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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절대자들의 선물함이 도착했다-84화 (84/225)

제84화

84. 밥 먹으러 왔다(2)

“오늘 비행하기 좋은 날씨 아니야?”

“구름 한 점도 없어. 이런 날에 비행해야 할 맛이 나지.”

자동운전으로 조종해 놓고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을 쳐다봤다.

비행하기 딱 좋은 날씨. 비도 오지 않으니 이번 비행은 편하게 갈 수 있으리라.

“나는 좀 자지. 그저께 비행이 좀 힘들어서 잠을 한숨도 못 잤거든.”

“그래. 내가 뭔 일이 있으면 깨워 줄게.”

이륙도 끝났기에 착륙까지 더 이상 할 일은 없었다. 자리에 앉아 운행이 잘 되고 있는지 확인하고 있던 그때였다.

“오늘 날씨 참 좋…….”

“기장님!!”

“음? 무슨 일입니까?”

문이 거칠게 열리고 승무원 하나가 숨을 헐떡이며 들어왔다.

“기내에 뭔 일이라도 났습니까? 일단 천천히…….”

그녀를 진성시키고 나서야 그녀가 숨을 헐떡이는 이유를 알 수 있었다.

“혹시 부기장님, 라면 끓일 줄 아십니까?”

“당연하죠. 라면은 레시피만 보고 금방 끓이면 되지 않습니까? 그 쉬운 걸…….”

어이없는 질문. 하지만 승무원이 진지해 보였기에 성의껏 대답해 주었다.

라면 못 끓이는 사람은 없다. 정말 요리에 ‘요’ 자도 모르는 사람이 아닌 이상에야 누구나 가능한 요리.

“그런데 그건 왜 묻습니까? 그것도 비행기 모는 사람한테.”

하지만 라면 끓이는 건 그들의 일이 아니었다. 고객의 만족을 위한 승무원들의 몫.

“그게…….”

“말해 보세요. 할지 말지는 제가 듣고 정해야 할 것 같으니까.”

그래도 예의상 들어 보기는 할 것이다. 정말 큰 일이 일어났을지도 모르는 일이니까.

망설이던 승무원이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꺼냈다.

“혹시 라면 끓일 줄 아시면 같이 좀 끓여 주실 수 있나요?”

“……네?”

자신의 귀가 잘못되었나 싶었다. 라면을 끓여 달라니.

“저도 어이없는 건 아는데 그만큼 일손이 부족해서 그래요!”

“풉! 대식가가 기내에서 라면 먹방이라도 찍고 있습니까? 아니면 BJ 같은 건가? 먹방 BJ.”

어이가 없어서 별거 아닌 듯 물었다.

하지만 승무원의 대답은 뜻밖이었다.

“웃을 때가 아닙니다! 지금도 무서운 속도로 먹어 치우고 있다고요!”

“하하! 도대체 누구인지 봐야 할 것 같습니다. 기장님, 일어나셔야 할 것 같습니다.”

“에잇, 피곤한데.”

어떤 대식가가 먹어대는지 알아보기 위해 기장을 깨우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승무원들의 괜한 오버가 아닐까 생각하며.

일반석을 지나 도착한 프리미엄석.

‘여기인가?’

기내는 라면 냄새가 잔뜩 풍기고 있었다.

“여기라고요?”

“저기…….”

승무원이 가리키는 한 곳.

오버 아니냐고 생각하던 부기장조차 놀랄 만한 일이 일어나고 있었으니까.

“그러니까…….”

“후루루룹!!”

“저 사람이……. 아니, 저 손님이 저렇게 많이 드시고 계신다고요?”

“네…….”

이제야 승무원들이 왜 그를 부르는지 깨달을 수 있었다.

끓이는 속도보다 한참 빠른 먹는 속도. 한 젓가락에 한 그릇이 사라진다.

“몇 그릇이야?”

승무원들이 라면을 가져다주고 있었지만, 그 속도에 맞출 수가 없었다.

“기장님한테 비행을 맡기도록 하고 저도 돕도록 하죠.”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팔을 걷어붙이고 라면 끓이는 걸 돕기로 했다. 쉬운 일일 수 있으나 저 속도로 봐서는 기내에 있는 라면이 모두 바닥나게 생겼다.

“여기 라면 다 나갔어!”

“뭐? 벌써?”

30분간 고군분투하며 라면을 끓이고 있을 때였다.

폭죽이 터진 것처럼 들려오는 소식. 그 소식에 그들의 안색이 저절로 밝아졌다.

“드디어 라면 지옥에서 벗어났어…….”

끝이 없을 것 같던 라면 지옥. 30봉지가 사라지고 나서야 끝날 수 있었다.

