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9화
129. 엘프 구출 작전(2)
“들키는 줄 알았네.”
크게 숨을 뱉었다.
다행히 누군가 오기 전에 노예 상점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
“유물은 챙겼어?”
“당연하지. 인벤토리에 고이 모셔뒀어.”
그녀의 물음에 인벤토리에 넣어둔 유물을 꺼내어 보여주었다.
“여기.”
“별 신기한 건 없네?”
“나중에 할아버지한테 가서 물어보면 되지.”
시간이 없기에 얻은 유물은 나중에 살펴보기로 했다.
아직 이곳은 암시장. 이 구역부터 빠져나가는 게 우선이다.
“그런데…….”
문제가 한 가지 있다면…….
“뒤에 따라붙는 애들이 생겼네?”
누군가 그들을 미행하고 있다는 거다.
인기척을 지웠지만, 그 정도쯤이야 쉽게 눈치챌 수 있었다. 스승님들의 습격으로 인한 단련 덕분이었다.
“가면은 벗지 말고 조용히 빠져나가자.”
처음 들어왔던 쪽과 반대 방향으로 이동했다.
그러면서 레이렐을 아는 엘프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성함이…….”
“벤이네.”
통성명이 끝나자 조용한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왜 여기 있습니까? 스승님께 듣기로는 보통 엘프는 숲에 박혀 산다고 들었는데.”
스승님의 훈련을 받은 그도 압도될 만한 힘. 그 정도의 강자가 고작 인간에게 잡힌 건 말이 안 되었다.
더군다나 강자라면 더욱 숲 안에서만 살아야 한다.
이곳에 잡혀 온 이유를 묻자…….
“레이렐이 죽은 것과 연관이 있지.”
“아…….”
대충 무슨 이야기인 줄 알 것 같았다.
“우리의 숲은 악마에게 습격받았지. 도망치다가 힘이 빠져 이곳으로 넘어오게 된 거고. 뭐, 자네가 생각하던 그대로네.”
악마의 습격을 받고 도망치다가 이곳으로 넘어와 인간에게 잡혔다는 것.
말을 끝낸 벤이 조금씩 다가와 속삭였다.
“그런데 정말 레이렐이 살아 있단 말인가?”
“아, 예. 지금 설명하기에는 상황이 급하니, 여기부터 나가고 차근차근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살아 있다니.”
레이렐이 살아 있다는 말에 두 눈동자가 흔들린다. 하지만 마음을 진정시키고 흥분을 감추었다.
그렇게 그들은 출구를 향해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 * *
-그 자식들, 내가 갈 때까지 묶어놔.
“알겠습니다. 펠론 님.”
“……?”
출구에 도착하자 느껴지는 역겨운 기운.
그들의 앞에는 남자 여럿이 대열을 이룬 채 입구를 막고 서 있었다.
뭔 상황인가 싶어 조금씩 뒤로 물러나자.
“마인이군.”
“아놔.”
그들의 존재를 빨리 알아챈 벤이 인상을 찡그리며 말했다.
역겹고 끈적한 이 느낌, 마인이 확실했다.
“좀 귀찮게 됐네요. 편하게 빠져나가서 에어컨 바람이나 쐴 줄 알았는데.”
“그러게, 이거 어떻게 하냐?”
그것도 꽤나 강한 마인이었다.
“모두 덮쳐라. 어차피 시간만 끌면 펠론 님께서 오실 거다.”
“옙.”
대장으로 보이는 이가 말하자 빠르게 퍼져 전투 자세를 갖추었다.
“일단 수갑을 풀어 드리겠습니다.”
“상성 차이가 커 큰 도움은 되지 못하겠지만, 없는 것보다는 나을 것이다. 한 팔로도 충분하니.”
빠르게 벤의 수갑을 풀어주었다.
강대한 힘을 가지고 있으나, 상성 차이가 너무 컸다.
생명을 창조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만, 생명을 부수는 데는 1초면 충분하니까.
“코코!”
“예! 주인님!”
이제는 말도 잘 듣는 코코를 꺼내 달려드는 마인의 공격을 막아내었다.
깡!!
“맛있는 한 끼 식사로군. 어서 나의 위 속에 들어가 영원한 안식을…….”
중2병 말투가 끝나기 전에 검기를 불어 넣었다.
“적당히 하지?”
“크윽. 보통 실력이 아니구나!”
“마기에 중독되면 다 정신이 나가 버리는 거냐?”
마인의 검을 베어 버리자 마인이 낄낄거리며 웃기 바빴다.
소름이 돋았다.
‘정신 나간 것들.’
오늘 아침에 밥을 잘못 먹기라도 한 줄 알았다.
“내 오른손의 흑염룡이 심각하게 날뛰어…….”
스걱!
“진짜 말 더럽게 많네. 그 시간에 검이나 더 휘두르겠다.”
