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4화
134. 귀환(1)
“또 싸워야 되네.”
죽이라는 말에 인상을 잔뜩 찌푸렸다. 오늘은 조용히 지나갈 수 있으리라 생각했으니까.
“그놈은 우리 마인 협회의 위험인물이다! 죽여!”
언제인지 모르겠으나 강수호는 어느새 마인 협회 위험인물이 되어 있었다. 어쩔 수 없이 싸워야 할 듯싶었다.
“뒤로 빠져 있어.”
“오케이.”
그녀를 뒤로 보내고 코코를 꺼냈다.
“준비됐지?”
“예! 주인님! 저는 언제든지 준비되어 있습니다!”
활기찬 대답. 그 대답을 끝으로 강수호의 몸이 움직였다.
“오늘 운이 없네. 그렇지?”
상대하기에는 그다지 강하지 않았다. 펠론이 한 팔만 사용하는 정도.
“빨리 처리하고 가자.”
빠르게 몸을 놀리며 검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 * *
“허허, 자네가 많이 먹으니까 보기가 좋구려.”
“와우…….”
식탁에 놓인 다양한 음식들.
식탁 앞에 앉은 샬런이 탄성을 내뱉었다. 매번 보는 음식들이었지만, 언제 봐도 감탄밖에 안 나온다.
“잘 먹겠습니다!”
“그려, 많이 먹어야 몸도 좋아지고 복도 많아지지.”
그와 반대로 익숙하다는 듯이 샬런에게 덕담을 뱉는 노인들. 모두 마을에 있는 할아버지, 할머니들이었다.
“후루루루룹!!”
음식들을 빠른 속도로 해치우는 샬런.
그들이 샬런을 좋아하는 이유였다.
“우리 손녀는 워낙 가리는 게 많아서 차라리 라면을 끓여 달라 하던데…….”
“BVQ? 우리 손자는 브랜드 치킨을 사달라고 하구만.”
마치 진공청소기처럼 주는 대로 음식을 먹어 치운다. 할머니, 할아버지의 정성이 들어간 음식들을.
그러니 이뻐할 수밖에.
입이 빠르게 움직이고, 약 1시간 정도가 지났을 때…….
“후우, 배부르다. 더 이상은 못 먹겠습니다.”
빈 접시만을 남기고 바닥에 누웠다.
고작 1시간 만에.
“이번에도 올 클리어구먼!”
“언제 봐도 자네 먹성은 대단해…….”
감탄하는 그들.
샬런도 왠지 모르게 뿌듯한 마음이 들었다.
‘오랜만에 맛보는 정이군.’
그가 있던 마을에서는 매번 똑같은 패턴의 반복이었다.
운동을 마치고 프로틴 1L. 그리고 다시 운동, 그다음 숙면.
‘행복하다.’
몇 만 년의 삶에서 처음으로 행복이란 걸 느끼게 되었다. 그들 덕분에.
“아, 그러면…….”
바닥에 누워 있던 샬런이 몸을 일으켰다.
몬스터를 잡고, 일을 도와주는 것 말고 그들을 도울 방법이 생각났으니까.
“식사도 했으니, 설거지를…….”
“할아버지, 할머니!!”
“음? 왜 그려?”
이제는 존댓말도 익숙해졌다.
그들을 부르며 가까이 다가가 물었다.
“혹시 운동하실 생각 없어요?”
“운동? 아이고, 이 나이에 무슨……. 다 늙어가는 노인네한테 무슨 운동이여.”
“그려, 내일 죽을 수도 있는 노인네들인데. 운동하다 다치면 안 돼.”
하지만 그들의 반응은 좋지 않았다.
대부분의 이가 70세 이상 고령의 노인들.
“우리가 운동해 봤자 몸만 아프지, 건강해지지는 않여.”
“흠…….”
틀린 말은 없었다.
나이가 들수록 점점 쇠약해지기에 건강을 위해 운동을 하다가는 오히려 몸이 더 안 좋아질 수도 있다.
“그냥 이렇게 평범히 사는 게 좋지.”
노인들은 샬런의 말을 흘려들었다. 별 볼 일 없는 노인네를 위해 해 주는 덕담이라고.
하지만 샬런은 진심이었다.
“이거 마시면 괜찮아지실 겁니다.”
“이잉? 이건 또 무엇인고? 보라색 물?”
인벤토리에서 꺼낸 엘릭서.
보라색이란 색감 때문에 꺼림직했지만…….
“한 잔 쭉 들이켜십시오! 몸에 좋은 보약입니다!”
“보약? 흠……. 좋아, 한 번 먹어보도록 하지.”
