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7화
67. 피의 파티(3)
“쿨럭…….”
옅은 기침과 동시에 피를 쏟아내는 마인.
“어떻게 당신이…….”
애처로운 듯 서사를 열었다.
지금까지 한 행보를 보면 저런 말은 전혀 용서되지 않는다. 그저 사이코패스의 살고 싶은 욕망일 뿐.
하지만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정말 양유혁이 왜 여기 있냐는 듯 물었다.
“닥쳐라. 더러운 놈들.”
“크크큭.”
숨을 억지로 들이쉬며 웃었다. 상황이 어이없기도 하고, 이 상황이 웃을 만큼 재밌었으니까.
“왜 그리 웃는 거지?”
“당신은 웃기지도 않습니까? 하는 짓이 참 누구를 닮아가지 않습니까? 예를 들어 당신 아버지의 그 X을…….”
콰직!!
“말이 많군.”
하지만 그 웃음은 얼마 지나지 않아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양유혁의 발이 정확히 그의 얼굴을 밟자 흔적도 없이 터져 나갔고.
“으아아아!”
“죽여! 대장을 죽였다!”
앞에서 그 모습을 모두 보고 있던 마인들이 소리 지르며 양유혁에게 달려들었다.
날카로운 발톱과 마독. 저것들에 공격당하면 저승에 갈 수 있겠지만.
푸욱.
촤아악!
“죽었나……?!”
양유혁에게는 아니었다.
마독의 상처를 입은 상체. 손톱과 칼날의 깊은 상처를 받은 하체.
“나약하군.”
“……!!”
고작 그딴 걸로 그를 죽일 수는 없었다.
그 한 마디와 함께 양유혁의 손이 움직이더니.
푸욱!
푸욱!
마인들의 심장을 뚫어냈다.
공항에는 피와 살점만이 가득해지고, 뭔가 터지고 박히는 소리를 들은 사람들은 더욱 두려움에 떨기 시작했다.
* * *
띠링.
“아흑…….”
띠링.
“크윽…….”
뇌에 대못을 박은 것처럼 계속해서 울리는 알림음과 찌릿한 고통.
신음을 내면서 눈을 뜨려 노력했지만, 쉽게 될 리 없었다.
분명히 양유혁과 눈이 마주쳤을 때. 그때부터 몇 분 동안 반복적인 알림음이 들렸던 것 같다.
정신이 나가 버릴 것 같은 소리에 더욱 눈을 부릅뜨고 깨려 하자.
띠링.
“됐다.”
곧이어 눈을 뜰 수 있었다.
정신을 차리고 천천히 주변을 둘러봤다.
-정신 수면(S급)이 절대정신 방벽(S급)에 저항하였습니다.
-정신 수면(S급)이 절대정신 방벽(S급)에 저항하였습니다.
-정신 수면(S급)이 절대정신 방벽(S급)에 저항하였습니다.
“뭐지?”
일어나자마자 볼 수 있는 건 ‘절대정신 방벽’이 ‘정신 수면’이란 스킬에 저항했다는 것.
어떻게 된 상황인지 모르겠으나, 저항했다는 것 자체가 좋은 결과였다. 위험에서 벗어났다는 걸 뜻하니까.
찌릿.
“으윽.”
아직 머리는 지독하게 아팠지만,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친구들을 살폈다.
“조시현?”
“…….”
눈을 감은 조시현을 흔들었다. 정신 방벽이 없었는지 쉽게 일어나지 못했다.
“한석유?”
“…….”
만년 2등도 마찬가지. 아무리 흔들어도 깨지 않았다.
“최서현?”
“…….”
최서현도 마찬가지.
어떤 짓을 해도 일어나지 않자 깨우는 걸 포기했다.
그것보다 가장 중요한 것이 공항 안에 있었으니까.
“양유혁?”
공항 안에서 혼자 액션 영화를 찍어대는 양유혁. 곧 있으면 아카데미를 졸업한다는 학생의 무력이 아니었다.
몇백 년간 단련하고 배우며 경험을 바탕으로 움직이는 괴물. 저런 괴물을 자주 봤었기에 잘 알고 있었다.
‘어떻게 된 거지? 내가 꿈을 꾸고 있는 건가?’
별거 아닌 꿈이라 생각했다. 이 또한 지나가는 평범하기 짝이 없는 악몽이라고.
짜악-
“아야.”
하지만 꿈 따위가 아니었다.
두 손으로 뺨을 때리자 느껴지는 따끔한 통증. 꿈에서 느낄 수 있는 통증이 아니었다.
“진짜구나.”
현실이었다. 지금 자신이 바라보는 것은 모두 사실이었다.
