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4화
104. 마인 협회(2)
건물 밖에 화살이 빗발친다.
화살도 평범한 화살이 아니었다. 모두 희귀한 재질로 된 화살들과 마법이 걸린 화살들.
‘어떤 미친X이야?’
건물 안에 들어온 이구호가 인상을 잔뜩 찡그렸다.
수 없이 날아오는 화살. 건물이 무너질 정도로 빗발치는 화살은 몇 분이 지나서야 공격을 멈췄다.
그 덕분에 그들은 밖에 나올 수 있었지만…….
“…….”
건물 밖의 광경은 처참했다.
미처 피하지 못해 화살이 몸에 뚫려 죽은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부 마스터.”
“으, 음?”
조금은 떨리는 목소리로 신하림을 불렀다. S급 헌터인 그도 이런 상황을 자주 겪은 건 아니었으니까.
망설이던 이구호가 곧이어 입을 열었다.
“저거 보이냐?”
“뭐가……?”
방금의 화살은 공격이 아니었다.
플레이어들과 마인들의 선전포고.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이구호가 손가락으로 가리킨 곳에는 핏자국으로 무언가 적혀 있었다.
[전쟁을 선포한다.]
“…….”
예상대로 방금 그 공격은 선전포고였다. 마인 협회를 만들었으니 이제는 제대로 하겠다고.
“힘들고 긴 싸움이 되겠군.”
어떤 전쟁이든 끝이 나면 양쪽 모두 피해를 입게 된다. 몇십 년 동안 전쟁 피해만 복구해야 할 정도로.
“일단 다른 길드에게도 이 소식을 전해. 다른 길드들도 당했을 수 있으니까.”
“알겠습니다.”
혹시 몰라 다른 길드들에게도 이 소식을 전했다. 협회처럼 피해를 받았을지도 모르니까.
“그전에 우리 길드부터 신경 써야겠어.”
물론 그전에 자신의 길드가 피해를 입었는지 봐야 했다. 이렇게 많은 사상자가 나왔다면 패왕 길드도 꽤나 위험할 테니까.
* * *
“으아아아!”
“조금만 버텨. 지금 이구호 님 오신다니까.”
그들의 예상대로 마인들은 한국 10위 길드 모두를 공격하고 있었다.
그중에서 가장 높은 순위를 가진 패왕 길드가 제일 위험한 상황. 하지만 그들이 엘리트라는 걸 증명하듯.
“모두 내 식사로…….”
“들어가시고~”
콰직!
달려드는 마인들을 차례대로 격파했다.
그 모습에 마인들은 입을 쩍 벌리고 감탄했다.
“새로운 힘을 시험하기도 전에 죽게 생겼네.”
“이대로 후퇴다! 여기서 더 이상 전력 손실이 생기면 안 돼!”
마인 주제에 현명한 방법을 택했다. 전력 손실 방지를 위해 후퇴하기 시작하는 마인들. 하지만 그들을 놓아줄 바보는 이곳에 존재하지 않았다.
“깡그리 잡아! 우리 길드에 침입한 벌은 받아야지!”
“으아아아!”
동료들을 다치게 하고 자신의 길드에 침입했으니 벌을 받아야 할 것이다.
“족쳐!”
피와 살점이 난자하는 패왕 길드.
강수호와 최서현이 먼저 달려가 그들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정령술. 불의 정령.”
“끄아아악!”
불의 정령을 이용해 그들을 고통스럽게 태운다.
이제야 마인이 된 이들을 이기는 것쯤은 식은 죽 먹기보다 쉬운 일이다.
“그아아아!”
거대한 몸집으로 변한 최서현이 그들을 쓸어 버리기 시작했다.
샬런 스승님의 지도를 받아서 그런지 전보다 몇 배는 강해진 힘으로 그들을 한순간에 전투 불능으로 만든다.
“도망쳐! 죽는 애들 신경 쓰지 말고 뛰어!”
“아쉽네. 다 죽일 수 있었는데.”
하지만 마인 모두를 잡는 건 불가능에 가까운 일. 아쉽게도 모든 마인을 죽이지는 못했다.
마인들이 점점 사라지기 시작했다.
“부상자부터 보자!”
“예!”
마인도 중요했지만, 동료의 생존 여부가 더욱 중요했다. 그들이 살아 있어야 패왕 길드가 돌아가니까.
“역시 다른 길드들도 공격당했군.”
한창 부상자를 치료하고 있을 때 들려오는 목소리. 누구나 아는 목소리였기에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마스터?”
“피해 상황은?”
