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1화
81. 칼춤(2)
“으아아아! 진짜 다친다고요!”
“이것이 바로 칼춤이다! 우후!!”
이건 정말 미친 짓이다.
맞아 봐야 실력이 는다지만, 목숨까지 바칠 의향은 없었다.
미친 듯이 휘둘러지는 검. 정말 아슬아슬하게 검을 피한다.
“으아악!”
그 짓이 1시간은 넘게 이루어졌다. 상처 하나 나지 않은 게 신기할 정도였다.
하지만 강수호에게는 한계가 존재했다.
“잠시만요! 그만…….”
스걱!
“아악!”
결국, 오른쪽 팔이 얇게 베인다.
그제야 칼춤이 멈추고.
“흠, 순한 맛인데도 2시간도 채 버티지 못하다니. 한참 멀었구나.”
“……1시간 동안 피한 것도 신기하거든요.”
고개를 저으며 강수호를 평가했다. 스승님은 만족스럽지 않았지만, 애초에 1시간 동안 피한 것도 대단했다.
“뭐, 아직은 뉴비니까. 이 정도면 충분하겠지.”
“후우. 이제 좀 쉬고 다른걸…….”
“음? 내가 언제 쉰다고 했나?”
“…….”
하지만 아직 훈련은 시작도 하지 않았다. 스승님의 인벤토리에서 롱소드 길이의 목검 하나가 나왔다.
“목검?”
“검의 근본은 ‘무식함’이지. 1억 번 가로 베기와 1억 번 세로 베기를 한다면 차원 이동해도 좋다.”
“…….”
욕이 튀어나올 뻔했다. 조금 전만 하더라도 칼춤을 췄는데, 이번에는 노가다를 하라니?
“하기 싫어? 그렇다면 24시간 정도 칼춤을…….”
“아니요!!”
그 생각은 ‘칼춤’이란 단어 하나에 사라졌다.
목숨을 걸고 훈련을 할 바에야 노가다나 하는 게 나을 테니까. 노력은 강수호 전문이기도 하고.
“여기가 훈련장이다. 먹을 것은 바로 옆에 있으니 알아서 해 먹거라.”
아힐런의 뒤를 따라가자 도착할 수 있는 거대한 훈련장. 겉으로 보기에는 평범한 훈련장이었지만…….
“배치가…….”
훈련장이 맞나 싶었다.
허수아비 3m 옆에 존재하는 부엌. 마나로 작동하는 가스레인지와 냉장고에는 다양한 재료가 들어 있었다. 극한의 효율성을 추구하기 위해서 부엌 3m 옆에 설치한 간이 화장실.
“…….”
“극한의 효율성을 추구하기 위해서 만들었지. 어때? 이러면 삼일 정도 만에 2억 번 정도 휘두를 수 있겠지?”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부엌 옆에 침대도 있으니 못 잘 걱정도 없었다.
“그럼 우리는 화투 좀 치고 있을게. 그리고 재밌는 거 또 있으면 좀 알려줘~”
“……예.”
아힐런은 몇 마디를 끝으로 훈련장에서 사라졌고, 강수호는 목검을 들고 가로 베기와 세로 베기를 미친 듯이 반복했다.
그가 가르쳐 준 기본자세만으로.
* * *
“TV라는 것은 언제 봐도 질리지 않구나. 왜 바보상자라고 불리는지 알겠어.”
강수호의 기숙사에서 TV를 시청하는 샬런. 주변 물건들이 워낙 신기한 터라 둘러보는 것만으로 잠이 다 깨 버렸다.
똑똑-!
“음? 내 신성한 TV 시청 시간을 방해하는 놈이 누구지?”
한참 TV에 집중하고 있을 때, 문 앞에서 울리는 노크.
누군가 싶어 문을 열자.
“어, 안녕하세요.”
“음? 몸은 괜찮나 보네?”
“괜찮습니다. 저에게 물약을 주셔서 말입니다.”
“그래. 그것보다 무슨 이유로 이곳에 왔지? TV 시청을 방해했으니 대답을 들어봐야겠구나.”
샬런에게 대패한 이구호였다.
물론 그에게 제일 중요한 것은 TV 시청을 방해했다는 점이다. 마침 재밌는 프로가 하고 있었으니까.
“수호한테 등급 측정 날짜 정해졌다고 해서 말하러 왔습니다.”
“아하, 그런 거라면 내가 전해 주도록 하지. 아마 빠르면 내일 돌아올 거라서.”
“내일요?”
내일이란 말에 이구호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의문을 가졌다.
강수호에게 외박한다는 말은 없었으니까.
“혹시…….”
혹시 몰라서 운을 뗐다.
정말 그런 경우가 생길 수도 있을 테니까.
