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8화. 경매(3)
‘기본기는 탄탄하게 잡혀 있다.’
린하우가 강수호를 보고 생각한 대답이었다.
체력, 힘, 민첩. 무엇 하나 높지는 않았지만 모자라지도 않았다.
‘그 이상은 없어.’
사소한 문제가 있다면, 그다지 메리트가 없었다. 스킬이 많은 것 빼고는.
‘볼 게 없을 수도 있겠군.’
스킬만 사용해서 상대방을 제압할 거라는 생각에 볼 게 없을 것 같았다.
하지만 강수호는 그의 예상을 완전히 벗어나 버렸다.
“음? 저건 도대체 뭔 기술이지?”
맨손으로 상대방의 검날을 잡는다.
린하우조차 깜짝 놀랄 행동.
“검은 그렇게 휘두르는 게 아닐 텐데?”
“으아아악!”
날카로운 검날이 강수호의 손바닥에 정확하게 닿아 있다.
무시하고 검을 휘두르는 후한.
힘이면 다 해결된다고 생각하고 있을 터.
“이렇게 무식하게 휘두르기만 하면 안 된다고 스승님한테 배웠는데. 칼춤으로 말이야.”
말과 동시에 다른 방향으로 힘을 흘려보낸다.
‘신기하군. 저렇게 공격을 흘릴 수 있단 말인가?’
무공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스킬도 아니었고.
누군가 평생을 살아오면서 쌓아 온 경험과 기술들. 그런 것들이 강수호에게 보였다.
“그리고 이렇게.”
“이런 젠…….”
말을 다 끝낼 새도 없이.
콰직!
머리를 잡고 땅바닥에 내팽개쳐 버린다.
힘이 잔뜩 담긴 공격.
“끄아악! 죽여 버릴 거다!”
“그렇게 흥분하면 상대하기 더 쉬워지는데?”
다시 정신을 차리고 일어난 후한이 마구잡이로 검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능욕당한 걸 참지 못한 모양이다.
‘스킬을 안 사용해 보고 이기는 거야.’
머릿속에 각인된 생각.
스킬을 뽐내기 위해서 이곳에 온 게 아니었다. 스승님들이 지금껏 가르쳐 것들을 복기하기 위해서다.
‘이렇게 마구잡이로 휘두를 때는 더 안으로 들어가라 했어.’
마구잡이로 휘두르는 검 틈을 찾아 품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지금!”
크게 휘두르는 공격에 맞춰 안으로 들어간다.
마구잡이로 휘두르는 공격 때문에 어디 하나 다칠 거라 생각했지만.
“이게 무슨!!”
“놀랬냐?”
오히려 그 반대였다.
더 이상 검을 휘두를 수 없었다. 짧은 단검 하나조차 들어가지 못할 정도의 틈.
“체크메이트.”
말과 동시에 턱을 향해 주먹을 휘둘렀다.
콰직!
턱뼈가 부서지며 뒤로 날아가 버린 그.
그 순간 승자는 정해졌다.
“갑작스레 나타나 경기장을 휩쓸고 다니는 한국의 헌터! 강수호의 승리입니다!”
“미쳤다!!”
“저 거한을 상대로 스킬 한 번 사용하지 않고 이겼다고?”
스킬 한 번도 사용하지 않고 이겼다는 것만으로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 충분했다.
“이제 몸 좀 풀었네.”
손목을 풀며 벤치에 앉아 다음 참가자를 기다린다. 이번에는 조금 더 강한 상대방이 나왔으며 하는 바람으로.
‘이왕이면 강자가 나왔으면 좋겠는데.’
방금 상대는 힘에만 집중된 무식함의 끝판왕이었다. 간단한 경험만으로 이길 수 있는 헌터.
다음 참가자가 후한보다 강자이길 빌며 다음 경기가 시작되길 기다렸다.
“내가 나가지.”
“음? 야, 미쳤어? 네가 왜 나가?”
망설이던 관중들 사이에서 린하우가 손을 들어 참가 의사를 밝혔다.
강수호가 고개를 들어 참가자가 누구인지 찾아보았다.
‘음?’
손을 든 그에게서 매우 익숙한 기운이 느껴진다. 병원에서 시비를 걸었던 린하우의 느낌과 완전히 똑같았다.
‘우연인가?’
린하우가 이곳에 나타날 리는 없으니 무공을 사용하는 이리라 생각했다.
손을 든 그에게 고개를 끄덕이며 손짓했다.
“좋습니다. 방금 손드신 분 나와주십시오.”
관중들의 시선이 모두 그에게로 집중되었다.
헌터 계에서도 잘 알려지지 않은 얼굴.
‘누구지? 내 기억에 없는 것 보면 유명한 사람은 아니라는 건데.’
