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1화
91. 용용이(4)
클리어한 던전이 얼마나 많은 이득을 봤는지 확인하고 싶었다. 하지만 확인할 시간조차 주어지지 않았다.
“스승님! 진정 좀 하세요! 거기서는 잘 먹지도 않으면서!”
“이거 놔라! 제자야! 남의 것을 훔친 놈은 맞아야 하지 않겠나? 제자가 그렇게 말했지 않았나?!”
세계 1위 헌터를 패다니. 주변에 기자들까지 몰려 있었기에 빨리 말려야 한다.
“스승님! 다시 그쪽으로 보낼까요?”
“흠흠. 그건 안 되지. 이 좋은 곳을 떠나다니.”
단호한 한마디에 샬런이 진정됐다.
그를 진정시키고 빠르게 호텔로 들어갔다. 뉴욕 여행은 물거품이 된 것 같다.
* * *
“스승님, 이번에는 정말 못 나가요.”
“……알겠다.”
“잘못한 거 잘 아시죠?”
“그, 그래…….”
샬런도 강수호의 말에 반발하지 못했다.
“강수호 헌터 스승님께서 마일런 헌터를 주먹 한 번에 쓰러트린 것을 봤습니다!”
“나와서 인터뷰 좀 부탁합니다!”
샬런의 행동 때문에 난리 난 호텔 앞.
기자들을 쫓을 수도 없었다.
“뉴욕에 있을 때 동안만은 여기서 계속 있으세요.”
“그래, 숨어서 TV나 보고 있을 테니 걱정하지 말거라.”
어제 많이 혼내서 그런지 입꼬리가 내려가 있었다.
그래도 어쩔 수 없다.
‘이 정도까지만 간 게 다행이지.’
이 정도인 걸 참 다행이라 생각했다. 더 큰 일이 벌어질 수도 있었으니까.
“그럼 저희는 놀러 갔다 올게요~ 양유혁이랑 잠시 계세요.”
“그래.”
혹시 몰라 스승님을 양유혁에게 맡기고 왔다.
“왔어?”
호텔 방문을 열자 기다리던 최서현이 보인다.
하얀 원피스에 밀짚모자. 저절로 미소가 지어지는 코디였다.
“예쁘네?”
“정말?”
칭찬에 그녀의 볼이 붉어졌다. 처음 하는 데이트라 신경을 좀 썼는데, 의미가 있었다.
아직 손잡을 사이까지는 아니라서 그런지 어색하게 지하 주차장으로 향한다.
“저 차야?”
“응! 우리 아빠가 여행 다니라고 잠시 빌려줬어.”
다행히도 지하 주차장에는 기자들이 없었다.
“음? 아빠가? 무슨 일 하시는데?”
“그냥 기업 운영하셔.”
“아하. 어디 기업?”
“이성 그룹이라고 들어봤어? 크게 유명한 건 아닌데.”
“…….”
이성 그룹이란 말에 입을 쩍 벌렸다.
대부분이 아는 대기업. 그것도 회장 딸이라니.
“이렇게 반응할까 봐 안 말하려고 했던 건데. 놀랐지?”
“조금은……?”
“일단 타자. 갈 데가 많아.”
놀람의 뒤로 차 문을 열고 뒷좌석에 앉으려던 그때.
“하이하이~”
“……네, 네가 왜 여기에 있어?”
“그러게, 이수현이 왜 여기 있어? 우리끼리 가는 거 아니었어?”
뒷좌석에 이수현이 앉아 있는 걸 볼 수 있었다.
“이게 어떻게 된 거죠?”
“죄송합니다. 회장님의 지시인지라…….”
“…….”
운전기사도 어쩔 수 없었다는 듯 머리를 긁적인다.
회장님의 지시.
‘하아, 젠장.’
웃고 있었지만, 웃는 게 웃는 게 아니었다.
속마음으로 저주와 욕을 퍼붓고 있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이 정도까지…….’
눈물이 나려던 걸 억지로 참았다.
인간은 돈과 명예 앞에서 굴복하는 법.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사랑하는 사람 하나 뺏기는 건 별거 아닌 축에 속했으니까.
“나랑 같이 가자.”
“왜?”
“왜라니! 같이 놀러 가려고 그렇지!”
“싫은데.”
강수호는 거절 의사를 단호하게 밝혔다.
어떤 미친 남자가 사귄 지 하루 이틀밖에 안 됐는데 다른 여자랑 함께 데이트를 가겠나?
‘그것도 데뷔전 때 티격태격하며 싸웠던 여자랑.’
권력을 이용해서 일부러 그런 게 분명했다. 그리고 강수호는 그런 이들을 극도로 혐오한다.
“내려줄래? 정중하게 말할게.”
