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0화
110. 용병(1)
“허헉……. 진짜 죽는 줄 알았네.”
거친 숨을 내쉬며 보도를 걷는다.
며칠 동안 오지 못한다는 말에 스승님들이 어찌나 말리던지.
‘잘못하면 평생 갇혀 살 뻔했어.’
몇몇은 마나 속박 사슬까지 가져와 재능을 사용하지 못하게 묶기까지 했다. 촌장님이 나서서 다행이지.
“힘든 시간이었어.”
식은땀을 닦아내며 거대한 건물 앞에 섰다.
“여기가 용병 길드인가?”
생각했던 것보다 건물이 꽤 커서 놀랐다. 패왕 길드도 이 정도로 크지는 않은데.
“들어가 볼까.”
긴장을 지운 채로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이제 이 정도 압박감은 익숙한 편이니까.
* * *
‘안은 의외로 평범하네.’
거대한 건물과 달리 안은 깔끔하고 좋았다.
잠시 주변을 둘러보고 있던 그때.
“강수호 헌터님?”
“아, 네.”
“최용두 헌터님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저를 따라와 주세요.”
“예.”
비서로 보이는 정장 입은 여자가 강수호를 불렀다.
그녀를 따라 엘리베이터를 올라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도착한 곳.
“들어가시면 됩니다.”
비서가 문을 열어 안까지 강수호를 안내해 주었다.
“배를 탄단 말씀입니까?”
“예, 비행기는 사고 때문에 아가씨께서 공포증이 있어서…….”
“음? 왔냐?”
“아, 네.”
안으로 들어가자 벌써 이야기가 시작되고 있었다.
대충 들어 보니 배를 타야 할 것 같다.
‘배라면 오래 걸리겠는데.’
싫은 건 아니었다.
뱃멀미도 하지 않고.
그냥 오래 걸리는 게 싫을 뿐이었다.
‘뭐, 그래도 경험하는 거니까.’
아직 정해진 일도 아니기에 최용두 옆 소파에 앉았다. 그러고는 손을 내밀어 의뢰인에게 악수를 청했다.
“반갑습니다. 강수호입니다.”
“반갑습니다. 강수호 헌터라면 꽤나 믿음직하겠군요.”
그녀도 자신을 아는 것인지 살갑게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
“강수호 헌터가 와서 다시 말씀드리겠습니다. 저희의 목적지는 인도입니다.”
“……인도.”
멀어도 한참이나 멀었다.
그것도 배로 가야 하니 오랜 시간이 걸릴 터.
“긴 시간이 되겠군요.”
세계 간의 텔레포트는 아직 개발되지 않았다.
‘한국에서 인도까지면 길겠네.’
꽤나 오랜 여행이 될 듯하다. 한국에서 인도까지면.
“그것보다 실례가 안 된다면, 비행기보다 배를 타는 이유를 알 수 있습니까?”
“흠…….”
그전에 궁금한 점이 한 가지 있었다. 아무리 공포증이 있더라도 배를 타는 건 너무 오랜 시간이 걸린다.
처음에는 이상하다 생각했지만.
“이전의 트라우마로 비행기를 타지 못합니다. 그 이상은 알려 줄 필요가 없는 것 같군요.”
“……예.”
자세히 알려 줄 필요는 없다. 이득만 얻고 가는 것이 바로 용병이었으니까.
트라우마에 대한 이야기에 말을 끊었다.
“흠흠. 분위기가 서먹해지는 것 같은데, 치킨이라도 시킬까?”
“한국 치킨이 맛있다고 들었습니다. 한 번 먹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군요.”
“저도요.”
최용두가 어색했던 분위기를 바꾸어 놓았다.
치킨 세 마리를 시키고 다시 본론으로 들어갔다.
“인도까지 가는 이유는 묻지 않겠습니다. 그전에 이거 하나만 확실하게 물읍시다.”
전과는 다른 진지한 표정. 용병 일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신뢰와.
“불법적인 일입니까?”
“…….”
합법이냐, 불법이냐다.
인도까지 가고 오는 데 의뢰비가 무려 100억. 말도 안 되는 의뢰비에 의심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렇군요. 이상하기야 하죠. 고작 이동에 100억을 태우니…….”
그녀도 자신이 이상하다 생각했다.
인도까지 배를 타고 가는데 100억. 아무 일도 없이 안전하게 이동하면 100억 꿀꺽이란 소리다.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아가씨의 안전 때문입니다.”
“불법이 아니라면 됐습니다. 이 이상 묻지 않도록 하죠.”
“감사합니다.”