벼린 손톱을 뽑으며 해를 가한 마인의 머리통을 으깬다. 마독으로 보이는 검은색 독도 가볍게 무시하고 심장을 뜯어낸다.
그 과정이 몇십 번이나 넘게 이루어졌고.
“…….”
곧이어 마인이 모두 전멸되었다.
머리와 심장. 두 개 중 한 개는 무조건 사라져 숨통이 끊어져 있었다.
‘미친!’
모든 일이 끝났는지 손에 묻은 피를 털어내며 인질들을 쳐다본다. 당장에라도 폭발할 것 같은 양유혁의 표정에 강수호가 달려가 제지하려 했으나.
“밖에 있는 경찰한테 꺼져라. 내 취향은 너희가 아니다.”
“네! 감사합니다!”
“……더럽게 힘들군.”
생각했던 것과 다른 상황이 발생했다.
심장을 뜯어 입에 넣을 것 같았던 모습. 하지만 그 모습은 사라졌고 무미건조한 표정으로 인질들을 풀어내었다.
“이제 정말 끝…….”
공항의 테러는 끝났다. 위험한 상황은 이미 지나갔고, 인질극도 끝이니 위험할 상황은 없었다.
물론 양유혁만 그리 생각하고 있었다.
“…….”
멍하니 양유혁을 쳐다보는 한 사람.
입을 점점 쩍 벌리고 말도 안 된다는 표정으로 자신을 쳐다보는 한 사람.
“강수호.”
“…….”
정신 수면을 사용했음에도 멀쩡히 눈을 뜨고 자신을 쳐다봤다.
S급 이상의 정신 방벽이 없는 이상 있을 수 없는 일.
‘설마?’
3학년부터 신기하게도 강수호에게 세뇌 같은 것이 듣지 않았다. 마치 단단한 벽이 가로막고 있는 것처럼.
그렇게 한참 동안 침묵이 유지되더니.
쾅! 쾅!!
“열어!”
신문지로 막은 유리 사이에서 들리는 목소리. 그와 동시에 울리는 공항. 큰 소음 같은 것이 들렸기 때문에 공항의 출입문을 열려고 애를 쓰는 듯하다.
“양유…….”
양유혁에게 다시 시선을 돌려 부르려 했지만.
“뭐야? 어디 있어?”
그는 이미 공항 안에서 사라지고 난 후였다.
빠르게 주변을 둘러보고 있을 때.
“……!!”
“강수호.”
양유혁이 자신의 앞에 나타났다.
* * *
“하암~ 피곤하네. 수호야, 나 먼저 자고 있을게. 도착하면 깨워줘.”
“그래.”
공항에서 큰 사건이 있고 난 후, 약 10일이란 시간이 지났다. 테러 때문에 10일 정도 제주도에서 휴식을 취한 이후 다시 운행하는 비행기를 타고 떠나는 중이다.
친구들은 며칠 전에 있었던 일과 노느라 피곤했는지 먼저 잠들었고.
“야.”
“…….”
강수호는 양유혁을 향해 뻘쭘한 얼굴로 고개를 돌린다. 말하기 싫다지만, 이번만큼은 이야기해야 한다. 그때 그 힘에 대한 궁금증이 풀리지 않았으니까.
“……하아. 돌겠네. 너 정신 방벽이라는 스킬 있었어?”
“어. 절대정신 방벽. S급 스킬인데.”
“젠장.”
양유혁이 인상을 잔뜩 찡그리며 두 손으로 얼굴을 덮었다. 몇 년 동안 감추었던 비밀이 단 한 번의 실수로 인해 들켰으니까.
“어디까지 봤지?”
“처음부터 끝까지. 간부로 보이는 마인의 심장을 뚫는 것부터 봤지.”
“다 봤군.”
처음부터 끝까지 다 봤다. 다행인 점이 있다면 강수호 말고는 그 모습을 보지 못했다는 점.
무려 S급 스킬. 그런 스킬을 가진 각성자는 그리 많지 않았다.
“너 도대체 누구야? 내가 대충 예측하기로는 마인. 아니면 악마인가?”
“그런 소리를 여기서 하면 어쩌자는 거야?”
“위험하잖아. 네가 마인이라면.”
광기를 제어하지 못하는 마인. 자신을 공격하지 않는다고 선언해도 광기에 사로잡히게 되면 죽일 것이다.
친구로 있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
“비슷하긴 한데.”
“비슷? 악마도 아니고, 마인도 아니고. 비슷?”
“아니, 그렇긴 한데. 그런 건 아니기도 하고.”
도대체 뭔 대답인지 모르겠다. 계속되는 두루뭉술한 답변에 인상을 잔뜩 찌푸리며 입을 열었다.
