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3화
133. 유물의 비밀(3)
“하하, 제가 또 이겼군요. 이거 미안해서 어쩌죠?”
“…….”
게임이 시작된 지도 1시간이 넘게 흘렀다.
하지만 처음 두 번 이긴 것 말고는 단 한 번의 승리도 없었다. 마치 계획된 게임처럼.
“오늘은 운이 좋지 않군.”
“저는 운이 좋은 것 같습니다. 무려 1억 달러나 딴 것을 보니.”
강수호와 반대로 열 번의 게임 중 양옆 상대방은 네 번씩 승리했다.
‘참 계획적이네.’
연기하는 모습을 보고 헛웃음을 흘렀다.
겉으로 보기에는 계획적이었다. 한 명의 사람에게 승리를 몰아주지 않고 분배해서 이긴다.
일반인이라면 눈치채지 못할 계획이겠지만…….
“재밌네요?”
“빠르게 끝나고 이렇게 재밌는 것이 블랙잭밖에 없긴 하죠.”
“아니요, 그게 재밌는 건 아닙니다.”
“……?”
이제는 이 계획에서 벗어날 때가 되었다.
계속해서 놀아주기 지겹기도 했고, 주변을 아무리 둘러봐도 유물을 찾을 수 없었으니까.
“여러분들의 연기가 재밌을 뿐이죠.”
“그게 무슨…….”
옆에서 멜리아가 눈치를 줬다. 되도록이면 일을 키우지 말라고, 강수호도 일을 키울 생각은 없었다. 조금 장난 칠 계획이지.
“아주 재밌는 짓을 했어?”
자리에서 일어나 딜러에게 다가갔다.
주변에 있던 보안 요원들이 그를 막아섰다.
“손님, 여기서 이러시면 안 됩니다.”
“흠…….”
처음에는 말과 앞을 가로막기만 했다. 실랑이가 계속되면 무력을 사용하겠지만…….
“비켜.”
쾅!
“……!!”
하지만 강수호는 처음부터 무력으로 해결할 생각이었다. 강수호가 입을 아무리 잘 털어도 그들은 교묘하게 빠져나갈 테니까.
“으어어억.”
“사기를 칠 거면 똑바로 쳐야지. 안 그러냐?”
“…….”
바닥에 박힌 보안 요원이 죽을 듯한 신음을 내뱉었다.
일동 침묵으로 잠긴 방.
“6번 테이블, 그쪽 게임도 다 조작이었잖아, 안 그래?”
“…….”
강수호가 말을 잇는 것과 동시에 딜러가 원형 테이블 밑에 있는 빨간 버튼을 누르려 했지만…….
“일단 자고 있어라.”
“예, 예?”
음속의 발걸음을 사용해 어느새 딜러 앞으로 다가가 주먹 한 방으로 기절시켰다.
강수호는 보안 요원들을 차례대로 쓰러트렸다.
‘별거 아니네.’
최소 C급 헌터의 보안 요원들. S급 헌터를 이기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실력이다.
“대충 상황도 끝난 것 같으니, 이야기 좀 나눠 볼까?”
기절해 쓰러진 보안 요원.
나설 사람은 이곳에 아무도 없었다.
* * *
“관리자가 가지고 있다는 거야?”
“예, 예! 관리자가 보물이라면서 사무실 금고에 넣어놨습니다!”
“아하…….”
정신을 차린 딜러의 멱살을 잡고 추궁한 끝에 몇 마디를 들을 수 있었다.
이곳에서 제일 쓸 만한 대답이었다.
‘주변에 CCTV는 없네.’
딜러까지 기절시키고 VIP 방을 유유히 빠져나왔다.
“제정신이야?”
“기운은 느껴지는데 보이질 않아서 말이야.”
무모한 강수호에게 잔소리해 대는 멜리아.
안전하게 가는 것도 좋지만, 저들 손 위에서 놀아날 수는 없다.
“꼭대기 층이 관리자 사무실이래. 빨리 가자.”
시간은 누구의 편도 아니다. 그러니 되도록 빨리 처리하는 게 나을 뿐. 그리고 직감이 경고하고 있었다.
‘1차 시련 전에 무조건 큰일이 한 번 벌어진다.’
큰일이 벌어지기 전에 유물을 빨리 찾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엘리베이터에서 제일 꼭대기 층을 누르자 빠른 속도로 올라간다.
“빨리 끝나겠…….”
엘리베이터의 빠른 속도에 유물을 찾고 일을 빨리 해결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지만…….
띵.
“음?”
4층에서 멈추는 엘리베이터.
뭔 상황인가 싶어 고개를 갸웃거리자.
-문이 열립니다.
문이 열리는 것과 동시에 등장한 덩치들.
