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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절대자들의 선물함이 도착했다-68화 (68/225)

제68화

68. 아프다고?(1)

“으하하하하!”

“…….”

호탕하게 웃었다.

그 대답이 거짓말이길 바라는 것처럼. 하지만 양유혁의 진실한 눈빛에 더는 웃을 수 없었다.

“……멍청한 놈.”

“그리 말하셔도 상관없습니다. 제 대답은 변하지 않을 겁니다.”

사나운 눈빛으로 일갈했다.

“꺼져라.”

“죽이지 않을 겁니까?”

꽉 쥐었던 주먹이 다시 펴지면서 소파에 앉았다.

입 안에 머금었던 피를 삼켜내며 말했다.

“……네깟 목숨 따위 필요 없다.”

“설마, 그 여자 때문입니까?”

“……!!”

순간적으로 튀어나온 말. 그 한 마디에 천마의 눈동자가 커지더니 양유혁의 목을 잡았다.

꽉 잡힌 목 때문에 숨쉬기 힘들어졌고, 그의 손에 들려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모양새가 되었다.

“커헉. 커헉!”

“닥쳐라.”

철푸덕.

“쿨럭! 쿨럭!”

그는 오랫동안 붙잡고 있진 않았다. 손에 힘을 풀자 양유혁이 바닥에 철푸덕 쓰러졌다.

미친 듯이 기침을 반복하며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직 할 말은 끝나지 않았으니까.

“그 여자 이야기는 그렇게 꺼내기 싫으면서 왜 죽였습니까?”

“닥쳐라.”

“……그렇게까지 사랑하셨으면서 도대체 왜 죽이신 겁니까!”

“닥치라고!!”

콰직!!

꽉 쥔 주먹으로 책상을 내려치자, 거대한 굉음과 함께 주변에 있던 TV와 와인 잔이 처참히 깨졌다. 유리도 그 충격은 견디지 못했는지 금이 가 금방이라도 깨질 것 같았다.

“…….”

침묵이 이루어진 거실. 처참히 부서진 것들과 자신을 뚫어져라 쳐다보는 천마.

데구루루.

주머니 사이에서 빠져나오는 거대한 구슬.

양유혁은 저것이 뭔지 알기에 인상을 잔뜩 찌푸렸다.

“아직도 그걸 가지고 계십니까?”

“…….”

“정말 한심하군요.”

집을 나간다.

그것은 자신의 어머니가 가지고 계셨던 유일한 유품. 그리고 아버지를 천마로 만들게 해 준 악마의 비밀.

그가 나가자 천마는 혼자 조용히 집 안을 청소했다.

파아앗!

주먹만 한 거대한 구슬에서 파란빛이 터졌다. 천마도 모를 정도로 조용한 빛이.

* * *

‘어떻게 해야 하는 거야?’

턱을 쓰다듬으며 생각에 빠졌다.

익숙하게 산을 달리며 생각했지만, 마땅히 나온 결과는 없었다.

빠각!

“아악!”

“딴생각하기 없기.”

“……너무해요.”

멍하니 훈련하는 걸 알았는지 단도 손잡이로 머리를 강하게 내리쳤다.

아쉽게도 스승님은 바뀌지 않았다. 일주일간 놀았다나 뭐라나.

툴툴거리는 강수호를 뒤로 그녀가 물었다.

“뭐 때문에 그래? 여자친구 만들었는데, 그 여자친구가 간하고 쓸게 다 빼 주라 해?”

“아니요.”

관심이 가는 여자는 있다. 하지만 저런 문제는 절대 아니었다. 애초에 여자친구가 있어야 쓸개를 빼주든 간을 빼주든 하지 않겠는가.

“그래? 그럼 무슨 일이래?”

“혹시 마인이라고 아십니까?”

악마의 피를 마시고 악마의 반과 사람의 반이 섞은 괴물인 마인. 솔직히 스승님들에게 말할까 말까 망설였다. 이 이야기를 알고 있는지 궁금했으니까.

“뭐? 마인?”

“아세요?”

다행히도 그들은 마인에 대해 아는 것 같았다. 잔뜩 인상을 찌푸리는 그녀의 모습은 분노에 가득 차 보였으니까.

“알고말고. 네가 사는 곳이 지구라고 했지?”

“넵.”

“우리가 원래 살던 곳이 ‘타일런’이라는 곳인데, 그곳도 악마가 와서 난장판을 만들었지. 지금은 이렇게 죽어서 잘 모르지만…….”

지구뿐만 아니라 다른 행성까지 노렸던 악마들. 지구까지 와서 깽판 치는 것 보면 타일런이란 행성도 이미 사라졌을 가능성이 높았다.

