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0화. 경매(5)
‘이건 또 뭐야?’
초록색의 거대한 용.
갑작스럽게 나타난 용을 보고 당혹감을 지우지 못했다. 갑자기 왜 여기에 용이 나타나는가 싶어서.
“귀찮게 또 불렀어?”
“뉴비가 와서 소개해 주려고 했지. 지금은 제자가 다 되었지만.”
“오호, 이곳에 새로운 사람이 들어왔다고?”
“친구도 몇 번씩 데리고 와서 지겨울 틈이 없다니까?”
“나도 좀 즐기고 싶군.”
초록색 용은 익숙하다는 듯 데이빌과 잡담을 나누었다.
그와의 잡담이 끝났는지 강수호에게로 시선을 돌리는 초록색 용.
“반갑구나, 나를 그린 드래곤이라고 불러주면 고맙겠군.”
“예, 반갑습니다. 그린 드래곤님.”
드래곤이 한 마리 더 있다는 것에 그저 신기할 따름이었다.
더 신기한 것은…….
“그래서 자네 소원이 무엇인가?”
“소원이요?”
그린 드래곤이 소원을 들어준다는 거다.
일본 만화에서 본 적이 있었다. 여덟 개의 구슬을 다 모은다면 소원을 들어준다는 만화.
‘그게 된다고?’
물론 현실에서도 가능하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이렇게 쉽게 할 수 있을지는 몰랐다.
“소원이라면…….”
잠시 고민하다가 곧바로 입을 열었다.
“여기서 가장 비싼 물건이면 되긴 하는데…….”
누가 봐도 몇억 달러는 되어 보이는 듯한 물건이면 된다.
말끝을 흐리다가 그린 드래곤을 쳐다본다.
“나는 왜 계속 쳐다보는 건가?”
“혹시 말이죠.”
혹시나 싶어서 물었다. 될 수도 있을까 싶어서.
“그쪽에서도 그린 드래곤님을 소환할 수 있습니까?”
“당연하지! 저 구슬 여덟 개만 있으면 어디서든 소환할 수 있다!”
강수호의 예상대로 지구에서도 그를 소환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문제는 해결된 거나 마찬가지.
“스승님! 구슬 몇 개 더 있을까요?”
“그럼, 가져가. 평생 사용해도 남을 만큼 가져왔거든!”
구슬은 딱 여덟 개면 충분하다.
“소원은 몇 개나 들어 줄 수 있어요?”
“구슬 여덟 개에 한 개. 그리고 너무 무리한 부탁은 들어줄 수 없어.”
“그 정도만 해도 괜찮아요! 제가 다시 소환하면 근엄한 표정으로 거만하게 말 좀 해 주세요!”
“그러지. 심심하기도 했고.”
모든 문제가 해결되었다.
구슬 여덟 개를 챙기고.
“차원 이동!”
강수호는 곧장 차원 이동을 사용했다.
그만한 가치를 확인시켜 주기 위해서.
* * *
‘먹튀인가?’
소란스러운 경매장.
5분이 지났는데도 경매자 한 명이 아직 오지 않은 까닭이다.
“아직 멀었나?”
“5분만 더 기다려 주십시오. 그것이 규칙인지라…….”
“알겠다. 기다리도록 하지.”
강수호가 사라진 지 벌써 5분이란 시간이 흘렀다. 그런데도 오지 않아 긴장했지만…….
‘린하우 님이 가져가셔도 큰 상관은 없지.’
사회자는 오히려 이 상황이 반가웠다.
린하우가 중국 경매장에 들러 물건을 산 것만 해도 경매장 가치는 우후죽순으로 뛰어오를 테니까.
‘이대로 오지 않은 것도 나쁘지 않겠어. 한국인.’
강수호가 오지 않는 걸 원했다.
하지만 그가 오지 않는 일은 발생하지 않았다.
“저 왔습니다.”
“아, 오셨습니까? 그 낡은 상자는 무엇입니까?”
낡은 상자 여덟 개를 든 채로 파란빛을 내뿜으며 나타난 강수호.
평범하기 짝이 없는 낡은 상자를 처음에는 무시했으나…….
“잠시만요.”
“……?”
낡은 상자에서 나온 구슬들이 모두 심상치 않았다.
“여, 여의주?”
전 세계에서 지금까지 다섯 개밖에 모으지 못했다는 여의주가 그에게 존재하고 있었다.
그것도 여덟 개 전부.
“됐다.”
여덟 개의 여의주를 합치자 순식간에 여의주 한 개로 변하더니.
쿠르르릉!!
“으아악!”
경매장 전체가 암전되었다.