말을 다 잇기도 전에 마인의 목을 베어 버렸다.
흩뿌려지는 피.
‘빨리 도망쳐야 한다.’
검에 묻은 피를 털어내며 주변을 둘러봤다.
이 정도 마인이라면 충분히 이기고도 남는다. 숲 전부를 가진 것처럼 날뛰는 엘프도 있으니.
‘문제는 따로 있어. 펠론이란 남자.’
자신들을 노예 상점에서 쳐다봤던 그 남자가 분명했다.
최소 간부 이상의 능력을 가진 괴물.
“마인 다 죽이려면 시간이 너무 지체돼. 그냥 밀어내면서 간다.”
“뭐? 장난이지?”
“방법이 없어. 그놈한테 잡히면 우리 중에 하나는 죽어.”
펠론.
강수호가 듣기로는 말도 안 되는 체력을 가진 탱커라고 한다.
잘못하면 여기에 무덤을 팔 수도 있었다.
“벤 님!”
“무슨 일이지?”
마인을 밀치며 벤을 향해 소리쳤다.
강수호의 목소리를 들은 그녀가 마인을 밀쳐내며 물었다.
시간이 없기에 간단하게 답하는 강수호.
“여기부터 나가고 봅시다!”
“알겠다.”
한 마디로 무슨 뜻인지 알아듣는 그녀. 곧바로 공격 패턴을 바꾸었다.
날카로운 주먹들이 전부 풍압으로 바뀌었고.
콰쾅!
“버텨라! 간부님이 오실 때까지 버티란 말이다!”
힘겹게 그것을 버텨내는 마인들.
하지만 이건 공격이 아니었다. 그저 그들을 밀어내기 위한 공격.
“젠장!”
조금씩 틈이 생기기 시작했다.
마인들이 풍압에 밀려날수록 출구로 재빠르게 향할 수 있었고.
“이제 거의 도착입니다! 조금만 더 힘내주십시오!”
강수호도 힘을 보태어 그녀를 도왔다.
몇 발자국만 더 움직이면 출구로 나갈 수 있었지만…….
“발검.”
“……!!”
바로 옆에서 갑작스레 느껴지는 섬뜩한 기운.
그 느낌에 옆에 있던 멜리아를 재빠르게 품에 안았다.
스걱!
콰콰쾅!
“으윽!”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빠르게 뱉어지는 검격.
피했지만, 너무 빠른 공격 때문에 등에 깊은 상처를 입었다.
하지만 지금 신경 쓰이는 건 깊은 상처가 아니었다.
‘방금 뭔가…….’
뭔가 익숙한 기운이 느껴졌다.
아힐런 스승님이 칼춤을 추면서 보여준 게 있었다.
‘내가 초기 때 어설프게 연습한 발검이다.’
‘……그게 초기 때 어설프게 연습한 발검이라고요?’
말도 안 될 정도로 빠르고 정확한 스킬이었다.
파괴력 또한 갖춘.
한 가지 단점이 있다면.
‘쿨타임이 좀 길어. 발검이라 최소 2초는 기다려야 움직일 수 있거든.’
다시 검을 회수하고 움직일 때까지의 시간이 있다는 것.
하지만 그 시간은 이미 지나갔다.
“후우, 힘들군. 역시 유물은 유물인가?”
어느새 검집에 검을 넣으며 뒤로 물러나는 마인.
또다시 마인들로 앞이 막혔다.
그들의 목적은 자신들을 죽이는 게 아니었다.
‘버티기만 하면 되네. 개 같은 거.’
자신들이 몇 배는 불리한 상황.
“일단 다시 시도해 보도록 하지. 여러 번 사용할 수 있는 스킬이 아닌 것 같군.”
“부탁드리겠습니다.”
다시 풍압을 일으켜 보기로 했다.
유물은 한 번 사용하면 충전 시간이 존재한다. 1차 봉인이 풀린 유물이라면 그래야지만…….
“거의 다 왔습니다! 조금만 더 힘을…….”
조금만 더 힘을 내면 됐었다.
거의 입구에 도달했을 때쯤에.
“강타.”
“……!!”
또 다른 공격이 날아왔다.
아까와는 다르게 묵직한 검격이 날아왔다.
“음속의 발걸음.”
음속의 발걸음을 사용해 빠르게 멜리아를 낚아챈다.
콰쾅!!
묵직한 공격.
공격에 정확히 맞은 벽이 갈라지고 있었다.
“잘못하면 여기서 꼼짝없이 잡힐 뻔했군.”
“도대체 스승님들은 무슨 삶을 살아 온 건지…….”
저런 스킬들이 모두 마을에 살기 전부터 사용했던 것들. 저 정도면 재능만 없지, 노력은 미치도록 한 이들일 터.