“일단 인천 공항 도착하면 말해. 복잡해 죽겠네.”
“그래.”
휘이이잉.
조용히 들리는 엔진 소리를 벗 삼아 잠이 드니 30분이란 시간이 지나 있었다.
어느새 도착한 인천 공항.
“피곤하군. 나 먼저 가지.”
“어, 그래. 잘 가라.”
조시현이 먼저 비서 차를 타고 집에 갔고.
“나간다?!”
“그래그래. 빨리 가.”
다급해 보이는 한석유가 인천 공항을 빠져나갔다.
“수호야! 나랑 같이 가자! 그전에 화장실 좀!”
“갔다 와.”
최서현까지 화장실로 가서야 공항 벤치에는 강수호와 양유혁만이 남았다.
침묵에 잠긴 그들. 잠시 침묵을 가진 강수호는 양유혁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물었다.
“너 진짜 누구야? 인간 맞아? 아니면 정말 마인이야?”
“…….”
조금씩 망설이다 입을 열었다.
“마인이긴 한데…….”
또다시 시작된 어중간한 대답.
강수호가 인상을 잔뜩 찌푸리자 양유혁은 대답을 도로 삼켜내었다.
다시 한번 입을 열려 했지만, 쉽게 말이 나오지 않았다.
“미안.”
“아니, 이런…….”
그 말이 끝나자마자, 강수호도 눈치채지 못할 만큼 빠르게 사라진다.
아무리 주변을 둘러보아도, 양유혁은 없었다.
“이거 신고해야 하는 거야, 말아야 하는 거야?”
그때 보았던 붉은 눈. 악마라고 정확히 단정 짓지는 못하겠지만, 마인인 건 확정할 수 있었다.
한참이나 고민에 빠졌지만, 결국 아무런 대답도 얻지 못하고 길드로 향했다.
* * *
어둠을 유일하게 밝히는 은은한 불빛. 창밖으로 보이는 한강으로 인해 절로 눈 호강이 되었다.
드르륵.
“누구지.”
그런 집에서 누군가 조용히 들어온다.
자리에서 일어난 남자가 열린 문을 쳐다본다.
곧이어 들어온 한 남자.
“아들? 유혁이 맞지?”
“…….”
그가 직접 집 안으로 들어왔다. 평생 오지 않을 듯이 말하더니.
“허허, 네가 직접 와? 마음이라도 바뀐 것이냐? 평생 인간 피는 먹지 않겠다더니. 며칠 전에 있었던 일도 네가 벌인 짓이지?”
“……그렇습니다.”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남자는 더욱 호탕하게 웃었다.
“하하하! 역시 내 아들다워! 내 이름값에 그 정도는 해야지!”
“…….”
아들이란 말에 인상이 처참히 구겨졌다.
피만 아들로 이루어졌지, 정작 아버지란 이름에 걸맞은 행동은 보여주지 않았으니까. 오히려 아들이란 걸 이용해 더욱 가혹한 것들만 보여주었지.
“이제 장난감과 노는 건 그만두었나?”
“…….”
“하긴. 이제 네 나이도 피를 탐하고 살점을 탐할 때이지.”
“…….”
“그런데 왜 아까부터 말이 없느냐?”
양유혁은 그의 말을 조용히 들었다. 마치 더 할 말이 없느냐는 것처럼.
고작 그 몇 마디 들으러 온 것이 아니었다.
“여전하군요.”
“흐하하하! 나야 여전하지. 이 신체가 좋긴 좋더구나. 그러고 보니 세뇌한 길드 마스터는 잘 부리고 있느냐?”
저딴 말 몇 마디 들으러 온 것이 아니었다. 주먹을 꽉 쥐었다가 다시 펴서 얼굴을 감쌌다.
“정말……. 정말…….”
“음? 왜 그러는 것이냐? 무슨 문제라도…….”
두 손을 내린 양유혁이 사나운 눈빛을 하고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아버지.”
“호호. 무슨 일이냐. 그 말도 참 오랜만에 듣는구나. 너한테서 아버지라니.”
경멸하는 듯한 눈빛. 무언가 부탁할 때의 그 눈빛이 아니었다.
“이제부터 저는 아버지 아들 안 하겠습니다.”
“…….”
그 말에 헤실헤실 웃던 그의 표정이 변했다.
조금 더 정확히 말하자면.
“지금 그 말이 무엇인지 아느냐?”
“네, 잘 알고 있습니다. 천마 자리. 그곳을 포기하겠습니다. 어차피 원하지도 않던 자리였습니다.”
마인들의 우두머리. 그리고 우두머리의 아들.
진실이 밝혀지는 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