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1화
121. 누군가의 유품(1)
[누군가의 낡은 건틀릿(2차 봉인)]
제한 레벨 : 없음
공격력 : 5,000
충전 시간 : 23시 - 42분 - 32초
효과 : 일격
“변했네.”
건틀릿의 상태창이 완전히 변했다.
공격력 밑에 적힌 원인 모를 충전 시간. 아무것도 없던 효과에 일격이란 스킬 하나가 생겼다.
“이게 내가 사용했던 건가.”
충전 시간이 있는 것 보면 사용하는 데 페널티가 존재하는 것 같다.
하긴 그 정도 힘을 사용하려면 페널티는 존재해야 한다.
“권왕이라고 하셨나?”
건틀릿을 책상 위에 두고는 중얼거렸다.
정확한 정보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스승님에게 물어보는 게 좋을 것 같다.
“아니면 시스템한테 물어보는 게 나으려나?”
새로운 호텔에 도착해 침대에 누운 강수호가 시스템을 불렀다.
“아줌마.”
“…….”
아무런 대답이 없는 그녀.
보통 이러면 잘 나타나던데…….
“아줌…….”
“아줌마 아니에요!”
“깜짝아.”
허공에서 갑자기 튀어나온 그녀. 전보다 다크서클이 몇 배나 짙어져 있었다.
“저는 또 왜 부르셨어요?”
“필요하니까 불렀죠. 어차피 관리자님도 우리가 필요하지 않아요?”
“…….”
관리자는 팔짱을 끼며 인상을 잔뜩 찌푸렸다.
무시하고 손가락으로 건틀릿을 가리켰다.
“이거 뭔지 알아요?”
“이게 뭔데……요?”
별거 아닌 듯 바라보던 그녀의 눈에서 놀라움이 깃들었다.
그 모습에 평범한 무기가 아니라는 걸 한눈에 알 수 있었다.
‘스승님의 무기인 건 99.9% 확실하네.’
건틀릿을 향해 다가가는 그녀. 손을 뻗어 건틀릿을 쥐려 했지만.
“가져가시면 안 되죠.”
“아악! 내놓으세요! 그게 왜 여기 있죠?”
“제가 정정당당하게 중국 경매장에서 샀으니까 여기 있겠죠?”
“주세요! 아직 날이 아닌데! 빌어먹을 바이러스들!”
울먹거리는 소리로 건틀릿을 빼앗으려던 그녀.
하지만 그녀에게 잡힐 강수호가 아니었다.
아슬아슬하게 그녀의 손에 닿지 않게 뺏어 들고 침대에 앉는다.
“안 뺏길 건데요?”
“…….”
확인 사살까지 하기 위해 건틀릿을 인벤토리에 넣어 버린다.
시스템 관리자 정도면 인벤토리에 넣은 물건도 빼낼 수 있겠지만…….
“어? 왜 안 되지?”
될 리가 없었다.
몇 만 년 동안 썩고 썩은 세린의 보안 마법. 그게 뚫린다는 건 말이 안 된다.
뚫으려는 이가 시스템 관리자라 하더라도.
“스승님들이 보안을 걸어주셨는데, 당연히 안 되죠. 이제 어떻게 된 건지 좀 가르쳐 줄 수 있죠?”
“……하아.”
시스템 관리자의 입에서 한숨이 터져 나왔다. 어떤 방법을 사용해도 뺏을 수 없다는 걸 깨달은 까닭이다.
“어디부터요?”
“처음부터 끝까지 다요. 이왕이면 정확하게.”
“하아…….”
모든 걸 알길 원했다.
특히 이 건틀릿이 왜 여기 있는지.
* * *
“자기도 모른다는 거잖아.”
새로운 크루즈선에 갑판에 누워 건틀릿을 들어 올렸다.
시스템 관리자도 어떻게 들어왔는지 모른다는 건틀릿.
“나중에 스승님한테 가서 물어보든가 해야겠네.”
스승님에게 물어보는 방법밖에 없었다.
갑판 위에 누운 채로 건틀릿을 바라보다가.
“인도 도착이다!!”
“오, 드디어 도착이네.”
드디어 인도에 도착했다.
중간에 이상한 일이 일어나긴 했지만, 결국엔 도착할 수 있었다.
“내리십시오!”
얼마 지나지 않아 도착한 항구.
의뢰인과 함께 배에서 내렸다.
“오오.”
해외에 나온 건 이번이 두 번째라 가슴이 두근거렸다.
물론 그 마음은 얼마 가지 않았지만.
“강수호, 빨리 와.”
“아, 예.”
크루즈선에서 워낙 가까이 지낸 터라 의뢰인은 강수호를 옆에 두었다. 보디가드도 있으면서.
