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3화
103. 마인 협회(1)
“으. 이건 아직도 재생이 안 되는군요. 언제쯤 나을지…….”
“허허, 천마가 자른 팔이라 그렇지. 아직도 피가 흐르고 있으니, 지혈이나 잘하세.”
헌터들을 통제하는 헌터 협회.
이용욱과 이석현이 마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래도 며칠간 마인 소식이 많지 않아서 다행입니다.”
“허허, 그거 하나는 다행이지. 던전도 요즘 들어 줄어들고 있고.”
뉴욕에 나타난 거대한 던전을 제외하고 그보다 더 큰 던전은 전 세계적으로 더 이상 나타나지 않았다.
그 덕분에 이용욱도 회복에 전념할 수 있는 것.
작은 문제가 있다면 이 망할 놈의 팔이 쉽게 낫지 않는다는 거다.
‘그냥 괴물이 아니군. 재생까지 억제할 줄이야.’
그의 재능인, 초재생. 머리만 살아 있다면 언제든지 재생할 수 있는 말도 안 되는 재능.
그 재능을 천마는 가볍게 억제해 버렸다.
“그때 이석현 헌터께서 안 계셨다면 저는 어떻게 될지 모르겠습니다.”
“허허, 이제 운전도 슬슬 지겨워서 노인들끼리 잡담이나 나눌 겸 왔다가 운이 좋았지.”
그때 그날의 기억이 눈앞에 생생히 떠올랐다.
바둑이나 두며 이야기하고 있던 그때.
‘위험했지.’
이제는 은퇴했지만, 천마라는 작자는 여전히 전성기를 유지하는 것처럼 강하고 위험했다. 헌터계의 전설이라 불리는 그조차 죽일 수 있을 정도로.
“그런데 왜 간 걸까요?”
“그건 나도 정확히 모르겠구나. 유력한 생각은 마일런 때문이겠지. 천마도 그놈은 벅차겠어.”
“그렇겠죠. 그래서 그런 이상한 방법을 사용한 거고.”
망할 놈의 광대, 그놈이 가고 나서 천마가 왔다.
더 이해 가지 않는 건 그들의 행동이었다.
‘일단 쉬어줘야겠군.’
생각을 끝으로 고통이 몸을 지배한다.
출혈이 생긴 왼쪽 팔은 재생되고 있지만, 더뎠다.
“자네도 이만 쉬지. 많이 아파 보이네.”
“감사합니다. 괜히 이렇게 아파서.”
“흐하하하! 별걱정을 다하네. 내가 살아 있는 이상 한국은 안전하니까.”
빈말이 아니었다. 아마 그가 살아 있는 이상 한국은 안전지대일 것이다.
“그리고 그 신입 헌터도 있고 말이야.”
“그 신입 헌터라면 강수호 말하는 겁니까?”
“흐흐. 잘 알고 있구만?”
“한 번 만나 봤습니다.”
그가 죽더라도 강인한 두 남자가 존재한다.
“그 아이의 스승을 만나 보았나?”
“아니요, 강하다는 이야기만 들어봤습니다.”
“그렇군.”
그 둘이라면 이 지구를 지킬 수 있을 거다. 더군다나 강수호에게 샬런 같은 스승님이 한둘이 아닌 것 같으니까.
“이만 쉬게나. 손녀가 걱정할 수도 있으니.”
“들어가십시오.”
협회 회장실을 나가자 조용해진 방.
“비서님, 진통제 한 알만 더 주십시오.”
“알겠습니다.”
고통을 참지 못하던 그가 진통제를 복용했다.
살이 깎이는 듯한 고통. 그런 고통을 참아내고 있었다.
“정말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르겠군.”
진통제를 꿀꺽 삼킨 그가 중얼거리듯 말했다.
점점 안정화되기 시작한 세계. 하지만 이 세계가 언제 망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내가 죽기 전에 세상이 변했으면 좋겠군.”
힘없는 웃음을 지었다. 금방이라도 죽을 사람처럼.
“나가게나. 스케줄은 모두 비워두고. 한 달간은 요양해야 할 것 같으니.”
“알겠습니다.”
팔은 쉽게 치료할 수 없었다. 가벼운 상처도 아니고 말이다.
쉬기 위해 소파에 누웠다.
내일 병원에 입원할 생각을 하며 일찍 잠들려던 그때.
“혀, 협회 회장님.”
“무슨 일이지? 내가 분명히 모든 스케줄을 모두 빼라 하였는데? 방에는 들어오지도 말라 하였고.”
“그것이 아니라…….”