“잡아 족쳐!”
“쉽게 가기는 글렀네.”
검은 정장을 입은 덩치들이 달려든다.
관리자의 방에 쉽게 가기는 그른 것 같다. 몸도 좀 풀어야 할 것 같고.
* * *
“최소 S급 헌터군. 하지만 10층을 뚫을 수 있을까?”
1층 전부를 비추는 CCTV 관리실과 다르게 꼭대기 층에는 전 층의 CCTV 화면이 존재했다.
화면을 보는 관리자의 입가에 미소가 띠어졌다.
S급 헌터라 해도 이곳을 전부 뚫는 것은 불가능할 테니까.
“목적이 유물이었군. 하지만 빼앗길 수는 없지.”
불법적인 루트를 통해 힘겹게 얻어낸 이 낡은 단검을 빼앗길 수는 없다.
“흐윽, 이걸 얻어내기 위해 얼마나 힘들었는지…….”
저 괴물들을 뚫을 수 없으리라 생각했지만…….
슈아악!
“으, 음?”
근처에서 파란빛이 터졌다.
뭔 상황인가 싶어 그곳을 향해 고개를 돌리자.
“뭐야, 되네.”
“엘리베이터는 왜 탔어?”
“텔레포트되는 줄 몰랐지. 이렇게 허술할 줄이야.”
“…….”
어느새 10층에 도착한 그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 왔다.
믿을 수 없는 광경.
“마, 말도 안 되는…….”
“말이 되지. 네가 텔레포트 못하게 안 만들어 놨잖아.”
보통 보안이 철저한 곳은 마나 좌표를 꼬아 놓는다. 텔레포트 하지 못하도록.
하지만 그것까지는 생각하지 못한 듯싶었다.
“마법사였나?”
“다른 것도 한 김에 배웠지.”
싸울 때 마나를 사용하지 않았으니 놀랄 만도 하다.
하지만 그는 쉽게 물러서지 않았다.
“그 단검 내놔.”
“가만히 있어. 너희 목을 베어 버릴 수도 있으니까!”
“…….”
관리자는 유물을 어떻게 사용하는지 알고 있었다.
물론 강수호에게는 크게 위협적이지 않았지만.
“사용해야겠네.”
“……?”
인벤토리에서 수갑 하나를 꺼냈다. 아직 할튼 스승님에게 보여주지 않은 유물.
“이게 무슨!”
수갑이 빠른 속도로 날아가 관리자의 손목에 채워졌다.
-상대방의 격보다 높습니다.
조건이 존재하지만, 한 번 묶이면 절대로 풀 수 없다.
더군다나 강수호의 목적은 유물을 얻는 것만이 아니었다.
“이 단검, 어디서 났냐?”
“모, 모른다!”
“모른다라…….”
이 유물을 어디서 구했는지 출처를 알아내야 했다.
“뭐, 그러면 어쩔 수 없지.”
“그래그래, 어쩔 수 없네.”
“……?”
모른다는 말에 어쩔 수 없다는 말을 했다. 그녀도 동의하는 눈치였고.
‘후우, 다행이군.’
하지만 안심하기는 일렀다.
파지직.
“…….”
“그럼 어쩔 수 없지.”
귓가에 따갑게 울려대는 전기충격기.
수갑을 찬 그에게 가까이 다가가 속삭이듯이 말했다.
“고문할 수밖에.”
* * *
파지직!
“으아아악!”
10층 전체에 울리는 비명.
“이제 말할 마음이 생겼나?”
마지막으로 물었다. 스승님이 만든 일회용 전기 충격기를 관리자의 목에 들이밀며.
“말할게! 말할게!!”
“진작에 그럴 것이지.”
머리가 까맣게 타오르자 드디어 입을 열기 시작했다.
이전의 바텐더처럼 말을 꺼내자마자 죽을까 봐 몸에 이상한 게 없는지부터 살폈다.
‘폭탄 같은 건 없네.’
다행히 몸 안에 이상한 장치는 없었다.
그 덕분에 술술 불기 시작한 관리자.
“차원의 틈!!”
“그건 또 뭐야?”
유물을 얻는 방법은 꽤나 간단했다. 관리자가 말한 차원의 틈에 가는 것.
하지만 강수호는 차원의 틈이 뭔지 몰랐다.
‘차원의 틈은 또 뭐야?’
차원 이동만 할 줄 알지, ‘차원’에 대해서는 몰랐다.
“차원의 틈이라……. 멜리아, 아는 거 있어?”
“나도 몰라. 차원의 틈이란 거 자체를 처음 들어봤는데?”
멜리아도 마찬가지로 아는 게 없었다.
“더 아는 건 없어?”
“그게…….”
