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6화. 경매(1)
“……그러니까, 각성자라고요? 헌터 활동은 안 하는데?”
“그래.”
“…….”
병원 침실에 누운 그녀가 강수호의 질문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 대답에 두 손으로 머리를 강하게 짚었다.
‘아놔.’
아직 들키면 안 되는 비밀. 그 비밀을 의뢰인에게 들켜 버렸다.
‘스승님이 더 있다고 했지만, 많이 위험한데.’
스승님이 더 있다는 건 밝혀진 상황이다.
하지만 더 있다고만 했지, 그 수가 100명이 넘어간다는 소리는 하지 않았다.
‘구슬을 알고 있어. 잘못하면 스승님들 위치도 알 수 있다는 건데.’
더군다나 스승님들이 존재하는 차원의 위치도 알 수 있었다. 물로 그런 가능성은 희박하다 못해 불가능에 가까웠지만.
‘위험했지.’
다시 그들이 찾아왔을 경우 더 강해져서 돌아오지 않으리란 확신이 없었다.
“왜? 무슨 문제라도 있어? 내가 다 이를까 봐?”
“네, 그럴 가능성이 충분히 있어서 말입니다. 잘못하면 여기서…….”
더 확실한 해결 방법은 그녀를 죽이는 것.
물론 그런 일은 안 된다.
“걱정하지 마. 안 알릴 테니까. 그 대신…….”
“그 대신?”
의뢰인은 다른 걸 원했다.
“네 스승님 좀 만나게 해 줄 수 없어?”
“예?”
“여기는 워낙 심심해서 그분들이 있는 곳으로 가려고!”
“…….”
지옥 불에 뛰어들려 하다니. 강수호는 그녀를 이상하게 볼 수밖에 없었다.
“가능해?”
“가능은 한데…….”
물론 가능은 하다. 페널티가 몇 번 있어서 그렇지.
“생각은 좀 해 볼게요.”
“고마워! 그분들 다시 만나 뵙고 싶거든!”
하긴 심심하긴 하겠다.
태어날 때부터 하고 싶은 거, 가지고 싶은 건 다 가지고 태어났으니…….
‘나중에 말해 주면 되겠고…….’
모든 걸 정리한 그가 병실 밖을 나갔다.
정리가 끝났으니, 이제 관리자에게 따질 차례였다.
“보고 있죠?”
“…….”
아무 말도 안 하고 있지만, 관리자는 지금 상황을 분명히 보고 있을 거다.
마기는 시스템의 오류 덩어리.
“빨리 와서 대답하는 게 좋을걸요?”
“…….”
만약 여기서 대답하지 않으면 직접 찾아갈 예정이다. 방법도 어느 정도 알고 있으니.
“그럼 안으로…….”
“자, 잠시만요! 저 왔어요!”
방법을 사용하기 전에 나타난 시스템 관리자. 그녀는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아내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번에는 또 왜 부르셨나요?”
“알 거 다 아시면서. 이 구슬 때문이죠.”
“안 돼요. 그건 안 가르쳐 줄 거예요. 정말.”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정말 그건 안 된다는 듯.
그러면 다 방법이 있다.
“정말 안 가르쳐 줄 거예요?”
“예, 그러니까 알아서 잘 지켜…… 어디 가세요?”
그녀의 말을 무시하고 병원 밖을 나갔다.
가르쳐 주지 않는다고 해도 알 방법이 있다.
“그놈들한테 주면 되죠?”
“네, 네?”
“왜요? 그건 또 안 돼요?”
마인들에게 이 구슬을 주면 되는 일.
관리자에게 당황한 기색이 보인다. 구슬을 넘겨주리란 생각은 상상도 못 했으니까.
“그게 무슨 소리죠? 그건 당신만 손해입니다.”
“저만 손해라고요? 그건 아닌 것 같은데요?”
“……그런 건 또 어떻게 알아서는.”
날카로운 눈빛으로 쳐다보자 관리자는 더 이상 말을 이어가지 못했다.
손해를 보는 건 오히려 시스템 쪽이었으니까.
“뭐가 손해인 거죠?”
“악성 코드가 보안이 철저한 게임에 들어가려고 하는데 그걸 누가 가만히 내버려 둡니까?”
“…….”
“바보가 아닌 이상, 누군가에게 막으라고 명령하겠죠. 그게 바로 저고요.”
명령을 받은 이가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
강수호에게도 손해겠지만, 더 큰 손해는 시스템이다.
“이제 제 질문에 답해 주세요.”
“……어쩔 수가 없군요.”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는 시스템 관리자.
홀로그램을 띄워 몇 가지를 살펴보던 그녀가 입을 열었다.
