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7화
107. 검이 좀 강합니다(2)
침묵에 잠긴 회의장.
“여기 모인 길드 대표들은?”
“신왕 길드.”
“용병 길드도 왔다.”
“패왕 길드까지 합쳐서 세 길드군.”
1위와 3~4위 길드가 회의장에 나와 있었다. 그것도 대표들이.
“가장 큰 문제는 뭐라고 생각하나?”
그들 가운데에서 이구호가 질문을 던졌다.
질문하지 않았어도 모두가 아는 문제.
“당연히 마독이지.”
“마독이라 생각한다.”
“다 같은 생각이군.”
은행 주변에 뿌려진 마독.
마인들을 처리하는 데 가장 문제가 되는 건 마독이었다.
“어떻게 저것들을 뿌렸는지 모르겠지만, 마독부터 처리해야겠지. 방법 있는 사람 없나?”
“삽으로 일일이 퍼 나르는 건 어떤가?”
이구호의 질문에 최용두가 답했다.
용병 길드의 마스터. 노가다는 그에 맞는 대답이었지만…….
“말이 되는 소리인가?”
“왜? 못 만지면 삽으로…….”
“삽도 녹는다. 생각을 좀 하고 말해 줬으면 좋겠군.”
“아하.”
마독은 신체에 반응만 하는 독이 아니다. 강도 높은 광물이 아니라면 모두 녹인다.
“조구현, 자네는?”
“모르겠군. 내 머릿속에도 방법이 없다.”
“……그런가.”
조구현도 방법은 없었다.
아마 이 질문은 마일런에게 물어봐도 똑같을 것이다.
‘그럼 그 남자를…….’
마땅한 방법이 없었다.
그렇다면 그 사람을 부를 수밖에.
“강수호를 찾아가야겠군.”
“강수호? 그 신입 헌터 말인가? 한 번 붙어봤으면 좋겠군. 얼마나 강한지 궁금하잖아!”
강수호란 말에 최용두가 밝게 웃으며 말했다.
직접 뉴욕에서 등급 측정하는 것을 봤기에 몸이 근질근질했다. 재능 측정은 몰라도 힘을 측정할 때, S급이 나왔으니까.
‘그것도 세계 랭커 1,000위 안인가?’
지금껏 어떤 신입 헌터들보다 뛰어난 힘을 가지고 있었다.
‘한번 싸워 보고 싶군.’
어떤 재능인지도 아직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많은 재능을 매우 잘 다루는 것밖에.
“그 루키의 스승도 강하다면서? 정말 강한가? 궁금해 미칠 지경이군.”
“우리가 다 덤벼도 상대가 되질 않는다. 일단 강수호를 불러올 테니…….”
자리에서 일어나 강수호가 있는 천막으로 향했다. 그의 스승이라면 이 일을 해결할 수 있을 테니까.
“금방 갔다 올 테니 밥 시키고 있…….”
밥도 먹지 않았기에 오기 전에 배달 음식을 시키라 말했다.
이제 막 천막을 벗어나 강수호에게 향하려 할 때였다.
“자, 잡아!”
“밖이 왜 이리 소란스럽지?”
“안으로 들어가잖아! 빨리 잡아!”
밖이 시장처럼 시끌벅적했다. 천막 쪽으로 달려가는 누군가를 잡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그들.
상황을 진입하기 위해 그가 움직이려던 그때.
“아니, 잠시만 이야기한다고요! 저 누군지 모르세요?”
“……강수호?”
쫓기는 그를 보고 달리던 자세를 멈춰야 했다.
그가 찾고 있었던 헌터였으니까.
“멈춰!!”
“……!!”
목소리에 마나를 담아 내뱉었다. 순식간에 정적으로 잠긴 주변.
“내가 찾고 있던 녀석이었다. 그만 쫓았으면 좋겠군.”
“네, 네!”
이구호가 강수호의 팔을 붙잡고 거대한 천막 안으로 이동했다.
“초밥 어때? 연어가 당기는데.”
“마음대로 해라. 나는 아무거나 잘 먹으니.”
“그런데 진짜 신기한 거 알아?”
“뭘 말이지?”
“네 아들이랑 똑 닮았어.”
“내 아들이니까 그렇지.”
“그러니까 신기하다는 거야. 네가 결혼까지 할 줄……. 음? 벌써 데리고 왔네?”
배달 음식으로 잡담을 나누던 길드 마스터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오늘은 편히 쉬어도 될 것 같군.”
들어온 이구호가 뜬금없는 말을 내뱉었다. 강수호의 스승이 온다면 이 상황은 너무나도 쉽게 해결될 테니까.
