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8화
138. 어딜 내놔도 부끄러운 우리 스승님(2)
“반갑습니다, 한국의 협회 회장을 맡은 이용욱이라고 합니다.”
무대에 선 이용욱이 마이크를 대고 자신을 알렸다.
한국의 헌터 중에서 그를 모르는 헌터는 없었다. 마인 협회가 새로 생기고 나서부터는 더욱 유명해진 상태.
‘천마와 싸워서 팔 하나를 잃었다고 했지. 초재생 덕에 빨리도 재생했군.’
‘강하다. 일 때문에 훈련도 많이 못했을 것 같은데, 기운만으로도 강하다고 느낄 수 있을 정도군.’
S급 헌터들조차 강함을 느끼며 그의 말을 들었다.
“오늘 이곳에 와주신 헌터분들에게 감사 인사부터 드리겠습니다.”
그가 고개를 숙여 인사하고는 이어 말했다.
“오늘 한국의 헌터들이 모인 이유는 아시리라 알고 있겠습니다.”
모두가 같은 이유로 이곳 강당에 모였다.
국가 대항전에 대표로 나갈 헌터를 뽑기 위함이었다.
‘얼마나 강할지 기대되는군.’
‘다들 실력이 좋았으면 좋겠는데…….’
참가자들 모두가 기대하고 있었다. 자신보다 뛰어날 강자들과 겨뤄 볼 기회이니까.
“오늘 여러분을 부른 이유는 간략히 말해 걸러내는 과정이라 생각하면 편할 겁니다.”
천천히 주변을 둘러봤다.
그나마 낮은 A급부터 시작해서 익히 아는 이구호까지. 미안하게도 100명이 넘어가는 사람 중 10명만 간추릴 계획이었다.
그에 대꾸하는 사람은 없었다.
약하면 버려지는 헌터의 잔혹한 세계를 잘 알고 있었으니까.
“그럼, 좋습니다. 이제부터 예선전을 시작하도록 하죠.”
그 말을 끝으로 이용욱이 무대에 내려와 멀리 떨어진 벤치에 앉았다.
그가 주목한 헌터는 강수호 옆에 있는 샬런.
‘이구호에게 듣기로는 저자가 세계에서 가장 강하다고 하던데.’
지금은 내려간 기사지만, 아직도 기억나는 기사 하나가 있었다.
한 손으로 세계 랭킹 1위를 쓰러트린 누군가에 대한 기사.
그 ‘누군가’가 바로 앞에 있었다.
‘저자인가.’
강수호 옆에서 귀를 후벼파고 있는 남자. 검은 머리였지만, 외모는 외국인을 연상시켰다.
“협회 회장님! 여기 외국인이 있습니다? 어떻게 된 거죠?”
“한국인이 맞습니다. 다 확인했으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 때문에 몇몇 헌터들이 다른 나라 사람이 아니냐며 의문을 품었다.
그 의혹은 협회 회장의 아니라는 대답에 의해 벗겨졌다.
“집중해서 봐야겠군.”
이용욱은 인상을 찡그린 샬런에게로 시선을 집중했다.
* * *
“스승님 차례입니다.”
“하암~ 벌써? 마침 심심했는데, 잘 됐구나.”
드디어 샬런의 차례가 다가왔다.
벤치에 앉아 기다리는 것밖에 할 게 없어서 지겹던 참이었다.
벤치에서 일어나자 심판이 다가와 그를 10m 지름의 둥근 원으로 안내했다.
심판이 규칙에 관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10m 지름의 둥근 원 밖으로 나가면 자동으로 탈락처리 됩니다. 세 번 이기는 사람이 경기에서 승리하게 됩니다.”
간단한 경기의 규칙.
무조건 세 번만 이기면 되는 간단한 경기였다.
“쉬운 만큼 실수 한 번으로 끝나는 것 같군.”
하지만 리스크가 크다. 한 번 지면 부담감이 배가 되어 돌아오기 때문이다.
10m 지름의 둥근 원에 서자 상대방도 섰다.
“양키 새끼가 한국엔 웬일이지?”
“양키? 그건 또 무슨 말이지?”
첫 만남부터 상대방이 시비를 걸어온다.
양키라는 말을 모르는 샬런을 고개를 갸웃거렸다.
“양키? 그게 뭐지? 나는 양이 아니다.”
“닥쳐, 양키 새끼야.”
“…….”
뭔지 몰라 물었지만, 돌아오는 답변은 변함없는 비속어.
양키는 모르지만, ‘닥쳐’라는 말을 잘 알고 있었다.
“제자야?”
“안 됩니다.”
이글거리는 샬런의 눈빛.
당연히 고개를 저었다. 여기서 일을 벌였다가는 골치 아파진다.
