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9화
69. 아프다고?(2)
말도 안 되는 소리.
마을 사람들은 전부 그렇게 말했다.
세상이 무너지는 것과 같은 이치. 이곳에 있는 모든 이가 아플 일은 세상에 없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헬창들이라면 더욱.
“으으…….”
“왜 아픈 건가?”
“그게 저도 정확히 알아내지 못했습니다. 이놈이 도대체 뭐 때문에 아픈지, 뭔 짓을 했길래 이렇게 고열이 심하게 나는지 말이죠.”
하지만 그 생각은 얼마 가지 못해 사라졌다.
온몸을 으슬으슬 대며 고통에 시달리는 샬런.
“어제 프로틴 챙겨 먹었는데 왜 아픈 거지? 오늘은 다리 조져야 하는 날인데. 으으.”
“…….”
운동에 대한 생각은 어디 가지 않았나 보다.
촌장이 잔뜩 한숨을 내쉬며 다시 한번 테일런에게 질문했다.
“어떻게 된 일인지 설명해 줄 수 있나?”
“넵. 당연합니다. 오늘 샬런의 일정을 설명해 드리자면 산 전체를 100바퀴 뛰었고, 레드 드래곤 레어 가서 알 까먹으려다가 저한테 혼나고, 이제 다리를 조지려 하는데 이런 고열이 났던 겁니다.”
“…….”
“오늘 다리 조져야 하는 날이라고.”
하지만 돌아온 답변은 그리 밝지만은 않았다.
갑자기 찾아온 고열.
이곳 모두가 죽은 사람들. 죽은 사람들이 아프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그래서 치료는 할 수 있겠나?”
“가진 방법은 다 사용해 봤는데, 치료가 불가합니다.”
“치료가 불가하다?”
대사제. 비록 교황은 아니었지만, 몇만 년을 훈련한 대사제 정도면 교황의 신성력보다 높은 신성력을 가지고 있다. 그런 수준을 가지고 있음에도 치료가 되지 않는다니. 두 눈이 커다랗게 떠졌다.
“저도 그 점이 신기했습니다. 아무리 많은 양의 신성력을 사용했음에도 샬런은 치료가 되긴커녕 점점 더 고통스러워하고 있습니다.”
“…….”
이곳의 첫 사망자.
그럴 수는 없었다. 몇천, 아니 몇만 년이 넘도록 함께 살아갔던 동료다. 비록 가끔 한 번씩 레어에 들어가 레드 드래곤의 알 한 개를 훔쳐 먹긴 했으나.
“젠장.”
그들에게서 동료란 가족보다 소중한 존재다. 몇만 년을 함께한 소중한 존재.
“어떻게 하면 되지?”
“나을 때까지 기다릴 수밖에 없습니다. 이 고열이 뭐 때문에 생긴 고열인지 도통 모르는지라…….”
방법은 기다림 뿐. 낫기만을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일단 알겠다. 더욱 상황이 악화되거나, 심해진다면 나에게 말해 주도록. 동료의 마지막은 봐야 할 것 같구나.”
“알겠습니다.”
“뉴비는 이리 오너라.”
촌장은 잔뜩 한숨을 내쉬며 강수호를 불렀다. 상황이 급한지라 강수호를 돌볼 수는 없었다.
“고블린 간부5에게 훈련을 부탁하면 될 것이다.”
“알겠습니다.”
처음 볼 때와 다른 표정. 촌장은 잔뜩 한숨을 내쉬며 강수호를 고블린5에게 보냈다.
왠지 누군가 죽을 것만 같은 하루였으니까.
* * *
슈아악.
“걱정이네, 걱정이야.”
파란빛이 터지면서 나타나는 강수호.
한숨을 잔뜩 내쉬고는 침대에 누웠다.
땀이 다 마르지도 않았지만, 큰 신경은 쓰지 않았다. 지금 가장 신경 쓰이는 건 첫 스승님이었던 샬런.
“무슨 일이라도 있나?”
처음에는 의문이었다. 죽었던 이들이 아프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었으니까. 저승사자가 칼에 찔려 죽는 것과 같은 소리.
“일단 씻어야겠지.”
침대에서 일어나 땀에 젖은 옷을 벗었다. 거울을 보자 선명하게 보이는 복근과 잔근육.
오늘의 훈련 결과를 확인하기 위해 상태창을 열었다.