“샬런 님 같은 스승님이 한 분 더 계시나요?”
“나 같은?”
“네.”
어느새 님으로 바뀐 칭호.
샬런은 그 칭호를 당연하다는 듯 생각하며 대답했다.
“세상은 넓다고 하지?”
“그렇지요.”
“내 제자의 스승은 나뿐만이 아니야. 나는 보통 맨손 싸움을 전문적으로 하는 사람이다. 그런데 제자가 주먹만 사용하던가?”
돌려 말했으나 쉽게 뜻을 이해할 수 있었다. 강수호에게 스승님이 한 명만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을.
“그렇다면…….”
“나와 비슷한 실력을 갖춘 괴물들이 있다. 그것도 99명이나.”
“…….”
이런 괴물이 99명이나 더 있다니. 놀라지 않는다면 이상할 거다.
“물론 지금은 제약이 있어서 쉽게 나올 수는 없다. 워낙 복잡한 사정을 가지고 있어서.”
“그렇군요.”
대충 이야기가 끝난 것 같으니 다시 침대에 누워 TV를 시청했다.
“이야기는 다 끝난 것 같으니 이만 가고, 내일 점심쯤에 와라.”
“예.”
이구호를 밖으로 내보내고 TV를 시청하기 시작했다. 마을에서 다시 돌아오려면 꽤나 오랜 시간이 걸릴 테니까.
* * *
“일만삼천오백십사. 일만삼천오백십오…….”
샬런의 생각대로 강수호는 허수아비를 향해 검을 휘두르는 걸 반복했다.
세로 베기와 가로 베기. 고작 두 동작에 불과했지만…….
“잠시 쉬었다 해야겠어.”
사람 하나를 지치게 하는 데는 충분했다.
재생력이 있음에도 고통에 꿈틀거리는 근육.
“밥이라도 먹고 시작해야겠어.”
때마침 허기도 졌기에 힘 빠진 다리를 억지로 움직여 냉장고로 향한다.
“맛있는 게 있는 거로 기억하는데…….”
냉장고에는 헬창 스승님들처럼 전부 프로틴 식단은 아니었다. 닭가슴살과 하얀 가루만이 가득한 그런 냉장고는 아니라는 것.
“와…….”
지금껏 고된 훈련을 한 이유가 드러났다.
진열된 ‘황금 계란’.
“금계의 알인가?”
사제나, 힐러에게 좋은 영양분을 주는 비싼 알. 스승님들이 준 금계의 알을 먹어 봤기에 맛을 잘 알고 있었다.
고작 알이지만.
“츄루룹.”
얼마나 뛰어난 맛인지 먹어 본 사람은 잘 알고 있었으니까. 계란 한두 개 정도면 밥 한 그릇은 뚝딱이라는 걸.
더군다나 그냥 계란이 아닌, 금계(鍂鷄)의 알인 ‘황금 계란’.
“마침 쌀도 있네.”
마침 쌀도 있었다.
그것도 금계와 같이 키우는 벼화(火). 태양의 열을 10배는 잘 흡수해 평범한 쌀보다 2배는 거대한 벼화.
타다닥!
마석으로 작동하는 가스레인지를 켰다.
뜨거운 불이 켜지자 프라이팬을 올려 두고 기름을 두른다. 기름에 열이 오를 때 동안 기다리다가, 물 몇 방울을 떨어트려 온도가 맞는지 확인했다.
촤르륵!
높은 온도까지 달궈진 기름.
소나기가 쏟아지는 소리가 귀를 기분 좋게 만든다.
“이제 황금 계란을 넣어야겠지?”
황금 계란을 꺼내 책상에 살짝 친다.
탁!
황금 계란이 깨지면서 부드러운 계란이 나온다.
“오오!”
곧장 프라이팬에 계란을 던졌다.
촤르륵!!
“크으! 바로 이 소리지!”
물을 보는 듯이 투명한 흰자. 노른자에 영양분이 얼마나 많은지 태양과 같은 색을 띠고 있었다.
탁!
“두 개 더~”
하지만 아직 부족했다. 황금 계란 두 개를 더 깨고 나서야 중불로 조절해 서서히 익힌다.
“그다음은 밥!”
간단하면서도 극한의 맛을 추구하는 계란밥.
재료도 평범하지 않았기에 지금껏 먹어 본 계란밥과 비교도 되지 않을 것이다.
그다음은 계란밥의 주재료가 되는 밥을 지을 생각이다.
“냉장고에 넣어놔도 뜨겁네.”
벼화가 얼마나 뜨거운지 냉장고에 넣어놔도 뜨거운 상태 그대로 유지되어 있었다.
“물은 한가득.”