“그러면 어떻게 여기에 갇히게 됐어요? 전부터 그게 궁금하더라고요. 왜 여러분들이 굳이 여기에 갇힌 건지.”

“흠…….”

생각에 잠긴 그녀가 고개를 저었다.

“나도 잘 몰라. 하지만…….”

“하지만?”

말을 늘어트렸다. 마치 뭔가 말할 것이 있었는지…….

“우리가 아직 정확히 말 못 한 게 있는데, 지금 보여줘도 되겠지.”

“음? 그게 뭔데요?”

한숨을 잔뜩 내쉬며 달리는 걸 멈췄다.

훈련이 중요한 게 아니었다.

산에 내려가 오랜만에 마을에 들렀다.

“뉴비구나? 친구는 또 안 데리고 오니?”

“하하. 아쉽게도 주변에 아픈 친구가 많이 없네요.”

“여기 내가 키운 금계의 알이란다. 이거 먹고 쑥쑥 크렴!”

마을로 내려오자 그때 보았던 압박감은 사라져 있었다. 사람들은 밝은 미소로 강수호를 맞이했고.

“반갑구나.”

“……촌장님은 여전히 적응 안 되네요.”

오랜만에 본 촌장도 그들과 마찬가지로 자신을 반갑게 맞이했다.

사소한 문제가 있다면, 전과 같은 모습에서 조금 더 변형됐다는 점.

“그렇게 지겨우세요?”

“하하. 내 몸이 근질거려서 참을 수가 없단다. 요즘 패션에 맞게 변신했지.”

“…….”

요즘 패션이라기에는 강수호의 눈에도 처참한 옷이었다.

바지 가운데에는 닭 모가지가 적나라하게 내보였고, 티셔츠는 가슴에 있는 동그란 무언가가 달걀이 된……. 그나마 다행인 건 팬티만 입고 있는 게 아니라는 건가.

더 이상은 서술할 수 없을 것 같아서 강수호가 입을 열었다.

“오랜만에 봐서 반갑기는 한데, 샬론 스승님은 왜 부르셨어요?”

“아, 그래. 나도 궁금하더구나. 뭐 때문에 뉴비를 불렀지?”

그녀는 둘을 두리번거리며 쳐다봤다.

마지막 고민을 하는 듯.

“어쩔 수 없군요.”

“……?”

알 수 없는 말에 의문이 들려던 찰나.

“촌장님. 그 예언서 기억하십니까?”

“그 예언서?”

고개를 갸웃거리고는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고민에 빠졌다. 이 이야기를 지금 해도 될지.

“뭐, 언젠가는 들어야 하는 내용이니까.”

“예언서요?”

“그래, 예언서.”

머리를 짚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침묵이 들었던 방은 곧이어 어둠으로 가득 채워졌다.

“음? 촌장님? 어디 계세요?”

감각으로도 쉽게 찾지 못할 사람들. 아무리 손을 휘저어 봤자 그들은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한참을 헤매며 찾고 있었던 그때.

딸칵.

“우와…….”

전등 스위치가 켜지면서 거대한 스크린 화면이 보인다.

이런 곳에서도 이런 전자 기계가 들어선 게 신기하다. 분명히 스승님이 될 사람의 작품이겠지.

곧이어 하얀 스크린에 빛이 터지면서 이야기가 펼쳐졌다.

지금의 스승님이 말해 주었던 타일런 행성에서 있었던 일. 악마와 마인이 어떻게 왔으며, 지금까지의 다양한 일들을 이야기하는 데 걸린 시간은 대략 1시간.

“대충 이해하겠나?”

“아, 넵. 무슨 일인지 이해는 했는데, 예언서에 적힌 내용은 뭡니까?”

타일런의 행성에서 일어난 일은 대충 이해했다. 하지만 그들이 여기에 어떻게 왔는지에 대해서는 적혀 있지 않았다. 단 하나도.

“그래, 예언서. 그걸 이제부터 설명해 줄 걸세.”

다시 닭 복장으로 자리에 앉은 촌장이 서두를 열었다.

이제 말해야 할 시간이 온 듯했으니까.

“예언서란 이것일세.”

“종이?”

촌장의 손에 있는 종이 한 장.

예언서라 불리는 종이에 삐뚤빼뚤한 글씨가 적혀 있었다.

강수호의 눈으로는 알아보기 힘들었지만, 촌장은 곧바로 그 글씨를 읽어나갔다.

“‘당신들은 언젠가 빠져나갈 것이다. 때를 기다려라. 악마에 갇힌 영혼들이여. 목줄을 붙잡고 있는 주인은.’ 이게 끝이야.”

“……예? 벌써 끝이라고요?”

