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9화
79. 나랑 한판 뜨실?(2)
“…….”
“우걱! 우걱!”
빠르게 음식을 씹고 삼켜낸다. 어찌나 빠른지 최서현은 음식에 손도 대지 못할 정도였다.
“빨리 만들어! 크림 파스타 5인분! 그리고 짜장면 3인…….”
“단체 손님이라도 왔습니까? 겉으로 보면 엄청 한가해 보이는데.”
주방은 그들 때문에 한바탕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파스타 면을 삶고 춘장을 푼 신입이 궁금함에 물었다. 이렇게까지 바쁜 시간은 난생처음이었으니까.
“그런 게 아니야.”
“예? 이 정도 양이면 단체 손님이 확실하신데 그게 아니라뇨?”
“그것보다 더한 손님들이 오셨지. 단체 손님을 뛰어넘는 손님들.”
주방장의 말에 고개만 갸웃거릴 뿐이었다.
이 정도의 양을 먹는데 단체 손님이 아니라니.
‘잠시 시간을 내서…….’
음식을 하고 1분 정도 시간이 남았다. 그 덕분에 손님을 확인하기 위해 주방을 나설 수 있었다.
‘도대체 누가 이렇게 먹는 거지? 먹방 BJ라도 되는 건가?’
유명한 사람일 수도 있을 테니까. 이 정도로 먹는 대식가라면.
“누구…….”
접시가 가득 담긴 테이블을 확인한 순간.
“세 명?”
입을 다물지 못했다.
테이블에 존재하는 몇 없는 사람들.
그뿐만이 아니라, 세 명 중 한 명은 음식에 손도 대지 않고 있었다.
‘두 명만 먹고 있어?’
오직 두 사람만이 먹방 마라톤을 펼치고 있을 뿐이었다.
“신입! 빨리 와서 요리해야지! 뭐 하는 거야?”
“죄송합니다! 금방 갑니다!”
“신입 주제에 빠져 가지고! 빨리 들어가!”
진공청소기처럼 먹는 탓에 잠시 넋을 놓고 있었다.
신입 요리사가 다시 요리하기 위해 웍을 잡고 불을 켰고.
“후루룹!”
“크으!”
“…….”
그 둘은 계속해서 입 안에 음식을 집어넣었다.
* * *
“우욱. 후우. 너무 많이 먹었어요.”
“나도 배부르구나. 이렇게까지 많이 먹는 적은 거의 처음이군.”
빵빵하게 커진 배.
오늘 이 식당에서 전 세계를 여행했다.
“스파게티, 중국식 짜장면, 꽁빠오지띵, 스시, 비빔밥…….”
한 나라의 대표적인 음식은 다 섭취해 배가 터질 지경이다.
음식을 천천히 소화하며 간신히 입을 열었다.
“후우. 넌 안 먹던데, 배 안 고파?”
“어, 어? 어……. 갑자기 배가 안 고프네.”
그와 반대로 최서현은 평온한 표정이었다. 음식에 손도 대지 않았으니.
“너 그러다가 쓰러진다? 사람은 자고로 많이 먹어야 건강해진다고!”
“그래…….”
‘내가 이딴 놈을 왜…….’라는 중얼거림이 들렸지만, 소화시키느라 강수호는 듣지 못했다.
그렇게 30분 정도를 소화시키자.
“저는 스승님들에게 말 좀 전하고 올게요.”
“그래, 그래. 잘 살아 있다고 말해 줘라. 그놈은 99.9% 질질 짜고 있을 테니까.”
“넵!”
강수호가 먼저 기숙사 방으로 올라갔다. 여기서 차원 이동을 사용할 수는 없었으니까.
“그럼 나는 후식이나 먹어 볼까. 자네도 먹을 텐가?”
“저도 올라가 볼게요.”
“그래.”
최서현도 강수호 뒤를 따라 기숙사 방으로 올라갔다.
“접시 치우겠습니다.”
디저트를 들고 오자 가득 쌓인 빈 접시들이 치워지고.
“이쯤이면 오고 있을 텐데…….”
아이스크림을 퍼먹으며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30분 전부터 시선이 느껴지고 있었으니까.
띠링-!
“왔나 보네.”
얼마 지나지 않아 누군가를 태운 엘리베이터가 식당에 도착했다. 한 번 느껴본 인기척이기에 누군지 쉽게 알아낼 수 있었다.
“반갑습니다. 패왕 길드의 마스터, 이구호라고 합니다.”
“오호. 네가 내 제자가 다니는 길드의 마스터?”
“예, 그렇습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나타난 건 이구호뿐만이 아니었다.
“반갑습니다. 모자란 마스터를 보좌하는 부마스터, 신하림이라고 합니다.”
“흠…….”
패왕 길드의 부마스터, 신하림 또한 샬런 앞에 와 있었다.
