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9화
99. 낚시(4)
처음에는 뭔 소리인가 싶었다.
이놈이 아메리카노를 잘못 마셨나 싶었지만.
“푸른 마석 말고! 저기 가운데.”
“……?!”
가운데 머리의 이마를 보고 무슨 말을 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마기를 품은 돌 말하는 거지?”
“그래, 그런데 왜 저게 저기 있지? 아니, 애초에 이런 던전은 없을 텐데…….”
천마의 아들이라서 그런지 던전의 정보를 잘 알고 있었다. 카페에서는 말도 안 하더니.
“가르쳐 좀 주지.”
“얘들이 의심할까 봐 그렇지. 너랑 나랑 둘만의 비밀인데.”
“우웩.”
토하는 시늉을 보이며 오우거를 가리켰다.
마석이든 아니든 저 오우거는 어떻게든 처리해야 한다.
“그래서 어쩔 건데. 도망가?”
“굳이.”
하지만 도망칠 필요는 없었다. 마기를 품고 있으나, 고작 오우거.
“트롤도 아닌데, 충분히 토벌할 수 있어. 꽉 잡아. 이 형님이 버스 태워줄게.”
“풉. 무슨 형님? 힘도 제대로 못 사용하면서.”
먼저 달려드는 양유혁을 보고 비웃음을 날렸다.
마인이지만, 마기를 사용하지 못하는 양유혁. 그나마 뛰어난 신체를 이용해 몬스터를 상대할 수 있었다.
“일단 저것부터 빼자고.”
“마석 말하는 거지?”
“크롸롸롸!”
오우거 앞에 다가갔다.
몬스터도 눈치를 챈 것인지 거대한 포효를 내지르며 달려든다.
“눈 뜨고 있기 싫네.”
달려드는 그 모습에 저절로 인상이 찌푸려진다.
몸 하나에 세 개의 머리가 달린 오우거. 지금까지 본 몬스터 중 가장 끔찍한 모습이다.
“팔 여섯 개, 머리 세 개. 조금 힘들겠네.”
최소 A급 몬스터는 될 거다. 하지만 고작 한 마리.
‘주변에 몬스터는 아직 안 보이고.’
잘 쓰지 않던 보급형 검을 꺼냈다. 검을 배웠으면 사용해야 하지 않겠나?
“천천히 공략해. 멍청하게 가운데부터 노리지 말고.”
“말 안 해도 안다고.”
거대한 몸집의 오우거. 그 거대한 몸을 파고들었다.
“넌 오른쪽, 나는 왼쪽으로 간다.”
“오키.”
왼쪽 세 개의 팔을 향해 달려갔다.
“급이 다른 강타.”
곧장 검에 강타를 불어넣었다. 훈련해서 얻은 스킬.
자신의 몸을 잡으려는 오우거의 팔을 베었다.
스걱!
“크롸롸롸!”
깔끔하게 베어지는 오우거의 팔.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에 조금은 피해 입었을 거라 생각했지만…….
“크롸롸롸!”
“트롤이냐?”
트롤을 뛰어넘는 재생력에 빠르게 뒤로 물러났다.
한 번에 쓰러트리지 않으면 체력만 뺏기게 될 터.
“양유혁. 잘라도 잘라도 끝이 없어. 이러다가는 끝이 안 날 것 같은데?”
“그건 나도 동의.”
아무리 검을 휘둘러도 베는 것보다 재생 속도가 월등했다. 이대로 가다가는 체력만 낭비하다 목숨을 잃게 된다.
양유혁과 함께 검을 들고 오우거 앞에 섰다.
베어도 베어도 재생된다면.
“갈라 버리면 되지.”
몸 전체를 반으로 갈라 버리면 되는 일이다.
여섯 개의 팔을 피하며 달려간다.
“플라이.”
“크롸롸롸!”
플라이 마법을 사용하여 몸을 하늘에 띄운다.
검을 높게 들어.
“천검(天劍)!”
아힐런에게 배운 시그니처 스킬을 사용한다.
아직 스킬 창에 없어 미숙하지만…….
스걱.
“크, 크롸롸?”
오우거 하나를 베는 덴 충분했다.
자신이 반으로 갈라진 것도 모른 채 고개를 갸웃거리는 오우거.
그사이 강수호가 검을 인벤토리에 넣고 오우거에게 걸어간다.
그러자.
털썩.
‘크, 크롸롸?’라는 말을 끝으로 반으로 갈라지는 오우거.
“워워, 만지지 마. 마석은 위험하다고.”
마석을 집으려 하자, 양유혁이 가져가 버렸다.