아무리 대식가라 하더라도 이 정도면 만족했을 터.

“그럼 나는 이만 가 볼게.”

“고마웠어요! 나중에 제가 밥이라도 한 끼 살게요!”

“좋지.”

부기장은 손을 흔들며 돌아갔다. 이제 자기가 할 일은 없었으니까.

하지만 뭔가 찝찝했다. 팬티를 입지 않은 듯한 기분?

“우와와! 드디어 쉰다~”

“이제 좀 쉬자, 얘들아.”

라면이 없다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승무원이 오기 전까지는 축제 분위기였다. 드디어 반복의 끝이었으니까.

“얘, 얘들아…….”

“음? 왜?”

하지만 그들은 모르고 있었다. 지옥은 아직 시작도 하지 않았다는 것을.

환호가 가득한 방 안으로 들어오는 한 승무원. 덜덜 떨리는 손으로 그들을 향해 입을 열었다.

“이번에는 컵라면 주문이래. 50개.”

“…….”

“그다음은 도시락……. 그냥 기내식에 있는 거 다 주래. 종류별로.”

지옥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 * *

“너무 폭식한 것 같군. 이렇게 먹어 본 것도 얼마 만인지.”

이쑤시개로 이를 쑤시며 임산부보다 큰 배를 두드렸다.

대식가도 못 먹을 양.

“저기 승무원님. 저 라면 한 봉지만 끓여 주실 수 있나요?”

“죄송합니다. 손님. 비행기에 라면이 다 떨어져서 끓여 드릴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예? 배고픈데…….”

너무 많이 먹은 탓에 다른 이들이 먹을 양도 없었다.

그나마 남은 건 뉴욕에 도착하기 전에 준비된 기내식.

“흠. 한식이 맛있군. 자극적이고 매운 게. 서양 음식은 너무 짜고 달기만 해.”

하지만 샬런은 아직 배가 고픈지 입맛을 다셨다.

그 모습을 본 승무원들은 다시 경악했다.

‘또 먹는다고?’

‘괴, 괴물…….’

샬런은 또 다른 의미로 괴물이라 불리고 있었다. 진공청소기처럼 음식들을 빨아들이는 괴물. 그 이명보다 잘 어울리는 이명은 없을 거다.

“운동하고 싶지만, 화장실부터 가는 게 낫겠구나.”

움직임이 제약되는 공간. 아쉽게도 여기서 아령을 들 수는 없었다. 그도 그것이 예의가 아니라는 것쯤은 알고 있었으니까.

“그럼 화장실부터.”

너무 많이 먹어서 그런지 배가 아파 자리에서 일어나 곧장 화장실로 향했다.

“오호. 이동 수단 주제 시설이 꽤 좋구나.”

역시 프리미엄석.

화장실도 평범한 화장실이 아니었다. 금은 아니겠지만, 금칠로 칠해져 부자가 된 기분이 들었다.

“화장실을…….”

변기에 앉아 괄약근에 힘을 주고, 시원하게 대장을 비워 화장실을 나왔다.

“후후. 단백질만 마셔서 제대로 나오지도 않았는데, 시원하군.”

몇만 년간 생활하면서 단백질로 인해 배변 활동을 3일에 한 번밖에 하지 못했으니까.

텅 비워진 대장 덕분에 가벼워진 발걸음으로 화장실을 나왔다.

“시간이 대략 점심시간이니까 점심밥을 먹어야겠지.”

물론 음식 생각은 아직도 지워지지 않았다.

벌써 시간은 점심시간. 자리에 앉아서 점심을 기다리고 있던 그때였다.

“언제쯤 점심이 올까…….”

“네가 내 라면을 다 처먹었냐?”

“음?”

거친 목소리가 귓가에 울린다.

살기를 잔뜩 뿜어대며 샬런이 있던 곳의 문을 연다.

“내가 알기로는 이 공간은 나만 사용할 수 있는 거로 아는데?”

누가 봐도 무리한 행동이었다. 개인의 공간에 갑작스럽게 들어오는 것은.

하지만 그는 신경 쓰지 않은 듯 말했다.

“뭐라는 거야? 너 내가 누군지 몰라?”

“…….”

“진짜 모르는 거야?”

“응.”

알 리가 없었다. 이곳에 온 지 며칠 안 되었으니까.

“크하하하!”

“…….”

대답에 그가 미친 듯이 웃기 시작했다. 자신을 알아보지 못한 사람은 처음이었다.

“정말 나를 모르는 건가?”

“누군데. 근육이 너덜너덜한 게 힘쓰는 놈은 아니겠고. 그럼 마법 사용하냐?”