“인도는 워낙 치안이 안 좋거든요. 특히 외지인은 꺼리는 편이라서. 일단 밥부터 먹을까요? 다들 배고프신 것 같은데.”
“……!!”
물론 나쁜 점만 있는 건 아니었다.
맛있는 걸 먹을 수 있다는 것. 그것도 돈을 내지 않고. 이동할 때는 완전히 무장한 채로 주위를 경계하느라 긴장된 상태여야 하겠지만.
“저기 마침 차 오네. 가자~”
어느새 몸이 다 나았는지 완전히 무장한 채로 차에 오르는 최용두.
‘인도에서만큼은 조용히 가고 싶은데.’
맛집에 갈 수 있다는 건 좋았다. 하지만 언제 또 문제가 터질지 모른다.
인도에 있을 때 동안은 별일이 없길 바라며 차에 올랐다.
* * *
햇빛이 쨍쨍한 맑은 하늘.
날씨와 같이 인도의 날씨는 용암과도 같았다.
“오늘 날씨 진짜 덥네요.”
“그러게. 그래도 수호 덕분에 덥지는 않지만.”
물론 마법을 사용한 덕분에 찜통 같은 더위는 없었다.
“마치고 축제나 보러 갈래? 오늘 바다 근처에서 축제한다던데?”
“오, 진짜요? 당연히 가야죠. 먹는 거, 관광 빼고는 할 것도 없는데.”
길을 걷던 도중 축제 약속까지 잡았다.
용병 일 때문에 축제에 참여할 수 있는 확률이 크진 않겠지만…….
“그런데 어디 가는 건가요?”
한창 걷던 도중, 의뢰인들이 어디로 가는지 궁금해 물었다.
“나야 모르지. 아마 일 때문에?”
궁금할 필요는 없었다. 돈만 받고 일하는 게 용병이니까.
하지만 그들이 가는 곳이 점점 도시에서 멀어지는 듯하여 물었다.
‘빈민가로 들어가는 것 같네.’
아름답고 화려한 인도는 이미 사라져 있었다. 오물과 더러운 사람들로 가득한 동네.
“우욱.”
안으로 들어갈수록 악취 때문에 인상이 찌푸려지고 코를 막을 수밖에 없었다.
역한 냄새가 빈민가 전체에 퍼지고 있었으니까.
“우리는 그냥 조용히 따라가자고. 어디를 가든 의뢰인 마음이니까.”
100억을 준 의뢰인. 어디를 가든, 그에 토를 달 이유는 없었다. 돈만 제대로 받으면 되니까.
‘빈민가는 거의 처음 오는데…….’
코를 막으며 빈민가 주변을 둘러보았다.
한국과는 다른 처참한 광경.
‘한국에선 못 사는 집도 이 정도는 아닌데.’
한국에도 빈민가가 있지만,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빨리 오세요.”
하지만 그들은 별 신경 쓰지 않은 다는 듯 깊숙이 들어갈 뿐이었다.
그럴수록 사람들의 시선이 자신들에게 집중되었고…….
“이거 위험한 거죠?”
“익숙한 일이야. 예전에는 내전하는 곳도 가 봤는데.”
“각성하기 전에요?”
“응.”
무기를 든 이들도 간혹 보였다.
빈민가라 그런지 잃을 거 없는 사람들이 대부분. 하지만 신기하게도 그들이 견제하는 이는 의뢰인이 아니었다.
‘우리를 견제하는 거 같은데…….’
마치 의뢰인을 자신들에게서부터 보호하기 위한 견제 같았다.
‘착각이겠지.’
착각이라 생각하고 무시하려던 그때, 도착한 목적지. 판자로 지어져 당장에라도 무너질 듯한 판잣집이었다.
왜 여기에 오는지 의문이 들 무렵.
“할아버지! 저 왔어요!”
멜리아가 판잣집을 두드리며 밝게 인사했다.
해가 서쪽에서 떴나 싶었다.
‘도대체 누구길래?’
그런 중요한 사람이 이런 빈민촌에 있을 리 없다 생각했다. 하지만 그 생각이 사라지기까지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또 왜 왔어?”
하얀 수염에 하얀 머리를 가진 지긋한 노인이 투덜대며 문을 열었다.
“이번에 가져온 아이템 해석 좀 부탁하려고 왔죠!”
“또? 귀찮아 죽겠구만.”
“제가 주민들 드시게 식량 가져왔거든요? 이거 드리면 해 드릴 수 있죠?”
“뭐, 그거야 간단하니, 해 줄 수는 있지.”
아이템 하나를 건네며 미소 짓는 멜리아.
먹을 걸 준다는 말에 노인도 고개를 끄덕이며 아이템을 받아 들었다.
‘저건 또 뭐지?’