보약이라 말하자 노인이 엘릭서 병을 받아 들고 병따개를 열어 보라색 물약을 들이켰다.
의심 따위는 없었다. 이미 그들에게 샬런은 손자보다 귀중한 이였으니까.
“크으, 이거 색과 다르게 맛이 좋구만.”
원샷을 때린 그가 의외의 맛에 감탄했다.
보라색의 거북한 색과 다르게 지금까지 먹어 본 음료수 중 가히 최고였으니까.
그도 그럴 것이 노인이 마신 음료수는 다름 아닌, 엘릭서.
“어때요? 몸이 좋아진 것 같습니까?”
“아무리 몸에 좋은 보약이더라도 지금 당장 효과가…….”
샬런의 물음에 노인이 고개를 저으며 병을 내려놓았다.
아무리 좋은 보약이더라도 효과가 나타나려면 오랜 시간이 걸린다.
분명히 그럴 거라 예상했지만…….
두둥!
“으, 음?”
심장이 거칠게 울린다.
예전에 가졌던 열정이 돌아온 것처럼.
“바로 몸이 좋아지는 기분이 드는구먼.”
그의 말처럼 정말 몸이 실시간으로 좋아지고 있었다.
주름이 가득한 몸은 점점 매끈하게 변해 갔고…….
“허리가 아프지 않아…….”
욱신거렸던 허리도 전혀 아프지 않게 되었다.
신이 다녀갔다고 말할 정도로 신기한 현상.
“이거 한 번 들어보십시오.”
“잉? 그건 무거울 텐데…….”
그런 이에게 아령을 주었다.
무려 50kg 넘어가는 무거운 아령. 노인이 들기에는 무거운 무게이기에 걱정하며 받아 들었다.
“……!!”
그 생각은 아령을 들자마자 바다 깊숙이 사라졌다.
“좀 힘들긴 하지만, 들 만하구만.”
가볍진 않지만 한 손으로 들만했다.
그 모습에 주변에 있던 노인들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아령을 들어 놀란 게 아닌…….
“자, 자네.”
“응? 왜 그런가?”
“얼굴이 그렇게 잘생겼었나? 혹이 없어졌어!”
“그게 무슨 소리야?”
혹이 달린 영감. 엘릭서를 마신 그의 별명이었다.
하지만 왼쪽 뺨에 있던 작은 혹이 사라졌다. 원래부터 없던 것처럼 깨끗이.
그뿐만이 아니었다.
“힘이 넘쳐흐르는구먼!”
오랜만에 편 허리.
소리를 치며 밖을 향해 달려 나간다.
“으아아아아!”
그렇게 약 1시간 동안 미친 듯이 달렸다.
1시간 동안 달렸음에도 땀만 흘렸을 뿐, 지치지는 않았다.
“새로 태어난 기분이구먼.”
“외국인 양반! 나도 줄 수 있을꼬?”
“당연하죠! 여기 있습니다!”
부러워하는 노인들이 샬런에게 다가가 엘릭서를 원했다.
샬런은 당연히 아낌없이 엘릭서를 베풀었다. 엘릭서 정도야 넘치니까.
그리고 그날.
“이제 다들 건강해졌으니, 더 건강해지려면 운동하셔야겠죠!”
“후후! 당연한 말씀을!”
노인정에는 헬스용품들이 갖춰지고 있었다.
* * *
“우웩!!”
“이제 거의 다 도착했으니, 조금만 참아라.”
크루즈선 밖을 향해 오늘 먹었던 음식물을 토해내기 시작했다. 몇 주간 배를 타도 적응되지 않는 뱃멀미.
“진짜 죽을 것 같네.”
심호흡하며 침대에 누웠다.
곧 있으면 도착한다지만, 지금 강수호는 배가 지옥과 같았다.
“야, 속은 괜찮냐?”
“몰라. 토할 것 같아.”
침대에 누워 있는데, 방으로 들어오는 멜리아.
여러 일로 인해서 노크도 안 하고 방에 들어올 정도로 친해졌다.
그런 그녀가 방 안으로 들어오더니 진지하게 말했다.
“나 한국 구경시켜 줘.”
“음? 너 혼자 간다며.”
“원래는 비서랑 같이 갈 예정이었는데, 비서가 휴가 낸대.”
한국을 구경시켜 달라는 것.
못할 건 없었다. 한 가지 걱정되는 게 있을 뿐.
‘서현이 알면 화낼 텐데.’
그녀가 알면 불같이 화를 낼 거다. 몇 주 동안 제대로 얼굴도 보지도 못해 걱정했을 거고…….
“그건 좀 힘들 것…….”
단호하게 거절하려던 그때.
“유물 다 줄게.”
“……!!”
