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0화
80. 칼춤(1)
“헉!!”
이렇게 숨이 가쁠 정도로 뛴 건 오랜만이다.
스승님이 아직 이곳의 지리를 잘 모르는 덕에 쉽게 따돌릴 수 있었다.
“죽을 뻔했네.”
심호흡하며 가빠진 숨을 진정시켰다.
훈련하는 건 좋다. 강해지는 걸 싫어하는 헌터는 없을 테니까. 문제는 스승님의 훈련 방식이 너무 스파르타식이라는 것. 그것도 폐가 찢어질 정도로.
“절대 잡히면 안 돼. 그럴 바에 한강에 투신…….”
고개를 저으며 혼잣말을 반복하고 있던 그때.
“한강에 투신은 왜 하냐?”
“히익!”
뒤에서 들리는 목소리.
놀라 빠르게 고개를 돌리니.
“아하. 다행이다.”
“왜 이리 놀래? 진정 좀 해라.”
한쪽 입꼬리를 올린 양유혁을 마주할 수 있었다. 스승님이 아닌 거에 감사해야 할 상황.
“물 좀 마시고.”
“땡큐.”
500mL 물을 원샷하고 벅찬 숨을 진정시키며 의자에 앉는다.
“설마 스승님 때문에?”
“그래, 진짜 죽는 줄 알았다니까? 네가 안 겪어봐서 그래. 이구호 님이랑 비교도 안…….”
한참 이야기를 나누고 있던 그때였다.
“…….”
“다시 뉴비라고 불러야겠구나. 내 제자가 이렇게까지 느릴 리는 없으니.”
몸에서 순간적으로 둔화와 마비가 걸린 것 같았다. 머리는 움직이라고 명령하고 있었지만, 몸이 따라주지 않았다.
어느새 강수호 앞까지 다가온 샬런.
“뉴비는 나에게 도망치려면 한참은 멀었단다.”
“아악! 스승님!”
거대한 팔 두 개가 강수호를 구속한다. 어떤 수를 사용해도 빠져나갈 수 없는 단단함 구속감.
“훈련이나 하러 가자꾸나. 할 이야기도 있으니까.”
“……예.”
마지 못해 울상 지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스승님에게 도망칠 방법은 없었으니까.
더군다나 샬런은 양유혁에 대해서 할 말이 있어 보였다.
“그럼 먼저 가 있지. 같이 지옥을 체험하고 싶다면 동행해도 괜찮다.”
“괜찮습니다.”
“그럼 이만 가 보도록 하지.”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자 그들은 사라졌고.
“후우……. 죽는 줄 알았네.”
양유혁이 이마에 맺힌 식은땀을 훔쳤다. 지독한 살기가 샬런에게서 느껴졌으니까.
“잠이나 자야겠어.”
오한이 생겼다.
살기에 대한 영향. 이 오한에 벗어나기 위해서 곧장 방으로 향해 잠을 청했다.
* * *
“좋아. 이 정도면 충분하다. 쉬도록.”
“허---억!!”
참았던 숨을 내쉬고 뱉었다.
3시간이 넘어간 훈련. 지금까지 이런 훈련은 없었다. 정말 힘들어 죽는 줄 알았다.
[강수호]
레벨 : Lv. 48
체력 – 159 민첩 – 140 힘 – 160 마나 – 143 감각 – 143
스탯 포인트 : 120
재능 : 차원 이동(SSS급)
스킬 : [트롤의 재생력(S급) : Lv. 5], [절대정신 방벽(S급) : Lv. 5], [미스릴의 신체(B급) : Lv. MAX], [괴물 같은 체력(C급) : Lv. MAX], [2서클 마법(C+급) : Lv. 8], [황금 노움들의 왕(SS급) : Lv. MAX], [음속의 발걸음(B급) : Lv. 6]
-체력 스탯 2 상승했습니다.
-힘 스탯 1 상승했습니다.
-민첩 스탯 2 상승했습니다.
-감각 스탯 1 상승했습니다.
“그, 그래도 훈련 효과는 확실하네요.”
“다이어트도 극한의 효율을 추구하지 않나? 내가 한 번 만들어 보았지. 3시간 만에 스탯 올리는 방법.”
“…….”
비유적 표현으로 힘들어 죽는다는 게 아니었다. 정말 ‘죽을’ 뻔했다.
‘옥상에서 떨어지는 훈련이 세상에 어디 있냐고…….’
헌터라고 무적은 아니다. 아파트 25층 정도 높이에서 떨어지면 죽는다.
