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6화
66. 피의 파티(2)
“내일 밤, 피로 제주를 물들일 것이다.”
붉은 피로 적힌 글씨. 누가 봐도 이 노래방을 발견한 이에게 보라고 쓴 글이었다.
“양유혁은?”
멍하니 혈서를 보다 갑작스레 떠오른 하나의 생각. 그러고 보니 아까 전부터 양유혁이 보이지 않았다.
“먼저 온 거 아니었나?”
“먼저 왔다니? 여기 오지도 않았는데?”
“…….”
양유혁의 ‘양’ 자도 보지 못했다.
“일단 숙소로 들어가자.”
시간이 부족했다. 이 사건은 헌터 협회 회장에게 맡기기로 하고, 그들은 곧장 호텔 숙소로 향했다.
‘어디 있냐?’
양유혁에게 전화를 걸며.
* * *
“빨리 가시는 게 좋을 듯합니다.”
“내가 분명히 여기까지 오지 말라 한 것 같은데?”
“하하. 죄송합니다. 하지만 그분께서 직접 모셔오라 하여 저도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양유혁 앞에 선 한 남자.
흰 백 머리에 미소년을 닮은 듯한 얼굴. 정장 차림의 깔끔한 모습은 남자가 봐도 얼굴을 붉힐 정도지만.
“X발, 꺼지라고. 애들 오잖아.”
“이거 큰일이군요. 조만간 피의 파티가 시작될 예정임에도 가지 않으시다니. 정말 그분의 부름을 무시하실 겁니까?”
양유혁만큼은 아니었다.
오히려 눈을 부릅뜨며 그를 노려보았다.
“그딴 부름 필요 없다. 말했지 않느냐? 그들은 우리를 이용할 뿐이다. 자신의 의지로 사신의 낫을 목에 두르고 있는 꼴이라니.”
“허허, 그렇게 말씀하시면 제가 뻘쭘합니다.”
하지만 오히려 그는 허탈하게 웃었다.
저 행동이 얼마나 얄미운지, 머리를 후려치고 싶을 정도였다.
“그만 꺼지거라. 할 말은 대충 다 한 것 같은데?”
“알겠습니다. 그래도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당신의 귀환을.”
그 말을 끝으로 파란빛을 내뿜으며 사라진다.
어찌나 말이 많던지 양유혁의 분노가 머리끝까지 차오르다가 멎었다.
“……정말 끈질긴 놈들이군.”
찡그린 인상을 펴며 강수호가 있다던 곳으로 향했다.
자신의 장난감이 위험해 빠진 상황. 장난감을 구하기 위해서는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양유혁이 방문을 열고 나가려던 찰나.
벌컥!
“양유혁!!”
“네가 왜 여기에 있냐? 분명히 애들이 큰일 났다고 갔는데?”
“내가 할 말인데?”
잡고 있던 문이 거칠게 열리면서 익숙한 얼굴이 보인다. 날 선 목소리와 함께 인상을 잔뜩 찌푸리며 묻는 강수호.
지금 강수호가 여기 있는 것이 문제가 아니었다. 먼저 나간 양유혁이 왜 여기 있냐는 것. 그것이 가장 중요한 문제였다.
“나야 뭐…….”
“나야 뭐?”
대답을 잠시 망설이던 양유혁. 핑계를 생각하느라 망설인다 생각했지만.
“지금 너 핑계를……!”
“똥 마려워서.”
“…….”
단 하나의 문장으로 상황이 정리되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정말 사실처럼 보였다.
“이건 뭐야?”
바지에 낀 휴지. 창피했는지 빠르게 낚아채서 돌돌 말았다.
“화장실 갔다 온다 했잖아.”
“풉. 그래도 너도 인간이긴 하네? 하긴, 너 같은 놈이 마인이라 생각한 게 이상한 거지. 사람 괴롭히는 거 즐기는 놈이 무슨 마인이 되냐? 악마가 낫지.”
“위험하다고 애들이 난리 치던데, 괜찮은가 보네?”
“그럼, 내가 누군데?”
강수호가 생각하던 건 아니었다. 마기의 흔적도 없었고.
누군가 온 듯한 흔적이 있었지만, 화장실에 갔다 왔기에 그리 크게 신경은 쓰지 않았다.
“무슨 일 있었는데?”
“사람 100명이 노래방에서 사체가 된 채 발견됐더라고?”
“백 명?”
“나도 놀라서 자빠지는 줄 알았다니까? 계단으로 내리자마자 오줌 지릴 뻔했다고. 그때 생각만 하면…….”
