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6화
86. 등급 측정(1)
“역시 햄버거는 미국이지. 한국에서 먹던 햄버거 맛이랑 차원이 다르던데?”
“그렇지? 내가 지금까지 무슨 햄버거를 먹었는지 잊을 정도로 맛있었다니까!”
“거기서 거기던데. 무슨.”
저녁 식사를 마치고 소화도 시킬 겸 뉴욕 길거리를 걷고 있는 이들. 처음 먹어 본 뉴욕의 햄버거 맛은 상상을 초월했다.
“오늘은 빨리 들어가서 쉬자. 오면서 잠을 잤는데도 잠이 오네.”
1시간 뉴욕의 길거리를 걷자 소화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오늘은 쉬기로 하고 곧장 호텔 안으로 들어갔다.
“스승님은 운동하고 계시려나.”
도착한 호텔 방문을 열었다. 땀으로 범벅이 된 샬런을 상상하며.
“헉! 헉!”
“하나만 더! 하나만 더!”
“으아아악!”
“…….”
방을 열자 상상하던 것과 다른 풍경이 그들을 반긴다.
거대한 방 전체를 뜨겁게 달구는 열기. 뜨거운 열기에 숨조차 쉬어지지 않았다.
“스승님?”
눈이 붉은색으로 물든 샬런.
뭔가 싶어 가까이 다가가 그를 부르자.
“어? 제자야?”
“뭐 하세요? 사람들 데리고?”
“그러게 말이야. 내가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거지…….”
정신을 차린 샬런이 천천히 주변을 둘러봤다.
운동하는 그들. 하지만 그들은 기뻐하지 않았다.
“살려 줘…….”
“덤벨에 깔릴 것 같아!”
“커, 커헉…….”
“스승님!!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이에요?!”
오히려 살려달라 애처롭게 외치고 있었다. 스승님 맞춤 무게로 된 아령을 들 수 있는 사람은 없었으니까.
애초에 하나를 드는 것도 무리다.
덤벨과 아령에 깔린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흠흠. 미안하구나. 갑자기 환영이 보이는 바람에.”
“다시 한번 더 그러면 한 달간 덤벨하고 아령 압수예요!”
“그건 안 된다!”
이번이 두 번째였다.
기회를 주고 힘을 준 스승님이라 하더라도 넘어가지 못한다.
“그럼 일단 다 구해 주세요. 특히 저기 깔린 사람부터요!”
강수호의 말에 재빨리 몸을 움직여 깔린 이들을 구출해 내기 시작했다.
문까지 열어 땀내 가득한 방을 환기했고.
“사, 살았다…….”
“벤치프레스 하다가 죽을 뻔했어.”
살아남은 이들이 거친 호흡을 내쉬며 바닥에 누웠다.
강수호는 곧장 그들에게 고개 숙여 사과했다.
“죄송합니다! 스승님이 확실하게 보상할 수 있답니다!”
“……어?”
의외의 보상.
앞에서 듣던 그가 ‘블랙’ 길드라고 말하려 했지만…….
“저희는 블…….”
빠각!
“닥쳐!!”
“아악! 왜 때려요! 부마스터님!”
“부마스터?”
“…….”
부마스터라는 말에 주변이 순식간에 조용해진다.
케서린을 알아본 최서현이 그를 가리키며 말했다.
“음? 머리카락 없는 빡빡이 아저씨네? 수호 스승님한테 맞은 사람이 왜 여기에…….”
“……비행기? 스승님한테 맞았다고?”
“응응.”
이건 듣지 못한 이야기였다.
샬런에게서 답을 받을 수 있었다.
“김을 뺏어 먹기에 홧김에 때렸다. 흥! 뺏어간 사람이 잘못이지.”
“네?”
“소란스럽게 하지 않았으니 너무 걱정하지…….”
“이제부터 외출 금지입니다.”
“제자야! 제발!”
알지 못한 내용에 경악했다.
이건 정말 민폐다. 이번만큼은 용서해 줄 수 없을 것 같다.
“평생 나가기 싫으면 계속 매달리세요.”
“정말 너무하구나. 스승님은 너에게 실망했다!”
“운동기구도 압수할까요?”
“…….”
우울한 표정을 지었지만, 봐줄 수는 없었다. 이곳은 그가 살던 마을이 아니니까.
이런 식으로 생활하다가는 모든 국가의 적이 될 수도 있다. 고작 먹는 거로.
“스승님을 위해서예요. 제가 자는 틈에 이런 일을 벌였으니 어쩔 수 없는 조치죠.”