“샬런이란 분께서 쉽게 클리어해 줄…….”
“아, 그건 안 될 것 같은데요?”
“음? 왜 그러지?”
하지만 그 생각은 강수호의 말에 단번에 사라졌다.
이 일을 해결하기 싫어서 그런 게 아니었다.
“마인을 싫어하시는 분이니 이런 일은 쉽게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무슨 이유 때문이지?”
“정확하게 대답은 못 들이겠지만, 마인들은 못 건드리거든요. 시스템이 관여해서.”
샬런 스승님은 마인을 건드리지 못한다. 그 망할 놈의 시스템이 직접 그렇게 만들었으니까. 던전까지.
“아마 시스템이 망하지 않는 이상 마인은 건드리지 못할 거예요.”
“……그렇군.”
유일한 방법까지 사라졌다. 시간이 해결해 주는 방법밖에 없었다.
“그래, 알겠다. 스승님한테 잘 지내시냐고 물어봐…….”
아쉬움을 뒤로 한 채 강수호를 보내려던 그때.
“저한테 방법이 있는데요?”
“음? 방법?”
하지만 강수호에게 방법이 존재했다. 마독을 쉽게 없애고 은행까지 도로 받을 방법이.
* * *
‘이런 건 왜 시킨 거야?’
인상을 찌푸리며 담배 한 대를 빨았다. 숨을 내뱉자 주변에 연기가 자욱해졌다.
마인이 되고 나서 어찌 더 힘든 것 같았다.
“여기는 왜 털라는 건지 원.”
마인들의 의지가 아니었다. 한 간부의 명령으로 인해서 이 은행을 털기 위해 온 것이다.
“야, 거기.”
“아, 넵.”
그때 마침 금고에서 나온 한 마인. 그는 담배를 비벼 끄고 있는 마인과는 격이 다른 기를 내뿜고 있었다.
“인질들은?”
“형님 말대로 모두 살려 두었습니다. 한 명도 안 죽이고요.”
“오호, 그래도 이번에는 정상적인 놈 데리고 왔네. 저번에는 다 죽여서 골치 아팠는데.”
툭툭 말을 내뱉으며 손을 털고 의자에 앉았다.
시간에 쫓길 필요는 없었다. 인질을 잡은 지금, 시간은 그들의 편이니까.
“그런데 지금 뭘 캐시는 겁니까?”
“궁금하지?”
“옙!”
쉬고 있던 그가 궁금했는지 반짝이는 눈빛을 빛내며 물었다.
은행을 턴 이유는 돈을 얻기 위함이 아니었다.
“간부님 말씀대로면 여기라고 하던데…….”
아직 정확히 밝혀지지 않은 것. 간부만 아는 것을 가져오라 지시했다.
“자, 이 사진.”
“이게 뭡니까?”
“나도 몰라. 위에서 까라면 까야지. 그것보다 배 안 고프냐?”
지금껏 본 어떤 보석보다 아름다운 보석에 눈이 멀 지경이었지만…….
“이 일도 밥 먹으려고 하는 건데 밥은 먹고 해야지.”
“넵!”
“먹고 싶은 거 골라. 그 대신 죽이지는 말고. 골치 아파지니까.”
“알겠습니다.”
날카로운 송곳니를 꺼내자 눈이 붉게 변한다. 동물 피만 먹다가 드디어 살아 있는 자의 신선한 피를 섭취할 수 있었으니까.
“사, 사, 살려주세요. 제발…….”
“죽이지는 않을 테니까 가만히 있어. 좀 아프기야 하겠지만.”
인질 중에 가장 깨끗해 보이는 여자를 골랐다. 하얀 피부를 가지고 있어서 깔끔하고 맛있어 보였다.
“잘 먹겠습니다.”
날카로운 송곳니로 그녀의 목을 찔렀다.
“꺄아아악!”
주변에 방음까지 처리되었기에 밖에서 비명을 들을 일은 없었다.
* * *
“마, 마독을 만질 수 있다고?”
“넵. 스승님 중에서 독을 다루는 분이 계신데, 그분께서 마독도 다룰 수 있다 해서 내성 키우고 오느라 늦었습니다.”
“…….”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마인이 아닌 이상, 마독을 만진다면 치료할 새도 없이 사망. 무조건 죽음에 이른다.
“지금 장난치는 건 아니겠지?”
“당연하죠. 제가 언제 장난치는 거 봤습니까? 특히 그런 어이없는 장난을 칠 나이는 이미 지났습니다.”
“……이걸 믿어야 하나.”