“……?”
다급해 보이는 비서.
뭔가 싶어 물어보려 하자.
“이걸 보십시오.”
“뉴스?”
소파 앞에 있는 뉴스를 틀어 주었다.
비서의 말에 노트북에서 재생되고 있는 뉴스를 시청했다.
-긴급 속보입니다. 정체가 불명한 사용자의 SNS에서 퍼진 영상이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온라인에 퍼진 동영상이 화제를 일으켰다.
처음에는 뭔 소리인지 몰랐으나.
-그 영상을 지금 함께 보시죠.
그 말과 함께 영상 하나가 재생된다.
어둑한 방 안에서 로브를 뒤집어쓴 한 남자가 나온다. 얼굴도 자세히 보이지 않아 무슨 상황인지 파악이 되지 않았지만…….
-반갑다. 모두가 나를 아는 건 아니지만, 내 목소리를 아는 놈들에게 인사를 전하지.
“……!!”
목소리를 듣자 알 수 있었다. 그는 이용욱이 너무나 잘 아는 사람이었다.
-모르는 사람에게 내가 누군지 가르쳐 주겠다. 마인들의 대표라 말할 수 있는 천마다.
“…….”
“처, 천마요? 천마가 갑자기 왜?”
옆에 있던 비서의 눈동자가 커졌다.
더 큰 일이 일어났다.
“돌아 버리겠군.”
“어, 어떻게 천마가…….”
“듣도록 하지. 조용히 좀 해 주게.”
“알겠습니다…….”
침묵으로 가득한 방 안에 다시 한번 천마의 목소리가 울렸다.
-내가 굳이 이 동영상을 올리는 이유는 오늘부터 새로 개설하게 되는 마인 협회에 관한 내용을 알리기 위해서다.
“마, 마인 협회? 그게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야?!”
마인에게 단체란 존재하지 않았다.
그저 12간부 안에서 존재하는 마인 부대들이 전부였는데, 이번에는 무려 단체를 만들겠다니.
‘돌아 버리겠군.’
일단 끝까지 이야기를 들어보기로 했다.
-악마의 피와 마기만 있으면 마인으로 만들 수 있다. 방금 막 태어난 갓난아기도 아는 사실이지.
악마의 피와 마기가 있어야지 마인이 될 수 있다는 것.
-모두가 아는 사실이지 않나? 하지만 마인을 혐오하는 당신들이 모르는 한 가지가 있다.
“모르는 한 가지?”
이용욱은 더 이상 입을 열지 않고 이야기를 들었다.
-마인은 원하는 걸 모든 할 수 있다는 거다.
그 말로는 사람들을 유혹할 수 없다. 저 말 한마디가 그리 매혹적이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게임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만약 너희에게 복수할 힘이 주어진다면?
“…….”
-개 같은 인생을 바로 잡아줄 기회가 주어진다면? 세상을 다 가질 수 있을 만큼 강한 힘이 주어진다면?
현자가 와도 뿌리치지 못할 유혹들.
자신의 아내를 죽인 범죄자를 자신의 손으로 복수할 수 있다. 학교에서 매일 괴롭히던 놈을 죽일 수만 있다면?
한참 생각에 잠겨 있던 협회 회장의 귀에 다시 한번 천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웃기지 않아? 사회는 피해자가 생긴 게 가해자 잘못이라 생각하지 않아. 모두 우리들의 잘못이라 생각하지.
반박할 말이 없었다.
-왕따를 당하면 네가 너무 소심해서 그런다고 하고. 뚱뚱하다고 하면 노력도 안 한다고 그러고. 세상 살기 참 힘들지 않아?
“……젠장.”
인상을 찡그렸다.
뭐라 반박할 사람이 없을 것이다. 그만하더라도 S급 헌터라면서 협회 회장이나 한다며 욕을 받아왔으니까.
-그러니까 나한테 와. 내가 그놈들 멱을 딸 수 있게 힘을 줄 테니까. 결정했다면 연락 줘.
“…….”
그러고 동영상은 끝이 났다.
조용해진 협회 회장실.
“돌아버릴 것 같군. 이 동영상은 지금 어디에 올라와 있지?”
“SNS를 전문으로 하는 기업에 올라가 있다 합니다. 지우려 노력해 봐도 지울 수가 없다 말하는군요.”
“…….”
지울 수 없을 수밖에. 천마가 무슨 수를 써서 올린 것일 테니까.
“일단 그 업체한테는 최대한 노력해 달라 말씀 전해 주십시오. 불가능에 가까운 이야기겠지만.”
“알겠습니다.”
