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2화
112. 용병(3)
“흡! 흡!”
“흠.”
거대한 봉을 들었다 내리기를 반복했다.
베테랑이 그들이 보기에는 그리 무거워 보이지도, 가벼워 보이지도 않은 무게. 하지만 자세 하나는 기가 막히게 좋았다.
‘스승이 있다고 하던데 저 정도로 잘 가르쳐 줬을 줄이야.’
‘기본기는 탄탄하군.’
훈련으로 자신을 성장하기 위해서 그 전에 해야 할 일이 자신에게 맞는 자세를 잡는 것. 아무리 바른 자세라 하더라도 자신에게 맞지 않다면 의미 없는 시간 낭비다.
쾅!
봉을 내려놓았다.
마법 처리가 되어 있기에 잡지 않는 이상 무게를 느끼지 못한다.
“아무것도 안 올랐네.”
사람들의 눈에 강수호는 신기해 보였지만, 그는 오히려 반대였다. 허공에는 단 하나의 시스템 메시지도 뜨지 않았다.
“2시간 만으로는 1 스탯조차 올릴 수 없다는 건가.”
잔뜩 한숨을 내쉬며 생수병을 들어 목을 축였다.
온 신경에 집중하여 훈련했지만, 1 스탯도 올라가지 않았다.
‘뭐가 문제인 거지?’
샬런과 할튼 스승님의 훈련 방법 그대로 했다. 겉모습으로 보기에는 무식하게 훈련했다고 느낄 수 있을 정도지만…….
‘제대로 정확히 했는데도 안 되네…….’
그래도 효과가 없는 것 보면, 더 이상 훈련해 봤자 의미는 없을 거다.
“이 정도만 해야겠네.”
수건으로 땀을 닦아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여기서 더 훈련해 봤자 그 이상의 성과는 없을 것 같으니까.
“벌써 가나?”
“그냥 간단히 몸만 풀게요. 그리고…….”
다른 훈련도 할 수 있겠지만.
“시간이 없어서요.”
“거참, 그 의뢰인이 너무 막 대하는 것 같군.”
“그래도 어쩔 수 없죠. 돈 받고 일하는 건데.”
무전기에서 그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꽤나 짜증이 섞인 말투.
더 짜증 내기 전에 곧장 그녀가 있는 방으로 향했다.
“무슨 일이십니까?”
“배고파. 요리사한테 맛있는 거 해달라고 좀 해 줘.”
“……네.”
미소 짓고 있었지만, 미간은 잔뜩 구겨져 있었다.
먹을 거였으면 아까 같이 먹었으면 됐을 텐데.
그래도 큰일이 아니라는 것에 안도의 한숨이 내쉬어졌다.
요리사에게 배를 채울 만한 걸 만들어 오라 부탁하였고.
“잠시 근처 순찰하겠습니다.”
“순찰?”
“예, 아직 해적 바닷길 쪽에 들어오기는 멀었긴 하나, 혹시 모르는 일이라서요.”
“그래. 그런데 내 근처에 있어. 혹시 모르는 일이니까.”
“알겠습니다.”
11시가 되자 제대로 된 보디가드 일을 하기 위해 밖을 나섰다.
아직 해적이 지나가는 길은 아니긴 하나, 혹시 모르는 일.
그녀의 명령에 따라 옥상 근처만 순찰을 했다.
옥상이 바다가 더 잘 보이기도 하고.
“풍경 하나는 끝내주네.”
하늘의 풍경과는 다르게 바다에는 볼 것이 넘쳐났다.
“저거 돌고래 아닌가?”
무리 지어 바다를 헤엄치는 돌고래들.
영화의 한 장면 같아 잠시 멈춰 서서 멍하니 볼 정도였다.
“일해야지, 일.”
물론 얼마 지나지 않아 정신을 차리고 바다 주변을 둘러보았다.
용병 일을 하면 가장 위험한 한 가지. 바로 ‘해적’이란 집단이다.
그리고 그 해적이 강할 경우 상황이 위험해진다.
‘마법으로 배 전체를 멈춰놓고 마법 폭격을 가한 적도 있으니까.’
용병에 대해 알기 위해서 찾아본 영상 중 하나가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마법 폭격.’
무차별적으로 배에 가하는 마법 폭격.
S급 헌터라도 그 정도 폭격엔 쉽게 저항할 수도 없다.
재정비하는 데 충분한 시간도 필요하고.
“이왕이면 조용히 가고 싶다.”
하루의 시작이지만, 이왕이면 조용히 가고 싶었다. 이 정도 큰 배를 공격할 미친 해적은 거의 없을 것 같기도 하고.
“너무 걱정하지는 말자.”