[강수호]
레벨 : Lv. 36
체력 – 155 민첩 – 135 힘 – 154 마나 – 140 감각 – 138
스탯 포인트 : 0
재능 : 차원 이동(SSS급)
스킬 : [트롤의 재생력(S급) : Lv. 4], [절대정신 방벽(S급) : Lv. 3], [미스릴의 신체(B급) : Lv. MAX], [괴물 같은 체력(C급) : Lv. MAX], [2서클 마법급 : Lv. 5], [황금 노움들의 왕(SS급) : Lv. MAX], [음속의 발걸음(B급) : Lv. 2]
-레벨업 하였습니다.
-스킬, ‘음속의 발걸음(B급)’을 획득했습니다.
“이제 잘 오르지도 않네.”
처음에는 무궁무진하게 올라갈 줄 알았던 스탯과 스킬. 이제는 크게 변동이 없었다.
이번에 스승님이 빡세게 훈련 시켜 음속의 발걸음을 얻은 것 빼고는.
씻기 위해 팬티까지 벗어 던지고 방 안에 있는 샤워실 안으로 들어갔다.
쏴아아아.
“따뜻하다.”
따뜻한 물을 몸에 적셨다. 바디워시를 몸에 묻힌 다음에 땀들을 씻어내고 샴푸로 머리를 감고 있던 그때.
똑똑-
“음?”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씻고 있는 터라 문을 열 수 없기에 기다림이 필요했다.
“저 지금 씻고 있어서 못 나가요! 잠시만요!”
재빠르게 샴푸를 씻어내었다.
놀러 온 선배일 수도 있기에 빠르게 몸의 물기를 닦던 그때.
벌컥.
“아니 잠시만……!”
거칠게 문이 열린다.
재빠르게 수건으로 그곳을 가리고 문을 열었을 때.
“양유혁?”
“…….”
인상이 처참히 구겨졌다.
평생 오지 않을 것 같았던 양유혁이 강수호의 앞에 서 있었다.
우울함을 잔뜩 표출하며 방 안으로 들어오는 그.
“아니, 미친X아! 씻고 있잖아!”
“아, 미안.”
주먹을 쥐어 한 대 때릴까 고민했지만, 그만두었다.
강수호는 대충 몸을 닦고 옷을 갈아입은 후 침대에 앉았다.
“평생 안 올 것 같이 도망가더니만. 그래도 왔네?”
“그래.”
“다른 할 말은 없냐?”
“…….”
잠시 고민에 빠진 듯 눈을 질끈 감았다.
하긴 이런 이야기는 꺼내기도 힘들 거다. 악마의 피를 먹기 싫었는데, 억지로 먹어서 마인이 됐다는 그런.
“난 마인이다.”
“그건 아는데, 정확히…….”
“우리 아빠는 천마다.”
“…….”
이건 복싱 선수의 카운터 펀치도 아니다. 오늘부터 한국이 공산주의가 된다는 말과 비견되는 말.
“뭐, 뭐?!”
당황해서 말을 더듬을 수밖에 없었다.
세상 누구나 아는 천마. S급 헌터를 넘어서는 SS급 이상의 괴물. 그것이 바로 천마였다.
광기라는 페널티도 쉽게 제어하고, 그 광기를 역 이용해 사람을 무참히 도륙한다.
뉴스로만 봤지만, 머릿속에는 아직도 그의 무력에 대한 기억이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장난이지?”
처음에는 전처럼 강수호를 놀래키는 단순한 장난이라 생각했다. 예전에도 이런 식으로 강수호를 대했으니까.
“……아니다.”
“돌겠네.”
천마의 아들. 그 말 한마디만으로 모든 세상의 표적이 될 수 있는 노릇이다.
“이제 와서 얘기하는 이유가 뭔데?”
“전부터 싫었다.”
“네 아빠가?”
“……그래.”
이제 와서 이야기한 이유는 간단명료했다. 창피하고 쪽팔렸으니까. 그리고 자신의 어머니를 죽인 그를 혐오했으니까.
하지만 강수호는 혼란스러울 따름이다. 마인이란 게 밝혀진 이상 친구로 지낼 수는 없었다. 피와 살점의 광기로 인해서 자신을 먹어 치울 테니까.
길드 마스터나, 사람들에게 당장 알려야 하겠지만…….
“걱정하지 마라. 공항에서 보았듯이 나는 광기를 충분히 제어할 수 있다. 그리고 인간의 피와 살점은 지금까지도 먹은 적도 없다.”
“……그걸 내가 어떻게 믿냐?”
저리 말해도 쉽게 믿을 수 없었다.
그러자 양유혁은 단검으로 강수호의 살을 베어내었다.
“아야! 뭐 하는…….”
“쉿.”
갑작스러운 상황에 당황하는 것도 잠시.
손목에 피가 새어 나오면서 혈향이 코끝을 찔렀다.
