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5화
105. 마인 협회(3)
“날 따라와~”
“아, 예…….”
피와 살점이 가득한 공간을 지나 클로운을 따라갔다.
어디를 가는지는 모르겠으나, 따라오라는데 따라가야지.
‘여기서 도망칠 수도 없고.’
여기서 더는 도망칠 수도 없었다. 마인이 되기 싫다 해도 이 사실이 알려지면 안 될 테니까.
이 사실이 알려지면 분명히 그를 죽일 것이다.
“도착했다.”
“여기는 어딘가요?”
얼마 지나지 않아 도착한 방에는 거대한 식탁 하나와 의자 여러 개가 있었다.
이번 질문에 클로운은 살갑게 답해 주었다.
“끄, 끅! 어디긴 어디야. 밥 좀 먹고 시작하자고.”
“……그렇군요.”
일하기 전에 밥부터 먹고 하자는 거다.
클로운이 그를 의자에 앉혔다.
남자는 굳은 채로 음식이 나오기만을 기다렸다.
기다림의 시간이 얼마나 긴지, 1초라는 시간이 분으로 느껴질 정도였다.
‘무서워.’
몸 전체에 오한이 들었다. 성 깊숙이 들어와 짙은 농도의 마기가 느껴졌으니까.
그렇게 한참을 기다리고 있자.
“오오! 드디어 나왔다.”
하인처럼 보이는 이들이 음식들을 들고나왔다.
조금 다른 점이 있다면.
“저, 저 클로운 님…….”
“음? 왜 그래? 음식이 맛없어 보이냐?”
“아니요, 저기 음식 들고 오신 분들 말이에요.”
접시를 든 한 여자를 손으로 가리켰다.
겉으로만 보기에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사람과는 다른 점이 있었다.
“저 꼬리는 뭔가요?”
“흐흐흐! 눈치가 빠른데? 수인이야, 고양이이지만 인간의 몸을 가진 X이지.”
“아하…….”
익숙하게 설명한다.
그 설명에 신기한 표정을 지었다.
던전이 나타났지만, 흔히 판타지 세계에서 나오는 드워프나 엘프들도 보지 못했다.
‘동물이 지성을 가지고 걸어 다닐 수도 있다니.’
그러니 신기할 수밖에.
이런 것들은 어떤 짓을 해도 지구에서는 볼 수 없을 테니.
“신기하지?”
“예, 예.”
“끄, 끄윽. 너무 긴장하지 말고. 이러면 내가 널 뽑은 이유가 없잖아? 싸울 때는 잘 싸우더만?”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여기는 상상하던 것과 차원이 달랐다.
‘정신 똑바로 차리자.’
눈을 똑바로 뜨며 식탁에 놓인 스테이크를 포크로 집었다. 그러고는 곧장 입 안에 넣었다.
‘맛있다!!’
삼류 인생보다 못한 삶을 살면서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맛에 저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흐흐, 맛있어?”
“넵! 진짜 맛있습니다!”
그들이 조금 달라 보였다. 이런 맛있는 음식도 주다니.
허겁지겁 음식을 비워 갔다.
“곧 있으면 올 텐데…….”
클로운이 식당 입구를 쳐다보며 누군가를 기다렸다.
끼이익.
“흐흐, 왔네.”
문이 열리자 웃으며 그들을 맞이했다.
“오우야! 우리 예림이, 오늘도 예쁘게 하고 왔…….”
“닥쳐.”
“흐흐. 알겠어.”
그녀의 얼굴만 봐도 정체를 알 수 있었다.
“하, 한예림?”
“이번에 뽑은 놈이야?”
“그래~ 내가 확실히 뽑았으니까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돼.”
암살 재능을 펼쳐 루키로 주목받았던 그녀. 하지만 헌터들의 욕심에 의해서 부모님이 처참한 죽음을 맞이했을 때, 헌터의 길을 버리고 마인의 길을 들어섰다.
‘던전 브레이크 사태였나.’
던전이 터지면 막으면 되는 일. 그때도 충분히 막을 수 있었지만, 헌터들은 돈 때문에 막지 않았다.
몬스터들이 날뛰면 그들의 보석이 붉게 변하는데, 그게 다이아몬드보다 몇 배는 비쌌으니까.
“밥부터 먹어~”
“알아서 한다.”
의자에 앉은 그를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힐끗 쳐다봤지만,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눈치다.
그렇게 몇 명의 간부가 모였고.
“일어서.”
“넵.”
끼이익.
아홉 번째로 문이 열리자 자리에 모인 아홉 명이 모두 일어섰다.
누군지 대충 알 것 같았다.
“다들 왔군.”
