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6화
136. 귀환(3)
“제가 잘못 들은 건 아니죠? 일본의 부하가 되라뇨?”
“제대로 들으신 것이 맞습니다. 그 문제 때문에 저희가 매우 곤란한 상태랍니다.”
시간이 지난 지금도 일본과의 관계는 좋지 않았다. 자신의 나라를 식민지로 만들었는데, 사이가 좋은 것이 이상할 터.
‘그런데 공식적인 자리에서 그런 말을 한다고?’
술에 취한 것이 분명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그런 개소리를 맨정신으로 내뱉을 수가 있겠는가?
“그럼 한국에서는 누가 유물을 가지고 계시나요?”
“이구호 님이십니다. 그래도 마인 처리가 힘든지라…….”
유물은 당연히도 이구호가 소지하고 있었다.
“혹시 제가 유물을 좀 볼 수 있습니까?”
“그럼, 가능하지. 힘들게 얻은 거니까 조심히 다뤄 줘.”
강수호의 질문에 망설임 없이 유물을 건네는 이구호.
그가 건넨 건 유물이 확실했다.
‘분명히 느껴지기는 하는데…….’
스승님들의 힘 중 하나가 느껴졌지만, 근본적인 그 힘이 느껴지지는 않았다.
‘뭐지? 꽝이라도 있는 건가?’
주먹의 두 배 크기인 낡은 건틀릿.
직접 손에 끼고 상태창까지 열어보고 효과까지 사용해 보고 이내 결론을 내렸다.
“죄송합니다만, 이거 유물이 아닌 것 같습니다.”
“……!!”
그 말에 로비에 있던 모두가 눈을 크게 떴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유물도 힘겹게 얻어냈기 때문이다.
“어디서 얻으셨습니까?”
“이번에 나타난 A급 던전의 또 다른 던전 클리어 보상으로 나타났습니다. 이구호 님 말씀으로는 차원의 틈이라고 하던데…….”
“그런데 강수호 헌터님은 어떻게 유물이 가짜인 걸 알고 있습니까?”
협회 직원은 이 유물이 가짜라는 말에 먼저 의문을 품었다.
어떻게 이 유물이 가짜인 걸 알고 있냐고? 그야 쉽다.
‘내가 이 유물을 가지고 있으니까.’
정확한 설명을 위해서 아직 샬런 스승님에게 보여 주지 않은 건틀릿을 꺼냈다.
“어? 나랑 같은 거 아닌가?”
“아닙니다. 보십시오.”
고개를 저으며 진짜 유물로 가지고 있던 건틀릿을 강하게 내리쳤다.
깡! 깡!
“트, 튼튼하군.”
진짜 유물은 아무리 내리쳐도 부서질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다. 쇠가 울리는 소리만 퍼질 뿐.
그에 반해.
“이거 보십시오.”
“깨졌군…….”
오히려 내려친 가짜 유물이 깨지고 처참히 우그러졌다.
놀랄 수밖에 없는 상황.
그뿐만이 아니었다.
“그게 무엇이길래 이리도 단단한 강도를 지니고 있지?”
“진짜 유물입니다.”
“다시 한번 말해 줄 수 있겠나?”
“진짜 유물입니다.”
“…….”
흠집 하나 나지 않은 낡은 건틀릿이 진짜 유물이다. 그것도 2차 봉인이 풀린.
“원래 유물 효과는 이 가짜와 확연히 다릅니다. 보시겠습니까?”
“보여 줄 수 있겠습니까?”
“한 번쯤은 괜찮습니다. 잠시만요.”
협회 직원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한 번 정도는 보여 줄 수 있었다.
[누군가의 낡은 건틀릿(3차 봉인)]
제한 레벨 : 없음
공격력 : 5,000
충전 시간 : 0시 - 0분 - 0초
효과 : 일격, 거격
‘할아버지 덕분에 효과도 하나 더 늘었고.’
스킬을 한 번 사용하려면 일주일의 쿨타임이 있지만, 그 대신 효과 하나가 더 늘었다.
“일단 아무도 없는 밖으로 가죠. 여기서 사용하기에는 너무 강한지라…….”
“알겠습니다.”
건틀릿을 들고 아무도 없는 가로, 세로 100m의 정사각형 운동장으로 나왔다.
‘이 정도면 충분하겠지.’
건틀릿을 오른손에 착용했다.
이번에 봉인이 한 번 더 풀려서 얻은 거격이란 효과는 샬런 스승님의 힘과 알맞은 무력에 관한 효과였다.
“잠시 뒤로 물러나 주시기 바랍니다.”
그들을 뒤로 물리고 오른팔을 뒤로 뺐다. 그리고 곧장 효과를 사용했다.
“거격.”
그 한마디와 함께.