하지만 그녀는 단호하게 선언했다. 마치 이 이동에 그 정도 돈을 투자하는 데 가치가 있는 것처럼.
“목적지는 내일 문자로 보내도록 하겠습니다. 지금 한국 날로 수요일이니, 금요일 날 뵙도록 하죠.”
“알겠습니다.”
간단한 악수와 함께 곧이어 치킨이 도착했다.
양념과 프라이드 같은 기본 치킨이 아니었다.
“한국 치킨은 생각하던 것과 많이 다르군요.”
“많이 드십시오. 시킬 돈은 넘쳐나니까.”
“잘 먹겠습니다.”
그녀에게 닭다리를 양보했다. 치킨은 일주일에 한 번씩 먹는 음식이니까.
* * *
“말도 없이 가 버리냐? 너 진짜 내 남자친구 맞아?”
“미안해……. 그 대신 내가 인도에서 맛있는 거 사 올게. 화 풀어. 응?”
“흥!”
최서현의 화는 쉽게 풀어지지 않았다.
오랜만에 만나서는 갑자기 인도에 간다고 말했으니.
그것도 비행기도 아닌 배를 타고.
“의뢰인이라는 여자는 왜 비행기를 안 타는 거야? 그 좋은 수단을…….”
“의뢰인 말 들어야지, 어쩔 수 있나.”
“흥. 몰라. 그냥 가 버려.”
몇 주 정도 혼자 있을 테니 잔뜩 삐진 듯하다.
‘다녀와서 데이트라도 한 번 해야겠네.’
그녀를 달래주고 길드 밖으로 나왔다.
그러고는 곧장 텔레포트를 사용해 부산에 도착했다.
의뢰인이 여러 가지로 번거롭게 만든다. 굳이 부산에서 배를 타야 한다니.
“기다리고 있었다. 어서 배에 오르지.”
“빨리 오셨군요?”
“용병 일은 시간이 생명이야. 빨라야 남들보다 먼저 살 수 있고, 빨라야 돈을 벌 수 있으니.”
배 바로 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최용두 길드원들.
그의 말에 커다란 배에 올라탔다.
‘진짜 크네.’
배의 크기를 보고 그들이 정말 부자라는 걸 알 수 있었다.
‘크루즈선 같네.’
5,000명을 태울 수 있는 크루즈선 같았다.
한껏 기대를 품고 배에 올랐다.
“여기 정말 크루즈선 같네요. 이런 덴 처음 와 보는데.”
“음? 이거 크루즈선 맞아.”
“…….”
혼잣말에 대답해 주는 최용두.
그 대답에 잠시 황당할 수밖에 없었다.
‘정말 크루즈선이라고?’
이렇게 큰 배가 정말 크루즈선이라고 생각하지는 못했기 때문이다.
“그, 그러면 여기에 놀 수 있는 곳도 있고…….”
“웬만한 건 다 갖춰져 있어. 다 이용해도 돼.”
“와우…….”
용병 일만 빼면 놀다 가는 것과 같았다.
처음 타 보는 크루즈선.
‘신기한 느낌이 드네.’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갑판 위를 뛰어다녔다.
어느새 출발하기 시작한 크루즈선.
“바닷바람 좋네.”
바닷바람을 맞으며 달리기 시작했다.
아마 긴 여행이 시작될 것이다. 일단 긴 여행을 하기 전에…….
“수호야, 와 봐라.”
“옙! 무슨 일이에요?”
“의뢰인 얼굴은 익혀 둬야지. 해적이라고 착각할 수도 있으니까.”
팀원의 얼굴을 익혀야 했다. 의뢰인의 얼굴도 빨리 익혀야 했고.
위급한 상황에서 누굴 먼저 구하고 아군인지 알기 위해서이다.
“일단 우리 길드원부터 소개하지. 헌터 되기 전에 같이 용병 일하던 친구야. 조디 하튼이라고 하지.”
“만나서 반갑습니다.”
팀원들과 일일이 인사했다.
처음 만난 사이라 어색했지만, 금세 친해졌다.
‘최용두 헌터까지 합치면 대략 열 명인가.’
수도 그리 많지 않기에 얼굴은 금방 외울 수 있었다.
문제는 바로 의뢰인.
“꽤 높이 올라가네요?”
“위에 있고 싶겠지. 우리랑은 놀기 싫은가 봐.”
가벼운 농담을 뱉으며 어느새 크루즈선 꼭대기에 도착했다.
“흠흠. 잠시만요.”
“예~”
문 앞에서는 정장을 입은 보디가드가 그들을 막아 세우고 무전기를 입에 대었다.
