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2화
72. 데뷔전(2)
“제가 듣기로는 다양한 재능이 있다고 들었는데, 이번 경기에서는 어떤 재능을 보여 주실 건가요?”
“수호 길드 마스터의 아들로서 뛰어난 재능을 가지신 거로 들었습니다. 하지만 양유혁 군의 재능은 아직 주변에 잘 밝혀지지 않은 거로 알고 있습니다. 혹시 오늘 이 자리에서…….”
“…….”
귀가 뻥 뚫릴 정도의 질문 폭탄. 이대로 가다가는 질문 폭포에 파묻힐 것이다.
“죄송하지만 질문이 너무 많은 관계로 하나만 받도록 하겠습니다.”
양유혁이 익숙한 듯 기자들을 마기로 밀어내며 말을 전했다.
“이게 재능인가?”
“이렇게 간단히?”
기자들은 그것이 재능인 줄 알았는지 감탄만 반복할 뿐이었다.
“아, 그러면 제가 질문해도 되겠습니까?”
“그쪽 기자분 성함이 어떻게 되시죠?”
감탄의 틈에 빠져나와 먼저 질문을 건네는 한 기자.
“MVS 기자, 유인하라고 합니다!”
“좋습니다.”
처음 먼저 마이크와 카메라를 들이대던 기자였다.
강수호는 당연하다는 듯 질문권을 주었다. 그러자 얼마 지나지 않아 들어오는 세세한 질문.
“강수호 헌터께서는 아카데미에 다닐 때, 그리 뛰어난 헌터가 아니라 들었습니다.”
“네, 맞습니다.”
“3학년 때 재각성의 기회를 얻고 강해졌다 생각합니까?”
“흠…….”
철저히 준비했는지 아직 밝혀지지 않은 질문이 쏟아졌다.
강수호는 잠시 고민하다 입을 열었다.
“그것만은 아니었습니다.”
“그것만이 아니었다고요?”
“네, 재각성이란 혜택은 분명히 저를 강하게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강함’을 키워준 분들은 제 스승님들입니다.”
“……!!”
헌터계에서 뛰어난 스승은 복권에 당첨되는 것만큼 어려웠다. 그렇기에 궁금했다. 한국에서 주목받는 신입 헌터의 스승이 누구인지.
‘설마, 이구호 헌터?’
언론에 잘 나타나지 않아 얼굴은 모르지만, 이름은 모두가 알고 있었다.
패왕 길드 마스터. 그가 강수호의 스승이라 생각했지만…….
“강수호 헌터님께서 가입한 패왕 길드 마스터님이 스승님입니까?”
“아니요.”
그 사람은 아니었다. 오히려 더 강한 사람이지.
“그럼 누구…….”
“질문은 이것으로 마무리하겠습니다. 이만 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네?”
질문은 모두 끝났다.
더 이상 답해 줄 이유는 없었다. 지금은 몸을 풀고 계획을 짜야 할 시간이니까.
이 정도 시간을 내준 것만 하더라도 엄청난 배려였다.
“잠시만요! 스승님이란 분의 성함이 어떻게 되십니까? S급 헌터 랭킹이 얼마인지…….”
“음속의 발걸음.”
더 이상의 질문은 받지 않는다.
음속의 발걸음을 이용하여 기자들 사이를 벗어난다.
“뭐야?! 강수호 헌터 어디 가셨어?”
“무슨 속도가…….”
암살자만이 가진 스킬이라 그런지 속도가 장난 아니다. 5일밖에 안 배운 것 같은데.
“더럽게 빠르네. 그것보다 나도 궁금하다. 네 스승님은 도대체 누구냐?”
몰래 빠져나온 양유혁도 궁금한지 질문을 던졌다.
아무렇지 않게 내뱉는 스승님이란 단어.
이제는 밝힐 때도 됐다 생각했나 보다.
“몰라.”
“안 가르쳐 줄 거야?”
“아마, 평생?”
물론 가르쳐 줄 생각은 없다. 무슨 일이 없는 이상에야 무덤까지 안고 갈 비밀이 될 것이다.
“그것보다 이제 계획 좀 세워야지. 안 그래도 던전에 들어가면 바쁠 텐데.”
스승님 밝히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었다. 지금 상황의 문제 해결이 가장 중요하다.
이번에 sky 길드에서 트리플 재능 헌터가 나온 탓에 쉽게 갈 분위기는 아니었다. 어느 때보다 많은 준비를 해야 했다.
“일단 준비운동부터 시작하고…….”
몸을 풀며 힘을 테스트하고 있던 그때.