“악성 코드가 당신을 찾아온 건 구슬 때문이 맞아요. 그쪽에 위치추적기 비슷한 게 있으니까요.”
첫 번째 문제를 해결했다.
마인들이 구슬 때문에 자신을 찾아온 것.
그럴 거라 충분히 예상했다.
문제는 최용두와 싸운 마인에게서 들은 차원이 열릴 거란 말에 대해서다.
“차원이라…….”
꽤나 중대한 사안인 듯, 관리자는 말끝을 흐리며 고민한다.
잠시 고민하다 어쩔 수 없이 입을 열었다.
“1차 시련은 랜덤으로 차원이 나타나죠. 처음으로 던전이 나타난 것처럼.”
처음으로 던전이 나타나는 것처럼 차원이 나타난다?
“그다음은요?”
“흠흠, 이 이상은 가르쳐 줄 수 없어요.”
“못 가르쳐 준다고요?”
“지금도 너무 많은 정보를 줬다고요! 이제 정말 안 돼요!”
“…….”
말이 끝나는 것과 동시에 사라지는 시스템 관리자.
근처 벤치에 앉아서 그녀가 말해 준 내용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차원.’
구슬 세 개를 다 모으면 시작되는 1차 시련.
1차 시련의 문제는 차원이었다.
‘거기서 뭐가 나올지 모른다는 건데.’
아포칼립스가 나오든, 별 이상한 차원이 나오든 아무도 모른다. 시스템조차도.
“이건 나중에 생각해야겠네. 일단은…….”
먼저 앞에 닥친 상황부터 해결하기로 했다.
벤치에 앉아 있자 바로 옆에서 느껴지는 압박감.
“강수호 헌터.”
“…….”
린하우.
그가 날카로운 눈초리로 강수호를 쳐다보고 있었으니까.
* * *
“무슨 일입니까? 린하우.”
그가 강수호와 만나야 하는 일은 없었다. 굳이 만나야 하는 이유를 꼽자면…….
‘구해 줘서 고맙다는 말을 안 해서 그런가?’
구해 준 것에 대한 보답. 하지만 린하우 성격상 그런 건 받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뭔가 싶어 그에게 다가가 물어보려 하자.
“거기서 멈춰라.”
“……?”
그가 강수호를 멈춰 세웠다. 마치 더러운 오물을 보는 듯한 표정으로.
‘왜 저러는 거야?’
그의 모습에 의문이 느껴질 뿐이었다.
어제 씻지 않아서 그런가, 생각하고 있을 때.
“자네는 어떻게 마독에 노출됐는데도 멀쩡할 수 있지?”
“그야 면역이니까요.”
린하우가 뜬금없는 질문을 내뱉었다.
그에 간단하게 대답하는 강수호. 하지만 린하우의 표정은 여전히 진지하고 날카로웠다.
“그건 말이 안 된다. 어떤 헌터라도 마독에 면역이 있는 건 말이 안 돼.”
“그러니까 제가 헌터 첫 면역자…….”
“마인이군.”
“…….”
해명할 시간도 없이 마인이라 단정 짓는 린하우.
입에서 욕이 나오다가 말았다.
“아니라니까요? 왜 혼자 오해하고 혼자 단정 짓냐고요. 나 참…….”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 워낙 익숙한 것에 길들여져 있다고는 하나…….
‘눈으로 직접 봤으면서.’
피를 보면 눈이 붉게 변하는 마인. 조절할 수 있다고 하지만, 그나마 간부 이상은 되어야 쉽게 조절할 수 있다.
더군다나 강수호는 마인과 함께 싸웠다.
“저는 환자입니다. 아무런 증거도 없이 확신하다가 중국 망신이나 시키지 마십시오.”
“…….”
린하우는 강수호의 말뜻을 대충 알아들은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럼 전 이만 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의뢰인 옆에 있어야 해서.”
뒤돌아가는 강수호를 멍하니 쳐다보는 린하우.
그사이 나타난 장리리가 신기한 듯 물었다.
“갑자기 왜 시비야? 마인이 아닌 거 잘 알고 있잖아?”
전 세계 무공의 극에 도달한 린하우. 강수호가 마인이 아니라는 것쯤은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하지만 굳이 이렇게 시비를 건 이유가 있었다.
“그 무기와 비슷한 냄새와 힘이 느껴져서 말이다.”
“네가 봤던 그 무기?”
“그래, 주먹의 세 배 정도 크기인 건틀릿.”
그가 찾던 무기와 비슷한 힘이 느껴진 탓이었다. 그것도 99.9% 확률로 비슷하게.
“네가 잘못 느낀 거겠지. 그것보다 다음 주 경매장에는 갈 거지?”
“당연한 이야기를 하는군. 그건 모든 돈을 쏟아부어서라도 사야 한다.”