강수호가 양유혁의 눈빛을 살핀다.
“뭐라도 있어? 보물이라든지…….”
내심 기대하고 있었다.
갑자기 나타난 오픈형 던전에 마석이 박힌 오우거가 존재하다니. 뭔가 있는 게 분명했으니까.
“있긴 있네.”
“뭐가?”
그 사실을 늦지 않게 알 수 있었다.
물론 시스템 관리자가 말한 보물에 대해서는 아니었다.
“젠장.”
“왜? 뭔가 있는데?”
말 대신 양유혁은 인상을 찌푸리는 거로 대신했다.
마치 큰일이 발생한 것처럼.
“빨리 나가야 해.”
“갑자기?”
“아니, 한국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리고 당장 알려야 하는데…….”
“야, 진정해.”
이렇게 흥분한 양유혁은 또 처음 본다. 매일 무표정으로 피식 웃어대기만 하던데.
“뭔데 그래?”
뭔가 싶어 물어보자. 얼마 지나지 않아 대답이 들려온다.
“헌터 협회장이 위험해.”
“이용욱?”
뜬금없는 이야기였다.
* * *
“지금 당장 한국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그러니까 네가 본 마석에서 천마가 나와서 헌터 협회장을 죽인다고 말했다고?”
“네.”
“어휴, 돌겠네.”
양유혁의 대답에 마커스가 인상을 찌푸리며 머리를 짚었다. 애초에 말이 안 되는 이야기였으니까.
“그렇게 설명하는 이유는?”
“마기에 지배당한 몬스터를 죽이면 이 돌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 이유를 몸소 가르쳐 주었다.
검을 돌을 들이밀며 증거품을 보여 주고.
“그리고 이 돌을 빼내면 어떻게 해서 변했는지 알 수 있죠.”
“알 수 있다고?”
“예, 한마디로 기억을 마석에 복사한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간단하면서도 복잡한 설명.
대충 이해한 마커스가 휴대폰을 꺼냈다.
“일단 확인해 보고 가자. 아직 오픈형 던전이 남았잖아?”
솔직히 마커스는 저렇게 말해도 전혀 이해되지 않았다.
‘굳이 천마가 저놈들을 여기로 유인해야 하는 이유가 있었을까?’
아무리 떠오르는 슈퍼 루키 신입이더라도 말이 안 된다. 고작 신입 헌터가 무서워서 견제하는 건 아닐 테고.
어쨌든 전화 한 통이면 해결될 일.
띠리링.
딸깍.
“어, 거기 한국 헌터 협회지? 나 마커스인데…….”
통화음이 울리자 누군가 전화를 받았다. 마커스라면 대부분의 헌터가 알 것이다.
절대 감각의 소유자. 검을 다루는 괴물.
그러니 원래라면 직원이 반갑게 인사하며 전화를 받아야 하는데.
-…….
“여보세요?”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마치 마커스의 반응을 살펴보는 듯 한참을 멈춰 있다가.
-절대 감각 마커스? 크, 크윽. 흐하하하!
“…….”
소름 끼치는 목소리에 마커스가 입을 다물었다. 너무나도 잘 아는 목소리였으니까.
“정신 나간 광대?!”
-광대라니? 내 이름이 버젓이 있는데……. 끄, 끅끅. 그래도 좋아. 날 알아봐 주다니. 영광인걸?
“…….”
어느 때보다 험악한 인상으로 변한 마커스. 그가 목소리를 깔고 물었다.
“네가 왜 거기 있는 거지?”
-왜, 왜 거기 있긴? 끄, 끄극. 당연히 계획을 좀 실행하려고 왔지?
“…….”
입을 다물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제 막 던전을 돌아다니는 신입 헌터들을 굳이 뉴욕에 있는 던전으로 보내는 게 이상했다.
“그런데 이거 어째? 한국에도 너보다 강한 강자는 넘쳐 나.”
-흐, 흐하하하! 끄, 끄극! 웃느라 숨이 넘어갈 것 같군!
놀라기는커녕 오히려 비웃었다.
한국의 헌터를 무시하는 것이 아니었다.
“너라도 그들을 전부 상대할 수는 없을 거다!”
-전부라니? 그게 무슨 소리야?
“한국 1위 헌터 이구…….”
말도 안 되는 개소리라 치부했다. 그도 그럴 것이 신하림이 없더라도 이구호라는 강자가 있을 거라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그 생각이 부서지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나 여기 있는데?”
“…….”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고개가 돌아갔다.
그곳에 이구호가 있었다.
“당신이 왜…….”
