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에게 절대자들의 선물함이 도착했다-95화 (95/225)

제95화

95. 집들이(2)

‘뭐야, 이 꼰대는?’

인상이 찌푸려졌다.

좋은 날이 있으면 나쁜 날도 있는 법. 하지만 이번에는 그날이 겹친 듯하다. 이사하는 좋은 날에 이런 사람을 만나다니.

“옆집 사람인가요?”

“옆집은 아니에요. 당신네 밑 집.”

“아하…….”

억지로 웃으려 해도 웃어지지 않았다. 그만큼 아줌마의 태도는 갑질의 끝판왕이었다.

“아직 짐 정리할 게 많아서 들어가 볼게요. 불편한 거 있으면 말씀해 주세요.”

“아, 잠시만요.”

무시하고 들어가려 하자 그녀가 강수호를 붙잡았다.

“……또 무슨 일이죠? 지금 꽤 바쁜데.”

억지웃음을 지었다.

짐 정리하고 집도 꾸미려면 많은 시간이 걸린다. 이런 아줌마 하나 상대할 시간은 없다는 것.

“이사한 김에 다른 곳으로 가면 안 되나요?”

“……네? 제 귀가 이상한 건가요?”

붙잡은 아줌마가 이상한 말을 늘어놓았다. 정당하게 돈을 주고 이사를 왔는데, 또 이사하라니?

뜬금없는 질문에 뜬금없는 답변을 내놓았다.

“그럼, 나갈게요.”

“후후. 진작에 그러지. 사람은 자기랑 딱 맞은 곳에 살아야 해요. 저기 반지하……. 손은 왜 내밀어요?”

아줌마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 손의 의미를 궁금해하는 아줌마.

별거 아닌 듯 입을 열었다.

“혹시 40억도 없는 건가요?”

“40억이요? 하! 그 돈이 누구 집 개 이름인 줄 아나 본데, 그걸 당신한테 왜 주죠?”

화내며 의문을 품었다.

40억이 누구 집 개 이름도 아니다. 하지만 굳이 강수호가 ‘40억’을 강조하며 말한 이유가 있었다.

“아줌마가 이사하라면서요? 40억으로 줬으니까, 당신이 40억을 줘야지 가든지 말든지 하죠.”

“하!! 그게 뭔…….”

“그리고 뉴스도 안 보세요?”

돈이 많기에 저런 말을 하는 것일 터.

아주머니는 어이없다는 눈빛으로 강수호를 노려본다.

스승님의 시선을 매번 받아 왔기에 이런 시선쯤이야, 아무것도 아니다.

“그래요! 40억 줄게요! 그럼 지금 당장 나가세요. 우리 남편이 A급 헌터인데…….”

이사 오자마자 다시 이사 가게 생겼다.

백지 수표를 꺼내고 숫자를 써 내려가고 있던 찰나였다.

“여기 40…….”

“수호야!”

“음?”

아줌마 뒤에서 들려오는 익숙한 목소리.

최서현이 달려와 강수호의 품속으로 들어간다.

“흐차!”

“빨리 왔네? 아직 이삿짐 정리 중이었는데.”

“웅! 도우려고 왔지! 내가 또 한 힘 하잖아!”

그녀의 두 손에는 다양한 선물들이 걸려 있었다.

“명품? 꾸찌 아니야?”

“괜찮아! 내 용돈으로 샀으니까. 그것보다…….”

인사가 끝난 그녀가 갑질하는 아줌마를 쳐다봤다. 방금 도착했다고 생각하겠지만…….

“흠흠.”

“…….”

몰래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아줌마는 누구세요?”

“흠흠, 무려 A급 헌터의 아내란다. 그리고 이 남자 밑층에 살지.”

“아, 그렇구나.”

말하면서 반짝거리는 보석들을 자랑한다. 마치 명품도 보석을 이길 수 없다는 듯.

“잠시만, 수호야.”

“응.”

그런 그녀를 째려보다가 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내기 시작했다. 주기만 한다면 누구나 아는 명함.

“여기 제 명함……. 아, 잘못 꺼냈다. 아빠 명함을 꺼냈네. 잠시만요.”

“……!!”

잘못 꺼낸 명함 하나.

누구나 아는 이름과 얼굴이 보였다.

‘이성 그룹의 회장 명함? 저 여자가 왜 가지고 있는 거야?’

이성 그룹 회장의 명함. 그뿐만이 아니었다.

‘아빠? 딸이라고?’

쉽게 말해 최서현, 그녀는 재벌이었다. 이런 아파트는 조금 무리하면 통째로 살 수 있을 정도의.

‘잘못 걸렸나?’