각각 방마다 4구의 사체가 있었다. 방 하나하나를 확인하는데 살 떨리는 그 기분을 다시는 느끼기 싫었다.
“그것보다, 여행이 취소됐어.”
“뭐? 여행은 또 왜?”
양유혁의 인상이 찌푸려졌다. 몰래 티켓까지 구하느라 얼마나 힘들었는데.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노래방 안에 ‘내일 밤, 피로 제주도를 물들일 것이다.’라는 이상한 글귀가 적혀 있었거든.”
“…….”
“어쩔 수 없지. 나중에 너 빼고 다른 애들이랑 다시 오는 수밖에.”
내일 밤이라는 저 문구. 분명히 누군가 볼 것을 예상하고 적어 놓은 것일 터다. 그러니 되도록 내일 아침에 제주도를 빠져나가는 것이 좋은 선택이다.
“……그래.”
“그런데 표정이 왜 이리 안 좋아? 따라왔는데, 벌써 가서 안 좋은 거냐?”
“그런 게 아니야. 그냥 오랜만에 쉬는 건데 아쉬워서.”
“진짜 인간이구나? 감정도 없는 괴물인 줄 알았는데.”
강수호는 아쉬움을 뒤로 한 채 침대에 누웠다.
처음으로 보는 인간의 시체. TV나, 영화로만 봤지 실제로 보는 건 처음이라 마음이 뒤죽박죽이다.
“일단 자…….”
시간은 벌써 밤 10시. 오늘 하루 정도는 빨리 자야겠다는 생각에 씻고 침대에 누워 눈을 감으려 했지만.
벌컥.
다시 한번 열리는 문.
처음에는 조시현인 줄 알고 잠자리에 들려 했으나.
“사이다 마시자, 애들아!”
“음? 최서현?”
취한 척하는 목소리로 소리치는 그녀.
왜인지 대충 알 것 같아 일어나 친구들과 함께 사이다 잔을 기울였다.
* * *
“우웩!!”
“천천히 해.”
먹었던 사이다를 토해낸다. 이러다가 식도염이라도 걸리겠다.
여자 화장실이 바로 앞이었지만, 도달하지 못했기에 구토를 반복하는 그녀의 등을 토닥여 준다.
“이제 됐어.”
“그러게, 어제 왜 이리 마셔 댔어?”
그녀가 사이다를 많이 마신 이유는 알고 있었다.
자신이 살려내지 못한 사람. 아마 자신의 탓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일 거다.
“네 탓 아니야. 병원 가도 죽는 사람이었어. 너도 잘 알잖아. 마독이 사람 몸 안에 들어가면 99.9%의 확률로 살리지 못해. 엘릭서를 사용해도.”
“……그래도.”
눈물을 글썽인다. 차오른 눈물을 소매로 닦아내는 그녀를 쳐다봤다.
“네가 잘못한 거 아니야. 마인들 때문이지. 이렇게 울면 제주도에 때 놓고 혼자 가 버린다?”
“그건 싫어.”
“그러면 빨리 일어나. 이제 가자.”
“응.”
눈물을 그친 그녀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위로가 어느 정도 도움이 됐는 듯, 더 이상 눈물을 보이지 않았다.
“어휴, 커플 다 죽어라!”
“커플? 웬 커플?”
“너는 그냥 죽어.”
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한석유가 잔뜩 인상을 찡그렸다.
이런 사랑 이야기는 공공장소 밖에서 할 것이지.
“음? 죽어라니? 아직 하고 싶은 것도…….”
“아, 됐고. 빨리 오기나 해. 20분 뒤에 비행기 출발하는데 너희만 떼 놓고 갈 거다?”
한석유의 뒤를 따라 공항 안으로 들어섰다.
처음에야 공항이 어색했지, 지금은 어느 정도 익숙해진 상태였다.
비행기를 탈 때 신발을 벗어야 한다는 걸로 애들이 놀려대서 어찌나 민망하던지.
“뭘 떼 놓고 가. 같이 가.”
최서현의 손을 잡으며 버스를 기다렸다.
신왕 길드와 패왕 길드의 권력을 여기서 사용하는 건 불가능한 일.
천천히 기다리자 곧이어 비행기로 향하는 버스가 도착했고.
끼이익.
문이 열리는 것과 동시에.
“이제 타…….”
“다 죽어!!”
“……?”
버스 안에서 들려오는 목소리. 무심코 고개를 돌려 목소리의 주인을 확인하니.
‘마인?!’
붉은 눈동자.
누가 봐도 마인이라 할 수 있는 짙은 탐욕이 담긴 눈동자가 보였다.
문제는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마왕님을 위하여!!”
“……!!”