하지만 다행히도 더 이상의 공격은 들어오지 못했다.
“더 이상은 없는 것 같군.”
큰 공격이 없다는 걸 깨달은 그녀가 다시 한번 풍압을 발생시켰다.
그대로 빠져나가려 했지만.
쿵!!
“……!!”
하늘 위에 떨어지는 신영.
풍압으로 마인을 밀쳐내며 입구를 빠져나가려던 그녀가 빠르게 뒤로 빠졌다.
거대한 기운이 내뿜어지고 있었으니까.
“후우, 달려오는 데 더럽게 힘들었네.”
“오셨습니까? 펠론 님.”
“……!!”
거대한 덩치에 울긋불긋한 근육.
금방 눈치챌 수 있었다.
‘펠론? 12위 간부…….’
간부 중에서도 가장 낮은 순위를 가진 간부. 하지만 느껴지는 기운만큼은 벤과 비등했다.
“잘 버텨 주었군.”
“감사합니다. 펠론 님께서 주신 유물 덕분이었습니다.”
“좋다, 뒤로 물러나 있어라. 나머지는 부하들과 내가 상대하지.”
유물을 연속적으로 사용한 후유증을 겪는 그.
그를 뒤로 밀어내고 펠론이 앞에 섰다.
“몰래 유물을 빼 돌린 값은 받아야겠지? 누군진 모르겠지만.”
“귀찮게 된 것 같군.”
손목을 돌리며 뒤로 물러나는 벤. 힘은 비등하나 상성이 좋지 않았다.
‘이렇게 되면 몰살이다.’
여기서 무덤도 파지 못하고 곤죽이 되는 수가 있었다.
가장 낮은 12위 간부지만, 간부는 간부.
“일단 너희를 다짐육으로 만들어 주지. 내 유물을 가져갔으니.”
우두둑.
손을 풀며 빠르게 다가오는 펠론.
“뒤로 가 있어. 위험하니까.”
멜리아를 완전히 뒤로 보냈다.
마기가 많기 때문에 차원 이동도 사용할 수 없었다. 그녀를 뒤로 내보내고 싸울 수밖에.
“내가 먼저 들어가도록 하지.”
펠론을 향해 무섭게 달려드는 그녀.
묵직한 주먹과 날카로운 바람이 합친 강한 공격이었지만.
쾅!!
“고작 이 정도로?”
“크윽.”
마기가 문제였다.
엘프와 반대되는 성질을 가진 저 엿 같은 마기.
주먹으로 공격을 막아낸 펠론. 반대되는 성질을 가져서 그런지 벤에 공격에 큰 피해를 받지는 않은 것 같다.
“노예 주제에?”
몸의 크기와 비슷한 묵직한 힘.
그의 주먹이 벤의 머리에 부딪히자 힘을 이기지 못하고 나가떨어진다. 강수호도 마찬가지.
“브레…….”
“더럽게 뱉어내지 마라.”
“크윽!”
브레스를 쏘기도 전에 주먹으로 막아내는 펠론.
검으로 가까스로 막아내어 뒤로 밀려 나간다.
“방법이 딱히 없는 것 같군.”
“…….”
그녀의 말대로 방법이 딱히 존재하지 않았다.
유물이 없었더라면.
“카지노에서 사용하려고 했는데, 여기서 사용할 수밖에 없겠네요.”
“……그건 뭐지? 카드 게임이라도 하겠다는 건가?”
트럼프 카드를 꺼내자 인상을 찡그리는 그녀.
당연하게도 여기서 그런 게임을 할 리 없었다.
“유물입니다.”
“유물? 저자와 같은 힘을 쓰는 것 말인가?”
“예, 조금 다르긴 한데, 비슷합니다.”
비슷하면서도 다른 힘.
펠론은 조금씩 뒤로 물러나는 그들이 신경 쓰여 강한 기운을 뿜어댔다.
“처리할 일이 산더미다. 빨리 처리해 주지.”
“성격 급하네.”
공격보다는 뒤로 빼기 시작했다. 유물울 사용하기 위해서.
“정확한 효과를 확인해야 합니다. 혹시 잠시만 버틸 수 있겠습니까?”
“그러지, 걱정하지 마라.”
강수호의 말에 곧바로 움직이는 그녀.
아슬아슬하게 막기 시작하는 그녀의 뒤로 가 카드의 효과를 확인했다.
[낡은 클로버 6(3차 봉인)]
제한 레벨 : 없음
충전 시간 : 0시 - 0분 - 0초
효과 : 행운, 도박
에매한 유물의 효과.
하지만 뒤로 갈 곳은 없었다.
“행운을 사용할 수밖에 없겠네.”
일단 행운을 사용하기로 했다.
곧바로 효과를 사용하고는 펠론에게 달려들자.
“느리군……?”
그의 공격을 가볍게 피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