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8화
128. 엘프 구출 작전(1)
“레이렐이란 이름을 어떻게 아는 거지?”
“저한테 정령술을 가르쳐 주셨거든요.”
“……그 아이가? 자신이 인정하지 않으면 관심도 주지 않을 녀석이?”
“여러 과정이 있었는데, 지금 설명하기는 좀 그런 것 같습니다.”
정령술을 가르쳐 줬단 말에 입을 쩍 벌렸다.
그녀가 기억하기로 레이렐은 친한 엘프에게도 정령술을 가르쳐 주지 않았다.
그런 아이가 인간을 가르쳤다니.
‘나는 인간을 그리 싫어하지는 않지만, 그 아이는 아닌데…….’
하지만 옛 추억에 잠겨 있을 시간은 없었다.
그녀는 이곳의 노예 신분.
“일단 여기서 빠져나가야 합니다.”
노예상이 오기 전에 그녀를 내보내야 한다.
튼튼하게 만들어진 자물쇠에 힘을 주어 뜯어내려 할 때.
“이렇게 깊은 곳까지 오시다니. 손님께서 마음에 드는 노예가 그렇게 없으셨습니까?”
“그래, 나보다 강한 노예가 없어 여기까지 왔다. 불만이 있느냐?”
“저야 좋습니다. 깊이 들어갈수록 몸값이 비싸지니까요.”
노예상의 인기척이 느껴졌다.
깊이 들어간 걸 인지한 까닭일 터.
능숙하게 짝다리를 걸치고 노예상 앞에 섰다.
“저 엘프 X은 얼마를 줘야 하지?”
“아! 저 엘프는 이곳에서 가장 비싼 녀석입니다.”
“저렇게 말라비틀어졌는데도?”
그녀의 몸 어느 곳도 성한 곳이 없었다.
싸우다가 죽어 버릴 수 있을 것 같은 몸.
“그건 걱정하지 마십시오! 저희가 직접 엘프의 힘을 확인했습니다!”
“내가 확인을 하지 못했다. 보여주거라.”
무리한 부탁을 던졌다.
그리고 조금씩 주변을 둘러봤다.
‘역시 있네.’
작은 마나의 기운.
누군가 이곳을 보고 있었다. 노예상조차 모를 적은 마나의 기운도 느껴진다.
빠르게 눈길을 거둔 그가 멜리아에게 붙었다.
“어때? 저 엘프 가질래?”
“어, 어?”
아직 눈치채지 못한 그녀.
노예상 모르게 눈살을 찌푸리고 눈치를 준다. 이곳을 누군가 보고 있다고.
“어! 이 엘프가 좋은 것 같아! 노는 맛이 있는 것도 같고. 그런데 전투형 엘프라 힘을…….”
다행히 그에 맞춰 연기해 주었다.
그 덕분에 노예상이 한숨을 내쉬며 노예를 꺼냈다.
“어쩔 수 없죠. 그 대신 사 주셔야 합니다? 요즘 밥값도 벌지 못하고 있어서 말입니다.”
“그건 걱정하지 마라. 힘만 보여주면 바로 사도록 하지.”
튼튼한 자물쇠를 열 열쇠를 꺼낸 노예상.
빠르게 문을 연 노예상이 엘프만 꺼내어 보여주었다.
“잠시 수갑을 풀 테니 멀리 떨어져 주시기 바랍니다.”
“그러지.”
노예상의 말을 들었다.
떨어지자마자 수갑을 빠르게 풀어내더니.
쿵-!
“이 정도면 됐습니까?”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몇 배는 강하군.”
수갑을 다시 채웠다.
스킬을 사용하는 건 보여 줄 필요도 없다는 것. 그만큼 엘프가 뿜어대는 힘은 강수호도 놀랄 만한 힘이었다.
‘당연히 레이렐 스승님보다 약하지만, 괴물은 괴물이다.’
하지만 강하다고 해서 모든 이를 이길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지금 자신을 보는 그만해도 엘프보다 강한 기운이 느껴지고 있었다.
‘마인 간부인가? 지금 마찰을 만들면 안 돼.’
예민한 감각이 반응했다. 지금 자신들을 보는 이가 간부 이상의 실력자라고.
“누가 보고 있네.”
“너도 느꼈지?”
멜리아도 느꼈는지 조용히 말했다.
끈적하고 더러운 기분. 누군가 그들을 쳐다보는 게 분명했다.
“손님, 엘프를 사시겠습니까?”
“조금 고민이 되긴 했지만, 자네가 직접 힘을 보여주었으니…… 좋아, 사도록 하지.”
“감사합니다! 손님!”
노예 상인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사지 않아야 할 이유는 없다.
“얼마지?”
