 사용하지 않고 봐준다 해도 1분도 채 버티지 못할 것이다. 아니, 1분이라도 버티면 그것은 행운일 터.
‘이 정도쯤이야.’
코코의 날을 세웠다.
상대방이 운용하는 검은 정확히 열 개.
‘하나씩 쳐내는 건 바보 같은 짓이다.’
검을 하나씩 쳐내는 건 바보 같은 짓이다.
운용되는 열 개의 검을 하나씩 쳐내면 다시 돌아올 테니까.
“코코.”
“응!”
“한 번에 갈게. 아파도 참아라.”
한 번에 열 개의 검을 쳐내는 건 힘들겠지만, 가능은 하다. 월등하게는 아니지만 전보다 강해지긴 했다.
“강타.”
코코에 검기를 둘렀다.
이제는 보이지 않을 정도로 투명해진 검기.
“내가 펼친 검기와 확연히 다르군.”
“당연하지. 당신보다 몇 배는 강한 사람한테 배웠으니까.”
자신이 검이 되어 단점을 장점으로, 장점을 강점으로 만든 미친 스승님. 그것이 바로 아힐런이었다.
상대방이 어떤 수를 쓰더라도 그에게서 배운 힘을 이겨낼 수 없을 거다.
“말만 하지 말고 덤벼. 장난치지 말고.”
“……후회하게 될 거다.”
강수호의 말에 상대방이 분노에 가득 찬 눈으로 그를 응시하기 시작했다.
바람을 타고 날아오는 열 개의 장검.
강수호는 각기 다른 방향에서 날아오는 장검을 집중해서 바라봤다.
‘칼춤에 비해서는 별거 아니다.’
빌어먹을 칼춤에 비하면 별것도 아니다.
처음 날아오는 장검.
깡!
검이 닿는 것과 동시에 살짝 비틀어서 피한다.
쇠가 울리며 흥분하게 만든다.
‘그다음은 옆구리.’
검을 쳐내자 옆구리에 정확히 날아오는 두 번째 검을 보고 뒤로 빠르게 이동했다.
휘익!
“아까워라!”
그리고 코코를 휘둘러 내쳐냈다.
남은 검의 수는 여덟 개.
많이 남아 있긴 하나, 검을 향해 달려갔다.
“미친 녀석 같으니! 도망쳐도 모자랄 판국에 달려들다니! 죽은 목숨이다!”
멍청한 판단이라 생각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날아드는 검을 향해 달려드는 건 미친 생각이었으니까.
하지만…….
깡!
일곱 번째 검을 깔끔하게 쳐냈다.
그럼에도 아직 여섯 개의 검이 남아 있었지만.
“음속의 발걸음.”
“……!!”
음속의 발걸음을 이용해 그의 뒤로 이동했다.
하지만 그 정도쯤이야 쉽게 따라잡을 수 있었다. 음속의 발걸음은 고작해야 B급 스킬이기 때문이다.
뒤로 돌아오는 강수호를 향해 검을 날렸지만…….
스걱!
“……!!”
이번에 난 소리는 쇠와 쇠가 부딪히는 소리가 아니었다. 잘라내는 듯한 깔끔한 소리.
놀란 그가 남은 다섯 개의 검을 움직였지만.
“텔레포트.”
“마법까지?”
마법을 사용하여 바로 앞으로 이동했다.
세린에게 배운 마법이라 캐스팅 시간도 없이 텔레포트를 발동했다.
그의 앞으로 이동해 그의 머리를 잡고 아래로 내려찍었다.
그 상태에서도 반응해 한 번에 보내지는 못했지만…….
“강수호 헌터가 1승을 따 냈습니다. 바로 다음 경기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크윽, 빌어먹을.”
결국 1승을 따 냈다.
샬런 스승님처럼 한 번에 승리를 따 내지는 못했지만.
“할 만하네.”
할 만했다.
S급 헌터를 상대하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A급 헌터……. 상대가 약해서 그런 줄 알았는데…….’
그런 게 아니라 자신의 수준이 높아진 거다.
S급 헌터를 A급으로 생각하게 될 정도로.
숨 고를 틈도 없이 시작되는 다음 경기.
“이번에는 제대로 해 주지.”
“방금 제대로 한 게 아니었나?”
“…….”
“아니면 말고.”
도발과 함께 움직이기 시작한 그들.
검을 맞대며 다음 라운드를 시작하려던 그때.
“흠흠, 가, 강수호 군?”
“협회 회장님이 무슨 일로…….”
협회 회장이 강수호의 앞을 막아섰다.
뭔 일인가 싶어 묻자.
“여기…….”
SNS에 퍼진 동영상 하나를 보여줬다.
한 남자를 땅바닥에 내리꽂는 이상한 장면.
그리고 그 장면에는…….
“스승님?”
방금 경기장을 나선 샬런이 찍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