예언서는 그리 길지 않았다. 짤막하면서도 모든 뜻을 전하는 예언. 하지만 그것으로 예언은 끝이 아니었다.

“그리고 여기 마지막에 적힌 글자. 엉성해서 자세히 알아볼 수는 없지만, 해석에 대한 지식을 겸비한 녀석 덕분에 몇 년 전에 해석할 수 있었지.”

“……?”

한 문장으로 적힌 글자.

예언서가 훼손되지 않도록 조심히 책상에 내려놓으며 이야기를 꺼내었다.

“차원 이동자가 직접 구할 것이니.”

“…….”

고작 한 문장. 한 문장밖에 안 되었지만, 강수호가 이해하기에는 충분한 문장이었다.

“어, 어어…….”

순식간에 모인 사람들.

언제 왔는지 모두가 강수호를 쳐다보고 있었다. 처음 이곳으로 왔을 때의 모습이 딱 이 모습이다.

촌장이 잔뜩 한숨을 내쉬었다.

“어, 그러니까 제가 예언자가 부른 ‘주인공’? 이라는 거죠?”

“그래.”

예언자가 부른 주인공. 지금껏 단 한 번도 생각하지 못한 단어였다.

이 세상에 주인공은 자신이 아니었다.

뛰어난 재능을 가져 사람들을 구하는 영웅. 그런 사람들이 받아야 할 단어였으니까.

“전 어떻게 하면 되죠?”

혼란스러웠다. 처음으로 자신에게도 ‘주인공’이 될 기회가 주어졌다.

“아니, 지금은 아무것도 안 해도 돼.”

“엥?”

하지만 촌장에게서 예상치 못한 답변이 튀어나왔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 그 말에 의문이 들 수밖에 없었다.

스승님들을 빠져나가게 만들 수 있는 유일한 열쇠. 강해지고는 있다지만, 몇 년이 지날지도 모른다.

“정말요?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된다고요?”

“그래, 억지로 훈련한다고 쉽게 강해지지 않아. 나중에 실행될 예언을 위해 천천히 힘을 기르는 게 좋을 거다. 그리고 특히 마인과 악마들…….”

마인과 악마들을 특정하며 입을 열었다. 촌장의 두 눈에는 악감정이 가득했다.

침묵으로 주변이 물들자 한숨을 내쉬며 촌장이 이어 말했다.

“그러니까 너무 걱정하지 말고. 우리에게 훈련받으면 된다. 최소 헬창들보다는 강하게 만들어 주마. 그 정도는 돼야 예언을 실행할 수 있을 거야.”

“넵!!”

해맑게 웃으며 대답했다. 믿지 못할 외모였지만, 그들의 실력만큼은 잘 알고 있었으니까.

“오늘 훈련을 마저…….”

아직도 이기지 못한 고블린 간부5. 점점 이길 확률을 높혀가고 있기에 요즘 들어 싸움에 재미를 느끼고 있었다.

마법 스승님에게 텔레포트를 받고 가려던 그때.

“크, 큰일 났어요!!”

“음? 무슨 일인가? 레릴.”

다급하게 달려오는 사람은 레릴 아줌마. 뭐 때문인지 그녀의 몸에서 땀이 비 오듯 쏟아지고 있었다.

그녀에게 물 한 잔을 주며 진정하라는 듯 소파에 앉히려 했지만…….

“아, 감사…… 아니, 지금 쉬는 게 문제가 아니라고요!”

“도대체 뭐 때문에 그런가? 혹시 그놈들이 드래곤 알이라도 먹은 거야? 그건 레드 드래곤과 엄연히 금지 계약까지 되어 있는데?”

“드래곤요?”

“아, 뉴비는 몰랐구나. 여기에 드래곤도 있거든.”

“…….”

드래곤이 있다는 말. 판타지에서만 들어봤기에 입이 쩍 벌어졌다. 지구에도 없는 드래곤이란 존재.

“하여튼 누구 때문인데?”

“헬창놈들 있잖아.”

“개들이 왜? 알 훔친 거 아니라면 상관이 없을 텐데.”

스승님 마을은 자유로운 편이라 큰 사건이 아니라면 처벌하지 않는다. 마을에 피해를 끼칠 정도만이 아니라면.

이렇게까지 레릴이 다급히 온 거면 뭔가 큰일이라도 났을 터.

잠시 숨을 고르던 그녀가 침을 꿀꺽 삼키며 말했다.

“그놈들 중 한 명이 아프다니까요!!”

“뭐?! 아프다고? 운동에 중독된 놈들이?! 그게 말이 되는 소리인가? 그놈들이 아프다니?”

“하여튼 빨리 와 봐요. 촌장! 큰일 났다고요!”

“허허, 이게 무슨 마른하늘에 날벼락 같은 소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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