“아, 그게 우연의 일치라고 해야 되나? 너희를 공항까지 바래다주고 마침 배가 고파서 뭐 먹으려다가…….”
“…….”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일부러 온 건 아니었다. 배고파서 공항에서 밥 먹으려다가 줄 많이 선 곳에 갔고.
“그게 비행기라고?”
“응. 내 얼굴 잘 알려지니까 좋던데? 승무원들이 날 알아보더니, 비행기 표를 주면서 태워주셨어.”
“…….”
“하, 이런 X…….”
욕이 나오려다가 말았다.
저 대답에 욕할 가치조차 없었으니까.
-우리가 왜 저놈들을 보낸 줄 알아? 저런 바보 말고 강한 사람은 알아서 따라가거든. 또 다른 강자를 견제하기 위해서.
그뿐만이 아니었다.
-협회장만 조질 거라서 늦게 와도 빨리 와도 큰 상관은 없단 말씀~
“…….”
이구호가 있든 신하림이 있든 큰 상관은 없었다.
협회장이 당하는 건 기정사실.
“풉.”
-응? 왜 웃어?
하지만 그들이 간과하지 않은 사실이 하나 있었다.
“강자가 있어도 빨리 죽이고 나간다고?”
-그래, 무슨 불만이라도 있어?
대부분의 헌터가 뉴욕에 있지만.
“정작 뉴욕에 있어야 할 헌터는 지금 한국에 가 있거든.”
-쾅!!
-히익!
그때 마침 휴대폰에서 거대한 진동이 울린다.
마침 도착한 것 같으니까.
* * *
쾅!
“히익! 마일런?”
“한국 음식을 탐방하는 도중에 혈향과 마기가 느껴져서 와 봤는데…….”
마일런이 헌터 협회 건물에 도착했다. 코끝을 찌르는 혈향과 찝찝한 마기 때문에.
갈색 닭꼬치를 입에 집어넣은 그가 명검을 꺼냈다.
“여기는 무슨 일이지? 광대.”
“흐흐흐. 내 이름이 버젓이 있는데 광대라고 부르는 건 너무하지 않나?”
“관심받고 싶은 미친X을 광대라고 부르지, 뭐라 불러야 하지?”
마검사의 정점에 도달한 마일런. 그는 말이 필요 없다는 듯 검을 휘둘렀다.
“여기서 나가지 못할 것이다.”
“끄, 끄그극! 나가지 못한다고? 그전에 이거나 신경 쓰지?”
“……!!”
가볍게 피하는 광대.
하지만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언제 간 거지…….”
언제 협회장에게 갔던 것인지 그의 손에 팔 하나가 들려 있었다.
언뜻 봐도 쉽게 알 수 있는 팔.
“혀, 협회장의 팔이지! 바쁜 탓에 목숨을 빼앗지 못했지만, 팔 하나는 가져올 수는 있었어!”
“……광대 자식.”
협회장의 뜯긴 팔이었다.
저 광대 자식의 특수 재능.
“복제인가.”
“끄, 끄그극. 이게 꽤 유용하더라고? 나랑 똑같이 생겨서 아무도 모르던데?!”
복제 인간이었다. 자신과 같은 재능과 힘을 가진 복제 인간을 소환하는 재능.
“대충 할 일도 끝났으니까 이만 가 볼게~”
“그럴 수는 없지.”
마법을 검에 부여했다. 대마법사와 비슷한 격을 지닌 마법.
“죽어라.”
더군다나 검술은 마커스와 동급.
검을 들어 목을 베어버리기 위해 움직였으나.
스걱!
“쉽군.”
깔끔하게 베어 간 목.
하지만 피가 바닥에 흩뿌려지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이게 무슨…….”
“끄, 끄끄극! 내 능력이야 이게! 의외로 편하다니까?”
“…….”
고통은 느끼고 있으나 죽지는 않았다.
이것이 바로 그의 재능, 복제 인간.
“정말 개 같은 재능이군.”
“네가 있을 줄은 몰랐지만, 천천히 하면 되니까. 지금부터 고생 좀 할 거다~”
머리가 잘려도 말하고 있었다.
끔찍한 그 모습에 검을 들어 꽂아 넣으려던 찰나.
“바이바이~”
푸욱!
“…….”
이미 그는 사라지고 없는 상태였다.
다시 검을 빼고 천천히 주변을 둘러봤다.
“젠장.”
피와 살점으로 가득한 공간. 살아 있는 사람은 없었다.
유일하게 살아 있는 사람이라고는…….
“자네는 괜찮나?”
오른쪽 팔 하나가 없어진 헌터 협회장, 이용욱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