‘여기 높이는 25층의 2~3배잖아.’
아파트에서 떨어진 것도 아니었다. 패왕 길드 본사.
그뿐만 아니라 떨어지고 난 후에는 자기 자신의 힘으로 다시 올라가야 했다.
‘다시는 하기 싫어…….’
강해질 수 있다 한들 목숨을 걸기는 싫었다. 지금 이 정도의 무력으로도 신입 헌터 중에서도 강한 축에 속했으니까.
“마셔라.”
“응? 물약은 원래 가지고 있어요?”
“인벤토리에 넘쳐나는 게 최상급 물약이다. 어차피 쓰지도 않는데.”
“아하.”
인벤토리 안은 멀쩡한가 보다. 저런 말도 안 되는 물약들이 계속 쏟아지는 것 보면.
“그것보다…….”
한참을 쉬다가 샬런이 먼저 입을 열었다. 꽤나 중요한 이야기를 하려는 듯.
강수호도 눈치채고 부동자세를 취했다.
“양유혁이란 놈은 뭐지?”
“……방금 보신 놈 말씀하신 거죠?”
“그럼 누구를 말하겠냐. 짙은 농도의 마기가 느껴지는데.”
“…….”
아무리 기운을 감췄다고 한들 스승님은 느낀 듯하다. 스승님이 느끼지 못할 만큼 잘 감춰지지는 않았으니까.
“설명하자면…….”
처음부터 하나하나 설명하기 시작했다.
자신도 마인이란 걸 몰랐다는 것.
하지만 샬런이 바라던 대답은 아니었다.
“진짜 안 지 일주일도 안…….”
“아니, 내가 바라던 대답은 그게 아니었다.”
“예?”
바라던 대답이 아니었다니? 샬런의 질문을 듣기 전에는 무슨 소리인지 이해하지 못했지만…….
“그 녀석은 마인이 아니야.”
“……예?”
마인이 아니라는 말에 고개가 갸웃거렸다.
천마의 아들. 그가 마인이 아니라면 무엇인가 말인가.
“그러면 뭐예요? 외계인이라도 되는 건가……?”
“그건 나도 모른다. 마인과 인간이 부부를 맺고 아이를 낳는 경우는 없었으니까.”
“…….”
하지만 그 생각은 샬런의 말에 씻은 듯이 사라졌다.
악마의 피를 마신 마인과 평범한 인간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 마인이라 부르기도 뭐하고 인간이라 부르기도 뭐한 생명체.
“그러면 어떻게 하시게요?”
물론 그것이 양유혁의 잘못은 아니었다. 애초에 마기를 가지고 태어난 것이니까.
당연히 샬런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에.
“큰일을 저지르지 않는 이상, 죽이지는 않을 거다. 어차피 나에게는 마기를 가진 이들에게는 힘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니.”
죽이지 않을 것이다.
더군다나 지금 상황에서 더 중요한 게 있었다.
“너의 마스터 말을 들어 보니 데뷔전이 끝나면 등급 측정을 한다고 하더구나?”
“아, 넵. 무슨 등급에 따라서 연봉이나, 힘이 달라지니까요.”
등급 측정. 데뷔전보다 중요한 날이다. 등급에 따라 대우, 연봉, 이미지가 완전히 바뀌는 날이니까.
특히 대부분의 헌터들이 강수호의 등급을 기대하고 있었다. 새로운 영웅의 탄생이 아니냐면서.
“그런데 어디서 등급 측정한다고 하신대요?”
제일 궁금한 점은 어디서 등급 측정을 하냐는 거다. 많은 인재를 배출한 등급 측정 장소일수록 더 주목받을 수 있을 테니까.
“내가 듣기로는 미국이라던데?”
“미국요?”
중국 다음으로 실력 좋은 헌터들이 많은 미국. 그곳에서 등급 측정하는 것이 모든 헌터의 바람일 것이다.
그 바람을 드디어 이루다니.
“진짜요! 그럼 어디서 한대요? 막 미국인데 촌 동네 같은 데서 하면 안 되는데?!”
그렇다고 해서 촌 동네는 안 된다. 강수호에게 관심 없는 사람들은 굳이 촌 동네까지 따라와서 볼 필요가 없었으니까.
다행히도 강수호가 우려한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위치는 뉴욕이라는데?”
“뉴욕?!”
뉴욕.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열심히 노력해야겠죠.”
등급 심사 전에 계속해서 훈련해야 한다.