“저 엘프 노예는 대략 3억 달러 정도 합니다.”
“3억 달러?”
금액을 묻자 곧바로 답장해 오는 노예 상인.
노예 상인의 대답에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한국 돈으로 3,300억이란 소린가?’
한국 돈으로 3,000억.
지금까지 본 노예치고는 말도 안 되기 비싼 돈이었지만…….
“혹시 몰라서 묻는데, 돈이 없으신 건…….”
“좋아, 사도록 하지. 의외로 싸서 놀랐군.”
“……?!”
강수호에게는 전혀 문제 되지 않았다.
[그린 드래곤님!]
[하암~ 무슨 일이지?]
[돈 좀 대신 내주세요.]
[얼마나 필요하느냐?]
[3억 달러요.]
[알겠다.]
구슬 여덟 개가 없어도 이곳에 존재하는 그린 드래곤.
3억 달러 정도는 그린 드래곤에게 돈도 아니었다.
“이 정도면 충분할 겁니다. 그렇죠?”
“가, 감사합니다! 이 정도 금괴 양이면 충분할 겁니다!”
떨어지는 금괴를 보고 기뻐하는 노예상.
돈에 미친X처럼 금괴를 받아 들고 깨물고 있었다.
“여기 열쇠 있습니다!”
“고맙군. 나중에 시간 나면 다시 들르도록 하지.”
“들어가십시오!!”
열쇠를 건네주었다.
이 열쇠가 노예의 주인이란 걸 나타내주는 증표.
“열쇠만 가지고 있으면 마음대로 다룰 수 있을 겁니다!”
노예상의 말과 함께 곧바로 발걸음을 옮겼다.
이제 나가기만 하면 된다.
그전에…….
‘유물을 가지고 가야 하는데…….’
수갑 형태의 유물을 가지고 가야 한다.
지금이 아니면 기회는 거의 제로에 가까울 것이다.
“멜리아.”
“응?”
“할 수 있지?”
시선이 느껴지는 곳으로 눈치를 보냈다.
유물 근처 도착까지는 시간이 남았지만, 지금 알아차려야 한다.
“오케이, 알겠어.”
눈길에 그녀도 대충 눈치챈 듯하다. 지금이 아니면 기회가 없었다.
아직까지도 시선이 느껴진다.
얼마 지나지 않아 도착한 노예상의 사무실.
‘다행히 가져가지는 않았네.’
다행히도 노예상은 유물을 보여준 후에 다시 사무실에 가져다 둔 듯하다.
하지만 지금 느끼는 시선의 주인은 바보가 아니었다.
‘가져가면 분명히 눈치챌 거다.’
저 유물을 가져가면 분명히 눈치챌 것이다.
하지만 방법이 없는 건 아니었다. 오히려 확실하게 해결할 방법이 하나 있었다.
“멜리아.”
“으흠.”
멜리아가 강수호의 말에 따라 자신에게 점점 가까이 붙는다.
그 틈에 인벤토리에서 조심히 무언가를 꺼내기 시작했다.
‘이거라면 되겠지.’
한창 약할 때, 24시간 동안 차고 있던 발찌와 팔찌를 말이다.
사무실에 도착하자마자.
“……!!”
그녀가 몸으로 유물을 가리는 사이 빠르게 물건을 바꾸었다.
그 시간이 고작 1초도 되지 않았지만.
‘성공했다.’
눈길은 그들에게서 떠나지 않았다.
성공했다는 의미.
빠르게 인벤토리에 수갑을 넣고.
“노예도 샀으니, 돌아가도록 하지. 피곤하기도 하고.”
“좋아요, 너무 오래 일어서 있어서 그런지 피곤하네요.”
그 둘은 자연스럽게 노예 시장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
아직도 느껴지는 시선을 신경 쓰며.
* * *
“여기는 다행히 사라지지 않았군. 의심 가는 이가 있지만.”
침대에 앉아 파란 화면을 보는 펠론.
다행히도 유물을 숨겨 놓았던 곳에는 문제가 없었다. 의심스러운 이들이 있긴 했지만.
“문제가 되진 않겠지. 노예 한 마리만 샀으니.”
더 이상은 신경 쓰지 않았다.
좀 강한 전투 노예 한 마리를 산 것뿐.
무시하고 휴대폰을 들었다.
전화를 걸고 가볍게 자신을 밝혔다.
“나다.”
-예, 펠론 님.
낡은 검의 유물을 준 부하에게 전화를 건 것이다.
“찾았나?”
잡았는지 확인하기 위해서.
하지만 당연하게도 그들을 찾지 못했다.
-죄송합니다.
“괜찮다. 그들이 유물을 찾을 가능성은 거의 없으니…….”