“그래그래! 보는 눈이 좀 있구만! 곧 있으면 대마법사의 경지에 도달하는 헌터라고!”

육안으로 대충 살펴보자 마나가 흐르는 통로를 확인할 수 있었다. 하지만 샬런에게는 그저 그런 마법사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하암~ 그래서 어쩌라고.”

“뭐?”

마법 따위야 물리로 없애면 되는 일이다. 아마 전 세계인들이 덤벼도 이기지 못할 테니까.

“지금 장난치는 거냐?”

“장난치는 거라니? 지금 이게 장난으로 보이냐?”

“…….”

코를 파며 물음에 대답했다. 샬런은 어느 때보다 진지했다. 음식 이야기가 튀어나왔으니까.

“아, 그리고 라면은 미안하다. 배가 고파서, 그렇게까지 많이 먹을 줄은 몰랐다.”

“…….”

뻔뻔한 행동에 그의 얼굴에 울화가 치밀어 올랐다.

‘미안하다고?’

비행기를 타면 무조건 먹는 라면. 라면이라도 한 입 해야지, 했는데.

“지금 당장 죽고 싶나 보군? 코까지 파는 것 보면.”

“아, 미안. 간지러워서. 이건 좀 이해해 줘라.”

더욱 살기가 피어올랐다.

그렇게 한참 따가운 신경전이 이어질 때쯤.

“저, 저기…….”

“음? 승무원?”

샬런의 좌석에 승무원이 도착했다. 그것도 음식을 들고.

“점심 나왔습니다.”

“오오! 드디어 나왔군.”

기다리고 기다리던 점심.

샬런은 망설임 없이 식탁을 꺼냈다.

한식으로 되어 있는 식사. 숟가락과 젓가락을 준비했다.

“츄르릅.”

플라스틱 뚜껑으로 덮인 음식들을 보자 저절로 입에 침이 고인다.

숟가락을 잡고 먹으려던 그때.

“잠시만! 이거 좀 맛있어 보인다? 내가 먹을게!”

“그게 무슨……!!”

아직 뜯지도 않은 음식을 가져가 입 안에 집어넣었다.

“오호! 좀 짜긴 한데, 맛있긴 맛있네. 역시 한국 음식이라서 그런가?”

“…….”

말릴 새도 없이 입으로 직행한 음식들.

꺼내서 다시 먹을 수도 없는 노릇.

“흐하하하! 어떠냐? 너도 짜증 나고 막 화나지? 나도 그런 기분이었다고!”

“…….”

들고 있던 비빔밥을 잠시 내려놓았다.

방금 원인 모를 그가 한입 씹어 삼킨 반찬은 김. 모든 한국 반찬 중 제일 좋아하는 반찬이었다. 그런 반찬을 상의도 없이 먹은 셈.

“지금……. 지금…….”

비행기 내부에서 방금과는 격이 다른 살기가 내뿜어졌다. 이 모든 게 김 하나 때문이었다.

“네가 무슨 짓을 했는지 알고 있나?”

“당연하지. 나온 김 먹었잖아? 이야, 기가 막히던데? 역시 프리미엄 석은 달라도 뭐가 다르다니까?”

태연하게 내뱉는 말 때문에 샬런은 더욱 뿔이 났다.

“후우……. 후우…….”

하지만 진정했다. 제자의 말에 따르면 여기서는 힘이 다가 아니라 했으니까.

흥분된 마음을 가라앉히고 물었다.

“사과할 생각 없나?”

“사과?”

“그렇다면 이번 한 번만 이 무례를 용서하도록 하겠다.”

그가 말한 물음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기에 유일하게 살 수 있는 해결책을 던져 주었지만.

“뭐라는 거야? 꼰대 같은 말은 또 뭐고?”

“…….”

남자는 그 기회를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발로 뻥~ 걷어차 버렸다.

화도 나지 않았다. 그저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하하!”

“왜? 때리게~?”

라면을 전부 먹은 것에 대한 분이 풀렸는지 막말을 내뱉었다. 지금 상황이 어떻게 되어가는지도 모르고.

그런 그를 향해 샬런이 나지막이 말했다.

“다 토해내라. 그 김을.”

그 말과 동시에 주먹을 휘둘렀다. 단 한 치의 망설임 없이 휘두른 주먹.

“고작 그딴 주먹…….”

손에 마법을 캐스팅해서 피할 생각을 했겠지만.

퍼억!

‘주먹’이라는 말이 그의 마지막 기억이었다.

대충 구석에 그를 버려둔 샬런이 다시 식사를 시작했다.

“여기 김 한 봉지 부탁합니다.”

사라진 김 한 봉지를 더 시키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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