애써 걱정을 털어내고 크루즈선 주변을 살핀다. 큰일이 일어나지 않길 빌며.
* * *
“흐흐. 수고해라~”
“그렇게 웃지 마시죠.”
“미안, 미안. 첫날부터 당직설 줄 누가 알았겠나?”
“…….”
친해진 용병들이 강수호를 보며 한껏 웃어댔다.
시간은 밤 12시.
강수호가 용병 중에 첫 당직이었으니까.
‘피곤한데.’
뛰어난 체력을 지녔다고는 하나, 사람인 이상 적어도 4시간은 자야 한다. 특히 오늘 의뢰 첫날이라 배를 타기 위해 이른 시간부터 움직였으니.
“어쩔 수 없죠. 먼저들 주무세요. 이왕 힘든 거 먼저 하면 좋죠.”
“오호. 아주 긍정적인 마인드구만! 이구호가 자넬 아끼는 이유를 알겠어!”
“하하.”
“그럼, 하루 정도 수고해 줘! 다음에는 두 명씩 붙여줄 테니까!”
“아, 예…….”
말이 끝나자마자 사라지는 최용두.
어두운 갑판 위에 혼자 남은 강수호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왕이면 빚 좀 비춰 주지. 무서워 죽겠네.’
강해져도 어둠이 무서운 건 전과 같았다.
특히 혼자 있으니 두려움은 배가 되었다.
‘아무리 첫날이라도 그렇지, 혼자 당직을 서게 하다니.’
첫날이어서 그런지 경계심은 높지 않았다. 이제 중국 근처에 다다른 듯했다.
‘하룻밤 정도는 새울 수 있으니까 상관은 없는데…….’
사소한 문제가 있다면 주변의 어둠이었다.
의뢰인의 잠 때문에 환하게는 밝히지 못하니.
“마나 사용하면 되지. 투시.”
빛을 밝히는 방법만 있는 게 아니었다.
마나를 눈에 불어 넣어 주변을 환하게 만든다.
“이제 좀 낫네.”
야간투시경을 쓴 것처럼 환해진 주변. 그 덕분에 걷는 게 한층 편해졌다.
“마나도 별로 안 드니까, 계속 사용해도 되겠어.”
모든 준비를 완벽하게 갖추었다.
가장 아래층부터 위층까지 돌아다니면서 밖을 살펴보면 일은 끝이다.
“그리고 항상 안전. 혹시 모르니까.”
그뿐만이 아니라, 몸에 쉴드까지 둘렀다.
해적에게 용병들은 협상 대상이 아니다.
‘제거 대상이라고 했지.’
죽여야 하는 것들.
잘 훈련된 괴물들에게 협상해 봤자 뒤통수 맞을 게 뻔하니까.
“준비도 맞췄으니 아래층부터 뒤져야겠네.”
마법 방탄복까지 갖춰 입고 아래층으로 이동했다.
“배 밑부분은 이렇게 생겼구나.”
처음 보는 기계실까지 들어가 꼼꼼히 살폈다. 엔진은 제대로 작동하는지, 이상한 건 없는지.
아래층을 모두 확인하고 나서 곧바로 위층을 올라가 크루즈선 주변을 빙 둘러봤다.
‘이상한 건 없네. 배 같은 건 보이지도 않고.’
이상한 조짐이나, 의심스러운 배는 보이지 않았다.
계단을 타고 위로 올라갔다. 운동도 할 겸, 주변도 살펴볼 겸.
“좀 많이 늦긴 하지만, 비행기보다 좋긴 좋네.”
계단을 걸어 다니자 풍겨오는 바다 냄새.
일하러 왔는데, 힐링하는 느낌이다.
“식당에서 야식거리라도 챙겨야겠어.”
마침 배도 출출하고, 식당 근처를 순찰하던 중이라 식당 안으로 들어갔다.
“오오, 이거 진짜 맛있는데? 스승님 안 데리고 오길 잘했네.”
맛있는 걸 먹자 떠오른 스승님.
샬런을 데려오지 않은 것이 신의 한 수였다.
만약 데려왔으면 식당의 모든 음식이 하루 만에 사라졌을 테니까.
“육표랑 아몬드. 그렇게 딱딱하지도 않고 맛있네!”
당직 서는 것도 크게 나쁘지 않은 듯했다. 야식도 어느 정도 준비되어 있고, 좋은 풍경도 있고.
“날씨만 끝내주면 더 이상 바라는 것도 없을 텐데…….”
사소한 문제가 있다면 하늘에 구름밖에 없다는 거다.
그게 좀 아쉽긴 했지만, 나쁘지는 않았다. 날씨가 매번 좋을 수도 없고.
육포를 씹으며 마침내 도달한 옥상.
“멜리아인가 뭔가 하는 그 사람도 한번 봐야 하는데.”