“한동안 바빠질 테니 오늘은 이만 들어가십시오.”
“안녕히 주무십시오.”
막을 방도가 없었다. 마인 협회라는 곳을 직접 찾을 수밖에.
“꽤나 바쁜 하루가 되겠군.”
눈을 감고 잠을 청했다. 내일부터 숨 쉴 시간 없이 바쁜 하루가 될 테니까.
* * *
-그러니까 나한테 와. 내가 그놈들 멱을 딸 수 있게 힘을 줄 테니까. 결정했다면 연락 줘.
“…….”
침묵에 잠긴 회의실 안에는 한국의 모든 정상급 헌터들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중에서 이구호가 먼저 손을 들어 입을 열었다.
“내가 말 좀 해도 되나?”
그 질문에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말해도 된다는 침묵.
이구호가 침묵을 뚫고 말했다.
“그래서 다들 의견이 같다는 거잖아? 마인 협회를 찾아서 소탕하겠다는 거.”
이구호의 몇 마디에 모든 상황이 정리되었다.
마인 협회 소탕, 그것이 그들이 바라는 거니까.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그런 거잖아. 안 그래?”
“그런데 한 가지 문제가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말처럼 당장 소탕할 수는 없었다. 위치를 아무도 모르니까.
“아무리 뒤져 봐도 그들의 위치를 모른다는 거다. 위치를 알더라도 대부분이 함정이지.”
전 세계 헌터 59위인 강금찬도 불가능할 거라 말했다.
“그리고 천마는 우리가 상대할 수 없어. 그 정도 괴물을 상대할 거라면 최소한 이석현 헌터와 마일런을 불러야겠지.”
“…….”
“그 정도로도 불가능할 수도 있고.”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방법이었다. 그나마 가능한 방법을 찾아야 했다.
“누군가 미끼로 만들어서 들어가면?”
그래서 생각한 대답이었다.
스파이를 안으로 보내어 위치를 알아내자는 것.
“나쁘지 않을 수 있겠어.”
“그러면 누가 그 안으로 들어갈 거지?”
“…….”
물론 그 의견도 맞지 않았다.
그 안에서 살아서 나올 확률은 제로에 가까웠으니까.
“이것도 불가능한 방법이군.”
제대로 된 방법이 나오지 않았다. 누구도 적진 안으로 들어가 죽고 싶지 않을 테니까.
“이 방법도 안 되겠군. 그래서 더 의견 있나?”
“…….”
이 이상의 질문과 대답은 나오지 않았다. 그대로 회의 종료.
이 이상 회의해 봤자 의미가 없다.
“돌겠네, 돌겠어~”
“마땅한 방법이 없네요. 정말 적진에 들어가서 죽을 수도 없고.”
어느새 회의실을 나온 이구호와 신하림이 한숨을 내쉬었다.
마땅한 방법이 생각나지 않았다. 1위부터 10위 길드가 모두 모여도.
“일단 길드에 가죠. 여기서 시간을 보내는 것보다는 나을 테니까요.”
“그게 좋겠네. 마인들 신경 쓰느라 잠도 제대로 못 잤으니까.”
쉬기 위해 길드로 향했다. 마인들 때문에 어제 잠도 제대로 못 잤으니까.
이제 막 협회에서 나와 차를 타려던 그때…….
휘이익!
“……!!”
바람을 가르며 어디선가 날아오는 공격. 신하림은 느끼지 못했는지 멀뚱히 서 있었지만.
“피해!!”
그는 아니었다. 화살이 어디로 날아오는 지까지 정확히 알아챘다.
빠른 속도로 날아오는 화살은 그녀의 이마 정중앙을 정확히 뚫을 것 같았지만.
“누구냐.”
“노, 놀라라.”
옆에 있던 이구호가 화살을 낚아채 버렸다.
어떻게 화살로 만들었는지 화살을 잡은 오른손에 아직도 떨림이 남아 있었다.
“누구냐?!”
크게 소리쳐 화살 쏜 주인을 찾아내었다. 하지만 인기척도 느껴지지 않아 범인을 찾는 건 불가능.
“어디……?!”
그 화살로 공격이 끝이 아니었다.
휘이익!
휘이익!
무수히 쏟아지는 화살.
방금처럼 평범한 화살들이 아니었다. 모두 희귀한 광물로 제작된 화살들이나, 마법이 걸린 것들이었다.
“모두 협회 안으로 들어가!!”
이구호가 진지한 모습으로 크게 외쳤다. 한 발이라도 맞으면 그 즉시 죽을 수 있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