양유혁의 눈이 점점 붉게 변하더니.
“됐냐?”
“음? 괜찮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마인 대부분은 피를 보면 탐욕에 빠지며 모든 걸 탐하려 한다. 그것이 정녕 가족이라도 아무 상관 없이.
“이게 내 특성이야. 피를 봐도 광기에 쉽게 잡히지 않아. 붉은 눈도 쉽게 감출 수 있지.”
“…….”
양유혁의 말대로 붉은 눈동자가 다시 검은 눈동자로 변한다. 눈에 색소를 넣은 것처럼 신기한 광경.
강수호의 눈이 커지자 양유혁은 별거 아닌 듯 입을 열었다.
“아버지 피를 이어받아서 그런가 봐.”
“천마라서?”
“응. 우리 아버지도 억제하면 피에 반응하지 않거든.”
모든 악의 원흉인 천마. 천마의 위치를 아는 것만으로 죄의 원흉은 사라지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혹시 천마는…….”
“나도 어디 있는지 몰라.”
“왜?”
“매일 바뀌어. 어떨 때는 집에서 한강 뷰가 보일 때가 있고, 어떨 때는 터질 듯한 폭포가 보일 때도 있거든.”
“…….”
순간이동. 집 전체를 이동해서 위치를 유추할 수도 없게 만든다.
양유혁도 꽤나 힘들게 찾았었는지 이마에 땀방울이 가득했다.
“그래서 이제 어떻게 할 건데?”
“…….”
하지만 그것보다 강수호의 질문이 더욱 중요했다.
천마의 아들. 그런 괴물을 대형 길드에 놓아두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다.
잠시 망설이던 양유혁이 처음과는 다르게 입을 열었다.
“여기 남기로 했다.”
“뭐?”
전혀 예상하지 못한 대답. 이 길드에서 나갈 거라 생각했는데.
“이번엔 장난 아니지?”
“그래. 다시 아버지의 집에 간다면 나는 죽을 테니까. 갈 때도 얼마나 경비가 삼엄했는지…….”
길드에 남겠단다.
이번에 치러질 데뷔전도 한단다.
“알릴 것인가?”
긴장된 투로 그가 물었다.
만약 마인이란 사실을 알린다면 양유혁은 곧장 협회 감옥에 갇힌다. 그것도 천마의 아들이란 이유로 더욱 혹독하게 고문까지 받으며.
“몰라. 네가 하는 거 봐서.”
“……그래. 말해 주지 않는 것만으로 고맙다.”
목줄은 강수호에게 쥐어져 있었다.
양유혁이 뭔가를 할 때마다 이 목줄을 조금씩 당기면 충분히 제어가 가능할 거다. 그전에 강수호를 죽일 방법이 있을 수도 있지만.
“전부터 궁금한 건데 나는 왜 안 죽인 거냐?”
“별거 없다. 그저 너랑 같이 있으면 재밌었으니까.”
양유혁은 강수호와 있는 것만으로도 재미를 느끼고 있었다. 설령 몇 년 전에는 장난감이라 해도 말이다.
고개를 끄덕인 강수호는 몇 번의 질문과 함께 식당으로 내려갔다.
“네가 한 거라고?”
“그, 그래. 네 옆에서 일어난 대부분의 일은 내가 심심해서 내린 시련과 같다 생각하면 편할 것이다.”
“…….”
물론 그전에 중요한 질문이 있었다.
지금까지 위험한 일의 대부분이 양유혁이 일으킨 일이라고.
“아, 물론 이번에 있었던 마인 테러 사건과 토너먼트 마인 사건은 내가 한 짓이 아니다. 오히려 내가 막느라 고생 좀 했지.”
“…….”
“아마 아버지라 작자가 그랬을 거야.”
식당에 내려가는 도중 멍하니 양유혁을 쳐다봤다.
그의 말은 지금껏 몇 번 빼고는 모두 자신이 벌인 짓. 그사이에 그가 안 한 짓도 있었지만, 한 짓이 몇 배는 많았다.
“하하. 하지만 그건 다 옛날…….”
“옛날 일이었지. 그런데 네가 한 것 때문에 내가 얼마나 고생했는 줄 알아!!”
주먹을 꽉 쥐고 날렸다. 보일 정도의 스피드였지만, 좁은 엘리베이터 안이라 쉽게 피하지 못했다.
퍽!
“아악!”
처음으로 때리는 양유혁의 얼굴. 촉감이 나쁘지 않아 한 대 더 때리려 했지만.
“밥 먹자.”
“그래.”
억지로 분을 삭이며 조용히 식당 안으로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