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7화
97. 낚시(2)
“아마 많이 골치 아플 거예요. 시련을 클리어하려면 한 가지 보물이 필요하거든요.”
“…….”
“모든 시련을 클리어하는 데 대략 세 가지 보물이 필요하죠.”
시련이 뭔지 알기 위해서 찾아간 시스템 관리자. 다행히 그녀는 강수호가 뭘 찾아야 할지 알려 주었다.
“그 보물 세 가지가 뭔데요?”
“……그건 저도 모르죠?”
문제는 대략적으로만 알려졌을 뿐. 그 이상은 그녀도 안 된다는 듯 선을 그어 버렸다.
어쩔 수 없을 듯하다. 어차피 가르쳐 주지도 않을 것 같고.
“이만 가 볼게요. 할 말은 다 끝났으니까.”
“네, 들어가세요.”
“…….”
결계가 사라진 방 안.
강수호는 침대에 누워 생각에 잠겼다.
‘보물 세 개…….’
마땅히 떠오르는 보물은 없었다. 그렇다고 보물이 황금 사과 같은 건 아닐 테고.
마땅히 떠오르는 게 없자 생각을 접고 휴대폰을 들었다.
[샬런 스승님 : 뽀삐라는 아이까지 심어 놓았다. (사진 첨부)]
제일 첫 알람은 샬런 스승님이었다.
시골이라서 얼마 가지 못하고 다시 올 거라 생각했는데.
‘적응은 잘하고 있네.’
걱정할 필요는 없을 듯하다.
마을 주민들이 밥도 잘 챙겨 주고 있었고.
‘그럼 나는 다시 훈련하러 가 볼까.’
아마 무슨 일이 있지 않은 이상 던전과 훈련의 반복일 거다. 그 덕분에 능력치도 많이 올라간 상황.
“상태창.”
차원 이동을 사용하기 전에 상태창을 열었다.
[강수호]
레벨 : Lv. 82
체력 – 255 민첩 – 236 힘 – 256 마나 – 239 감각 – 244 친화력 - 100
스탯 포인트 : 20
재능 : 차원 이동(SSS급)
스킬 : [트롤의 재생력(S급) : Lv. MAX], [절대정신 방벽(S급) : Lv. MAX]…… 등.
-레벨업 하였습니다.
-레벨업 하였습니다.
이제 스탯도 잘 올라가지 않는다.
상태창을 대충 확인하고 차원 이동을 사용해 여느 때와 같이 훈련을 받고 다시 방에 도착했다.
“좀 씻어…….”
“수호야!”
씻으려던 그때 갑작스레 방에서 들려오는 목소리.
방 안에 최서현이 있었다.
크게 놀라지 않았다. 한 번씩 그가 없을 때 방에 들어왔으니까.
“무슨 일이야? 큰일이라도 났어?”
뭔가 싶어 물어보자.
“우리 던전 발령 났데!”
“음? 던전 발령?”
발령이란 말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보통 신입 헌터는 던전 발령이 잘 나지 않았으니까.
“어디로?”
“뉴욕으로 간다는데?”
“또?”
“응, 이번에 좀 이상한 던전이 나타나서 그렇대.”
“이상한 던전?”
“오픈형 던전이라는데?”
“…….”
오픈형 던전이란 말에 시스템 관리자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시련을 통과하기 위한 보물.
“누구랑?”
“양유혁이랑 너랑 나랑. 신입 헌터들만 간데.”
“신입 헌터?”
“어렵지 않아서 그런다는데?”
“…….”
거절할 이유는 없었다. 오히려 좋은 기회가 생긴 셈.
“그래서 언제 간대?”
“다음 주! 그런데 그전에…….”
기뻐하기도 잠시, 그녀가 의미심장한 말을 던졌다.
“우리 아빠가 너 좀 보자고 하던데?”
“…….”
그 말에 순간적으로 몸이 굳었다. 이성 그룹의 회장이 자신을 보자고 하다니.
대충 뭔 일인지 짐작이 가기 때문이다.
“설마, 너 만나는 것 때문에?”
“그런 것도 있고…….”
대답을 잠시 망설이던 그녀는 강수호의 눈치를 한참이나 보다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결혼 생각 있냐고 물어볼 건가 봐. 너무 돌직구이시거든.”
“…….”
결혼이란 말에 세상 전부가 멈춘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만큼 결혼이란 말은 강수호에게 폭포처럼 다가왔다.
‘아니, 아직 그런 계획은 없는데…….’
최서현을 연인으로서 사랑하기는 한다. 하지만 그녀가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수도 있을 상황.
‘잘 선택해야 하는데…….’