손이 떨렸다. 아줌마의 손에 잡힌 백지 수표는 매일 만져 볼 터.

‘그래도 재벌이잖아. 요즘은 헌터를 더 알아봐 준다고.’

하지만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10년 전에 던전이 나타나면서 헌터의 시대가 도래했다. 그러니 재벌보다 인지도가 낮지는 않을 터. 더군다나 제 남편은 무려 닳고 닳은 A급 헌터다.

“우리 남편은 A급 헌터…….”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자신이 얼마나 바보 같은 짓을 저질렀는지 알 수 있었다.

“안녕하세요, 저는 패왕 길드에서 근무 중인 최서현이라고 합니다. 재능은 세계 헌터 급까지 받았고요.”

“…….”

더 이상 입을 열지 못했다.

세계 헌터의 힘을 인정받았다는 건…….

‘괴물이란 소리잖아?’

세계 헌터부터는 S급 헌터를 뛰어넘는 괴물들.

그러니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게 말이…….”

“나 왔다! 얘들아~”

“…….”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호탕한 목소리가 들려오면서 익숙한 얼굴이 보인다.

“패왕 길드 마스터?”

“음? 아는 분이셔?”

“아니요, 밑에 집에 사신대요.”

“…….”

패왕 길드 마스터. 그가 강수호의 새로운 집에 도착했다.

“나도 왔지~”

“신하림 님!”

패왕 길드 부마스터, 신하림도 함께.

새로운 집으로 이사한다고 말은 해 놓았는데, 정말 올 줄은 몰랐다.

“그런데 무슨 일 있었어? 왜 여기 다 나와 있어?”

“아, 별거 아니에요. 일단 들어오세요. 아직 정리가 다 안 끝나서.”

어느새 사라진 갑질 아줌마. 그 덕분에 시간을 낭비할 필요가 없어졌다.

집 안으로 들어오자 아름다운 풍경이 그들을 반겨준다.

“역시 돈이 최고라니까. 집 좋네.”

감탄할 수밖에 없는 집의 풍경. 50평의 넓은 집뿐만 아니라, 최서현이 인테리어까지 손을 봐줬으니 충분히 그럴 만했다.

“일단 정리부터 해야 해요. 아직 이삿짐 정리가 다 안 되었거든요.”

“그래? 그럼 도와주면 되지. 그래야 빨리 끝나는 거 아니겠어? 흐하하하!”

이삿짐은 그렇게 많이 없었다. 애초에 고향 집에 뭐가 많이 없었으니까.

사람들이 도와주자 5분도 안 돼서 정리가 끝났고.

“짜장면 콜?”

“짬뽕도요!”

“어머 어머. 탕수육도 먹어 줘야지. 이렇게 사람 수가 많은데.”

이삿날 국룰인 중국집에 전화를 걸었다. 이사한 날이라면 짜장, 짬뽕을 먹는 건 당연한 일.

얼마 지나지 않아 음식이 도착했고 먹방을 시작했다.

“후루룹! 허~ 뜨거워.”

“불맛이 확 들어가 있네.”

유명한 맛집에 시켜서 그런지 맛이 장난 아니었다.

그렇게 한참을 먹다가 강수호의 엄마가 입을 열었다.

“수호, 생활 잘하죠?”

“하하! 그거라면 문제없습니다! 지금 모든 헌터들이 가장 기대하는 헌터가 바로 강수호 헌터니까요!”

저리 말해도 근심은 여전하다. 잘돼도 못 돼도 언제나 걱정이 태산이시니까.

“아, 그러고 보니 제가 집들이 선물을 안 드린 것 같네요.”

이구호가 두루마리 휴지와 함께…….

“여기 백 년 산삼입니다. 몸이 좋지 않으시다고…….”

“예?”

“…….”

“아닌가요?”

분명히 몸에 좋은 산삼을 선물로 줬지만, 표정은 그리 밝지 않았다.

“몸은 지금도 충분히 괜찮은데요? 아니, 오히려 좋아요.”

“…….”

산삼은 필요 없었으니까.

오히려 근육을 키우는 프로틴 물약이나 줬으면 하는 바람.

“하하, 그래도 괜찮아요. 몸 좋으면 더 좋아지면 되죠. 안 그런가요?”

“…….”

알통을 보고 더 이상 입을 열지 못했다. 강수호의 어머니가 저렇게 된 게 조금은 놀랐으니까.

놀람을 뒤로 자장면을 흡입하며 본론으로 들어갔다.

“저희끼리 얘기할 게 있어서 잠시 방 안에 들어가 있도록 하겠습니다.”

“아, 예.”

물론 방 안에서.

양유혁은 바쁜 관계로 집들이를 오지 않은 상황.