그녀가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을 던졌다.
지금껏 얻은 유물을 모두 준다는 것이다.
‘이건 좀…….’
지금까지 얻은 유물은 총 여섯 개. 네 개는 스승님에게 주고 나머지는 그녀에게 빌려주었는데…….
“좋아, 한국 구경시켜 줄게.”
“아싸!”
수락했다.
“언제 구경시켜 줄까?”
“내일!”
“알겠어, 일단 오늘은 스승님한테 갔다 오고 일을 정리해야 하니까.”
내일이면 시간이 괜찮을 것 같았다.
“어디 갈 건데?”
“스승님 좀 보려고.”
“스승님?”
“부산에 스승님이 한 분 계시거든.”
구경만 시켜주고 바로 지옥 훈련에 들어갈 예정이다.
이 몸으로는 12위 간부조차 상대하기 힘들었으니까.
* * *
“도착이다.”
“우와, 진짜 시골이다.”
“여기가 좀 외진 곳이라 그래, 좀만 나가면 바로 다대폰데.”
항구에 내려 어느새 도착한 옛 마을.
부산이 시골은 아니다. 10분 정도 쭉 가면 다대포도 있으니까.
“빨리 가자. 스승님한테 물어볼 게 있거든.”
빠르게 발걸음을 움직였다.
급한 건 아니었으나, 빨리 알고 싶었다.
힘이 더 이상 강해지지 않는 이유를 말이다.
이 의문 때문에 잠을 설친 적도 많았다.
“그런데 여기 왜 이렇게 덥지? 아무리 여름이라지만, 여긴 너무 더운데?”
한참 걷던 도중 느껴지는 뜨거운 열기.
멜리아가 손부채질하며 근처 돌에 걸터앉았다.
“진짜네, 나도 덥다.”
확실히 과장은 아니었다. 강수호조차 온몸으로 열기를 느끼고 있었으니까.
“이상 현상 같은 건 아닌데…….”
천천히 주변을 둘러봤다.
던전이 나타나거나 마을이 뭔가 잘못돼서 더운 건 아닌 것 같았다.
‘발자국이 왜 이리 많지.’
그때 마침 눈에 띄는 발자국 여러 개.
쿵! 쿵!
“…….”
그리고 땅이 울릴 만큼 커다란 진동.
육중한 몸을 가진 몬스터라도 나타났나 싶었다.
그런 게 아니고서야 이런 진동이 나타나지는 않을 테니까.
“지진인가……?”
한참을 생각한 끝에 떠오른 자연재해 현상. 던전이 나타나고부터 지진 같은 소소한 자연재해가 많이 발생하곤 했다.
“그것도 아닌데.”
하지만 그것도 아니었다.
지진처럼 불규칙적으로 땅이 울리는 게 아니라 규칙적으로 울리고 있었다.
쿵! 쿵!
“설마…….”
조금씩 발걸음을 움직이며 노인정으로 이동했다.
주변에는 어떤 마을 주민들도 지나다니지 않았다.
“할아버지!! 할머니들!!”
그들을 아무리 불러도 마찬가지.
대충 뭐가 어떻게 되는지 예상이 갔기 때문이다.
“에이, 설마. 스승님이라면 충분히 가능하겠지만…….”
설마 싶었다.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거라 예상하고 노인정 입구 앞에 서자.
“뜨거워.”
아까와 전혀 비교되지 않은 뜨거운 열기가 불어닥쳤다.
열기만으로도 짐작할 수 있었다.
그 짐작과 함께 노인정 문을 박차고 들어가자.
“후훅! 오랜만에 느껴보는 젊음이구먼!”
“허헉! 이렇게 힘들게 달린 건 처음이구나!”
“하나…… 둘…… 셋…… 넷!! 드디어 다섯이다!!”
“…….”
노인정 전체에서 풍기는 땀 냄새. 뜨거운 열기를 풍겨대며 운동하는 이들.
“그렇게 잡으시면 안 됩니다! 연습할 때 그렇게 잡으시면 바로 허리 나가요!”
“허허, 그런가. 미안하구려.”
그 중간에 서서 코치해 주는 샬런.
“저 사람이 스승님이셔?”
“응…….”
두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대충 예상하긴 했는데, 이 정도로 일이 커질줄은 몰랐다.
“돌겠네.”
한숨을 내쉬며 스승님에게로 다가갔다.
부끄럽긴 하나 가장 약한 자신을 먼저 키워준 스승님.
‘어딜 내놔도 스승님은 부끄럽네.’
“어?! 제자야! 오랜만이구나!”
그때 마침 발견한 샬런이 강수호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어딜 내놔도 부끄러운 스승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