동료들을 치료하는 이종식에게 물었다. 의외로 피해 상황이 생각했던 것보다 심각해 보였으니까.
“부상자가 대략 50명이 넘어갑니다. 안타깝게도 두 명은 사망했고요.”
“피해가 꽤나 크군.”
패왕 길드라도 습격에는 무용지물이다.
이렇게 갑자기 쳐들어올지 누가 알았겠나.
“사망자는 누구지?”
“문 앞에 서 있었던 두 경비원입니다. 습격을 받아서 바로 사망했나 봅니다.”
“……일단 치료를 끝마치고 각자 방에 가서 쉴 수 있도록.”
“아, 옙.”
“죽은 사람은 유가족들에게 알리고.”
주변을 둘러본 이구호가 조용히 그들에게 말했다.
상황이 심각하니 최소한의 인원 말고는 방에서 쉬도록 했다. 동료를 잃은 슬픔에 상태가 안 좋기도 하였고.
“우리는 훈련해야지. 슬퍼할 시간이 어디 있어?”
하지만 강수호는 그러지 않았다.
적은 지금도 세력을 넓히고 있고 강해지고 있다. 언제든지 다시 쳐들어올 수 있다는 소리. 그전에 강해질 수 있을 만큼 강해져야 한다.
생각을 마친 강수호와 최서현은 곧장 훈련장으로 향했다.
* * *
“와……. 여기인가?”
중세시대의 성처럼 생긴 거대한 성.
이런 곳에 숲이 어떻게 존재하는지 모르겠지만, 신경 쓰지 않고 거대한 문을 두드렸다.
“계세요? 이메일 보고 연락받아서 왔는데.”
“…….”
성안에는 어떠한 인기척도 느껴지지 않았다. 조용한 공간.
“잘못 찾아왔나? 아닌데, 여기가 확실한데.”
잘못 찾아왔나 싶었지만, 아니다. 여기가 확실한 장소다.
“분명히 여기가 맞는…….”
그렇게 한참 실랑이를 버리고 있던 도중.
끼이익-
“…….”
갑작스레 문이 열린다.
깜짝 놀라 잠시 그 앞에서 멍하니 서 있었다.
‘누구지?’
어떠한 인기척도 느껴지지 않았다.
잠시 멍하니 있자 답답했는지 성안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오너라.”
“…….”
그 말에 망설임 없이 성안으로 들어갔다.
아름답게 꾸며진 정원. 생각하는 것과 다르게 마인들은 꽤나 깔끔하게 살고 있었다.
“여기인가?”
점점 더 안으로 들어가자 그와 비슷한 몇몇 사람과 마주칠 수 있었다.
“…….”
그를 보자마자 눈살을 찌푸리며 경계하는 사람들.
대충 봐도 알 수 있었다. 저들도 자신과 같은 부류의 사람이라고.
“여기 안으로 들어오세요?”
정원 안으로 더욱 깊숙이 들어가자 표지판 하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아마 성이 넓어 이런 표지판을 만들었을 터.
그 표지판을 따라 마침내 원하는 장소에 도착할 수 있었다.
“강당인가.”
거대한 강당을 연상시키는 곳. 강당처럼 보이는 곳 안에 자리 잡은 한 사람.
“끄, 끄끅. 너, 너희가 이번에 들어온 신입들이구나?! 만나서 반갑다!!”
“과, 광대…….”
별명은 광대. 실제 이름은 ‘클로운’.
‘저 사람이 왜 여기에…….’
뭔가 생각할 시간도 없이…….
“끄, 끄극! 내가 여기 와서 다들 놀란 것 같으니까 일단 간단히 소개부터…….”
“닥치고 힘부터 줘!!”
“…….”
누군가 클로운의 말을 끊고 소리쳤다. 힘을 얻고 싶어 이곳으로 온 이들이 대부분.
하지만 마지막으로 들어온 그는 입을 꾹 다물었다. 힘을 얻고는 싶었으나, 죽기는 싫었으니까.
방울토마토를 얹은 코, 언뜻 보면 정말 광대라 생각할 수 있어 만만해 보이지만.
“우리한테 힘을 준다고 약속했잖아! 왜 너만…….”
타앙!!
“…….”
말이 끝나기 무섭게 터지는 화약 소리.
스킬도 아니고, 마법도 아닌.
“초, 총?”
권총이었다.
지금은 구시대의 물건리라 불리는 권총 소리였다.
구시대의 물건이지만 평범한 사람 한 명은 가볍게 죽일 수 있다.
“주, 죽었어.”
“머리에 구멍이 뚫렸어…….”
힘 타령하던 남자의 머리가 구멍 뚫려 죽었다.