“무기가 도대체 뭐라고.”
“무공에는 한계가 없지만, 나에게는 한계가 있다. 이제는 무기도 쓸 때가 되었어.”
“그럼 나도 내일 시간 비워 놓을게. 같이 가자. 사고 싶은 액세서리가 있거든.”
“알겠다.”
무공에는 한계가 존재하지 않는다. 무공을 받아들이는 무공자의 한계가 존재할 뿐.
‘이제는 훈련해도, 던전을 클리어해도 쉽게 늘지 않는군.’
힘이 점점 약해지는 건 아니었다. 이 세계가 더욱 강해지는 것뿐.
‘더 강해져야 한다.’
더욱 강해져야만 한다.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
“오늘은 이만 먼저 들어가도록 하지.”
“나랑 같이 밥 먹으러 가자니까! 저기 양꼬치 잘하는 집 있는데.”
“됐다. 배가 고프지는 않군.”
“어휴.”
빠르게 사라지는 그.
그의 모습에 장리리는 잔뜩 한숨을 내쉬었다. 몇 년간 눈치를 줬는데도 저렇게 알아차리지 못하니…….
“혼자 양꼬치나 먹어야겠다~”
쓸쓸하게 혼자 식당에 들어가는 장리리.
“여기 양꼬치에 맥주 한 잔 주세요!”
“예~!”
술로 하루를 마무리하기 위한 좋은 날씨.
맥주 열 잔을 마시고 나서야 집으로 향했다.
* * *
“안녕하세요!! 저는 멜리아라고 해요!”
“흐하하하! 나는 아힐런이라고 하네! 자네 검에 소질이…….”
“아니야, 아니야! 저 아이는 마법에 소질이 있는 것 같은데?”
스승님들의 마을에 도착했다.
이상하게도 그녀를 데리고 오는 데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마치 한 명이 빠졌으니, 한 명이 들어가도 되는 것처럼.
약간 문제가 되는 게 있다면…….
“무식한 검쟁이! 꺼져!”
“할튼? 지금 이게 무슨 짓인가?”
“……돌겠네.”
처음과 지금의 상황이 같다는 거다.
새로운 뉴비에 스승님들 전부가 미쳐 있었다.
“내 거다!”
“내 거야!”
“내 거다고!”
“내 거라고!”
점점 소란스러워지는 마을.
이것을 말리기 위해 크게 소리쳤다.
“스승님들!!”
“…….”
순식간에 조용하게 변한 마을.
그 사이를 비집고 들어간 강수호가 입을 열었다.
“사람이 물건입니까? 다들 적당히 좀…….”
“뉴비다!!”
물론 강수호의 말을 들은 스승님들이 아니었다.
무시하고 달려드는 그들.
“자네가 뉴비인가?”
“전 그냥 잠시 놀러 온 거예요! 다들 반가워요!”
그녀를 축 삼아 빙 둘러 옹기종기 모여드는 스승님들.
강수호는 이미 그들의 관심 밖이었다.
“칫. 너무해.”
울상을 지으며 구석진 곳에 앉았다. 뉴비가 오니 이제 강수호는 그들의 관심 밖이었다.
“제자인가?”
“음?”
하지만 스승님은 무려 100명.
모두가 그녀를 둘러싼 건 아니었다.
“누구세요?”
마을에 난생처음 보는 스승님이 강수호의 곁으로 다가왔다.
‘부자?’
다양한 보석들을 걸고 있는 그.
겉모습으로만 볼 때는 베트남 부자처럼 보이는 스승님.
그런 그가 화려한 금색 건틀릿을 낀 손을 내밀었다.
“내 제자가 되지 않겠나?”
“네? 아, 뭐…….”
잠시 고민했다. 이 스승님은 뭔 재능이 있을까 하고 말이다.
“오호, 내 재능이 매우 궁금하나 보군.”
“넵! 베트남 부자처럼 생긴 스승님이 누군지 궁금……. 아니, 스승님이 얼마나 대단한 사람이 누구인지 궁금하니까요!!”
하얀 거짓말을 섞어 대답했다.
대답이 마음에 들었는지 서서히 밝아지는 얼굴. 입꼬리를 한껏 올린 그가 곧이어 입을 열었다.
“내 아름다운 보석들이 보이는가?!”
몸 주변을 감고 있는 아름다운 보석들.
고개를 끄덕이자 스승님이라는 작자가 금화를 뿌리기 시작했다.
“나의 재능은 부자다! 정확히 말하면 돈으로 성공할지 실패할 수 있을지 알 수 있는 재능이지!”
“…….”
한 마디로 그는 부자들만 가진 재능을 가지고 태어났다는 거다.
물론 지금의 강수호에게는…….
‘아하…….’
큰 쓸모가 없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