걱정이 앞섰지만…….
“아빠가 내일 당장 만나자고 하시거든? 내일 시간 있어?”
“시간은 있지. 던전만 안 터지면.”
시간이 없었으면 좋겠다. 이제 그녀를 만난 지 겨우 한 달이 좀 지났으니까.
처음으로 던전에 들어가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가 볼게. 내일 일 없으면 내가 먼저 전화할게.”
“그래.”
작별 인사를 나누고 씻고 잠을 청했다.
내일 제발 바쁘길 바라며.
* * *
“직원 누나, 오늘 클리어할 던전 없어요? 주변 던전이 브레이크 되거나…….”
“어머, 그러게. 오늘은 하나도 없네.”
“…….”
이상하게도 오늘따라 던전이 터지질 않는다. 작은 던전만 나타나 대형 길드가 나설 정도로 위험은 없었다.
원래라면 기뻐해야 할 상황이지만…….
“수호야! 아빠가 전화 왔는데, 오늘 올 수 있냐고 물어보는데?”
“오늘?”
“응! 어차피 오늘 B급 이상 던전도 안 나타나서 충분히 가능하지 않을까?”
“가능하지.”
물론 가능하긴 하다. 지금 당장 갈 수도 있지만.
‘긴장되네…….’
스승님을 상대할 때보다 몇 배는 긴장 되었다.
대기업 회장님이시면 얼마나 엄격하겠는가?
‘그래도 언젠가는 부딪혀야 할 과제겠지.’
마른침을 삼키며 고개를 끄덕였다.
세계 헌터들의 주목을 받는 헌터다. 뉴스를 보지 않은 사람이라면 몰라도 대부분이 강수호를 안다.
‘아직 밖을 나가지 않아 체감하지 못했지만, 부동산 아줌마가 날 알아봤어.’
대기업 회장 딸에 꿀리지 않는다.
그렇게 생각하고 방에 가 옷을 차려입었다.
‘정장은 안 돼.’
상견례 자리도 아니다.
어떤 미친X이 여자친구 아버지를 만나러 가는데 정장을 입고 가겠나.
‘편안하면서도 단정한 복장으로.’
밖은 5도 정도의 꽤나 쌀쌀하고 추운 날씨.
“몸에 짝 달라붙는 목티에 위에는 오버핏으로 맨투맨까지. 그리고 슬랙스.”
깔끔하면서도 편한 복장이 완성되었다.
헌터가 되면서 골격과 키도 커져서 그런지 핏이 살아 있다.
‘이 정도면 괜찮겠지.’
물론 얼굴 빼고.
이 정도면 충분하리라 생각하고 밖을 나왔다.
“오~ 우리 아빠 만난다고 힘 좀 쓴 것 같은데?”
“조금은?”
“이리 와. 밖에서 기사님이 기다리고 계셔.”
그녀와 팔짱을 끼며 정문을 나간다.
항상 하던 일인데 심장이 미친 듯이 띠고 긴장된다.
‘실수하면 안 될 텐데.’
이렇게까지 준비했는데 실수하면 안 된다.
심호흡을 내쉬며 정문을 나가 차에 올라타자.
“기사님!!”
“아가씨, 오셨습니까? 옆에 분은 남자친구분이시군요?”
“…….”
기사가 있어서 놀란 게 아니었다.
“얼른 타시죠. 회장님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리무진이에요?”
“회장님이 특별히 신경 쓰라고 하셔서 리무진을 타고 왔습니다. 혹시 불편하신 거라도…….”
“아닙니다. 타죠.”
강남 경매장의 리무진보다 긴 리무진. 이걸 타고 간다는 것이 놀라울 따름이었다.
리무진에 올라타 30분 정도 도로를 달리자 펜트하우스에 도착했다.
“흠흠. 멋진 집이군요.”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회장님께서는 안에 계실 테니 들어가 보시기 바랍니다.”
감탄사가 나오려던 걸 억지로 참았다. 여기서 함부로 하면 안 될 것 같았으니까.
“우리 아빠 그렇게 무섭지 않으시니까, 긴장 안 해도 돼.”
“그래도 실수하면 망할 것 같아서.”
천천히 걸어가며 미친 듯이 뛰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물었다.
“어떤 행동을 제일 싫어하셔?”
“다리 꼬는 거? 품위 없어 보이고 사람이 너무 멍청해 보인다고 해서.”
“다른 건 없어?”
“응! 우리 아빠 엄청 착하셔!”
이야기를 나누자 금세 거실에 도착했다.
그곳에는 최서현의 아버지로 보이는 남자가 긴장한 듯 앉아 있었다.