“강수호 제자의 스승, 샬런이라고 한다.”
“다시 한번 반갑습니다.”
내민 손을 망설임 없이 잡는다.
우두둑!
“자랑하라고 강해진 건 아닐 텐데?”
“으윽.”
잡았던 이구호의 손이 처참히 우그러진다.
옆에 있던 신하림조차 놀랄 정도의 괴력.
“마스터를……!”
“그만.”
숨어 있었던 길드원들이 각자 무기를 꺼내 들었다. 하지만 그녀는 그들을 말렸다. 말리지 않았더라면 머리가 터진 채로 죽었을 테니까.
“죽기 싫으면 가만히 있어.”
“예?”
“우리보다 강하니까.”
“…….”
괴물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자신들이 생각하는 괴물과는 비교조차 되지 않았으니까.
“다들 들어가 있어.”
“……넵.”
이구호와는 다르게 상황판단이 항상 빠른 신하림의 조언을 듣지 않은 길드원은 없었다.
“모두 간 것 같으니 마스터라는 작자는 이리 와 보거라.”
샬런은 오른쪽 손이 완전히 접힌 이구호를 불렀다.
천천히 다가오는 그에게 인벤토리에서 물약 하나를 꺼내어 던져 주었다.
“필요 없으니 쓰든가 말든가.”
“물약?”
겉으로 보기에는 맑기만 한 체력 물약.
하지만 상태창을 열었을 때는.
“허헙!”
“뭘 그렇게까지 놀라고 그러지?”
“아닙니다…….”
숨을 들이쉴 수밖에 없었다.
모두가 원하고 바라던 SSS급 최상급 물약. 그것을 쓰레기 던지듯 줘 버렸으니까.
“설마?”
부러진 손목에 물약을 뿌리던 도중 생각나는 한 장면.
“혹시 당신이 강남 경매장의 물약을 만든 연금술사입니까?”
“아, 그거.”
알고 있다는 듯이 말했지만, 샬런은 아니었다.
“나는 아니야.”
“그러면……!”
“우리 제자도 아니고.”
물약에 관해서 했던 말이 있었기에 당연히 모른 척해 준다.
“그렇군요.”
제자와 스승 간의 약속은 절대 어길 수 없다. 어차피 귀한 아이템도 아니고.
“잘 아는 연금술사 할매가 만들어 준 거거든. 실패용이니까 마음껏 사용해도 돼.”
“…….”
어디서도 구하지 못하는 물약을 실패한 물약이라니? 그들로서는 이해할 수 없었다.
“흠흠. 하여튼 여기까지 온 이유가 있을 텐데? 힘 자랑이나 하자고 여기 온 건 아닐 테고…….”
대화의 끝으로 곧장 본론으로 들어갔다. 그들이 굳이 여기까지 온 이유가 있었을 터.
잠시 고민하던 이구호가 손을 내밀었다.
“한 판 어떱니까? 실력이 궁금해서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서 말이죠.”
“…….”
처음에는 뭔 소리인가 했다. ‘제자가 말하던 피자 한 판?’ 이런 농담을 생각하고 있자…….
“싸움 한판이요.”
“싸우자고?”
이구호는 주먹을 맞대길 원했다. 한국에서 자신을 힘으로 이긴 헌터는 딱 한 명밖에 없었으니까.
“내가 얻는 건 뭐지?”
하지만 이 싸움에서 샬런이 얻을 수 있는 건 없었다.
이런 일에는 능숙하다. 마을에 화폐가 생기고 난 후부터 뛰어난 언변가들에게 낚이지 않기 위해서 머리도 단련됐기 때문이다.
“당신의 제자가 더 큰물에서 놀 수 있게 해 주겠습니다.”
“……더 큰물이라?”
해외로 보내겠다는 거다.
좋은 거래에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일어난다.
“좋다. 지금 당장 붙지. 마침 몸이 근질근질했으니까.”
* * *
“……졸리다.”
맛있는 걸 먹고 곧장 침대에 눕자 스르르 눈이 감긴다. 차원 이동으로 스승님들에게 전달도 했고.
“이제 좀 쉬어 볼까나.”
데뷔전을 치르고, 마인도 만난 터라 몸이 너무 피곤하다.
배도 부르니 눈을 감으려던 그때…….
쾅-!!
“놀라라.”
지진이 난 듯 길드 본사가 갑자기 흔들리기 시작했다.
뭔가 싶어 방에서 나오자.
“뭐야? 마스터랑 부마스터랑 대련하고 있는 거 아니야?”
“아니면 지진이라도 났겠지. 저번에는 이 정도로 충격이 심하지는 않았잖아?”
“지진인가?”
길드원들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갑작스럽게 흔들리는 건물. 놀라지 않는다면 이상할 거다.
