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1화
111. 용병(2)
이런 일쯤이야 별거 아니었다. 1학년 때는 매번 겪던 일이었으니까.
“화장실 좀 다녀오겠습니…….”
“가는 김에 화장실도 좀 청소해 놓고.”
“예.”
그녀가 위스키 한 잔을 머금으며 명령했다.
그 모습이 어찌나 미운지 뒤통수라도 한 대 갈기고 싶었다.
‘참자, 참아.’
물론 정말 뒤통수를 때리지는 않았다. 그러다가는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몰랐으니까.
“……우욱.”
생각한 것보다 화장실 상태가 좋지 않아 화장실에 들어서자마자 구역질이 나왔다.
“여기는 청소부도 없는 건가.”
깊은 한숨을 내쉬며 팔짱을 꼈다.
굳이 빨간 고무장갑을 끼고 청소할 필요는 없었다.
“물의 정령.”
마치 다른 손처럼 사용할 수 있게 된 정령술. 정령술을 사용해 깨끗하게 청소하면 되는 일이다.
물 정령을 이용해 깔끔하게 화장실을 청소했다.
“수고했다.”
물 정령을 돌려보내고 잠시 갑판 위에 섰다. 아직 돌아가기에는 시간이 1분도 채 지나지 않았으니까.
“오오. 풍경 하나는 끝내주네.”
갑판 위에 올라가 떠오르는 해를 멍하니 바라봤다. 이런 경험은 또 처음이라 신기할 따름이었다.
“나쁘지는 않네. 조금 오래 걸리긴 하지만.”
의외로 배를 타는 게 나쁘지만은 않았다. 해가 떠오르는 모습까지 생생하게 볼 수 있고.
“음? 한참 자네를 찾고 있었는데, 여기 있었구만?”
“최용두 님?”
그때 마침 강수호에게 다가오는 최용두. 무전기도 받지 않았으니 발로 뛰어 직접 찾고 있었을 거다.
“아, 죄송합니다.”
“하하! 사과하지 않아도 되네. 그것보다 의뢰인은 봤나?”
“봤죠. 그런데…….”
지금까지 있었던 일을 모두 털어 놓았다. 그가 해결해 줄 수는 없을 테지만.
“그렇군.”
“뭐, 제가 참아 봐야죠. 크게 어려운 일도 아닌 것 같고, 다 잡일인데.”
이야기를 마치자 고개를 끄덕였다.
한 번씩 의뢰인 중에 그런 사람이 있었다. 돈만 주면 뭐든지 해도 상관없는 것처럼 함부로 대하는 사람.
‘이거 나중에 가면 골치 아플 수도 있겠군.’
최용두는 겉으로 웃었지만, 속마음만큼은 아니었다.
한 번씩 해적이 들이닥쳐 배를 공격할 때도 있다. 그때 복수심을 품은 용병이 의뢰인에게 피해를 끼칠 수도 있는 일.
‘이놈은 크게 신경 쓰지 않은 눈치지만.’
물론 강수호가 그럴 경우는 없을 것이다.
아카데미 생활부터 스승님과의 생활 덕분에 멘탈과 정신력은 타 추종을 불허하니까.
“어려운 부탁 같은 거 하면 이 형님한테 말해! 내가 다 해결해 줄 테니까. 그리고 여기 무전기.”
“형님이요? 제가 듣기로 최용두 헌터님은 50세……. 으악!”
“흐하하하!”
말을 다 마치기도 전에 최용두가 강수호의 등을 강하게 두드리며 웃음을 터트렸다.
왜 이리 나이에 연연하는지 모르겠다.
어쨌든 간단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다시 의뢰인의 방으로 들어갔다.
“저 왔습니다.”
“응. 청소는?”
“다 끝냈습니다. 시키실 일은 더 없습니까?”
“그래, 필요하면 부를게.”
30분 정도 지났지만, 청소하느라 늦었다 생각할 것이다.
잠시 쉬기 위해 소파에 앉았다.
‘할 게 없네.’
그리고 1분 정도 지나자 한 가지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그다지 할 게 없었다.
유일하게 할 것이 있다면, 웹소설을 보는 것.
‘시간 때우기에는 딱 좋은 거니까.’
신체를 단련하는 게 베스트이긴 하지만, 그걸 그녀가 허락해 줄 리 없었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물어봐야지.’
가능성이 존재하기에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그녀에게 물어보니.
“나 죽으면 책임질 거야?”
“…….”
“책임 못 질 거면 그냥 옆에 가만히 있어. 아니면 일을 만들어 줄까?”
“아닙니다.”
“훈련하러 갈 거면 나중에 시간 날 때 가.”