관리자가 눈동자를 이리저리 돌리며 빠르게 생각하는 듯했다.
죽지 않기 위해 생각한 끝에…….
“위치는 정확히 모르는데, 보석으로 알 수 있다고 합니다!”
“응? 갑자기 웬 보석?”
“그건 저도 잘…….”
보석으로 위치를 알 수 있다는 말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 보석을 말하는 건가?’
1차 시련을 여는 데 필요한 세 개의 보석 중 하나. 그 보석을 말하는 확률이 높았다.
“이거 말하는 거냐?”
다이아몬드보다 아름다운 보랏빛을 품고 있는 보석을 꺼내어 보여주니 고개를 빠르게 끄덕인다.
“아마도…….”
“살려는 줄게.”
유물을 어디서 얻는지 알게 되었다.
관리자는 강수호의 말에 꽤나 놀란 눈치였다. 답을 듣고 바로 죽일 줄 알았는데…….
“그 대신.”
“……?”
죽이는 대신.
“네가 말한 차원의 틈, 아는 곳 있으면 알려 줄 수 있냐? 보니까 그쪽도 네가 관리하는 것 같은데.”
“당연합니다! 돈만 제대로 주신다면…….”
“돈?”
돈이란 말에 생각에 잠겼다.
노예라 하더라도 채찍만 주면 반란이 일어난다. 채찍도 주면서 당근도 줘야 오래 부려 먹을 수 있다.
“얼마?”
“백……. 아니, 천 달러만 주시면 개처럼 일하겠습니다!”
“다른 놈들은 모르지?”
“예! 아무도 모릅니다! 오직 저만 알고 있습니다!”
무조건 이득인 상황.
고개를 끄덕이며 금괴 몇 덩이를 던져 주었다.
“너희가 말하는 차원의 틈이 나오면 나한테 무조건 전해 줘.”
“헤헤, 알겠습니다!”
기쁘게 받는 그.
위치는 매번 바뀌고, 언제 나타날지도 모른다.
이들도 고작 카드 하나와 단검 하나를 구했을 뿐이다.
“찾으면 전화해라.”
“옙!”
수갑을 풀며 작은 휴대폰 하나를 던져 주었다.
세린 스승님의 보안 마법이 적용된 휴대폰. 다른 이들에게 절대로 걸리지 않을 거다.
“이만 가자.”
유물도 얻었다. 다른 이득도 있었으니 이제 여기 있을 필요가 없어졌다.
* * *
“여기가 확실해?”
“예, 차원의 틈을 발견해 유물을 얻었다고 합니다.”
“다 족쳐야겠네.”
역겨운 기운을 풍겨대며 게임장으로 걷는 그들.
대장으로 보이는 이가 몸을 풀더니 안으로 들어왔다.
“어서 오십시오, 손…….”
콰직!
“시끄러워.”
아무것도 모르는 직원의 머리를 터트려 버렸다. 고작 게임하기 위해 게임장에 온 것이 아니었으니까.
“여기 관리자 없냐?”
“예, 예?”
그들은 바로 관리자부터 찾았다.
차가운 살덩어리가 된 채 바닥에 쓰러진 직원.
다른 직원이 몸을 떨며 위를 가리켰다.
“위, 위에 있습니다.”
“안내해.”
“옙!!”
10층에 있는 관리자. 살기 위해서 곧장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꺄아아악!”
“마, 마인이다!”
눈치챈 사람들은 이미 건물에서 빠져나가 사라진 지 오래.
띵.
때마침 1층에 도착한 엘리베이터.
-문이 열립니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이제 막 엘리베이터를 타려던 그때.
“벌써 한국에 간다고?”
“여기서는 할 일도 없고. 이놈이 다시 부르면 가야…….”
“……?”
누군가 엘리베이터 안에서 잡담을 나누고 있었다.
손을 뻗고 당장 죽일 수도 있었지만.
‘강하다!’
자신보다 강함을 느낀 마인은 쉽게 움직일 수 없었다.
만약 여기서 움직인다면 오히려 자신의 멱이 따일 테니까.
마인이 생각에 잠긴 사이 강수호가 자신들을 가로막은 이를 바라보았다.
‘역겨운 냄새?’
아니, 주변을 둘러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주변 가득 퍼져 있는 피와 마기의 냄새.
‘마인이네.’
마인과 관계없다는 관리자의 말이 거짓말은 아닐 터. 그렇다면 오늘 우연히 왔다는 건데…….
“아놔.”
귀찮은 일이 생겼다.
전투를 준비하는 사이 마인들이 강수호를 알아챘다.
‘지명수배?’
마인 협회의 지명 수배되어 있는 그였으니까.
“죽여라.”
곧이어 그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