“애들아!!”
익숙한 목소리가 귓가를 때린다.
고개를 돌려 막사에 들어온 그녀를 쳐다보며 웃음 지으며 말했다.
“최서현?”
“미안, 오늘 집안에 일이 있어서. 좀 늦었네.”
“괜찮아. 방금 몸 풀고 있었어.”
큰일은 아닌가 보다. 얼굴이 저렇게 밝으니.
전투복으로 갈아입은 그녀와 함께 몸을 풀고, 세 명의 포지션을 어떻게 잡을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 * *
“이번에 sky 길드와 패왕 길드가 데뷔전을 치른다고 들었는데. 확실한가?”
“예, 확실합니다.”
“흠…….”
모닥불이 타는 소리와 함께 장작이 까맣게 변한다.
소파에 편안히 앉은 한 남자. 와인 잔의 붉은 액체를 한껏 마신 그가 턱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너는 어떻게 하고 싶냐?”
“……저야 이번 피의 축제가 실패했으니 다시 벌이는 게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너도 그렇지? ‘내일 밤’이라고 거짓으로 말했는데도 낚인 놈이 단 한 명도 없었어. 아들한테도 일부러 이상한 정보를 흘렸는데.”
한쪽 입꼬리를 비틀어 올렸다.
누군가 비하하는 행동이 아니었다. 아쉬움과 지금껏 고통이 담긴 짧은 웃음.
“그럼 그렇게 하도록 하지. 간부 두 놈만 보내면 될 거야.”
“알겠습니다. 그런데…….”
토 한 번 달지 않던 부하가 그의 대답에 입을 열었다.
뭔가 싶어 고개를 돌리자.
“아드님께서는 괜찮으신지…….”
“아, 그놈.”
이제야 기억이 났는지 눈썹을 위로 올렸다.
“그렇지, 그놈이 있었지.”
힘없이 웃었다.
되도록이면 이번 일은 저지르기 싫었다. 아무리 그라도 매번 피를 탐하고 싶은 건 아니었으니까. 더군다나 선짓국으로도 평생을 살 수 있었다.
“괜찮으십니까?”
“어쩔 수 없지. 잘못하면 오해를 살 테니까.”
쌓아 놓은 신뢰도가 무너질 수 있었다. 그래서는 안 된다. 원하던 복수를 위해서는.
“그대로 시작하라고 해.”
“알겠습니다. C급 던전이라고 하니 지금 당장 실행하도록 하죠.”
휴대폰을 꺼내 든 부하는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그는 인기척도 없이 사라진 그를 뒤로하고 액자에 걸친 사진 한 장을 들었다.
“이제 오지 못하겠지.”
아름답게 미소 지은 여인. 그리고 그녀와 손을 잡은 그. 그 사이에 존재하는 어린 시절의 양유혁.
지금 얼굴과는 다르게 그녀를 닮아 해맑게 미소 짓고 있었다.
꽃의 배경으로 소박한 모습들도 화려하게 비추어 준다.
“다시 왔으면 좋겠군.”
노랑, 파랑, 빨강, 보라색의 다양한 색이 즐비한 꽃밭.
다시 한번 그곳을 가고 싶었다. 해맑게 웃는 저 미소를 다시 한번 보고 싶었다.
“너무 늦은 것 같군.”
하지만 그러기에는 시간이 너무 지나 버렸다. 되돌릴 수 없는 마침표에 도달해 버렸다.
그 끝에는 지독한 복수만이 남아 있을 뿐.
“지겨운 하루를 보내야겠군.”
액자를 놓은 그가 2층 침대로 향했다.
그리 넓지 않은 공간. 마인의 왕치고는 소박한 공간이다.
그는 오늘도 하루를 잊기 위해 침대에서 곧장 잠을 청했다. 오늘은 평생 잠을 잘 수 있길 기도하며.
* * *
“흠…….”
“뭘 그리 고민해?”
“여기 부분 있잖아. 뭔가 이상하지 않아?”
강수호의 물음에 최서현이 던전 지도 한 부분을 가리켰다.
이번 던전은 골렘형 던전. 실력과 경험을 확인하기에는 좋은 몬스터였다. 문제는 바로 원인을 알 수 없는 강이 하나 있다는 것.
“이거 위험한 거 아닐까?”
“……그러게. 그래도 확인은 했겠지. 암석 골렘이 있는 곳에 강이 있다는 건 이상하잖아. 잘 조사했을 거야.”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다.
클리어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어떻게, 얼마나 효율적으로 클리어했는지가 문제지.