혹시라는 생각이 사라졌다.
그럴 가능성은 아마 제로에 가까울 것이다.
‘웹소설이나 봐야겠네.’
크루즈선을 탔는데, 아무것도 못 즐기다니. 아쉬웠지만, 별수 있나.
어차피 이곳은 인터넷도 되기에 휴대폰을 켜 소설들을 읽어 나갔다.
* * *
“벌써 다 읽었네.”
시간은 벌써 오전 8시.
새벽 5시쯤에 출발했으니, 벌써 3시간이나 지나 있었다.
“밥 먹을 시간이네.”
강수호는 언제나 규칙적으로 활동했다. 식사 시간도 마찬가지.
시차 때문에 규칙적인 생활은 깨지겠지만, 먹는 것만큼은 규칙적이어야 한다.
“저는 밥 먹으러 가겠습니다. 부르실 일 있으면 부르십시오. 이만 가 보겠…….”
소파에서 일어나 이제 막 밥을 먹으려던 그때.
“어디 가?”
“밥 먹으러…….”
“나랑 같이 밥 먹으면 되지. 어차피 여기로 밥 오는데.”
“…….”
멍한 표정을 지었다.
직장을 다닐 때 가장 싫은 것이 상사와의 식사 자리다. 친하지 않은 이상 불편하고 어색한 자리.
‘눈치가 없는 건지, 일부로 그러는 건지.’
억지로 인상을 펴며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서 거절했다가는 좋지 못한 꼴을 당할 테니까.
“메뉴는 무엇입니까?”
“전갈튀김.”
“…….”
“풉. 전갈튀김 아니니까 걱정하지 마.”
이래서 같이 밥 먹기 싫다. 자신은 재밌는지 모르겠지만, 당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쌍욕이 나온다.
“너희가 한국에서 먹던 거 나오니까 걱정하지 마.”
“……그거라면 다행이군요.”
“나도 한국식은 입에 꽤 맞으니까.”
훈련 다음으로 중요한 게 음식이었다.
역시 크루즈선이라 음식이 잘 나온다.
똑똑.
“아침 식사 나왔습니다.”
“들어와.”
그때 마침 누군가 방문을 두드렸다.
의뢰인의 허락이 떨어지자 곧이어 문이 열린다.
‘오호.’
문이 열리자 들어오는 음식들.
눈과 코를 즐겁게 만드는 데 충분한 음식이었다.
“한국식 자장면과 짬뽕이라는 음식입니다. 아가씨 입맛에도 잘 맞을 겁니다.”
“고마워. 이만 가도 돼.”
“즐거운 식사 하십시오.”
요리사가 나가자 방 안이 음식 냄새로 가득 퍼졌다.
“츄르릅.”
입 안에 저절로 침이 고인다.
배 안에서 짬뽕과 자장면을 먹을 수 있다니. 그것만으로 지금까지 당했던 수모가 머릿속에서 깨끗하게 사라진다.
마른침을 삼킨 강수호가 그녀에게 조심스레 물었다.
“의뢰인님. 먹어도…….”
“멜리아, 내 이름 멜리아인데?”
의뢰인은 그의 말을 끊으며 자신의 이름을 말했다.
별로 궁금하진 않지만, 받아 주기로 했다.
“아, 네. 멜리아 님. 먹어도 될까요?”
“마음대로. 먹을 거면 내 거도 먹어. 나는 별로 배가 안 고파서.”
“감사합니다!”
의외의 이득이었다. 2인분을 먹을 수 있다니.
그래도 부족한 양이었지만, 기뻤다. 밥이라도 많이 못 먹으면 어떻게 하나 싶었는데.
그런 걱정은 음식을 입에 넣자마자 단번에 사라졌다.
“후루룹! 크으! 이 맛이지! 매콤하고 칼칼한 짬뽕!”
느끼한 맛을 잡아주는 자장면.
당연히 앨런 스승님이 만들어 주신 음식보다는 못하다. 하지만 한국식 특유의 짬뽕과 자장면 맛이 있었다.
그렇게 한참을 흡입하고 있자.
“후루룹? 멜리아 님은 안 드세요? 배고파 보이는데.”
“흠흠, 별로 안 고파. 먹기나 해.”
바로 앞에서 그녀의 시선이 느껴졌다.
그것도 그가 느끼기에는 아주 따가운 시선이.
‘침을 질질 흘리고 있는데, 누가 봐도 배고파 보이잖아.’
강수호를 보며 짐을 질질 흘리고 있었다.
누가 봐도 배가 고파 보이는 모습.
하지만 먹지 않는다고 했으니 줄 이유는 없기에 빠른 속도로 음식을 흡입하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사라진 짬뽕과 자장면.
