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4화
124. 누군가의 유품(4)
“그 광대가 갑자기 와서 마을을 헤집어 놓았다네.”
광대라면 클로운을 말하는 것이다. 12명의 간부 중 3위 안에 드는 뛰어난 실력자.
‘그런데 여긴 왜 온 거지?’
문제는 굳이 3위 간부가 이런 빈민촌에 온 이유를 모른다는 거다.
전부터 빈민촌에 강수호도 눈치채지 못하게 독을 뿌려대면서.
“아마 그건…….”
3위 간부가 온 이유는 노인의 말에 바로 알 수 있었다.
“내 보물을 가져가려고 했던 걸세.”
“할아버지 보물이요?”
“그래, 예를 들면 이것이지.”
노인의 주머니에서 낡은 클로버 6 카드가 나왔다.
너무 낡아서 지금 당장에라도 부서질 듯한 카드.
“이게 내 마지막 보물이지. 그자가 내 첫 번째 보물을 가져가 버렸어.”
“…….”
낡은 6 클로버 카드.
이게 보물이라는 것에 말도 안 되리라 생각했지만…….
“어, 어?”
“왜 그러세요?”
노인을 보고 있던 라임 스승님이 입을 쩍 벌리고 말을 더듬었다.
떨리는 손으로 클로버 6 카드를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내가 잃어버렸던 건데, 저 카드.”
“……?”
노인에게서 클로버 6 카드를 받은 라임.
정확한 확인을 위해 카드 뒷면을 살펴봤다.
“내가 분명히 여기에 라임이라고 적어…….”
뒷면을 살펴보자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클로버 6 카드 뒷면에 원인 모를 문자로 적힌 글자.
세린 스승님을 통해서 살펴본 결과, 영어로 ‘Raim’이라는 이름이 적혀 있었다.
“내 거네?”
“…….”
마을 전체가 긴 침묵에 잠겼다.
스승님들이 보기에도 정확히 라임의 힘이 담겨 있었으니까.
“이거 분명히 그때 떨어트린 건데, 악마 놈들한테 죽기 전에?”
“……예?”
“확실해. 낡은 부분이 있긴 하지만.”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의 것임을 증명했다.
그 말에 스승님들이 노인에게 달라붙어 물었다.
“내 건 없나? 여기 이렇게 생긴 건데…….”
“내 건? 비슷한 거라도 못 봤어?”
소란스러워지는 마을.
점점 흥분되는 스승님들을 빠르게 진정시켰다.
“일단 진정하시고 이야기부터 들어보죠.”
“흠흠, 그러지.”
“모두 진정하게나. 꽤나 큰일이 일어날 수도 있겠군.”
촌장까지 나서서 그들을 진정시켰다.
몇만 년도 전의 일이라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죽기 전의 유품. 자신 같아도 찾으려고 애를 쓸 것 같았다.
“그렇게 대단한 건 아니지만, 필요하다면 말해 주지요.”
노인은 놀란 마음을 진정하고 서서히 입을 열었다.
“이 카드의 정확한 출처는 모른다네. 내가 듣기로는 어느 카지노에서 들고 왔다고 했던 거로 기억하네만.”
“……카지노에서요?”
“그래, 멜리아가 직접 발로 뛰어서 얻었던 카드지. 하지만 어느 카지노인지 확실치는 않아.”
출처는 카지노. 하지만 어디에서 이 카드가 왔는지는 알 길이 없었다.
직접 그 카지노에 가서 알아낼 수밖에.
‘복잡해지네.’
머리를 잡고 고개를 저었다.
상황이 꽤나 복잡해졌다. 이러다가는 몇 달간 한국에 돌아가지 못할 것 같았다.
‘이건 확인해야 하는데.’
이건 분명히 확인해야 한다. 스승님들을 이곳에서 내보내기 위해서.
“우후! 이거 없어서 처음에 포커 게임도 제대로 못 했는데!”
사라진 트럼프 카드를 얻은 라임이 기뻐하며 마을 주변을 뛰어다니고 있었다.
기억에서 거의 잊힐 때쯤 찾은 트럼프 카드.
“혹시 내 건 못 봤습니까? 이렇게 생겼…….”
“나부터지! 이건 못 봤…….”
“허허, 천천히 하십시오, 너무 많습니다.”
노인에게 더욱 바짝 붙여 묻는 스승님들.
그들을 떼어내느라 얼마나 힘들었는지 모르겠다.
“일단 진정하시고, 그 광대가 훔쳐 간 건 뭡니까?”
모두를 진정시키고 물었다.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크라운이 뭘 가져갔냐는 거다.
첫 번째 보물이라고 하니, 클로운은 두 번째 보물을 가져갔다.