말도 안 될 정도로 강한 스승님이 있다 해서 저절로 강해지는 것은 아니다. 노력해야 목표점에 도달할 수 있으니까.
“그럼 다시 옥상에서…….”
“아니요!! 그건 절대 안 돼요. 고소공포증 생길 것 같단 말이에요.”
그렇다고 해서 샬런의 새 방식으로는 훈련하기 싫었다.
아니, 못하겠다. 두 번 정도 더 했다가는 떨어져 죽을 수도 있을 테니까. 물론 그가 받아 주긴 하지만…….
‘그래도 싫어.’
그래도 싫긴 마찬가지였다.
“저는 먼저 가 볼 테니까! 스승님은 제 방에 가서 씻고 쉬고 계세요! 저는 차원 이동해서 갔다 올 테니까!”
“그래. 빨리 돌아오거라.”
“넵!”
어느새 강수호는 차원 이동을 사용해 사라졌고.
“잠이나 자야겠군. 하암~”
그는 늘어지게 하품하며 강수호의 방을 향해 나아갔다.
‘다시는 안 해.’
어느새 차원 이동을 마친 강수호. 아무리 그라도 공포증 생길 수 있는 훈련은 하고 싶지 않았다.
마을 주변을 돌아다니며 스승님을 찾기 시작했다.
“그런데…….”
하지만 아무리 마을을 걸어봐도 스승님들은 보이지 않았다.
샬런처럼 모두 지구로 온 걸까 생각했지만…….
“…….”
“드디어 잡았다. 드디어…….”
뒤에서 갑작스레 느껴지는 이질적인 기운. 굳은살 박인 손으로 수호의 어깨를 잡는 한 스승님.
“누구…….”
“으하하하! 드디어 내가 뉴비를 잡았구나! 오랜만이다, 뉴비야!”
“어?!”
고개를 돌아보자 손의 주인이 누구인지 금방 알 수 있었다.
“양아치?!”
“스승님 보고 양아치라니! 이왕이면 아힐런 스승님이라고 불러 주면 고맙겠구나.”
처음 이곳에 왔을 때, 목에 날 선 검을 댄 남자, 아힐런. 인상이 강렬했기에 얼굴이 기억에 남아 있었다.
“그런데 다들 어디 가셨어요? 이 시간이면 다들 제가 들고 온 화투 하고 있을 시간인데.”
그것보다 문제는 따로 있었다. 아힐런 빼고 다른 스승님들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
“아, 그놈들? 네가 말한 대로 화투 하고 있을걸?”
“아하…….”
샬런이 살아 있다는 걸 축하하는 줄 알았다.
그 생각은 의미가 없어지고.
“그것보다 오늘은 내가 스승이네!”
“그렇네요? 이번에는 안 도망가도 되겠어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번에는 힘들게 도망 다니지 않아도 되니까. 스승님들끼리 싸울 필요도 없고.
“음? 무슨 소리야?”
“예?”
아힐런은 강수호의 말에 고개를 갸웃거린다. 어떻게 그런 식으로 생각할 수 있냐는 눈빛은 덤이었다.
“일주일 훈련이 아마 도망치는 게 전부일걸? 그다음은 노가다고.”
“…….”
“많이 힘들 거야.”
잘못 들었는가 싶어 양쪽 귀를 후볐다. 이물질을 모두 제거하고 나서야 다시 물었지만…….
“진짜야. 도망치는 게 전부일 수도?”
“…….”
대답에는 변함이 없었다.
도대체 뭐로부터 도망치는 건지 궁금했다. 거대한 포탑 하나 만들어서 도망쳐 보라는 것도 아닐 거고.
‘그러면…….’
딱 하나 남은 것이 있었다.
닿는다면 99.9% 피가 쏟아지는 위험한 무기.
“검한테 도망치라는 건 아니겠죠?”
아니기만을 빌었다. 그럴 바에야 100층 높이의 옥상에서 떨어지는 게 나을 테니까.
스르릉.
“…….”
아힐런이 침묵하며 검을 꺼냈다.
대략 예상이 간다.
날 선 검을 꺼내어 강수호의 얼굴 바로 앞에 들이밀었다.
“이번 훈련은 내 검에서 도망치는 거다. 처음에는 순한 맛으로 가도록 하지.”
“저기…….”
뭔가 말할 새도 없이 검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아힐런에게는 순한 맛이겠지만.
“검을 잡으려면 검에 맞아봐야지!”
“으아악!”
강수호에게 이보다 매운맛은 없을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