사람이 죽은 모습에 입술이 바짝 마른다.
‘사람이 저렇게 허무하게 죽을 수 있구나.’
여기는 평범한 사람들의 모임이 아니었다. 누가 죽고 죽이는 상황이 익숙한 곳. 이 일에 익숙해져야 살아갈 수 있다.
“끄, 끄윽. 안 그래도 짜증 나 죽겠는데, 소리를 질러?”
어느새 내려온 클로운.
내려오자마자 머리에 구멍이 뚫린 시체의 얼굴을 밟기 시작했다.
“아, 이제야 좀 조용해졌네. 귀 아프게 오자마자 소리를 치고 있어?”
“…….”
침묵으로 물든 강당. 클로운이 먼저 입을 열었다.
“자, 이제 시끄러운 놈도 죽었으니 본론으로 들어가 볼까?”
“…….”
하지만 그의 말에 대답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사람 한 명이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하고 죽었으니까.
“끄, 끄윽? 왜 아무 말도 없어? 반갑다거나 서로 인사를 해.”
“…….”
누구도 쉽게 입을 열 수 없었다.
몇 분 동안 침묵에 잠긴 강당.
“하, 하……. 재미없게 만드네. 그래도 강한 힘을 얻기 위해서 온 놈들의 패기는 봐야겠지?”
“예, 예?”
느낌이 이상했다. 간단한 시험이나 치르고 힘을 줄 것 같았는데.
“내가 심판 볼게. 알아서들 싸워 봐. 딱 한 명만 마인으로 만들어 줄 테니까 알아서 잘들 해 봐.”
“그게 무슨…….”
간단한 시험이 아니었다. 목숨이 걸린, 수능보다 독한 시험.
전쟁터에 온 듯한 긴장감이 몸 주변을 감싸 안았다.
“저, 저게 대체 무슨 소리지?”
“우리끼리 싸우란 말인가?”
처음에는 뭔 소리인가 싶었다. 갑자기 싸우라니?
하지만 그 말의 의미를 알아차리는 데는 1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콰직!
“끄아악! 이게 무슨 짓이야?”
“싸, 싸우라잖아!”
“그렇다고 이렇게 때리면 어떻게 하자는 거야?!”
시험의 시작을 알리는 주먹질. 한 남자의 주먹질로 인해 강당 안이 소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
“저, 정말 싸우라는 건가?”
“그냥 힘주는 거 아니었어?”
나쁜 짓을 저지르는 놈들은 착한 사람보다 몇 배는 똑똑하다. 그래야 나쁜 짓을 해도 걸리지 않고 살아갈 수 있을 테니까.
어떤 바보가 악당을 뽑는 데 그냥 뽑겠나?
“흐흐흐. 싸워! 싸워서 아무나 이기란 말이야!”
“으아아악!”
조금씩 타오르는 불에 클로운이 장작을 넣었다.
망설이던 사람들.
빠각!
“죽어! 죽으란 말이야!”
먼저 주먹을 휘두르는 사람을 보고 조금씩 이상한 감정이 들기 시작했다.
여기서 사람을 죽이고 달라질 것인가. 아니면 그대로 이 삶을 살아갈 것인가.
당연히 이런 개 같은 삶을 살기 싫었다.
“으아아!”
“지금 뭐 하는…….”
콰직!
평생 그런 삶을 살고 싶지 않았다. 희망을 가지고 마인이 되어 세계를 자신의 손으로 바꾸길 원했다.
전과 다른 삶을 살기 위해서.
“그래, 그래! 죽이라고! 모두 죽여!! 끄극!”
저마다 몰래 가져온 무기를 휘두르기 시작했다. 무기를 가져오지 않은 이들은 주먹을 휘둘렀다.
무자비하고 잔인하게.
이곳은 규칙이 존재하는 경기장이 아니니까.
푹!
콰직!
빠각!
강당은 끔찍한 소리로 가득 찼다. 하지만 누구도 그 소리를 신경 쓰는 사람은 없었다.
여기서 살아남아야 하니까. 어떤 짓을 해서라도 살아야 하니까 사람을 죽이는 데 집중하고 있던 거다.
그렇게 몇 시간이 지났을까.
“헉…….”
“오호라.”
마지막에 들어온 한 남자가 질척거리는 핏속을 걸어 다닌다. 이곳에서의 유일한 생존자.
클로운은 그에게 빠르게 다가가 손을 내밀었다.
“…….”
“마인 협회에 들어온 걸 축하한다.”
쓰러질 것 같던 남자가 떨리는 손으로 그의 손을 맞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