그래도 큰 손해는 없었다.
열쇠가 죽은 것 빼고는.
‘열쇠는 다시 만들 수 있으니.’
열쇠쯤이야 다시 만들 수 있다.
문제는 유물들.
‘유물은 만들 수도 없고, 쉽게 찾을 수도 없으니.’
머릿속의 정리를 끝마치고 암시장 전체를 살폈다.
‘그래도 찾는 게 나을 테지.’
나무가 크게 자라기 전에 씨앗부터 없애야 했다. 유물을 찾고 있으니 나중에 잘못하면 큰 위험이 될 수 있었다.
‘천마 님을 위하여 이 정도쯤은 일도 아니다.’
눈을 빠르게 돌렸다.
감각을 최대치로 올려 주변을 한참이나 둘러봤지만.
“의심스러운 이는 그놈들뿐인가.”
더 이상의 의심스러운 사람은 없었다. 예민한 감각에 잡히는 것도 없었고.
“일단 부하 몇 명은 붙여 놔야겠군.”
하지만 그는 방심하지 않았다.
혹시 몰라 노예 시장 끝에 방문한 두 명에게 부하를 몰래 붙여 놓기로 했다.
“너희 두 놈만 움직여라. 일주일간 감시하고 큰일이 없으면 다시 와서 보고해라.”
“예, 알겠습니다.”
명령이 끝나자마자 빠르게 사라지는 부하들.
조금은 마음을 놓고 쉴 수 있을 것 같다. 마침 내일은 천마가 보낸 부하가 오기도 하고.
“일단 노예상 쪽으로 가야겠군. 유물을 가져와야 하니.”
침대에서 일어나 외투를 걸쳤다.
천마의 부하가 내일 일찍 아침에 온다.
자신이 가지고 있다가 건네주어야 하니 유물을 가지러 가기 위해 노예 시장으로 이동했다.
* * *
“헤헤, 금괴다! 금괴!!”
금괴의 산에 파묻혀 기뻐하는 노예상.
노예 시장 가장 끝에 위치해서 사람이 워낙 없던 터라 한 번 벌어들인 돈은 매우 귀했다.
“손님이 와서 다행이야. 몇 달째 날파리만 날렸으니.”
오랜만에 온 손님. 안쪽 깊숙이 들어 왔기에 다른 노예보다 몇 배는 더 벌어들일 수 있었다.
“아~ 행복하다!”
금괴의 산에서 한참을 파묻혀서 놀던 그때였다.
“뭐 하는 거지?”
“누구…… 아! 페, 펠론 님!”
암시장의 관리자, 펠론이 노예상 앞에 나타났다.
빠르게 금괴의 산에서 벗어나 정신을 차렸다.
“여기에는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바쁘실 텐데.”
“내 관리 구역인데, 내 마음대로도 못 오나?”
“하하, 아닙니다.”
겉으로는 빌빌대고 있었지만, 속으로는 한숨을 내쉬고 있었다.
‘얼마나 떼어가려고 그러는 거지?’
3억 달러의 금괴. 육안으로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금괴를 빼앗길 수도 있지만 관리자라 뭐라 말할 수도 없었다.
“얼마나 벌었지?”
“대략 3억 달러입니다.”
“허허, 평소의 가격에 6배?”
“그것이…….”
더군다나 평소의 가격에 6배.
아무리 노예가 비싸도 3억 달러는 하지 않는다. 값을 올려 쳤으니, 올려 친 값은 관리자가 받아야 했다.
“2억 달러, 이 정도면 충분하겠지?”
“2, 2억 달러? 조금만 깎아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너의 목숨으로 대신해도 되겠나?”
“아, 아닙니다. 금방 드리겠습니다!”
노예상에게 선택지는 없었다.
위협적인 살기에 몸을 떨면서 금괴를 담는다. 주지 않는다면 목이 댕강 베일 테니까.
“여기 2억 달러 정도의 금괴입니다!”
“음흠, 이 정도면 그분의 부하가 올 때 괜찮은 파티를 할 수 있겠어.”
마침 돈이 필요했는데, 좋은 기회였다.
파티를 사용하고 나머지 돈은 자신을 위해 사용하기로 하고…….
“그것보다 유물은?”
“저기 있습니다! 금방 가져다 드리죠!”
그가 여기까지 온 이유는 유물을 가져오기 위해서였다.
노예상이 곧장 발걸음을 옮겨 유물을 가져왔다.
막 유물을 가져와 살펴본 순간…….
“…….”
“어떠십니까? 유물은 잘…….”
콰직!
말이 끝나기도 전에 노예 상인의 머리를 터트렸다.
유물이 가짜였으니까. 그저 강대한 힘만 내뿜어지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