그 때문에 밥을 지을 때는 무조건 물을 한가득 넣어야 한다. 보통 밥을 지을 때처럼 손바닥이 잠길 정도로 넣다가는 다 태워 먹을 테니까.
“이제 기다리기만 하면 되겠다.”
밥은 10분이면 완성이 될 테고, 계란만 확인하면 된다.
“반숙이 최고지~”
하얗게 다 익은 흰자. 그 사이로 보이는 샛노란 노른자. 아직 다 익지도 않은 상태였지만 꺼냈다. 완숙보다는 반숙을 좋아하니까.
큰 밥그릇을 가져와 밥이 지어질 때 동안 기다린다.
“좋아, 이쯤이면 완성 되어 있겠지.”
10분 정도 지나자 냄비 뚜껑을 열었다.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며 존재감을 자랑하는 밥.
“잘 익었네.”
잘 익은 밥을 퍼서 큰 밥그릇에 옮긴다.
“계란까지 완벽해. 하지만 아직 하나가 남았지.”
모든 것이 완벽했다.
딱 하나 부족한 것이 있다면, 계란밥의 맛을 몇 배는 돋궈 줄 간장이 없다는 것.
“여기 있던 거로 기억하는데…….”
냉장고를 뒤지며 간장을 찾기 시작했다.
식료품 사이를 누비며 찾고 있자.
“어?!”
드디어 간장을 찾을 수 있었다. 지하수에서만 흐른다는 ‘자연 간장’이 담긴 통을.
“찾았다. 이 간장에 뿌려서 먹으면 꿀맛이겠지!!”
말을 행동으로 옮겼다.
간장을 들고 밥 위에 올려진 계란을 향해 뿌렸다.
“크으! 이 냄새!”
코끝을 찌르는 달콤한 간장 냄새. 간장을 옆에 놓아두고 숟가락을 들어 계란밥을 비비기 시작했다.
꿀꺽.
침이 저절로 삼켜지는 비주얼. 꼼꼼하게 비비고 나서 곧장 숟가락으로 퍼서 입 안에 직행했다.
“미친…….”
씹을수록 느껴지는 담백함과 고소함. 이것이 바로 계란밥의 매력이었다.
호불호가 갈리지 않은 음식.
무아지경에 빠져 한참 먹기만을 반복했다.
미친 듯이 계란밥을 흡입하고 나서야.
“후!! 다 먹었다!”
배가 가득 찰 수 있었다.
지금까지 먹어 본 계란밥 중에 가장 만족스러운 계란밥이었다.
배도 찼으니 이제 훈련할 시간.
다시 목검을 잡고 검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일만삼천오백십오부터 시작이었으니까. 일만삼천오백십육. 일만삼천오백십칠.”
그렇게 다시 목검을 잡고 훈련에 집중하고 있던 그때였다.
“뉴비야!!”
“뉴비야!!”
“음?”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들과 시선.
느낌이 싸해 뒤를 돌아보자…….
“음? 스승님들?”
“뉴비야!!”
예비 스승님들이 소리를 지르며 달려오고 있었다. 마치 먹이를 노리는 사냥꾼처럼.
‘분명히 스승은 이번에 잡힌 거로 아는데?’
처음에는 의문이었다. 화투를 하느라 정신 팔려 있을 때, 스승님을 정했으니까.
“어? 스승님?”
하지만 그 생각은 길게 이어지지 못했다.
“미친X들아!! 내가 저놈 스승이라니까! 멈춰!”
“…….”
다급히 달려오는 한 사람, 아힐런이 분명했다.
그들을 보고 예상할 수 있는 한 가지 경우.
‘설마 아직 알리지 않은 건가?’
그건 아닐 거다.
소리를 질러대며 지금도 스승님이란 걸 알리고 있었으니까.
“개소리하지 마! 이번 스승은 내가 될 거라고! 나는 인정할 수 없단 말이다!”
“흐하하하! 뉴비는 내 거야! 내가 아주 잘 가르쳐 줄 거라고!”
“…….”
마하의 속도로 달려오는 그들.
강수호는 생각할 시간도 없이 훈련장을 나와 도망쳤다.
“저한테 왜 그러세요!!”
살기 위해서 도망쳤다. 이번만큼은 충분히 도망칠 수 있다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그건 강수호의 착각에 불과했다.
“이번에는 내가……!”
이상한 장비 하나를 타고 달려오는 한 스승님.
손을 뻗어 잡힐 뻔하던 그때.
“이번 주는 내 차례라고!”
거대한 검격.
산을 갈라낼 만큼 거대한 힘 덕분에 그들에게서 벗어날 수 있었지만…….
“이번 주는 나라고! 이것들아!!”
“…….”
난장판인 건 변함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