몸에 칭칭 두르고 있는 폭탄. 각성자에게 큰 위험은 없겠지만, 버스 안의 사람들은 전부 죽어 있고 주변에 사람들이 많다.
띡!
“다 죽어!!”
콰과광!
빨간 버튼을 누르자 거대한 굉음이 울리며 폭탄이 터진다.
폭발이 주변을 휩쓸며, 강수호는 재빨리 제일 앞에서 멍한 표정을 짓는 그녀를 감싸 안았다.
* * *
“크윽. 쿨럭! 쿨럭!”
먼지와 흙이 입 안으로 들어왔고, 정신을 차리자 기침이 터져 나온다.
입이 텁텁하여 지금 당장 물을 마시고 싶었지만.
“아악…….”
“괜찮아?”
고통이 먼저다. 타는 듯한 목마름보다 더욱 신경 쓰이는 고통.
등에서부터 시작되는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끔찍했다.
최서현은 다치지 않아 다행이지만.
“괜찮냐?”
“응. 괜찮아…….”
“아니, 너 말고.”
“음?”
물론 그녀가 다치지 않은 건 다행이다. 하지만 강수호가 지킨 사람은 그녀가 아니었다.
“크르르릉!”
버스에 타서 밥을 주려고 꺼내 놓았던 뽀삐. 울음소리가 우렁찬 걸 보니 다치지 않은 듯하다.
그녀의 당황한 표정을 뒤로하고 자리에서 일어나 주변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죽지는 않았나 보네.”
사후 세계는 아니었다.
마나를 끌어 올려 쉴드로 막았기에 피해는 없었다.
뽀삐를 인벤토리에 넣고 잔해들을 치우자 밝은 햇빛이 보이기 시작했다.
“흡!”
잔해들을 치우자 보이는 사람들. 모두 정상적이지 않았다.
몇몇은 머리가 사라져 있어 저절로 인상이 찌푸려졌다.
“끄아악!”
“조금만 참으세요. 최서현. 너도 와서 도와줘.”
“응!”
죽지 않은 사람도 있었기에 남아 있는 힘을 이용해 잔해에 깔린 사람들을 돕기 시작했다.
등 뒤에 박힌 파편과 4도 이상의 화상은 트롤의 재생력으로 인해 금방 치료되었다.
“아프군.”
“아프지. 폭탄을 바로 앞에서 맞았는데 살아 있다니.”
조시현도 살아 있었고.
“아야. 진짜 더럽게 아프네. 갑자기 폭탄은 왜 터지는 거야?”
“쉴드로 잘도 막아 놨으면서 엄살은.”
한석유 또한 멀쩡히 잘 살아 있었다. 모두 순식간에 방어 마법, 아티펙트를 발동해 목숨을 건진 덕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사람들을 구하는 것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었다.
“저것들은 어떻게 할 건가?”
“그러게. 우리가 있는 걸 모르는 것 같은데?”
마인이 자신의 목숨까지 던져서 얻은 사람들의 목숨. 그뿐만이 아니라 그들은 사람의 목숨을 숨 쉬는 것처럼 쉽게 갈취하며 자신의 한 끼 식사 거리로 만들어 냈다.
“……미친 새끼들.”
“저게 마인?”
말로 표현하지 못할 끔찍한 행동들.
주변에 헌터 협회와 제주도 길드가 있음에도 그들은 인질들을 이용해 협박하지 않았다.
콰직!! 촤아악!
뭔가 베어지고 터지는 소리와.
“꺄아아악!”
“으아아악!”
사람들의 비명이 공항을 가득 채웠다.
피와 살점이 주변에 널브러져 있어 밖에 있음에도 혈향이 코끝을 찔렀다.
정신 차린 그들은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 끔찍한 풍경을 확인했다.
의자에 앉아 죽음만을 기다리는 공항 안의 사람들. 간부로 보이는 마인의 손이 움직일수록 점점 공포에 잠식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사이에 보이는 익숙한 인물.
‘양유혁?’
죽은 줄만 알았던 양유혁이 간부의 뒤에 있었다.
천천히 다가가 팔을 높게 들어 올리더니.
푸욱!
“……!!”
‘미친.’
정확히 간부의 심장을 뚫었다.
상상하기도 싫은 검붉은 피가 바닥에 떨어진다. 아침에 먹은 게 올라올 정도로 역한 냄새가 공항 전체를 감쌌다.
검붉은 피를 흘리며 쓰러지는 마인 사이로.
“……!!”
정확히 양유혁과 눈이 마주치자.
털썩.
정신을 차린 이들 모두 깊은 잠에 빠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