“왜? 그럼 나도 정중하게 말할게. 나랑 사귈래?”
“…….”
돌직구로 들어오는 질문.
강수호는 표정 변화도 없이 대답했다.
“미안, 사귀는 여자가 있어서. 이제 이틀 됐거든.”
“뭐? 설마, 저 X 말하는 거야?”
“그러니까 내려줄래? 그렇게 함부로 말하는 거 듣기 거북하다.”
저 ‘X’이란 말에 인상을 찡그렸다.
되도록 날카롭게 대하지 않고 좋게 거절하려 했으나…….
“어차피 금방 헤어질 거면서 무슨…….”
“너랑은 하루 이틀도 같이 못 있을 것 같으니까 가라고.”
“…….”
그녀의 막말에 순간적으로 머리에 열이 쌓였다.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그냥 짜증 났다.
“당장 차에서 나가, 꺼져.”
“칫, 그러면 약속해. 그 X이랑 헤어지면 나랑 사귀…….”
그 이상의 말은 이어지지 못했다.
“…….”
“우리 누나 괴롭히지 마!”
옆에 있던 용용이가 그녀를 차 밖으로 내보냈으니까.
뒷자리에 앉고 용용이도 앞자리에 앉자.
“그, 그러면 출발하겠습니다.”
곧이어 차가 출발했다.
그것을 보고 있던 이수현이 휴대폰을 꺼내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
“아빠!!”
-우리 딸!!
자기 아빠한테 직접.
* * *
[강수호]
레벨 : Lv. 70
체력 – 162 민첩 – 144 힘 – 162 마나 – 143 감각 – 153
스탯 포인트 : 340
재능 : 차원 이동(SSS급)
스킬 : [트롤의 재생력(S급) : Lv. 9], [절대정신 방벽(S급) : Lv. 8]…… 등.
-레벨업 하였습니다.
-레벨업 하였습니다.
-레벨업 하였습니다.
무수히 떠오르는 레벨업 메시지.
차를 타고 가던 도중 들리는 알람 소리에 귀가 먹어버릴 것 같았다.
‘이건 또 뭐야?’
상태창 메시지 중에서 유독 눈에 띄는 메시지.
-스킬, ‘용의 아버지(SSS급)’을 획득했습니다.
-스킬, ‘반용살자(S급)’을 획득했습니다.
‘이제는 놀랍지도 않네.’
S급 이상의 스킬. 용의 아버지라는 ‘SSS급’이라는 스킬이 생겼다.
‘반용살자는…….’
이 정도 등급이라면 말도 안 될 정도로 좋은 스킬이다.
어떻게 사용하는지 알아보기 위해 상태창을 열었다.
“흠…….”
의외로 용의 아버지 스킬은 별거 없었다. 용용이의 위치를 알 수 있는 것뿐.
‘반용살자는 뭐지?’
반용살자를 열어 보자.
‘오호.’
절로 감탄이 나왔다.
-용족과 싸울 때 상대방 능력치 10% 하락에 자신은 모든 능력치 + 10%.
‘드레이크 스킬까지 사용할 수 있네.’
용용이가 잡은 드레이크들의 스킬까지 사용할 수 있었다. 자신이 잡았다는 판정으로 떠서 그런 듯하다.
‘이건 엄청 유용하겠네.’
스탯은 깔끔하게 나누기 5해서 전체 스탯에 분배해 줬다.
평균 200 스탯이 넘었고, 레벨도 70에 도달했다.
‘클론 아저씨한테 가서 무구나 좀 만들어달라 해야지.’
70레벨 정도면 충분할 거다. 스탯도 꽤나 많이 올랐으니까.
상태창과 머릿속을 정리하고 있자.
끼이익.
“도착했습니다. 저는 여기서 기다리고 있을 테니 편히들 놀고 오십시오.”
“감사합니다.”
첫 여행 장소에 도착할 수 있었다.
뉴욕에서 가장 먼저 가야 할 여행 코스 1위.
“와, 진짜 크다.”
“뉴욕에서 가장 유명한 공원이래. 진짜 크지? 여기서 좀 걷다가 다른 곳도 가자!”
뉴욕 센트럴파크다.
미국 전역을 통틀어 가장 많은 방문객을 보유한 공원.
“진짜 예쁘다.”
여름을 맞이하는 푸릇푸릇한 초록색 나뭇잎. 정중앙에 있는 거대한 분수대까지. 남녀 데이트 코스로는 딱인 장소다.
산책로도 그늘져 덥지도 않을 거고.
“일단 산책해 볼까?”
“응!”
공원에 왔으니 일단 걸어야 하지 않겠나. 그 때문에 그녀도 구두를 신고 오지 않았다.
거대한 나무 사이를 걸으며 다양한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한국 가면 밥 먹으러 가려고 한 건 기억나지?”