“일단 자네가 준 건틀릿은 내가 소중히 가지고 있다네. 그가 가져간 건 반지네.”
“반지?”
반지란 말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무리 생각해도 스승님 중에 반지를 가지고 있을 만한 스승님은 없었다.
고민에 잠겨 잠깐의 침묵이 이어지던 때.
“어? 반지?”
“세린 스승님 건가요?”
세린이 반지라는 말에 반응했다.
노인이 반지 모양을 대충 그리고 안쪽에 적혀 있던 글자를 적으며 말했다.
“반지는 낡은 은반지, 안에는 이런 글자가 적혀 있었습니다.”
“……!!”
그 대답에 지팡이를 만지고 있던 세린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영어로 번역된 ‘Serin’이라는 이름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어디에서 굴러온 건지 모르겠지만, 알 수 없는 문자로 적혀 있어서 기억에 남았습니다. 착용자가 관리도 잘해 놓았고.”
노인에게 점점 다가가는 그녀.
노인의 손을 잡은 그녀가 진지하게 물었다.
“그거 어디 있어요?”
“반지라면…….”
머리를 긁적인 노인이 멋쩍게 웃으며 말했다.
“광대 놈에게 빼앗겼지 뭔가요. 하하하.”
“…….”
침묵으로 잠긴 마을.
세린이 노인에게 얼굴을 들이밀고 멱살을 잡으며 말했다.
“그 새끼 어디 있어?”
* * *
“스, 스승님! 진정 좀 하세요!”
“그 새끼 어디 있냐고! 내가 가서 그놈의 머리를 따 버릴 테니까!!”
이렇게까지 흥분한 세린은 강수호도 처음 본다.
눈을 붉히며 마나를 내뿜는 그녀.
“저거 진정 시켜!”
거대한 마나가 주변을 집어삼키기 시작한다.
살린 사람을 다시 저승으로 보낼 수도 있을 정도였다.
콰르르릉!
날씨를 조종할 만큼 거대한 마나가 요동치자.
“오랜만에 잠 좀 자둬.”
털썩.
어느새 그녀의 뒤로 다가간 샬론이 목을 쳐 기절시켰다.
그 덕분에 한시름 놓을 수 있었다.
“다시 저승 갈 뻔했구려.”
노인은 웃고 있었지만, 몸을 심각하게 떨고 있었다.
그들이 얼마나 강한지 눈치챈 거다. 세상 하나를 가볍게 멸망시킬 수 있을 만큼.
“아저씨, 마시세요.”
“앵? 이건…….”
“보약이니까 쭉 들이켜세요.”
레릴은 몸을 떠는 노인에게 다가가 물약을 건네주곤 기절한 세린을 침대에 눕히고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 반지가 뭐길래 저러는 거예요?”
모두가 진정되자 궁금함에 촌장에게 물었다.
어떤 상황에서도 절대 흥분하지 않던 세린이 이렇게까지 흥분하다니. 그 반지가 뭐길래 그러는지 궁금했다.
여전히 특이한 복장을 갖춘 촌장.
“상대방에게는 별거 아닐 수도 있는 물건이고 큰일일 수도 있는 소중한 물건이지.”
“……?”
애매한 답변이었다.
하지만 그다음 말에 반지가 얼마나 소중한지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
“어릴 때부터 끼고 다니던 반지였거든. 돌아가신 부모님이 주신.”
“그 반지가요?”
반지 안에는 많은 사연이 담겨 있었다. 그건 트럼프 카드도 마찬가지.
혹시 몰라 라임에게 트럼프 카드에 대해 묻자.
“아, 이거? 내가 이 카드로 ‘타짜’라는 별명을 얻었거든! 그래서 잘 품고 다니다가 여기 오면서 잃어버렸는데, 찾았지 뭐야!”
“…….”
스승님들이 잃어버린 것들에는 많은 사연이 담겨 있었다.
‘사연들만 알면 찾기도 쉬워질 것 같기도 하고…….’
확실한 건 아니었다. 찾기 쉬워질 것 같다고 짐작하는 것뿐.
“아, 맞다.”
어떻게 할지 생각하다가 갑작스레 떠오른 생각.
노인에게 맡겨 놓은 건틀릿.
“제가 준 건틀릿은 어디 있어요?”
“그거라면 내 인벤토리에 있단다.”
노인은 그 말과 동시에 거대한 건틀릿을 꺼냈다.
[누군가의 낡은 건틀릿(2차 봉인)]
제한 레벨 : 없음
공격력 : 5,000
충전 시간 : 0시 - 0분 - 0초
효과 : 일격
“변한 건 없네요?”
“당연한 말을. 아직 이틀도 채 지나지 않았으니.”
변화가 없다는 것과 별개로 클로운에게 빼앗기지 않은 것만으로 다행이라 생각했다.