그러고는 모두를 놀라게 할 만한 거대한 번개가 천장에서 떨어졌고.
“누가 나를 불렀느냐?!”
“…….”
거대한 초록색 용 한 마리가 튀어나왔다.
그 모습에 소란스러워지기 시작한 사람들.
“저게 모든 소원을 들어준다는 용인가?”
“저것이…….”
이상한 소원 빼고는 모든 소원을 들어준다는 용. 그 용이 세계 최초로 앞에 나타난 순간이었으니까.
“이 정도면 제 재력은 충분히 확인하셨을 거라 생각하는데?”
“예, 예? 아, 예! 당연합니다! 이 정도면 충분하죠!”
재력 확인은 이 정도면 충분하다.
“그런데 이 용은 어떻게 하실 겁니까?”
사소한 문제가 있다면 여덟 개의 여의주를 사용했으니, 다시 돌려 놓지는 못한다는 거다. 무조건 사용해야 하는데…….
‘혹시 나한테?’
사회자는 조그마한 기대를 품었다. 혹시라는 마음에 물었지만…….
“아, 이건 제가 사용할 겁니다.”
“아, 예…….”
당연하게도 그에게 줄 생각은 하지도 않았다.
스승님 궁전에 많이 있기는 하나, 이건 선물용으로 줄 만큼 소소한 게 아니었으니까.
“그린 드래곤님?”
“왜 부르지?”
마을에서 했던 약속을 그대로 이행하는 그린 드래곤.
턱을 쓰다듬으며 소원을 고민하던 강수호가 그에게 물었다.
“오늘 여기서 경매를 하거든요! 그런데 돈이 없어요! 드래곤님이 대신 내줄 수 있나요?”
“그게 소원인가?”
“예!”
“그러도록 하지. 너의 소원을 이행하겠다!”
“……!!”
대신 돈을 내달라는 것.
어떤 금액이든지 대신 낼 수 있다는 걸 의미했다.
‘뭐, 저런…….’
세계의 어떤 대부호도 용의 재력은 뛰어넘지 못할 것이다. 그것이 린하우여도.
‘졌군.’
깊은 한숨을 내쉬며 패배를 인정했다.
여의주 여덟 개를 모으면 어떻게 되는지 보지는 못했지만…….
‘무리한 소원이 아닌 이상, 어떤 소원이든지 들어준다.’
여의주 여덟 개를 모으면 어떤 소원이든지 들어준다. 저 드래곤이 들어주기 불가능한 소원이 아닌 이상에야.
드래곤이 사라지고 적막이 생긴 경매장.
“하, 내가 졌다. 저 친구가 건틀릿을 가져가도록 하지.”
“아! 경매 낙찰자가 정해졌습니다!”
린하우가 두 손을 들어 패배를 선언했다.
경매 낙찰자가 정해지는 순간이었다.
* * *
“흠…….”
“어디 익숙한 거 없나요?”
“잠시만 기다려 보거라. 살펴보는 데 시간이 필요하구나.”
어느새 다시 도착한 스승님들의 마을. 경매에서 산 건틀릿을 확인하기 위함이었다.
건틀릿이 무엇인지 확인하기 위해 찾은 모험가, 에이비.
‘절대 창’이라는 ‘S급 재능’ 덕분에 모든 아이템을 확인할 수 있었다.
“흠…….”
잠시 시간을 가진 그가 몇 번 더 살펴보더니.
“오호, 이거 그 녀석의 물건이구나?”
“그 녀석이요?”
알 수 없는 대답을 던졌다.
뭔가 싶어 묻자.
“샬런의 유품이다.”
“……?”
샬런의 유품이란 말에 눈동자가 커다랗게 커졌다.
익숙한 기운이라고는 하나, 스승님의 유품이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게 왜 여기 있어?’
이것이 지구에 있는 건 말이 안 되었으니까. 애초에 스승님이 이곳 사람도 아니고.
“왜 이게 여기 있는 거죠?”
“나야 모르지. 이게 왜 네 행성에 있는 건지…….”
의문만 들 뿐이었다.
나중에 샬런 스승님에게 보여주고 직접 확인하는 수밖에.
“감사합니다.”
“감사까지야. 나야 심심하지 않고 좋았어. 잘 가라.”
“옙!”
다시 차원 이동을 사용하여 파란빛을 내뿜으며 사라진다.
낡은 건틀릿.
“상태창.”
에이비 스승님이 확인해 준 상태창을 열었다.
[누군가의 낡은 건틀릿(봉인)]
제한 레벨 : 90
공격력 : 4,000
효과 : 없음.
“너무 평범한데.”
상태창을 봐도 평범하기 짝이 없는 낡은 건틀릿. 특별한 광물로 만들어지지도 않은 무기다.