산속에서 개미가 뛰어다닌다고 신경 쓸 사람은 없을 거다. 하지만 샬런은 산속의 호랑이 같은 존재.
“경기에서 주먹을 사용하는 것은 합법이니 그 방법을 사용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오호, 좋은 방법이구나.”
경기는 경기.
입을 터는 것보다 주먹으로 해결하는 것도 방법이다.
“뭐라는 거야? 뭣도 아닌 것이 말이 많군. 이 순간을 위해 S급 헌터를 달았지.”
S급 헌터도 급이 나눠지지만, S급은 S급. 하지만 그것도 자신과 비슷한 실력을 가진 사람에게나 통하는 이야기다.
“경기를 입으로 하는 건가? 재밌는 친구군.”
“친구? 왜 네가 내 친구냐?”
“흠흠, 경기를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참가자분들은 뒤로 물러나 주시기 바랍니다.”
심판이 말싸움을 저지시켰다.
토론장이 아닌, 경기장. 예선을 치르고 전달해야 할 내용이 많기 때문이다.
“알겠다.”
“그럼 준비되셨으면 시작하셔도 좋습니다.”
심판이 시작해도 된다는 말에 상대방이 먼저 움직였다.
두 손에 불꽃을 일으키는 그.
“모두 태워 주지. 지옥을 맡 보게 될 거다!”
“재능이…… 불 쪽인가 보군. 마법은 아니고.”
온 힘을 다해 달려오는 그와 다르게 짝다리를 짚는 샬런.
거대한 불길이 날아와 샬런을 덮쳤다.
화르르륵!
“흐하하하! 내 불맛이 어떠냐!”
원 전체를 불태운다.
강수호도 위험할 수 있는 불길이었지만…….
“뜨끈하군. 정령의 불을 이 정도밖에 다루지 못하다니.”
“……?”
샬런은 무슨 일이 일어났냐는 듯 그 자리 그대로 서 있었다.
상대방은 태평하게 서 있는 샬런의 모습에 의문이 먼저 들었다.
‘내 스킬이 맞지 않은 건가?’
자신의 스킬이 빗나간 거라 확신하고 방금보다 더욱 거대한 불길을 만들어 냈다.
일반 불보다 한 단계 높은 겁화가 그의 두 손에서 생성되어 빠르게 날아오더니, 다시 한번 샬런을 태워 냈다.
‘이제 데미지를…….’
시그니처 스킬의 데미지를 입어 깐족대지 못할 거라 생각했지만…….
“그걸로 찜질방 차려도 괜찮을 것 같은데?”
“……!!”
샬런의 가벼운 손짓 한 번으로 불길이 모두 사그라들었다.
있을 수 없는 일.
“내 겁화를 어떻게!!”
“이딴 게 겁화라고? 너희 정령이 불쌍하군. 차라리 찜질방 하나를 차려라. 그게 더 효과가 있겠군.”
겁화라는 말에 고개를 저었다.
정령이 만들어 낸 겁화는 다루는 사람의 능력이 부족하니 제대로 된 효과를 발휘하지 못했다.
“그 엘프는 최하급 불의 정령으로도 산 전체를 태우던데, 너는 원 하나도 제대로 태우지 못하군.”
“뭐라고 지껄이는 거야?”
남자는 겁화의 공격이 실패로 돌아갔음에도 포기하지 않았다.
이번엔 두 손에 불을 일으키고 달려들었다.
“죽어!!”
“너무 느려터졌다. 능력에만 치중된 놈이군.”
“시끄러워!”
두 손에 지닌 불이 샬런의 얼굴로 향해졌다.
복싱처럼 주먹을 휘두르며 불을 가까이 대었지만.
“제자를 상대하는 게 더 재밌겠어. 장난하는 건가?”
“으아아아아!”
“시끄럽군.”
맞을 리가 없었다.
이번에도 뜨거운 불은 샬런의 얼굴에 스치지도 않고 사라졌다.
“빌어먹을.”
“끝내자.”
더 이상의 싸움은 불필요하다는 걸 느꼈다. 재미 상대로도 느끼지 못했으니까.
“닥치고 덤…….”
“잠시 자고 있어라.”
샬런은 한 발자국 움직여 남자 옆으로 이동했다.
갑작스러운 움직임에 반응할 새도 없이…….
콰직!!
“……!!”
머리를 잡고 바닥을 향해 강하게 내리쳤다.
살짝 힘을 준 것뿐인데, 바닥이 움푹 팼다.
“……미친.”
“저런 괴물은 어디서 온 거야?”
샬런에 관해서 모르는 그들은 괴물이 나타났다고 생각했다. 이구호를 뛰어넘는 괴물이.