단호한 대답에도 쉽게 믿을 수가 없었다. 독을 다루는 헌터는 있어도 마독을 다루는 헌터는 없었으니까.
“일단은 믿어 보도록 하지. 마땅히 해결할 방법이 없으니까.”
“감사합니다.”
그들에게 마땅한 방법이 없었다. 장검이 없다면, 단검이라도 쓰는 수밖에.
“일단 바로 가면 위험할 수도 있으니 마독을 들고 실험을…….”
그래도 혹시 모르니 실험을 해 봐야 했다.
장비를 착용하고 마독을 들고 가려던 그때.
“오호, 자네가 강수호인가?”
“넵.”
“자네는 날 잘 알고 있겠지?”
“그럼요, 용병 길드 마스터 최용두 님 아닙니까?”
최용두가 살갑게 손을 내밀며 인사를 건네왔다. 그의 손을 잡는 강수호.
헌터 업계에서 그의 얼굴을 모른다면 간첩이란 소리를 들을 것이다.
‘재능이 남들과 다르다고 하지.’
보통 재능은 대마법사라는 이름과 천골이라는 몸의 재능. 아니면 크기 조절 같은 스킬 같은 재능으로 나뉜다.
하지만 이 사람은 조금 다르다.
“흐하하! 내가 좀 유명하긴 하지.”
“그렇죠. 그 사건을 헌터인 제가 모르면 안 될 테니까요.”
‘필사즉생(必死則生).’
이순신이 이야기한 명언이 그의 재능이었다.
겉으론 평범해 보이지만, 그가 용병 길드에서 유명한 이유가 있었다.
‘혼자서 간부 두 명과 마인 백 명이랑 싸웠다 했지.’
여럿과 싸울 때 강한 효과를 발휘하는 재능.
혼자 상대한다면 모르지만, 여럿이 덤벼든다면 최용두는 꽤나 벅찬 상대일 것이다.
‘그래도 스승님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물론 어떤 힘을 가져도 스승님을 이길 수는 없을 거다.
“이거 영광이군. 새롭게 떠오르는 S급 헌터인 자네가 나를 알고 있을 줄이야.”
“저야 영광입니다. 그것보다 저를 이렇게 부르신 다른 이유가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오호…….”
손을 빼내며 곧장 본론으로 들어갔다. 스승님들 덕에 눈치는 백단이었으니까.
그가 자신에게 인사하면서 이야기를 늘어놓는 이유를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그럼 한 판 가능한가?”
“……싸우는 거 말이죠?”
“남자 대 남자로. 이길 일은 없겠지만, 자네가 나를 이긴다면 큰 보상을 주도록 하지.”
한 판 붙기 위해서. 전 세계 헌터가 주목하는 신입 헌터가 얼마나 뛰어난지 알기 위해서.
“보상이라…….”
잠시 생각에 잠겼다.
보상 같은 건 필요 없다. 스승님들이 매일 인벤토리에 뭘 집어넣어 줘서 뭐가 들어 있는지도 모르는데…….
“보상은 괜찮습니다.”
“정말?”
“그 대신에 저한테 용병 일 좀 주실 수 있겠습니까?”
“오호, 용병 일 말하는 건가? 임무를 말하는 거겠지?”
“예.”
승리의 보상으로 임무를 원했다.
“그것도 아주 어려운 거로요.”
“역시 젊은 헌터라 패기가 남다르군.”
그것도 난이도가 꽤나 높은 축에 속하는 임무를.
“좋네. 그 정도 임무야 차고 넘쳐서 언제든지 줄 수 있다네.”
“감사합니다.”
“하지만 마음대로 줄 수는 없지.”
힘도 증명되지 않은 신입 헌터에게 어려운 임무를 줄 수 없는 법.
“내가 인정한다면 그때, 너에게 임무를 전해 주도록 하지. 아주 어려운 임무를 말이야.”
“마음대로 하십시오.”
“좋은 패기군!”
강수호의 당당한 대답에 오히려 그의 미소가 밝아진다. 자신의 유명세를 들었음에도 저렇게 대한 놈은 처음이었으니까.
“여기서 싸우게? 이왕이면 훈련장…….”
조구현이 일어나 싸우려던 그들을 말렸다.
여기서 싸우면 개판 오 분 전.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게 된다.
‘차라리 싸울 거면 훈련장에서나 하라고.’
그래야 주변 사람들 고생하지 않는다.
“그럼, 훈련장으로…….”
강수호도 원래는 그럴 마음이었지만.
“한눈팔면 안 되지!”
“……!!”
그 생각은 그가 주먹을 휘두르자마자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