저 아이템이 뭐길래 그에게 맡겼는지 궁금했다.
아이템을 든 노인을 유심히 쳐다보자.
“흠흠. 어디 보자…….”
노인이 아이템을 한참을 유심히 살펴보더니 이내 고개를 저었다.
“이건 아닐세.”
“아……. 아쉽네요.”
“그 정도의 아이템이 나오는 건 쉽지 않은 일이지.”
“……?”
뭐가 아니라는 건지 이해하지 못했다.
그저 노인이 뭔가를 볼 수 있다는 것. 그거 하나는 정확히 알아낼 수 있었다.
“그럼 나는 이만…….”
“잠시만요!”
“음?”
강수호가 집으로 들어가려던 노인을 붙잡았다.
아이템의 뭔가를 볼 수 있다면, 건틀릿도 볼 수 있을 테니까.
“혹시 다른 아이템도 볼 수 있습니까?”
“다른 아이템?”
모든 시선이 강수호에게로 집중된다.
돈만 제대로 주면 시키는 일은 모든 해야 하는 용병. 하지만 시키지 않은 일은 하면 안 된다.
“아이템? 설마 오늘 중국 경매장에서 산 거 말하는 거야?”
“예, 그거 한 번만 감정을 받아 볼 수 있을까 하고…….”
물론 뒷배가 있다면 가능한 이야기.
강수호의 질문에 그녀도 질문을 던졌다. 그때 중국 경매장에서 산 낡은 건틀릿이 기억났기 때문이다.
“아가씨, 그래도 이건 엄연히 안 될 것 같은…….”
“한 번 정도는 괜찮잖아. 그리고 저 할아버지 발견한 것도 나고. 안 그래?”
“…….”
더 이상의 말은 이어지지 못했다.
먼저 노인의 능력을 발견한 것도, 여기까지 와서 능력을 확인한 것도. 모두 그녀가 이뤄낸 결과이기에 결정권은 그녀에게 있었다.
“괜찮지?”
“……예.”
“좋아, 한 번 맡겨봐도 돼.”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하는 비서.
그 모습에 저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스승님도 모르는 건데, 설마…….’
그래도 기대는 가지지 않았다.
스승님도 이게 어디서 왔는지 모른다고 했다.
그러니 아이템 좀 본다고 이것이 어디에서 왔는지 알 수 있을 확률은 낮았다.
“여기요.”
“오호, 상당히 낡은 무기야. 그런데 관리가 아주 잘 되었군. 볼 맛이 있겠어.”
건틀릿을 보자 노인의 눈이 빛났다.
낡긴 낡았으나, 녹도 잘 슬지 않고 관리가 잘 되어 있었으니까.
“나에게 그 건틀릿을 줘 보거라.”
“예, 여기 있습니다.”
조금의 기대를 품고 낡은 건틀릿을 건네주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평범하기 짝이 없는 건틀릿.
‘1차 봉인이 풀렸긴 했지만…….’
확인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때론 노력으로도 재능을 뛰어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혹시 모를 이득이 있을 수도 있으니 노인이 확인을 끝마칠 때까지 조용히 기다렸다.
파지직!
눈에서 파란 스파크가 연신 튀기기 시작했다.
갑작스럽게 튄 스파크에 놀란 그들이 그에게 다가갔지만.
“크윽!”
“……!!”
“어르신!”
“괜찮네. 붙지 마.”
걱정하는 그들을 오히려 떨어트렸다.
스파크가 튀지만, 그다지 아프지는 않았으니까.
“하지만……!”
“조용히 좀 해 주지. 아직 결과가 나오지 않았어.”
“…….”
노인은 주변인들을 모두 조용히 시켰다. 이 아이템이 얼마나 뛰어난지 알아차린 까닭이다.
“너희가 찾고 있던 물건이다. 조용.”
그 한 문장에 모두가 입을 다물었다.
강수호가 준 아이템이 황금알을 낳는 거위인지 눈치챈 까닭.
“어디 보자…….”
턱을 쓰다듬으며 다시 눈을 빛냈다.
낡은 건틀릿을 한참 살펴보다가.
“후우…….”
흘린 땀을 훔치며 호흡을 내뱉었다.
“다 끝났습니까?”
참지 못하고 강수호가 질문을 던졌다.
부서진 의자에 앉은 노인이 고개를 저었다. 끝난 건 맞지만, 확실하게 끝낸 건 아니었다.
“이 무기, 탐색 되지 않는구나. 내 눈으로도.”
“…….”
탐색 되지 않는다는 것.
하지만 말은 이제부터가 시작이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시간이 좀 필요할 걸세. 대략 일주일 정도.”
“예?”
충분히 가능했다. 일주일이라는 시간이 주어진다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