“그럼, 뭐 먹으러 갈래? 뉴욕에서는 달고 느끼한 거밖에 안 먹었으니까 매운 거 먹으러 갈래?”
“좋아!”
식사 약속 같은 간단한 이야기부터 시작해서.
“나는 세계 헌터가 되는 게 목표야. 조금 더 잘된다면 그 이상이 되겠지.”
“나는 세계최강.”
목표에 관한 이야기도 했다.
그렇게 걸으면서 한참 동안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지속되었다.
누가 봐도 연인들의 대화. 누군가의 따가운 눈초리가 느껴졌지만, 이 상황만을 즐기기로 했다.
“용용이도 끼워줘!”
고양이 정도 크기로 작아진 용용이가 몸을 들이댔다. 혼자서 있느라 심심했나 보다.
그렇게 센트럴파크를 걸으며 잡담을 나누고 있자.
“음?”
“왜? 무슨 일이라도 있어?”
“아니, 뒤통수가 따끔해서. 누가 보고 있는 것처럼.”
아까부터 느껴지는 따끔함.
마치 누군가 자신을 보고 있는 듯한 찜찜한 기분이 느껴졌다.
처음에는 별로 신경 쓰지 않으려 했지만…….
‘저 사람인가?’
공원과 어울리지 않은 검은 후드티를 깊게 쓴 남자가 자신들을 쳐다보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왜 쳐다보는 거지?’
곧장 그에게로 걸어갔다.
신경 쓰지 않으려 했지만, 그의 촉이 발동했으니까.
“안녕하세요.”
“…….”
영어로 말해도 어떠한 대답도 없었다. 그저 조용히 강수호를 쳐다볼 뿐이었다. 고개를 끄덕이며 강수호가 어떤 사람인지 가늠해 보는 것처럼.
“왜 갑자기…….”
“죄송합니다. 죽었던 사람이 생각나서 당신들을 봤습니다. 미안하게 됐소.”
“…….”
대답과 함께 자리에서 일어나는 남자. 처음은 날카로웠으나 지금은 고독하고 슬퍼 보였다. 사랑하고 소중한 사람을 잃은 것처럼.
뒷모습을 쳐다보던 강수호가 꽃 한 송이를 주었다.
“……이게 뭐죠?”
“꽃이죠. 사람을 잃었을 때는 뭔가를 곁에 두는 게 나아요. 저도 그렇게 극복했으니까요.”
“…….”
그는 아무 말 없이 꽃 한 송이를 받았다. 꽃만 쳐다보던 그가 고개를 숙여 감사를 표하고 그대로 떠났다.
“뭐야? 고맙다는 말도 없이 그대로 가는 거야?”
감사 인사도 안 한 그가 신경 쓰는 것 같지만.
“웃던데? 그 정도면 나한테는 감사 인사지.”
강수호는 큰 상관 없었다.
그도 알고 있었으니까. 사랑하고 의지하던 사람을 잃었다는 그 아픔을. 잊었다 하더라도 가슴 언저리에 남은 흉터 같은 상처를.
“저 사람이 좋으면 나도 좋은 거지.”
대답과 함께 다시 공원 산책 거리를 걷기 시작했다.
“잊기 위해서 무언가를 곁에 두는 게 낫다라…….”
붉은 꽃을 든 남자가 강수호의 말을 곱씹었다.
걸어가는 그들을 쳐다보는 그.
“다 부질없는 짓이지.”
붉은 꽃을 바닥에 던졌다.
곁에 무언가를 두는 건 수없이 해 봤다. 이제는 아무것도 하고 싶지도 곁에 두고 싶지도 않았다.
오늘도 잠시 쉬기 위해서 나갔다가 우연히 그들을 마주친 것.
‘왜 장난감으로 사용했는지 알 것 같군.’
그의 아들의 심정을 이제야 이해할 수 있었다.
그 한 마디로 찝찝했던 마음이 편안해졌다. 다 낫지는 않았지만, 아물고 있는 기분이었다.
그렇게 생각 없이 한참을 걷고 있자.
띠리리!
울리는 전화벨.
전화를 받은 휴대폰에서 들려오는 목소리.
-준비는?
“확실히 했습니다. 오래 계획한 일이니 별 탈 없이 이행할 수 있을 겁니다.”
-그래.
대답과 함께 끊긴 전화.
한참 휴대폰을 바라보다 바지 주머니에 넣었다.
넣은 휴대폰 케이스 뒤에는 익숙한 사진 한 장이 있었다. 꽃밭을 배경으로 앞에는 화목해 보이는 세 명의 가족.
보지도 않고 그냥 넣어 버렸다.
“떠나야 할 시간이군.”
시간을 확인한 그는 산책로를 걷다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