“……!!”
산 하나를 든 듯한 기분이 느껴졌다. 아니, 그보다 거대한 무언가가 건틀릿을 감싸 안는 듯한 느낌이었다.
조금 더 뒤로 물러나라 말하기도 전에…….
콰콰콰콰쾅!!
“이런 미친…….”
거대한 무언가가 허공에 부딪혔다.
귀가 아릴 정도로 큰 소리가 나서야…….
“…….”
끝이 났다.
보고 있던 이구호와 협회 직원들은 쉬이 입을 다물지 못했다.
“이거 좀 큰일이 난 것 같은데요?”
건틀릿을 빼낸 강수호가 머리를 긁적였다.
그럴 만도 했다.
쿵! 쿵! 쿵!
“…….”
100m 더 멀리 있던 나무가 연속적으로 쓰러졌기 때문이다.
인도 쪽으로는 쓰러지지 않아 다행이었지만…….
“허허허…….”
협회 직원과 이구호는 헛웃음을 계속해서 내뱉었다.
포크레인으로 여러 번 판 듯한 자국.
높게 자란 나무들이 기둥만 남긴 채 쓰러졌으니까.
* * *
“이게 가짜라니…….”
두 손으로 머리를 짚은 채 깊은 한숨을 내쉬는 이구호.
힘겹게 얻어낸 유물이 가짜라니 슬플 만도 했다.
“그 가짜 유물은 어디서 얻으신 거예요?”
“하림이 몰래 암시장 경매에 가서 비싼 돈 주고 샀지.”
“얼마요?”
“1,000억?”
“…….”
더욱 슬픈 소식은 1,000억을 주고 가짜 유물을 샀다는 거다.
이 사실을 부 마스터가 알면 더욱 슬퍼질 터.
“1,000억?!”
“……들켰네요.”
그 말이 현실이 되었다.
어느새 가벼운 옷차림으로 나타난 그녀가 1,000억이란 단어를 듣고 만 것이다.
“하, 하림아! 일단 진정하고 내 말부터……. 악!”
“내가 언제 사고 한 번 칠 줄 알았어! 이놈아!”
“…….”
잠옷 차림으로 등짝을 후리는 그녀.
한참 동안 소동이 일어나고 나서야…….
“후우, 내가 돌겠어. 길드 한 달 예산을 몽땅 써 버리면 어쩌자는 거야?”
“……미안.”
심호흡하며 진정할 수 있었다.
하지만 심각한 건 그녀뿐만이 아니었다.
“유물이 가짜라니…….”
“하하하하.”
지금 그들에게 생명 줄이나 다름없는 유물이 가짜라는 걸 깨달은 협회 직원들이 정신이 나가 버렸다.
물론 걱정할 필요까진 없었다.
“강수호 헌터님…… 그게 뭐라고 하셨죠?”
“유물이요.”
“…….”
진짜 유물이 강수호의 손에 있었으니까.
“중국 경매장에서 얻은 겁니다.”
더군다나 유물은 하나가 아니었다.
“얻은 유물은 대략 여섯 개입니다.”
“……!!”
“말도 안 되는…….”
인도에 가서 얻은 유물은 대략 여섯 개. 혹시 몰라 아직 스승님들에게 주지 않았는데, 잘한 것 같다.
“인도에 일하러 갔을 때, 운이 좋아 얻을 수 있었습니다.”
“무려 여섯 개나…….”
보여 준 유물의 수는 여섯 개.
이제 유물을 보여줬으니, 협회 직원이 한 말의 의미가 무엇인지 정확히 알아야 했다.
“일본의 부하가 되라니, 그게 무슨 뜻인지 정확히 알 수 있습니까?”
“네, 당연합니다.”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는 협회 직원.
얼마 지나지 않아 긴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 * *
“국가 대항전이요? 그런 것도 있었습니까?”
“이번에 새로 생겼습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국가 간의 자존심 싸움이죠.”
30분이 좀 지나자 이야기는 끝을 맺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이해하기는 쉬웠다.
‘일본 밑에 들어가면 케어를 해 주겠다는 뜻이네.’
어떤 나라의 헌터 전력이 가장 강한지 가리는 대회.
세계 랭킹을 매길 때는 랭커 헌터들만이 참여한다. 하지만 이번에는 자신의 국가에 속해 있는 헌터끼리 붙는 거다.
랭킹을 거는 승부가 아니라.
“마침 다음 달이면 세계 랭킹을 기록하는 때입니다. 그다음 달이 바로 국가 대항전이죠.”
국가에 존재하는 수준 높은 헌터끼리 붙는 국가 대항전. 그렇기에 국가 대항전에서 꼴등을 하면 피해가 크다.