경기장 안으로 들어오는 그의 몸을 유심히 살펴봤다.
‘근육이 질기고 단단해. 그리고 내공까지?’
상당한 고수였다. 지금껏 쌓은 내공과 외공의 흔적이 보였으니까.
‘최소 S급 헌터다.’
S급 헌터라 확실히 단정 지을 수 있었다.
그 옆에 있는 여자 또한 마찬가지.
“진짜 해도 돼?”
“그래, 어차피 스킬은 보여 주지 않을 거다.”
간단한 대화의 끝에 경기장 가운데에서 선 두 사람.
사회자가 마이크를 들고 긴장감을 잔뜩 표출했다.
“그렇다면 지금부터 1대1 경기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배팅을 시작하는 관중들.
“누가 이길 것 같소?”
“나는 반반, 어차피 재미로 하는 거니까.”
“나는 갑자기 난입한 이가 이길 것 같소만?”
“흠흠, 저기 청년이 이길 것 같은데?”
이야기 끝에 배팅이 끝났다. 이제 결과만이 남았다.
“먼저 들어가도록 하죠.”
이번엔 검을 들었다. 상대방이 심상치 않음을 인지한 까닭이다.
자세를 낮추고 빠른 속도로 달려들었다.
“……!!”
깡!!
갑작스러운 공격에 놀랐는지 외공으로 막아낸 그.
“검이 제법 날카롭군. 뛰어난 명검이야.”
칭찬과 함께 쏟아지는 공격.
처음에는 기본적이면서도 간단한 공격이었지만.
“오호, 이것도 피할 수 있나 보지.”
시간이 지날수록 공격은 점점 복잡해져 가고 어려워져 갔다.
물론 이 정도쯤은 그깟 칼춤에 비해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렇게 상대하다가는 목이 먼저 날아갈 수 있다는 것만 유의해 주십시오.”
“오만은 아니군.”
“당연하죠.”
강수호의 말과 행동에는 오만 따위 섞여 있지 않았다.
할 수 있어서 내뱉은 말이었으니까.
“제대로 하도록 하지.”
그도 강수호의 마음을 알았는지 온 힘을 다했다. 자신임을 들키지 않기 위해 자신만의 스킬은 쓰지 않을 거지만.
“백보신권.”
강수호도 아는 무공. 하지만 지금까지 봐왔던 무공과는 격을 달리했다.
‘더럽게 크네.’
일반 사람 크기의 두 배가 넘어가는 장풍이 강수호에게 날아들었다.
검에 검기를 불어넣어 베어내자.
“끝이 아니다. 무형지독.”
“……?”
장풍 뒤에 있던 그가 모습을 드러냈다.
손에 있던 투명한 액체를 강수호의 얼굴에 던지는 그.
‘독?’
색깔도 없고, 맛도 없는 무형지독. 암살용으로 주로 사용되는 독이다.
원래라면 금방 독에 중독되어야 하지만.
“제가 독 대부분에는 면역이라서요.”
“……그렇군.”
별거 아닌 듯 털어내는 강수호. 이 정도 독쯤이야 1L를 맞아도 아무런 소용도 없을 거다.
“방심하지 마라. 일검.”
“……!!”
하지만 아직 경기는 끝난 게 아니었다.
어느새 그의 손에 쥐어진 장검. 중얼거리는 목소리와 함께 거대한 검격이 생겨난다.
처음 건 아슬아슬하게 막아낼 수 있었지만…….
“이검.”
촤아악!
이검까지는 불가능에 가까웠다.
스킬을 사용한다면 모를까.
‘그래도 버텨야 한다.’
어금니를 꽉 깨물고 검을 들어 올렸다.
코코도 준비됐다는 듯, 손잡이를 연신 울리고 있었다.
깡!!
“아악!”
날아오는 검을 한 번 흘리고, 두 번째도 막 흘리려 했지만.
깡!
“후우, 안 되네.”
막지 못해 검이 날아가고 말았다.
강수호는 두 손을 들고 패배를 인정했다.
“아! 그걸 못 흘리면 어떡해!”
“크으! 저 사람한테 걸길 잘했지.”
희비가 갈리는 관중들.
그사이 린하우가 손을 건네며 충고했다.
“능력치를 빨리 올리려면 너의 한계부터 뛰어넘어라.”
“……?”
그 말과 함께 유유히 사라지는 그.
돈 따위도 받지 않았다. 그저 쿨하게 경기장에서 사라졌다.
* * *
‘누구랑 닮은 것 같았는데…….’
경매장 의자에 앉아 깊은 생각에 잠겼다.
얼굴은 달랐지만, 그 남자와 말투가 똑 닮았다. 목소리까지 비슷하고.