샬런의 관한 문제는 해결된 상태. 그다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머리가 없는 사내 앞에 섰다.
“누구세요? 부마스터라고 하던데…….”
“…….”
블랙 길드라는 이름만 알려졌을 뿐, 대부분은 베일에 싸여 있었다. 알더라도 부마스터만 미국에서 조금 유명한 것뿐.
“그, 그게 말이다…….”
“검은색 복면에 검은색 복장까지. 누가 봐도 암살하러 온 것 같은데? 안 그러냐?”
“…….”
날카로운 양유혁의 대답에 입을 다물었다.
그 대답이 정확했으니까.
“하아!”
잔뜩 한숨을 내쉰 케서린이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지금 상황 자체가 그럴 수밖에 없었으니까.
* * *
“제자야! 이 세상에 하나뿐인 스승을 버리고 가는 게냐?!”
“사고도 적당히 치셔야죠! 블랙 길드의 부마스터를 저런 식으로 만들면 어떻게 합니까?!”
“밖에 나가는 거는…….”
“안 돼요. 호텔 밖에 절대로 나가지 마세요. 운동기구하고 음식은 여기 다 있으니까.”
“힝.”
어쩔 수 없는 결정이었다. 샬런이 움직일수록 사고가 커지고 있었으니까.
“제자가 위험하면 어떻게 하느냐?!”
“주변에 저보다 강한 헌터들 많으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으아아앙!”
그 말에 어린아이처럼 울기 시작한다. 장난감을 빼앗긴 아이를 보는 것 같았다.
“금방 하고 올 테니까 기다리세요. 알겠죠?”
“칫…….”
“금방 갔다 올게요.”
곧장 차를 타고 1시간을 달려 센트럴파크에 도착했다.
“와우…….”
“진짜 예쁘다. 이래서 사람들이 이 공원에 많이 오는구나. 연인들 끼리 데이트하기 딱 좋네.”
이 근처에 사는 사람이라면 거의 매번 들르는 공원. 공원 입구에도 많은 인파가 몰려 있었다.
“sky 길드도 온다며?”
“그 유명한 길드 신입생이 동양인이라는데?”
“이번 신입 헌터는 대부분 한국에서 나왔다는데?”
몇몇 사람은 sky 길드를 기다리고 있었지만…….
“패왕 길드 신입생이 이번에 대박이라고. 마법, 무투, 탱커, 암살까지 하는 거 뉴스에서 봤어?”
“봤지. 말도 안 되는 재능이던데?”
“흐흐흐…….”
대부분의 이야기가 강수호를 향해 있었다.
그 모습에 입꼬리가 절로 승천했다.
“그만 웃고 들어가지?”
“그래~”
계속 웃는 모습에 양유혁이 곧장 공원 안으로 들어갔다.
“수호야! 나중에 끝나면 저기 카페 들어가자.”
“카페?”
“웅! SNS에서 유명한 카페가 있거든! 분위기 좋아서 많이 찾아간 데.”
“그래? 나중에 가면 되지.”
“그럼, 나도…….”
“음? 유혁아, 뭐라고?”
“아니다. 나는 먼저 들어갈게.”
강수호와 함께 약속을 잡은 그녀는 양유혁이 끼어들지 못하도록 날카로운 눈빛을 쏘아냈다.
양유혁은 눈치껏 빠지며 공원 안으로 들어갔다.
“와……. 분수대 진짜 예쁘다.”
센트럴파크 안으로 들어가자 보이는 아름다운 분수대.
더욱 그들을 신기하게 만든 것은…….
“Please say a word about your resolution. (오늘의 각오 한마디 해 주시죠.)”
“What grade do you expect to get? (몇 등급 받을 거라 예상하십니까?)”
미국의 기자들이었다.
언제부터 있었던 것인지 마이크와 카메라를 들이밀며 질문을 뱉어냈다.
“어지러워…….”
“뭔 소리야?”
영어 울렁증이 왔는지 머리를 짚었다.
아직 마나 통역기를 착용하지 않아서 그런 듯했지만.
“I expect to get at least B grade. I will interview the details later. (적어도 B급은 받을 거라 예상합니다. 자세한 건 나중에 인터뷰하겠습니다.)”
“……!!”
“Thank you. (감사합니다.)”
강수호는 익숙한 듯 영어로 답해 주었다.
혹시 몰라 따라온 패왕 길드 비서도 놀랄 만큼의 영어 실력.
“영어를 사용할 수 있었니?”
“아, 넵. 조금요?”
유학이나 공부를 따로 한 건 아니었다. 스승님과 마법을 배울 때 함께 얻었던 것.