마인들의 왕이라 칭하는 천마, 그가 이 자리에 왔다.
그러고 보니 이상했다.
‘내가 그렇게 대단한가? 천마까지 오는 것 보면?’
그는 전혀 대단하지 않았다. 오히려 약해 빠져 압도적인 기운을 풍기는 이들 사이에 있는 것조차 힘들 지경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신경 쓰지 않고 빠르게 식사를 마쳤다.
“클로운.”
“네~”
식사를 마친 천마가 클로운을 불렀다.
밝게 웃으며 천마에게 다가가는 클로운.
“부르셨습니까?”
“이번에 간부를 뽑았다고?”
“아, 저자입니다.”
“…….”
“네?”
간부를 뽑았다는 말에 입이 쩍 벌어졌다.
하지만 긴장을 늦추지 않았다. 어떤 짓을 할지도 모르니까.
“흠…….”
“…….”
한참을 노려보는 천마.
얼마 지나지 않아 생각을 마친 것인지 물 한 잔을 주었다.
“마셔라.”
“가, 감사합니다.”
이게 뭐냐 묻지도 못하고, 그저 주는 대로 받아먹으려 하자.
“크윽!”
유리잔에 입도 대지 않았는데, 가슴팍에 뜨거운 고통이 시작되었다.
물이 문제는 아니었다. 방금 먹은 음식이 체했나 생각했지만…….
“벌써 시작됐나 보군.”
“네? 그게 무슨……. 크윽!”
그 생각은 천마의 말에 사라졌다.
먹은 음식이 체한 것도 아니었다. 먹었던 음식 안에 악마의 피가 들어 있던 것.
사막의 땅속에 들어 있는 것처럼 몸이 뜨거워졌다.
숨 쉴 수 없을 만큼 열이 오르고 나서야…….
“이번에는 버티는군.”
“히히. 제가 좀 잘 뽑았죠!”
죽지 않고 기절했다.
그것만으로 그들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간부 선별을 위해 많은 이를 죽여왔다. 마왕의 피에 맞는 자는 1억 분의 1 확률보다 낮았으니까.
“이만 쉬지. 새 간부가 정해진 것 같으니까.”
“알겠습니다.”
천마의 말에 모두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천마의 손짓으로 쓰러진 그를 옮기기 시작하는 수인들.
“이만 들어가도록 하지.”
“예.”
그리고 그들도 자리에서 일어나 식당을 나갔다.
* * *
“…….”
“흐흐흐흐.”
미친 듯이 웃는 한 남자. 놀랍게도 이번 강수호의 열한 번째 스승이었다.
“아, 미안. 내 이름을 먼저 말할게! 나는 포런이라고 해! 재능은 이런 거지!”
웃음을 멈추고 자신의 재능을 보여준다.
그 모습에 떨림이 멈추고 조금은 안정되는가 싶었지만.
촤르륵!
“…….”
“어때? 멋지지 않아? 폭발은 예술이라고 하는데, 녹는 것도 사실 예술이거든.”
“아, 예, 옙.”
삼각 플라스크에 든 뭔가를 뿌렸는데 형체도 없이 녹아 버렸다.
무슨 재능이길래 이렇게 되나 궁금해하자.
“산성 알아?”
“중학교 과학 시간 때 배우던 거…….”
“그런 걸 만드는 사람이라고 보면 돼! 사실 그거랑 비슷하긴 한데, 좀 더 독한 독!”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그는 독을 만드는 사람이었다. 레릴 아줌마가 만드는 것과 정반대인 것을 만드는 사람.
그뿐만이 아니었다.
“히히히. 오늘 내가 너한테 가르쳐 줄 것은 독 내성이야!”
“……저 미친X.”
“스승 하나 잘못 만났군. 차라리 나를 만났어야 했는데.”
스승님들뿐만 아니라, 강수호까지 그에게 좋은 시선을 보내지 않았다. 포런은 몇만 년간 이곳에 갇혀 지내면서 정신이 이상해진 스승 중 한 명이니까.
‘그래도 일주일만 버티면…….’
일주일 정도는 충분히 버티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 생각은 스승님의 행동에 완벽하게 사라졌다.
“아악! 지금 뭐 하시는 거예요?”
“독 내성을 기르는 거잖니! 가만히 있으렴!”
“…….”
자신이 만든 독을 강수호의 몸에 뿌리기 시작했다.
최하급이라 그리 고통스럽지는 않았다.
‘따갑네.’
따가운 정도.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이걸로 독 내성이 길러진다고? 한 달 만에 1,000만 원 버는 것보다 말도 안 되는 소리잖아.’