“대략 설명은 다 끝났어. 숙소 안에서도 설명해 줬으니까 다 외워 뒀지?”
“그럼.”
강수호의 대답에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계획은 간단했다. 양유혁이 골렘의 움직임을 방해하고, 최서현이 겉면을 부수고 마지막은 강수호가 핵을 파괴하고.
“이론으로만 완벽할 수도 있으니까 긴장해야 해.”
물론 계획일 뿐이다. 계획은 언제든지 실패할 수 있으니까.
‘정 안 되면 나 혼자 해도 상관없긴 한데. 양유혁도 마찬가지고.’
혼자 할 수도 있지만, 되도록 단독 행동은 하지 않을 것이다. 던전에서의 단독 행동은 거대한 사고를 만드니까.
“그럼 이제…….”
“패왕 길드 나와 주세요. 기자들이 있을 텐데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협회 공무원이 마중 나왔다.
공무원의 말에 밖으로 나오자.
“왔다 왔어!”
“패왕 길드 신입생들이지?”
“응! 이번 신인, 괴물들 많다는데?”
“…….”
눈이 뜨기 힘들 정도의 플래시가 터진다.
최소 100명은 될 것 같은 기자들이 마이크와 카메라를 들이밀고 있었다.
‘아까랑은 차원이 다르네.’
1시간 전의 기자들은 약과였다. 이제부터가 시작.
정돈된 길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저 애가 이번에 sky 길드에서 뽑았다는 신입 헌터인가?”
양유혁의 말에 걷고 있던 도중 고개가 돌아간다.
눈부실 정도로 아름다운 소녀. 검은 단발머리에 커다란 검은 눈동자. 뽀얀 피부에 모든 시선이 그녀에게 집중되었다.
“서양인은 아닌 것 같네. 우리나라 애 같은데?”
서양 사람은 아니었다. 한국 사람인 듯 한국말을 했다.
“더럽게 복잡하네.”
“…….”
첫인상은 좋지 않았다.
어디서 배워 먹은 말버릇인지 몰라도 신경질 내는 말투가 사람들의 인상을 찌푸리게 할 정도였다.
“빨리 안 따라와? 제 등급에 맞게 느려 터져서는.”
“……미안.”
거기다가 같은 동료를 무시하기까지.
기자들을 지나쳐 던전 앞에 선다.
“크네.”
지금까지 봤던 던전 중에 가장 거대한 던전.
잠시 멍하니 서 있자 도착한 그녀가 그들을 한심하게 쳐다보며 말했다.
“하긴, 너희 주제에 이런 던전을 와 봤겠어?”
“와. 진짜 크다. 그렇지, 수호야?”
“응. 이런 던전은 처음이네.”
“…….”
당연히 가볍게 씹어준다. 지나가던 개가 짖으면 혹시 몰라 돌아보는데 그런 걱정도 없이.
저쪽 전력은 완벽하지 않은 듯하다. 트리플 재능 헌터가 전부.
“반갑군.”
“조시현?”
그때 마침 조시현이 도착했고.
“또 만나냐? 이번에는 내가 이길 테니까 두고 봐라. 강수호.”
“그래, 그래.”
한석유도 도착했다.
이놈들은 변함없는 듯하다. 한 놈은 너무 무뚝뚝하고, 또 한 놈은 너무 말이 많다.
하여튼 드디어 데뷔전의 시작이다.
‘조금은 떨리네.’
던전 경험은 적은 터라 긴장된다.
큰일이 생기면 어떻게 하지? 죽으면?
다양한 생각이 들었지만.
‘잘하기나 하자.’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데뷔전은 생존을 위한 클리어가 아니다. 누가 더욱 빠르고, 안전하게 클리어하는지, 생존보다는 클리어율과 실력을 측정하는 대결.
“던전에 들어가기에 앞서 설명을…….”
아마 이 던전에 모르는 기자들 때문에 그런 듯하다.
긴 설명이 끝나자.
“그럼 던전 입장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천천히 진입한다.
11번째 차례이기에 9번째까지 들어가고 나서야 준비하던 그때.
“너 좀 귀엽다?”
“……?”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
트리플 재능을 가진 싸가지 소녀였다.
“그러니까 함부로 나대지는 말고. 귀여운 것들이 다치면 내 마음만 아프거든.”
“…….”
두 마디를 전한 뒤 사라지는 그녀.
화는 나지 않았다. 어차피 자신들이 더욱 강하니까.
강수호는 가볍게 미소 지은 뒤 동료들과 함께 던전 안으로 진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