최서현과 강수호는 방에 들어가 이구호의 이야기를 들었다.

“내가 굳이 너희를 부른 이유는…….”

이야기는 간단명료했다.

“토벌 단으로 너희를 넣을 생각이거든.”

“…….”

순식간에 침묵이 돈 방. 토벌 단이 무엇인지 알기에 입을 쩍 벌리고 멈춰 있었다.

“토벌 단이요?”

“놀라는 것 보니까 잘 알고 있는 것 같네.”

던전을 탐험하는 헌터의 조를 말하는 명칭이 토벌 단이다. 그 안에 자신들을 넣겠다는 것.

“저희 아직 신입 헌턴데요?”

“괜찮아. 너희 실력은 다 검증됐으니까. 양유혁도.”

검증된 실력에 누구 하나 뭐라 할 사람은 없었다. 칭찬하면 칭찬했지.

“언젠데요?”

“……아마도 지금 당장이 될 수도 있고 내일이 될 수도 있어. 애매해.”

“엥?”

애매한 날짜에 고개가 갸웃거렸다.

하지만 그 생각은 이구호의 말에 단번에 사라졌다.

“마인, 잘 알고 있지?”

“아, 넵.”

“그놈들이 어떻게 만들었는지 몰라도 던전을 만들어 내고 있거든.”

언제 생길지 모르는 던전. 한마디로 말해서 갑자기 생기는 던전을 클리어하면 되는 일. 사소한 문제가 있다면 단계가 조금씩 올라간다는 것.

“할 수 있겠지? 좀 위험하긴 하지만, 베테랑 헌터들도 들어가고.”

걱정하지 않았다. 맨땅에 헤딩하는 것이 아니었으니까.

“뭐, 이제 슬슬 노는 것도 지겹고. 던전도 토벌해야죠.”

“대부분 놀기만 했으니까…….”

헌터라도 해도 이제껏 할 것 없이 놀기만 했다. 이제 본업에 들어갈 시간이다.

“오늘부터 하면 되죠?”

“아니, 굳이 그럴 필요는 없고. 오늘은 바쁜 것 같으니까 내일부터 던전 의뢰 들어오는 거 받으면 돼.”

“넵.”

굳이 오늘 할 필요는 없었다. 급하게 던전에 들어갈 이유도 없었고.

“오늘은 새집에 이사했잖아?”

기쁜 날에 일할 수는 없었다. 오늘은 충분히 즐겨도 되는 시간이다.

* * *

“처음으로 제대로 된 첫 출근이네.”

“그런데 우리 언제 밥 먹으러 가? 내일 먹으러 갈래? 시간 남으면.”

“그래!”

“솔로는 불쌍해서 살겠나.”

이야기를 나누자 어느새 도착한 패왕 길드 본사.

길드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삐리리링!!

삐리리링!!

“깜짝아…….”

경고 소리에 깜짝 놀라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뭔 상황인가 싶어 궁금해하자.

“비상! 비상! 모두 1층으로 집결할 수 있도록! 이상!”

“……근처에 던전이 나타난 것 같은데?”

안내방송으로 인해 던전이 나타났다는 걸 알아차릴 수 있었다.

“우리도 준비해야겠지?”

마침 옷도 단단히 갖춰 입고 나왔다. 전투 복장에 입이 심심할 때 간식으로 먹을 황금 사과까지.

“어? 너희들 왔구나?”

“이종식 헌터님?”

1층 중앙에 기다리고 있자 이종식이 전투 복장을 갈아입고 다급히 뛰어왔다.

“딱 맞게 왔네. 어서 차에 올라타. 바쁘니까 설명은 차에서 할게.”

“넵.”

대략 열 명이 넘어가는 길드원들이 각자 밴에 올라탔다.

그중에서 가장 앞 밴에 올라타자.

“출발한다. 모두 꽉 잡아라.”

“이, 이석현 헌터님? 왜 헌터님이 여기에…….”

이석현 헌터가 운전대를 잡고 있었다.

‘헌터’로서 처음 나가는 던전 토벌.

처음부터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밴을 모는 사람이 바로 이석현 헌터였으니까.

“모두 안전벨트 맸지? 가다가 다쳐도 난 모른다?!”

“아악! 잠시만요! 저 아직 안전벨트…….”

안전벨트도 매지 않았는데 엑셀이 밟혔다.

말을 다 잇기도 전에.

“출발!!”

부아아아앙!

이석현이 모는 검은색 밴이 도로를 질주하기 시작했다.

“으아아악!”

“소, 속이……. 우욱.”

“으으…….”

그 사이에서 그들의 생사가 오가고 있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