“그래서 일본이 자신의 밑으로 오라고 하는 겁니다. 패왕 길드 빼고는 큰 전력이 없으니.”
“…….”
일본은 협박 비슷한 제안을 했다. 국가 대항전에서 한국이 반이라도 갈 확률은 낮았으니까.
‘한국에 뛰어난 헌터는 극히 소수니…….’
한국의 10대 길드 중에서도 무력으로 Top 100위에 드는 사람은 몇 없다. 대형 길드 마스터 세, 네 명 정도가 고작.
“흠…….”
“…….”
걱정 가득한 표정의 이들을 천천히 둘러봤다.
방법이 없는 건 아니었다.
‘유물로 충분히 해결 가능하지.’
모자란 능력치는 유물로 채우면 된다.
한 번 사용하면 다시 사용할 수 있을 때까지 오랜 시간 기다려야 하겠지만, 중위권은 할 거다.
하지만 그걸로는 성에 차지 않는다.
“저는 한국이 무조건 1등 하길 원합니다.”
“저도 같은 마음입니다. 한국이 1등 하길 간절히 원하죠.”
그건 협회 직원도 마찬가지.
하지만 이 정도 전력으로는 중위권 정도가 고작.
‘스승님들한테 맡겨 볼까?’
그때 마침 드는 생각.
뉴비에 목이 말라 미쳐 있는 스승님들의 갈증을 해결해 주는 방법.
‘나쁘지는 않은 방법이겠어. 하지만…….’
물론 그건 정말 방법이 없을 때나 쓰는 것.
스승님들을 일반인에게 막 보여 줄 수는 없으니까.
“일단 제 유물은 제가 사용합니다. 다른 사람에게 주기는 힘들 것 같습니다.”
“아, 알겠습니다.”
협회 직원은 입술을 삐쭉 내밀었지만,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일어난다.
“마음이 바뀌시면 연락 주십시오. 그리고 일주일 뒤, 이곳에서 후보를 뽑습니다.”
“감사합니다.”
종이 한 장을 주고 자리에서 떠나는 협회 직원들.
대부분의 국가에서도 많으면 세 개의 유물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강수호가 가진 유물의 수가 무려 여섯 개로, 말도 안 되는 개수다.
충격이 꽤나 클 것이다.
“우리는 이제야 유물이 뭔지 알았는데, 너는 벌써 여섯 개나 가지고 있다고?”
“예.”
강수호의 여러 유물. 이구호와 신하림은 그에 입이 벌어질 수밖에 없었다.
‘우리 길드에 왜 있는 거지?’
옛 괴물들의 스킬을 사용할 수 있는 유물에 대해선 협회 직원들에게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의문이 들었다.
그런 유물을 가지고 있으면서 길드에 있는 이유.
생각에 잠겨 있던 신하림에게 다가오는 강수호.
“저, 신하림 님?”
“음? 왜?”
“저 길드 탈퇴할 수 있을까요?”
“어, 어?”
그의 물음에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방금 하고 있던 걱정을 강수호가 그대로 말했으니까.
“길드를 탈퇴한다고? 뭐 때문인지 알 수 있을까?”
“예, 오히려 길드에 다니는 게 성장에 방해되는 것 같아서요.”
“…….”
길드 탈퇴에 문제 되는 건 없었다.
오히려 길드를 탈퇴한 후에 성공하면 패왕 길드에 더 큰 이득을 가져온다.
그리고 강수호 실력이면 무조건 성공할 터.
“길드 마스터 생각은 어때?”
“탈퇴?”
부 마스터가 정하기에는 무거운 결정이었다.
잠시 고민하던 이구호가 고개를 세차게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상관없지.”
“……!!”
오히려 이구호도 원했던 일이었다.
아마 sky 길드에서도 강수호를 커버하는 건 불가능할 것이다.
“감사합니다.”
“우리야 고맙지. 괴물을 선출한 길드로 남을 건데. 그리고 우리한테도 이득이 있었고.”
“……이득이요?”
이득이란 말에 의문이 들었다.
샬런 스승님이 건물을 부수고, 자신도 스킬을 시험하면서 건물을 부쉈다. 오히려 고치는 데 돈이 더 많이 들었을 터.
“자네 스승님에게 많은 가르침을 받았지.”
“아하…….”
그깟 돈쯤이야, 얼마든지 벌 수 있었다.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힘. 그 힘 덕분에 성장했으니 말이다.
“그럼 전 짐부터…….”
패왕 길드를 탈퇴했으니, 짐을 챙기려던 그때…….
“어딜 혼자 가려고?”
“…….”
온몸이 들썩이는 듯한 충격.
익숙한 목소리에 고개를 돌리자.
“빨리도 왔네?”
“하하, 오랜만이네.”
최서현이 한껏 웃은 채로 강수호 앞에 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