“후우, 배부르다.”
만족스럽게 배부르지는 않았지만, 배는 찼다.
이 정도면 만족했기에 막 일어나려던 그때.
“어디가?”
“잠시 바람 좀…….”
“네가 먹은 거 정리해야지.”
“…….”
강수호가 생각하던 행복한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애초에 그런 일이 일어났다면 이런 잡일도 하지 않을 터.
‘인도에 갈 동안 계속 여기 있게 생겼네.’
훈련도 며칠간 안 해서 그런지 몸이 근질거린다.
뭐, 어쩌겠나.
“정리만 하고 바람…….”
“내 옆에 붙어 있어야지. 잡일도 좀 하고, 보디가드 역할인데.”
“아, 옙.”
자신을 고용한 의뢰인인데.
그렇게 어려운 일도 아니고.
자신이 먹은 건 치워야 하니까.
국물이 튄 바닥을 닦아내고 요리사가 음식을 담아 왔던 쟁반 위에 정리한 빈 그릇을 놓아두었다.
“맡길 일 없으시죠?”
“음. 이제 마땅히 없는 것 같네. 쉬어도 돼.”
“필요한 거 있으시면 부르십시오. 여기 무전기 하나 놓고 갈 테니까요. 그 정도면 괜찮으시죠?”
“그래.”
더 이상 맡길 일도 없을 거다.
받은 무전기 두 개 중 한 개를 그녀에게 놓고 훈련장으로 향했다. 크루즈선에 훈련장이 있는 거로 알고 있었으니까.
“흠. 10층인가.”
층 누르는 곳 위에 적힌 층 정보를 살펴보다가 ‘훈련장’이라 적힌 층을 눌렀다.
띵.
-10층입니다.
드르륵.
문이 열리면서 뜨거운 열기가 온몸을 감싸 안았다.
‘아침부터 다들 열심이네.’
대부분 이가 오늘 봤던 얼굴들이었다.
“흐읍! 어? 강수호 헌터 아닌가? 의뢰인이랑 이야기는 끝났나?”
그때 마침 들려오는 목소리. 최용두가 처음으로 소개해 준 조디 하튼이다.
“이야기는 대충 끝났습니다. 훈련 좀 한다더니, 허락하는 눈치더군요. 무전기도 전해 줬으니 걱정할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흐하하하! 그러면 다행이네.”
최용두만큼 그는 호탕함을 가졌다. 어찌나 웃음소리가 큰지 귀가 울릴 정도였으니까.
“이곳에 왔으면 훈련하러 가야지! 더 이상 붙잡지 않겠네!”
“감사합니다.”
그래도 더 이상은 붙잡지 않았다.
훈련실을 왔으면 몸을 혹사시켜야 하는 법. 패왕 길드와 비슷한 신식 훈련장이어서 곧장 신체 단련실로 보이는 곳으로 향했다.
‘S급 헌터 보통 평균 스탯은 500. 내 스탯은 너무 쓰레기인데?’
신체 스탯을 올려야 했다.
아무리 낮은 S급 헌터라도 평균 스탯은 500.
‘스킬에 너무 많이 의존했어.’
재능이 많다고 해서 장점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 재능만 믿고 덤비다가는 기본에 막혀 더 위로 가지 못할 것이다.
“상태창.”
[강수호]
레벨 : Lv. 90
체력 – 283 민첩 – 263 힘 – 286 마나 – 266 감각 – 270 친화력 - 110
스탯 포인트 : 0
재능 : 차원 이동(SSS급)
스킬 : [트롤의 재생력(S급) : Lv. MAX], [절대정신 방벽(S급) : Lv. MAX]…… 등.
-체력 스탯 2 상승했습니다.
-민첩 스탯 1 상승했습니다.
-힘 스탯 3 상승했습니다.
-감각 스탯 2 상승했습니다.
상태창을 열자 저절로 인상이 찌푸려졌다.
S급 헌터 보통 레벨이 150.
‘스킬만 많고 스탯, 레벨이 너무 부족해.’
무거운 봉을 들어 올렸다 내리기를 반복했다.
처음과는 많이 달라졌다지만, 아직 한참이나 부족한 힘.
최용두와 싸우면서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스킬만으로 모든 걸 해결할 수 없다고.
“미치도록 노력해야겠지.”
새로운 걸 가르쳐 줄 스승님이야 차고 넘쳤다. 하지만 신체 단련은 자신이 직접 노력해야 했다.
‘밥, 자는 거, 화장실, 부르는 거 빼고는 미친 듯이 훈련만 한다.’
차원 이동도 사용할 필요 없었다. 오늘은 자신의 스탯을 향상하기 위한 날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