말도 안 된다 생각했다. 그것이 가능하다면 공짜로 독 내성을 얻는 것과 마찬가지였으니까.
‘설마, 에이. 불가능하겠지.’
불가능하다 생각했지만.
-최하급 독에 내성이 생겼습니다.
“…….”
허공에 떠오른 시스템 메시지.
말대로 되었다. 최하급이더라도 독의 내성이 생겼다. 스킬을 사용하지 않아도 패시브로 발동되는 내성.
“오호, 최하급 독을 뿌려도 그다지 아파하지 않는구나?”
“그, 그렇네요? 별로 아프지 않네요.”
“그럼 다음 단계로 가야지!”
“벌써요?”
쉬는 시간 없이 시작되는 독 내성 기르기. 꽤나 힘든 시간이겠지만, 많은 이득을 줄 거다.
‘잘하면 마독까지 막아낼 수 있겠나?’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다. 마인 협회가 설립되고 나서 점점 마인의 수가 많아지고 있었으니까.
“이제부터 하급 독인데, 아프면 말해~ 내가 그리 정신 나간 놈은 아니라서.”
“넵.”
이번 스승님도 그리 나쁘지만은 않았다.
약간의 문제가 있다면.
똑.
“아악!”
“아, 미안. 눈이 침침해서 ‘상급’ 독을 ‘하급’ 독인 줄 알고 부어 버렸네.”
“…….”
정신 상태가 약간 이상하다는 것.
크게 문제가 없는 이상 스승님을 바꿀 일은 없기에 곧장 훈련하기 시작했다.
조금 더 자세히 말하자면.
“아악! 이번에는 또 뭐예요?!”
“하하! 미안하구나. 이번에는 산성을 부었네.”
“…….”
고문에 가까웠다. 고의에 가까운 고문 말이다.
* * *
걱정이 태산이다.
독 내성을 얻는 건 좋았지만…….
‘너무 힘들어.’
독을 마시고 몸에 부어서 그런지 몸 상태가 그리 좋지 않았다.
‘그래도 치료는 받지 말라고 했으니까 말은 들어야겠지.’
그렇다고 치료를 받으면 안 된다.
독이 몸에 스며들게 하기 위한 하나의 과정.
만약 치료를 받으면 몸이 독을 적이라 받아들여 내성을 기르는 게 힘들어질 것이다.
“일어나야겠네.”
피곤한 몸을 일으키며 눈꺼풀을 뗐다.
오늘도 할 일이 많다.
“엄마한테 가 있으라니까 왜 계속 와?”
“그냥! 내일부터는 할머니랑 같이 있을래! 아빠랑 있으면 심심해…….”
용용이에게 먹이를 주고 방에서 나왔다.
저리 말했으니 아마 내일부터는 용용이도 집에 있을 거다. 어차피 자신과 있어 봤자 큰 도움도 되지 않고.
“오늘은 무슨 일이 있으려나…….”
잠에서 일어나 간 곳은 당연히 훈련장이었다. 매일 빼 먹지 않고 가는 훈련장.
그리고 그곳에는 여느 때와 같이 사람들로 붐볐다.
그중에서 가장 열심히 하는 사람은.
“벌써 왔어?”
“응! 원래 상체는 아침에 조져야 제맛이거든!”
“…….”
최서현이었다.
점점 스승님을 닮아가는지 그녀의 몸은 보디빌더의 얼굴을 후려갈길 정도였다.
‘나도 보통은 아닌데…….’
고개를 끄덕이며 스승님이 주신 판을 잡았다. 더군다나 무거운 봉까지.
다 합치면 30t는 넘어갈 것이다. 봉만 해도 10t.
“후우!”
숨을 내뱉으며 누웠다.
강수호는 익숙해져 쉽게 들 수 있는 무게였다.
‘봉은 조상님이 들어주시는 게 아니야.’
스승님의 명언을 생각하며 봉을 잡았다. 조상님이 봉을 들어주면 좋겠지만, 그럴 일은 없었다.
봉을 잡고 이제 막 훈련하기 시작하려던 찰나.
삐이이이이!
삐이이이이!
“……!!”
고막이 터질 정도로 울려대는 알림음. 길드 건물 전체를 울리는 알림음에 반응하는 데 얼마 걸리지 않았다.
“뛰어!”
길드원 전체를 부르는 비상벨이었다.
꽤나 큰일이 일어난 듯싶었다. 신입 헌터지만, A급 이상 헌터로 취급받는 그들.
강수호는 그 이상이었다.
“수호야, 일단 나가자. 양유혁도 있을 거야.”
“오케이.”
전투복으로 빠르게 갈아입고 달려갔다.
꽤나 큰일이 생긴 것 같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