강수호가 먼저 90도로 깍듯이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서현이와 교제 중인 강수호라고 합니다.”
“흠흠, 그래. 거기 앉게나. 물어보고 싶은 게 많아 불렀네.”
헛기침하며 강수호를 소파에 앉혔다.
그가 앉자마자 잠시 정적이 일었고.
“자네가 우리 서현이 남자친구?”
“넵, 만난 지 이제 34일 되었습니다.”
세상 어느 때보다 긴장되어 덜덜 떨리는 두 손에 힘을 주어 억지로 참고 대답했다.
“그렇군. 인물이 훤칠하니 시원시원해 보이는군.”
얼굴부터 시작해서 겉모습을 조목조목 살펴본다.
잠시 살펴보던 그가 다시 질문을 던졌다.
“단도직입적으로 물어보지, 부모님은 정정하신가?”
“아버지는 돌아가셨고, 어머니 혼자 계십니다.”
“그렇군.”
두 가지 대답이 이야기의 끝이었다.
사실상 최서현의 아버지는 너무 잘 알려진 사람이었으니까.
“나에 대해 궁금한 점은 없나?”
“유명하신 분이라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 점심이 다 되어가니 식사나 하도록 하지.”
“아, 저기…….”
“음? 무슨 일이지?”
일어서려던 그를 잠시 멈춰 세웠다.
무리해 보일 수 있는 행동이었으나.
“제 작은 선물입니다.”
“선물?”
이곳까지 오는데 빈손으로 올 수 없었다.
인벤토리에서 깔끔한 상자에 담긴 물약을 꺼냈다.
“뭐지? 나에게 준 것이니 체력 물약 같은 건 아닐 테고…….”
평범한 물약이 아니었다.
하지만 이 물약으로는 그의 환심을 살 수 없었다. 아무리 비싼 물약이더라도 돈을 주고 구할 수 있으니까.
물론 그 생각은 강수호의 말에 씻은 듯이 사라졌다.
“내게 이런 물약은 필요 없다. 차라리 우리 딸, 서현이에게…….”
“아니요. 아마 아버님께 꼭 필요하실 겁니다.”
“아버님?”
아버님이란 말에 인상이 찌푸려졌으나.
“아직 결혼할지도 안 정해졌는데, 아버님이라고…….”
“그거 그냥 물약이 아니고, 탈모약입니다.”
“뭐, 뭐?”
‘탈모약’이란 말에 저절로 입이 다물어졌다.
온갖 신기한 것들이 나타나도 탈모만큼은 치료하기 힘들었다. 얼마의 돈을 주어도 모든 연구자가 만들기 거절한 일.
“탈모약이 있다고?”
“제 스승님이 만들었는데, 문제는 없을 겁니다. 시험까지 다 마쳤거든요.”
“아, 아아…….”
엘릭서보다 더 귀한 영약. 부르는 게 값인 탈모약이 그의 앞에 존재하고 있었다.
‘이 텅 빈 머리 때문에 어찌나 고민이 심하던지!’
회사 일에 치이고 던전에 치이며 살아가던 어느 날, 점점 빠지기 시작하던 머리. 어떤 치료를 해 봐도 빠지는 머리카락을 원상태로 되돌릴 수는 없었는데.
“지금 사용해 봐도 되나?”
“아, 넵. 물약을 두피에 바르시기만 하시면 됩니다.”
“지금 당장 해 보겠네!”
기대를 품고 화장실로 달려갔다.
뽁.
마개를 따자 달콤한 냄새가 화장실 안에 퍼진다.
탈모‘약’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한 냄새.
“정말 탈모약이 맞는 건가?”
처음에는 의심했지만.
“한번 사용해 보면 알겠지.”
두피에 거리낌 없이 탈모약을 부었다.
강수호의 말을 믿었다. 그의 정보로는 스승님이 마일런도 한주먹으로 이겼다고 들었으니까.
기사에는 나지 않았지만.
조르륵.
“…….”
탈모약을 부은 두피를 천천히 마사지했다.
깔끔하게 부어진 탈모약이 두피에 세심히 흡수되었다.
“아직은 아닌 건가…….”
아쉽게도 바로 머리카락이 자라지 않았다.
역시 탈모약은 존재하지 않았다. 아쉬움을 뒤로 한 채 두피를 닦고 이동하려던 그때.
“어?”
“무슨 일인가?”
옆에 있던 비서가 놀라서 쳐다본다.
뭔 상황인가 싶어 물어보자.
“회장님, 거울을 한 번…….”
“어?!”
점점 자라나는 머리카락.
풍성해진 머리카락이 거울을 통해 적나라하게 비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