당직 설 때 무조건 두 번 이상은 그녀의 방을 살펴봐야 한다.
“그럼 잠시 실례를…….”
비서가 빌려준 마스터키를 이용해 문을 열고 들어갔다.
커다란 침실을 혼자 차지하는 그녀.
‘얼굴만 잠깐 확인하고 바로 가야겠네.’
오해할 수도 있으니 얼굴만 확인하고 바로 가기로 했다.
인기척을 지우고 이불을 살짝 걷어내어 그녀의 얼굴을 확인하려는데…….
“……음?”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얼굴이 있어야 할 곳에 커다란 인형 하나가 놓여 있었기 때문이다.
짧은 생각의 끝에 알 수 있는 한 가지 사실.
‘엿 됐다.’
큰일이 벌어졌다. 지켜야 할 의뢰인이 눈 깜짝할 새 없이 사라졌다.
의뢰인이 사라졌다는 사실을 알리기 위해 모두 깨우려고 방을 나와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려던 그때.
띠링!
“빨리…….”
“응?”
“…….”
음식이 가득 담긴 접시를 든 그녀가 엘리베이터에서 내렸다.
어이가 없을 지경이다.
말 좀 하고 가면 어디가 덧나는 것도 아니고.
“하아, 언제 식당으로 가신 겁니까?”
“네가 가장 아래층으로 갈 때 몰래 나왔지.”
“다음부터는 말씀 좀 하고 가십시오.”
“내가 앤 줄 알아? 나 어른이야, 어른. 20살 된 어른이라고. 마음대로 돌아다니지도 못하냐?”
걱정스러운 대답에 오히려 화를 낸다.
싸울 생각은 없기에 말을 끊는다.
“알겠습니다. 하지만 다음부터 다닐 때는 말씀만 해 주고 가십시오. 아니면 전체 비상이 걸릴 수도 있습니다.”
“알겠어~ 너무 배가 고파서 야식이 당기지 뭐야? 너도 먹을래?”
“저는 따로 가져왔습니다. 방 안으로 들어가시죠.”
“아, 그래.”
이 의뢰인을 챙겨야 하는 몇 주가 참으로 막막하다.
이러다가 사고라도 생기면 큰일인데…….
“들어가십시오.”
다시 그녀를 방 안으로 보냈다.
모든 보안이 집중되어 있는 곳.
이제야 걱정을 놓을 수 있었다.
“첫날부터 큰일 나면 어쩌려고 저러는지…….”
그녀가 잘못되면 책임은 오로지 자신의 잘못이다.
되도록 큰일이 일어나지 않고 안전하게 의뢰를 끝내고 집에 돌아가고 싶다.
아직 하고 싶은 일이 많이 남아 있기도 하고.
“여기가 무덤이 되기엔 난 아직 젊은걸.”
인벤토리에서 다이아몬드보다 빛나는 구슬을 꺼냈다.
“상태창.”
-등급이 높은 관계로 상태창이 열람하지 않습니다.
상태창을 연신 사용해 봤지만, 열람되지 않았다.
1차 목표는 1차 시련을 통과하는 것. 최종 목표는 스승님들을 그곳에서 모두 꺼내는 거다.
“그게 언제쯤이 될까나.”
아마 길고도 긴 시간이 필요할 거다.
샬런 스승님이 어떻게 왔는지도 모르고.
“일단 목표는 이 구슬이 뭔지부터 알아내는 거다.”
첫 번째 목표는 구슬의 상태창을 여는 것.
“상태창도 못 여는데 무슨 내가 스승님들을 구한다고.”
작은 것부터 천천히 나아가야 할 것이다.
동네 축구 대표조차 못 되는데, 국가대표를 하겠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니까.
“힘내자.”
마음을 다잡은 후, 다시 순찰을 하기 위해 계단을 타고 아래층으로 이동했다.
“……내 방 앞에서 왜 저러는 거야? 귀신이라도 빙의된 줄 알았네.”
멜리아는 혼잣말하는 강수호를 미친X 바라보듯 쳐다봤다. 허공에다가 말하는 모습이 귀신에게 빙의된 사람처럼 보였으니까.
“멀쩡히 돌아가는 걸 보니 정상이긴 하네. 신경 쓸 필요 없겠지.”
물론 그 관심은 얼마 지나지 않아 사라졌다.
초보 S급 헌터가 당직을 서는 게 불안하긴 하지만, 이곳에는 많은 실력자가 자리 잡고 있었다.
“치킨이나 먹자.”
밤 11시 반쯤에 요리사에게 말해 놓은 따끈따끈한 치킨.
강수호가 발견하지 않아 다행이라 생각하며 닭 다리를 한 입 베어 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