‘건틀릿은 뺏기지 않아서 다행이네.’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근처 들판에 드러누웠다.
급한 불을 끄자 이제야 피로감이 몰려온 것이다.
“한시라도 편한 날이 없네.”
배에서는 뱃멀미를 하지 않나, 빈민촌에 있다가 마인 3위 간부를 만나지 않나.
“인도에서 편히 있기는 글렀어.”
구름 한 점 없는 푸른 하늘. 어찌나 맑은지 눈이 정화되는 기분이다.
조금 잔디에 누워 있다가.
“이제 갑시다. 일단 이 상황은 해결해야 할 테니까요.”
“그려.”
자리에서 일어났다.
빈민촌이라고는 하나, 인도에서 사는 시민들.
“차원 이동.”
노인의 어깨를 붙잡고 곧장 차원 이동을 사용했다.
* * *
“하암~ 비서, 나 잠 와.”
“거의 다 왔습니다. 조금만 참아 주십시오.”
“인도 한 번 갔다 오면 피곤해 죽을 것 같네.”
멜리아는 졸린 지 고개를 까딱거렸다. 하루도 쉬지 않고 인도 경매장 주변을 돌아다닌 까닭이다.
그뿐만 아니라, 오늘 하루 종일 돌아다니느라 지금에서야 처음 앉은 것이다.
“아, 몰라. 피곤해 죽을 것 같으니까 잘래.”
“도착하면 깨워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땡큐.”
계속 칭얼댄 덕분에 한숨 푹 잘 수 있게 되었다.
아직 빈민촌에 도착하려면 30분이나 남았다.
‘30분 정도는 편히 잘 수 있겠네.’
기분 좋은 미소를 지으며 눈을 감았다.
이제 막 잠이 들려던 그때.
“음?”
“안 주무십니까? 많이 피곤해 보이던데요.”
눈을 동그랗게 뜨며 정신을 차렸다. 아니, 코끝을 찌르는 고약한 냄새가 그녀의 잠을 깨웠다.
“비서는 냄새 안 나?”
“……무슨 냄새 말씀인가요? 설마, 또 저 몰래 위스키 한잔하신 거 아니에요?”
“무슨 소리야?! 지금 이 악취 안 나냐니까?”
“전혀 안 납니다. 기사님, 이상한 냄새 납니까?”
“저는 안 납니다. 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
하지만 주변인들은 지독한 악취가 느껴지지 않는다고 말한다.
‘내가 예민한 건가?’
하여 자신이 예민한 거라고 생각했다. 잠도 자지 못하고 경매장, 사막을 다녔으니까.
별거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우욱!”
“아가씨!?”
이전보다 지독한 악취.
그 때문에 점심으로 먹었던 것들을 토할 뻔했다.
“괜찮아요?”
“지금도 안 나?”
“도대체 뭔 냄새가…….”
멜리아가 다시 한번 묻자 똑같이 대답하려던 그때.
“윽? 이게 무슨 냄새입니까?”
“너도 나지?”
“예.”
코끝을 찌르는 지독한 악취가 비서에게도 느껴졌다.
“이게 무슨 냄새입니까? 토할 것 같습니다.”
운전기사도 마찬가지.
한 손으로 운전대를 잡고, 다른 한 손으로는 코를 막고 있었다.
“너도 나지? 일단 빈민가 쪽으로 계속 가 봐. 거기서 나는 것 같으니까.”
“예, 알겠습니다.”
그녀의 명령에 따라 액셀을 밟는다.
‘빈민가 근처에 왔다 하더라도 이런 냄새는 안 나야 하는 건데?’
빈민가에 가까워진다고는 하나, 이런 냄새는 안 난다.
큰일이 발생한 게 분명한 상황.
“최대한 빨리 달려.”
“옙.”
30분 거리를 약 15분 만에 도착해 버렸다.
“FXXK.”
“…….”
어떤 상황이 발생했는지 빠르게 알 수 있었다.
몸에 구멍이 뚫린 시체들, 그 사이에 강처럼 흐르는 원인 모를 검고 붉은 물들.
“가까이 오지 마십시오.”
“무슨 일입니까?”
시체들에 가까이 다가가자 경찰처럼 보이는 한 남자가 머리가 아픈 듯 이마를 꾹꾹 누르며 그녀를 제지했다.
“마인 짓입니다.”
“털 것도 없는 빈민촌을요?”
“그야 저도 모르죠.”
“…….”
어깨를 들썩이며 모른다는 경찰관을 지나쳐 큰 목소리로 강수호와 노인을 부르려던 그때.
“강수호! 할아버…….”
“어? 왔네?”
깔끔한 모습의 강수호와 노인이 그녀의 앞에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