“들어가도 되나? 좋다.”
무전을 받은 그가 자리를 비켜 주었다. 들어가도 된다는 뜻.
하지만 그들 모두 들어가게 해서는 안 되었다.
“잠시만, 모두 들어갈 수는 없다.”
“음? 의뢰인 얼굴도 못 보냐?”
“그래, 단 한 명만 들어갈 수 있다.”
방 안에는 오로지 한 명만 들어갈 수 있단다.
저마다 눈치를 보며 누가 들어갈지 결정하고 있었지만.
“강수호 헌터가 들어가.”
“예? 제가요?”
“그래, 우리는 어차피 베테랑 헌터라 얼굴 보지 않아도 누굴 지켜야 할지는 알거든.”
“저야 좋죠.”
강수호에게 기회를 주었다. 베테랑 용병 대부분은 누굴 지켜야 할지 얼굴만 봐도 알았으니까.
“그럼 들어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들에게 감사함을 표하며 안으로 들어갔다.
‘냄새 좋네.’
무슨 향수를 뿌리는 것인지 방 안에는 좋은 향기로 가득했다.
거대한 거실을 지나 도착한 방.
“반갑습니다.”
그때 봤던 비서가 그에게 인사를 건넸다. 그리고 그 옆에는 이제 막 20살 되어 보이는 여자가 앉아 있었다.
“강수호 헌터?”
그녀는 강수호를 아는 듯싶었다.
반갑게 맞이하길래 웃으며 손을 건네려던 그때였다.
“이런 놈을 왜 데리고 왔어?”
“…….”
갈색 긴 생머리, 아름다운 미모에 저런 말을 내뱉으니 몸이 굳었다.
“다른 외국 헌터는?”
“지금 대부분 부상 중이라 어쩔 수 없었습니다. 실력은 증명되었으니…….”
“어휴.”
따가운 눈초리가 느껴진다. 친해지지는 못할 듯하다.
“실력 제대로 확인했어?”
“그렇습니다.”
“아무리 S급이더라도 급이 있는 거, 비서 언니가 더 잘 알잖아.”
어린 꼰대가 이런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찌나 얄밉게 말을 하는지.
“대충 이야기는 끝난 것 같으니 저는 먼저 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이런 가시방석은 내키지 않았다.
이야기도 나누고 얼굴도 봤으니 이제 갈려던 그때였다.
“잠시만.”
“…….”
의뢰인이 강수호를 멈춰 세웠다.
여기서는 그녀가 갑이기에 뒤로 돌아 물었다.
“무슨 일이시죠? 혹시 불편하신 거라도 있으시면…….”
“아니, 없어.”
“…….”
그러면 도대체 자신을 왜 부른 거냔 말이다. 저 행동을 도저히 머리로 이해할 수 없었다.
‘부자들은 원래 이런가?’
생각하던 것과 달랐다. 사람을 이렇게 대하는 것이.
“그럼 이만…….”
“아니, 말 안 끝났어.”
“…….”
가려 해도 그녀가 다시 강수호를 붙잡는다.
가만히 서 있자 옆에 있던 물을 가리켰다.
“물이라면…….”
옆에 있던 비서가 따라주려 하자…….
“비서는 나가 있어. 어차피 저 남자, 제대로 싸우지도 못할 거 아니야? 그럴 바에 시종처럼 부리는 게 낫지.”
“…….”
비서를 내쫓는다.
뭐가 어떻게 되는지 금방 알 수 있었다.
‘실력 없어 보이니까 부려 먹으려는 건가?’
이런 취급쯤 예전에는 수없이 당해 봤다. 이 정도쯤이야 쉽게 할 수 있었다.
“할 거 없는 제가 따라 드리죠. 비서님은 길드원분들께 이야기 좀 해 주십시오.”
“……예.”
이곳에서는 강수호가 갑이 아니다.
며칠 경험이나 쌓으면서 돈을 받고 인도에서 놀다가 오면 되는 일.
‘내가 참지.’
자신이 참기로 했다.
어차피 길어봐야 몇 달일 거다.
덜컥.
“…….”
비서가 이 사실을 알리기 위해 밖을 나갔고.
“필요하시면 불러…….”
“주변 청소 좀 해. 더러워서 숨도 못 쉴 것 같으니까.”
“…….”
걸레를 가리키며 더러운 바닥을 가리켰다.
S급 헌터에게 바닥 청소라니.
하지만 강수호는 별말 없이 청소를 시작했다. 이 또한 성장해 가는 한 가지 과정이라 생각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