“뭐, 어차피 다 지난 일인데.”
더 이상의 생각을 멈췄다.
어차피 다 지난 일. 경매에 집중하기로 했다.
“이제부터 경매를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원하시는 경매 상품이 있다면 옆에 있는 번호표를 들어 주시기 바랍니다!”
간단한 설명과 함께 시작되는 경매장.
중국 최고 규모의 경매장인만큼 많은 사람이 이곳을 찾는다.
“유명한 사람도 있네.”
중국의 유명 기업 회장도 들를 정도였다.
엄숙한 분위기에서 시작되는 경매장.
“너도 할래?”
“아, 예. 마음에 드는 거 있으면 하겠습니다.”
“돈 줄까?”
“돈은 필요 없습니다.”
경매는 참여했지만, 그다지 원하는 게 없으면 안 살 예정이다.
정말 사고 싶으면 스승님에게 돈을 받으면 되는 일이고.
곧이어 시작되는 경매.
“뛰어난 품질을 자랑하는 천만년의 마그마 1L! 달러로 100만 달러부터 시작하겠습니다!”
“321번!”
“324번!”
“242번!”
다양하고 뛰어난 품질의 경매품들이 사람들의 눈을 즐겁게 하고 있었다.
물론 강수호의 눈을 즐겁게 할 수는 없었다.
“저게 천만년 마그마라고?”
경매장 앞에 존재하는 천만년의 마그마. 하지만 그의 눈에는 그다지 뛰어난 품질로 보이지 않았으니까.
‘온도가 높지 않잖아?’
온도가 그리 높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저 그런 용암이라 할 정도로.
‘볼 건 없겠네.’
몇 번의 경매품이 그를 반겼지만, 마음에 드는 물건은 없었다.
모두 스승님들이 가진 물건에 비해 품질이 한참이나 떨어졌기 때문이다.
“아무것도 안 사?”
“마음에 드는 게 없네요. 기념품으로 하나는 사야 하는데.”
경매가 끝날 때쯤이 돼도 살 게 없었다.
중국 최고의 경매장이 맞는 건가 의문이 들 정도였다.
‘내가 너무 기대한 건가.’
강수호의 눈이 높은 탓도 있었지만, 이번 경매품 중에 좋은 물건이 많이 없기도 했다.
“나 저거 살래! 저것도! 저것도! 저것도!”
“…….”
물론 의뢰인은 아닌가 보다.
경매품들을 보면서 번호표를 드는 그녀.
돈이 물보다 많으니 마음대로 살 수 있는 거다.
“좀 살 만한 거 없나…….”
턱을 괸 채로 좋은 물건이 나오기만을 기다렸다.
100가지 물건 중 좋은 거 하나 안 나올까 생각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흥미로운 물건이 등장했다.
“이번 경매 물품은 낡은 건틀릿입니다!”
“……!!”
지금까지 나온 경매품과 다르게 제일 낡은 물건. 하지만 지금까지 나온 경매품과는 질을 달리했다.
‘뭐야, 뭔가 익숙한 기운이 느껴지는데…….’
더군다나 건틀릿에서 느껴지는 익숙한 기운. 마을의 기운과 비슷해서 벙찔 정도였다.
“이번 경매품은 건틀릿입니다! 겉으로는 쓸모없어 보이지만, S급 돋보기로도 상태창이 보이지 않은 대단한 물건입니다!”
사회자의 설명에 놀라워하지 않은 사람은 없었다.
아이템의 상태창을 확인할 수 있는 S급 돋보기.
‘그게 먹히지 않았다고?’
그것만 해도 건틀릿의 희귀성은 충분했다.
“그럼 지금부터 경매를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시작되는 경매.
처음에는 꽤나 높은 가격이었다.
“500만 달러!”
“500만 달러라…….”
빠르게 고민했다.
뭔가 익숙하기도 하면서 꼭 필요할 것 같은 물건.
‘사야 할까?’
낡은 건틀릿이 누군가를 닮은 것 같았다.
잠시간의 고민 끝에.
“3048번.”
번호표를 들었다.
건틀릿이 강수호의 마음을 이끌었으니까.
“음? 너 돈 있어?”
그 모습에 꽤나 놀란 멜리아.
그럴 수밖에 없는 게 500만 달러면 강수호에겐 터무니없이 많은 돈일 테니까.
물론 그건 그녀의 생각일 뿐이었다.
“돈이야 차고 넘치죠. 돈 걱정할 필요도 없을 정도로요.”
돈쯤이야 차고 넘쳤다. 자신에게 그 돈이 있는 게 아니라…….
“스승님이 좀 부자시거든요.”
쓸모없을 것 같던 그.
돈밖에 배울 게 없었던 스승님에게서 꽤나 큰 걸 얻은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