“오. 신입. 오늘 잘 봤다.”
“별거 아니에요.”
“별거 아니라니! 나 때는 기사 1면에도 못 나갔어!”
조금씩 떨림이 진정되자 선배들이 TV에 나온 신입 헌터에 대해서 떠들었다.
“그것보다 너 좋아한다는 sky 길드 신입 헌터랑은 어떻게 됐어?”
“아, 그거요?”
민감한 질문도 있었다.
최서현이 뒤에서 따가운 시선을 보냈지만, 애써 무시한 채 말했다.
“너무 멀어서 그냥 거절했어요.”
“헐? 진짜? 싸가지는 좀 없지만, 다 괜찮던데?”
강수호의 말에 순간적으로 따가운 시선이 사라진다. 던전에서부터 이수현을 그렇게 견제하더니…….
어쨌든 이 진동을 일으킨 주인을 알아야 한다.
쾅-!
쾅-!
“부마스터랑 할 때도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설마?”
조금은 예상되는 한 사람이 있었다.
“스승님인가?”
식당을 갔다가 다시 기숙사로 돌아오는데 대략 30분이 지났다. 아무리 늦어도 이 시간이면 올 텐데.
“가 봐야겠네.”
2층에 있을 거다. 그 층에 주먹을 맞댈 수 있는 특수한 경기장이 있으니까.
“나도 같이 가. 너희 스승님이 얼마나 강한지 궁금하기도 하고.”
“그래? 같이 가자.”
2층을 누르자 곧장 이동하는 엘리베이터.
쾅-!
쾅-!
내려가고 있음에도 계속되는 진동에 확신할 수 있었다.
‘정말 싸우는 거잖아?’
건물 전체를 뒤흔드는 진동은 쉽게 만들어 낼 수 없다. 스승님이 아닌 이상에야.
‘아마 스승님이 봐주고 있겠지?’
패왕 길드 마스터, 이구호. 그가 아무리 강하고 한국 1위 헌터라 하더라도 스승님은 다르다.
‘너무 압도적으로 이기지만 않으면 되는데.’
오히려 이구호에 대한 걱정으로 가득한 채 엘리베이터에서 내렸다.
쾅-!!
쾅-!!
“제대로 일어 서 있을 수가 없잖아?”
“나 잡아.”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마자 끝이 없는 진동이 그들을 괴롭힌다. 물론 강수호에게는 이 상황이 너무 익숙하기만 하지만.
‘이 정도 진동쯤이야…….’
할튼과 샬런의 스승님일 때, 매일 겪어온 진동. 이 정도쯤이야 밥풀 하나 안 흘리고 서 있을 수 있다.
최서현의 어깨를 잡고 점점 강해지는 진동을 무시하고 이동했다.
“이쯤인데…….”
난장판이 된 2층 훈련장.
길드원들은 어디 갔는지 단 한 사람도 보이지 않았다.
“찾았다.”
“저기?”
조금 더 걷자 헌터 경기장이 보인다. S급 헌터의 공격도 모두 흡수할 수 있는 최첨단 경기장이…….
“다 부서졌잖아?”
“…….”
어떤 충격에도 버티는 최첨단 과학 기술로 만들어 낸 경기장이 처참히 박살 나 있었다.
하지만 크게 놀라지는 않았다.
‘오리하르콘을 한 손으로 부수던 사람인데…….’
훈련장 안으로 발을 들였다.
쾅-!!
쾅-!!
점점 강해지는 진동.
부서진 경기장 안에 조금씩 보이는 익숙한 이들.
“잠시만요! 경기를 중지하겠습니다!”
“시시하군.”
“…….”
“커헉! 쿨럭!”
쓰러진 채 피를 토하는 이구호. 다시 한번 휘두르려는 샬런을 말리는 신하림.
그녀의 눈동자에 처음으로 ‘두려움’이란 감정이 깃들어 있었다. 이런 무력은 단 한 번도 느껴본 적 없었으니까.
‘그놈보다 강하다.’
세계 최정상에 속해 있는 1위 헌터. 그런 괴물보다 더한 괴물이 있다니.
“에라이, 멍청한 놈아!”
“커헉! 미안! 아야!”
물약을 주는 것과 동시에 주먹을 휘두른다. 솔직히 맞아도 싸다. 죽을 뻔했는데 포기도 하지 않다니.
“그럼 이만 가 보도록 하지.”
“예?”
“제자의 훈련이 있어서.”
“…….”
사라지는 진동.
그와 동시에.
“하하하하.”
“왜 이렇게 웃어? 스승님 아니셔?”
“그래서 웃는 거야.”
“왜?”
“도망쳐야 하니까!”
자신을 바라보는 샬런의 눈길에 미친 듯이 도망치기 시작했다. 어떻게든 그에게서 벗어나야 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