“봉인. 이게 문제인 건데.”
평범한 무기들과 다른 게 있었다면, 봉인에 걸려 있다는 것.
“어떻게 푸는지 방법을 모르니…….”
깊은 한숨을 내쉬며 침대에 누웠다.
봉인을 풀 방법이 없으니, 샬런 스승님에게 가 보는 수밖에.
그렇게 아무 생각 없이 깊은 잠에 청하려던 그때.
“한 번 껴 볼까?”
갑작스럽게 머릿속에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바로 건틀릿을 껴 보는 것.
“좋은 생각인데?”
침대에서 일어나 건틀릿을 꺼냈다.
평범한 사람 주먹의 몇 배는 거대한 건틀릿.
안에 있는 먼지와 흙을 털어내고 오른손을 집어넣었다.
철컥.
“됐다.”
겉모습과 다르게 부드럽게 잘 들어가는 건틀릿.
묵직하지만, 가벼운 느낌에 고개가 절로 끄덕여진다.
“비싼 가치는 못하지만, 쓸 만은 하겠네.”
손가락 하나하나까지 제대로 작동하고.
“그다지 다른 점이 없는 것 같은데? 그냥 평범한 건틀릿 같네.”
특이한 점은 없었다.
가벼움과 묵직함. 그거 두 개 빼고는 평범해 보이는 건틀릿.
“별거 없네.”
평범한 모습에 아쉬웠다.
이러려고 이 건틀릿을 비싼 돈 주고 산 게 아니었으니까.
“그래도 언젠간 쓸모가 있겠지.”
어떤 물건이든지 언젠가는 쓸모가 있다. 그게 몇 년간 쓰지 않은 물건이어도.
“잠이나 자야겠다.”
시간은 벌써 밤 12시.
시차가 크게 적용되지 않았기에 건틀릿을 빼고 누우려던 그때.
똑똑-
“음? 이 시간에 누구야?”
누군가 그의 방문을 두드렸다.
건틀릿을 낀 채로 문을 열었다.
끼이익.
“내일 배를 타고 떠나니, 준비를…….”
비서가 있었다.
해야 할 일을 정해 주나 싶어 문을 활짝 열어젖히자.
-1차 봉인이 풀립니다.
“음?”
건틀릿의 1차 봉인이 풀렸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놀라는 것도 잠시.
“이, 이게 왜 이러는 거죠?”
“예? 갑자기 뭐가……. 음?”
비서의 말에 화끈하게 달아오른 건틀릿을 확인할 수 있었다.
뭔가 싶어 건틀릿을 빼려 하자.
“어? 이게 왜…….”
건틀릿이 벗겨지지 않았다.
수갑에 구속된 것처럼 단단하게 오른손을 잡은 건틀릿.
-1차 봉인이 풀렸습니다.
허공에 떠오른 메시지.
그와 동시에.
위이잉!
건틀릿이 발동하기 시작했다.
빨갛게 변한 건틀릿.
“피하세요!”
“예?”
위험을 직감했다.
붉게 변한 건틀릿이 주변을 부술 것이라고.
“으아아!”
강수호의 예상대로 붉게 변한 건틀릿은 호텔 방 안을 날뛰기 시작했다.
상황을 예측한 그녀는 이미 도망쳤고.
-모든 힘이 발사됩니다.
허공에 떠오른 메시지.
그 메시지가 떠오르는 동시에.
쾅!!
힘을 빼내기 위해 허공에 건틀릿을 휘둘렀다.
그렇게 한 후에야 진정된 건틀릿.
“이거 도대체 왜 이러는 거야?”
먼지가 가득 쌓인 방을 보며 푸념을 내뱉었다.
별거 아닌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위력이 강했으니까.
“쿨럭! 으…….”
먼지를 치워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억지로 눈을 뜨고 걷힌 공간을 바라보니.
“…….”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건틀릿이 벽에 닿지도 않았다. 애초에 허공에 주먹을 휘둘렀으니까.
하지만 방의 모습은 처참했다.
“하하하하.”
헛웃음이 절로 나왔다.
문부터 시작해서 벽까지 뚫린 호텔.
철컥.
-힘이 모두 사용되었습니다.
-재충전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와 동시에 오른쪽 손에서 떨어져 나가는 건틀릿.
멍하니 뚫린 벽을 쳐다봤다.
휘두른 힘이 너무나도 익숙했으니까.
“이거 샬런 스승님 힘 아닌가?”
힘이 무엇인지 깊게 생각할 필요도 없었다. 방금 내뿜어진 힘은 샬런의 힘과 똑 닮아 있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