“대단하구나.”
분수대 앞으로 향하자 시선들이 모두 강수호에게 향해졌다. 마나 통역기도 없이 영어를 할 수 있는 게 신기했으니까.
그것도 헌터가 말이다.
‘몇 등급 나오려나…….’
강수호는 영어 실력에는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눈치였다.
헌터 세계에서는 제일 중요한 것이 등급이니까.
“도착했습니다. 등급 시험을 치려면 아직 2시간 정도 남았으니까 편히 쉬고 계세요.”
“옙!”
“저는 잠시 기자들과 이야기 나누고 오겠습니다.”
옥상에 도착하자 패왕 길드 비서는 다시 빌딩 안으로 들어갔고.
“우와…….”
“이게 측정기인가 보네.”
“수호야! 우리는 몇 등급으로 나올까?”
그들은 앞에 자리 잡은 등급 측정기를 살펴보기 시작했다.
거대한 마나석에 손을 대는 즉시 재능에 따라 마나석의 색이 짙어진다.
“지금 만지면 안 되겠지?”
“그럼! 기자들 다 올 때 만져야지! 먼저 만지면 재미없잖아.”
지금 당장 자신의 재능을 알아보고 싶었다. 얼마나 강해졌는지 정확한 수치로 확인해 보고 싶었으니까. 하지만 기자들이 오기 전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벤치에 앉아 휴대폰을 들어 엄마한테 전화하려던 그때.
“음? 강수호 헌터?”
“누구…….”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고개가 돌아간다.
위아래로 훑어보며 얼굴을 확인했다.
“s, sky 길드 마스터, 마일런?”
“하하. 안녕하십니까? 저희 길드 제안을 거절하셨다고…….”
그가 누군지는 금방 알 수 있었다.
sky 길드의 마스터, 마일런. 등급 측정 장소에 그가 직접 와 있었다.
“그건 죄송하게 됐습니다. 제가 원하는 조건이 아니라서.”
“그렇군요. 혹시 지금 계약할 수 있나요?”
“지금요?”
“패왕 길드 계약을 파기하고 우리 쪽으로 들어오는 거죠. 파기할 때 나오는 돈은 저희가 다 해결하겠습니다.”
갑작스러운 스카우트에 어안이 벙벙했다. 이렇게 갑작스레 스카우트 제의를 할 줄은 몰랐으니까.
그것도 패왕 길드 소속의 헌터에게.
“강수호 헌터께서 말했던 5시간이란 자유도…….”
“그건 힘들 것 같습니다.”
“예?”
물론 곧바로 거절했다. sky 길드로 가는 건 애초에 원하지 않았으니까.
“왜죠?”
“멀어서요. 서울이면 몰라도 미국은 너무 멀잖아요?”
“…….”
간단한 이유였다. 한국에서부터 미국까지 거리가 너무 멀었으니까.
“제가 스승이 되어서 가르쳐 준다고 해도요?”
“넵.”
“…….”
곧바로 거절할 줄은 몰랐기에 단호한 대답에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군요. 강수호 헌터 스승이 얼마나 강한지 모르겠지만, 나보다는 못할 겁니다.”
“아, 넵. 저는 이만 쉬어야 해서. 들어가세요.”
모든 헌터가 마일런의 제자가 되길 바란다.
하지만 강수호에게는 마일런보다 뛰어난 스승님이 있기에 굳이 그를 스승으로 둘 필요가 없다.
마일런은 잔뜩 인상을 찌푸리며 밖으로 나갔다.
강수호가 아쉬웠긴 했으나, 많은 재능은 나중에 발목을 잡을 테니까.
“2시간 동안 뭐 하지…….”
벤치에 앉아 기다리려니 시간이 가지 않았다.
휴대폰도 호텔에 깜빡 놓고 왔다.
“그러면…….”
시간을 보낼 딱 한 가지 방법이 있었다.
“내일은 수호랑 이거 먹고, 이거 보러 가…….”
“최서현.”
“음? 어! 왜?”
“2시간이나 남았는데 네가 말한 카페 갔다 올래? 마침 목마르기도 하고.”
그녀가 말했던 SNS에 유명한 카페가 생각났다. 2시간 정도 남았으니 딱 맞을 시간.
“정말? 나야 좋지!”
“그럼 나도…….”
“우리끼리 갔다 오자~ 유혁이는 안 가도 된대!”
“아니, 내가 언제…….”
양유혁의 말을 가볍게 무시한 채 이동했다.
역시 솔로는 언제나 슬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