“하하하하…….”
“언제 봐도 저 괴력은 상대하기 싫네.”
경기를 보고 있던 신하림과 이구호는 헛웃음을 흘렸다. 저 힘을 자기 몸으로 직접 느껴봤으니까.
‘대단하다. 아니, 말도 안 될 정도로 압도적이군.’
샬런의 경기를 보고 있던 협회 회장의 입이 쩍 벌어졌다. 기사만 봤지 힘을 직접 경험해 본 건 아니었으니까.
자신의 눈으로 샬런의 괴력을 직접 본 결과, 세계 랭킹 1위를 압도적으로 이긴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스, 승부가 났습니다. 승자는 샤, 샬런…….”
당황한 심판이 승자를 정해 주었다.
“마을에서 밥이나 더 먹고 올 걸 그랬어. 벌써 배가 등에 붙었군.”
승패와 상관없이 배를 두드리며 벤치에 앉은 샬런. 그 모습에 주변 헌터들이 더욱 경악한 표정을 지었다.
“끝나면 휴대폰이란 것으로 음식 좀 시키거라. 배가 고프구나.”
“아, 예.”
예선전의 승패는 세 판이 남았지만, 상대방의 의식이 없었다.
경기가 너무 압도적으로 끝난 건 사실.
배가 등에 붙은 샬런이 식사를 하러 밖으로 나갔고.
“샬런 스승님은 언제 봐도 대박이네…….”
그런 샬런을 보며 최서현이 감탄했다.
힘에 관한 재능을 가진 그녀는 저 힘이 얼마나 뛰어난지 알고 있었으니까.
샬런이 나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 강수호 차례가 다가왔다.
“S급 헌터, 강수호 님은 4번 자리 앞에 서 주시기 바랍니다.”
심판의 말에 따라 발걸음을 옮겼다.
조금은 긴장되었다. 용병 의뢰에 갔다 와서 힘이 강해지기는 했으나, 크게 느껴지진 않았다.
스승님 덕분에 스킬이 초월된 것이 고작.
“오호, 네가 강수호구나?”
경기장에 들어서자 상대방이 강수호를 알아보았다.
워낙 한국에서 유명한지라 강수호를 다 알고 있었다.
하지만 강수호는 S급 헌터가 된 지 아직 1년밖에 되지 않은 초보다.
“어…… 누구세요?”
“내가 누군지 모른다고?”
도발한 상대방을 보다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아무리 얼굴을 보며 생각해 보아도 모르는 얼굴이었으니까.
“하하! 내가 누군지 모른다라? 농담도 참 재밌게 하는군!”
“농담 아닌데…….”
농담이라 생각한 그가 헛웃음을 흘렸다.
미안하지만, 농담이 아니다.
인도를 갔다 온 지 정확히 한 달 일주일. 그사이에 유명해진 헌터인 것 같다.
“제가 한 달 정도 한국에 없어서 잘 모릅니다.”
“하하! 그래, 날 모르는 이유가 있었군!”
그도 납득하는 눈치였다.
“강수호랑 붙는 놈, 누군지 알아?”
“모르겠는데? 저런 듣보잡은 왜 물어보는 거야?”
“…….”
하지만 그건 경기를 보던 참가자들도 마찬가지. 그가 누군지는 아무도 몰랐다.
“흠흠, 나로 말할 것 같으면 검을 마음대로 제어하는 능력을 갖춘 놈이라고!”
“아, 예…….”
자신을 아는 이가 아무도 없는 것 같자, 친히 자신의 재능을 가르쳐 주는 그.
“두 분 모두 준비해 주십시오.”
심판이 그 둘을 멀리 떨어트렸다.
시간이 그리 많지 않았다. 일주일 만에 열 명의 대표를 뽑아야 했으니.
“준비되셨으면 시작하셔도 좋습니다.”
뒤로 물러서자마자 시작되는 경기.
“흐흐, 갈기갈기 찢어주마!”
남자의 말과 동시에 검 여러 개가 하늘로 솟아올랐다.
검을 여러 개 하늘에 띄우는 이기어검.
하늘에 떠 있는 여러 개의 검을 보고 어이가 없었다.
만약 아힐런 스승님이 저걸 본다면 한숨을 쉴 거다. 검을 쓸데없이 여러 개 사용한다고.
“코코야.”
“나 왔어! 주인!”
그와 마찬가지로 코코를 꺼냈다.
상대방이 검을 사용하니, 그와 마찬가지로 검으로 상대해야 하는 법.
“가자.”
처음에는 아힐런이 가르쳐 준 검기도 사용하지 않았다. 상대방의 수준을 알아야 했으니까.
강수호는 자세를 갖추고 검 여러 개를 띄운 그에게 달려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