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4화
64. 여행(2)
“뭐라 하시냐.”
“알겠다고 합니다.”
“……야.”
“네?”
“내가 뭘 말하라고 했냐?”
“제주도에서 되도록 나가라고……. 아, 아하.”
“이런 멍청한 놈을 봤나.”
빠각!
“아야! 그렇다고 왜 때립니까?”
경말하는 듯이 쳐다보는 붉은 눈의 한 이. 분명히 부하에게 되도록 제주도를 피하라고 말하라 했다.
하지만 부하는 멍청하게 제대로 듣지도 않고 전달도 못 했다.
“아무리 규모가 작더라도 그분의 장난감에 피해가 갈 수가 있다. 더군다나 그분은 인간의 피를 드시지 않으니.”
1,000명이란 수의 파티. 인간들에게는 평범하기 짝이 없는 대규모의 파티겠지만, 마인만큼은 아니었다.
“피와 살육으로 즐기는 파티가 될 텐데. 에라이, 모르겠다. 그런데 너도 갈 것이냐?”
“당연한 거 아닙니까? 규모가 작은 파티지만, 파티란 마인들의 탐욕을 억제할 수 있는 유일한 억제제 아닙니까?”
“그래, 제주도에서 피바다를 보겠구나.”
제주도 바다를 바라보며 먹는 피와 살점. 그것만큼 행복한 파티도 없을 것이다. 평소에는 선지나 먹는데 말이다.
“그래서 피의 파티가 열리는 곳은 어디지?”
“서귀포입니다. 그분의 장난감이 같이 있는 곳이죠.”
이번 축제가 이루어질 곳은 서귀포.
자리에 앉은 그가 며칠 뒤에 이루어질 작은 파티를 상상하며 미소 지었다. 오랜만에 진행되는 파티였으니까.
* * *
“미친…….”
“오우야.”
제주도. 우리나라 서남해 쪽에 있는 가장 큰 화산섬. 외국인들도 많이 오는 유명한 관광지다.
그만큼 많은 사람이 해변을 뛰어다니고 있었다.
“흠흠. 뭘 그렇게 보는 거지?”
“저거 안 보여?”
먼저 해변에 나온 조시현과 한석유. 그리고 강수호는 바다에 있는 비키니 차림의 미녀들을 보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고자가 아닌 이상 제주도 바다를 뛰는 미녀들을 보고 심장이 뛰지 않는다면 이상한 일일 거다.
“야, 어디를 그렇게 보는 거야? 나 있는 거 안 보여?”
“와…….”
“…….”
바로 옆에 검은 래시가드 차림의 최서현이 있음에도 그들은 신경조차 쓰지 않았다.
반짝이는 눈을 한 채로 곧장 바다로 뛰어들었다.
“들어가자!!”
“우횻!”
강수호의 말에 한석유가 소리치며 먼저 달려 나갔고.
“나도 같이 가!”
삐져 있던 그녀도 바다를 향해 달려 나갔다.
그렇게 오랜만의 휴식을 즐겼다.
그들의 근처에 가지 않던 최서현도 장난 몇 번 치니 함께 놀기 시작했다.
사람을 구하고, 몬스터를 잡는 헌터가 아니라 평범한 고등학생이 된 것처럼, 한참을 신나게 놀았다.
각기 능력을 사용하면서 장난을 치기도 했고.
“으으. 그만 좀 튀겨! 이것들아!!”
“허, 헐쿠로 변신한다!!”
그중에서 제일 심한 장난을 받은 최서현이 능력을 사용하여 거대한 몸집으로 물보라를 일으켰다.
“하암~ 피곤하네.”
그들과 반대로 양유혁은 모래에 누워 늘어지게 하품했다. 물을 좋아하는 것은 아니기에 한숨 자기 위해 눈을 감았다.
어제 일 때문에 잠도 못 잤으니 눈을 감고 깊은 잠에 빠지려던 그때.
“양유혁.”
“음? 무슨 일…….”
그때 마침 놀고 있던 강수호가 다가오더니.
촤아악!
“아악! 차가워!”
“따라왔으면 놀아야지. 뭐하냐?”
바가지에 담긴 바닷물을 잔뜩 뿌렸다.
온몸이 다 젖자 양유혁도 어쩔 수 없이 입꼬리를 올리며 바다로 뛰어들었다.
그렇게 한참을 놀고 나서야.
“바다에 놀고 나서는 바비큐 파티다. 이 한우는 A+++에 토시살, 안창살, 제비추리, 부챗살, 살치살 같은 특수 부위…….”
“…….”
바비큐 파티가 시작되었다.
숯을 넣고 고기를 굽는 과정에서 고기에 관한 설명이 얼마나 많은지 조시현이 왜 1년 이상 친구가 없는지 알게 되었다.
“그래서 이 토시살 부위로 말할 것 같으면…….”
말이 끝나기 무섭게 들고 있던 고기 팩을 낚아챘다.
“지금 이게 무슨! 설명하고 있잖아!”
“맛만 좋으면 장땡이지. 무슨 설명을 국어 선생님처럼 장엄하게 하냐?”
“아직 설명이 다 끝나지 않았는데……!”
설명이 다 끝나기도 전에.
치이이익.
빨갛게 달궈진 불판에 소고기를 양껏 투척했다.
아름답게 익어가는 소리. 배고플 때는 이보다 아름다운 소리가 없을 것이다.
“그보다, 육회 있어?”
“당연하지. 이 육회는 갓 따온 짚을 먹이로 매끼 왕창 주기에 육질이 연하면서 부드러운…….”
“비서님! 배랑 달걀 좀 가지고 와 줘요!”
“아직 설명이…….”
설명 따위들을 시간은 없었다. 배고픔에 배가 요동치고 있었으니까. 수영은 칼로리 소모가 높은 운동이었기에 등가죽이 뼈에 붙을 지경이다.
아름답게 익어가는 소리가 테라스에 울렸고, 하늘에 연기가 잔뜩 피어올랐다.
“후우. 다 먹었다.”
“역시 A+++ 소고기답군.”
“지금까지 먹어 본 것 중에 제일 맛있었어! 그렇지, 수호야?”
“응? 음. 맛있긴 하더라.”
지금껏 먹어본 소고기와 비교도 되지 않는다. 그렇다고 엄마가 구워준 삼겹살은 이런 소고기에 비비지도 못하지만.
이런 날에 먹는 고기는 특히 더욱 맛있었다. 재밌게 놀고 와서 먹는 고기.
“그다음은 라면! 원래 라면은 고기 먹고 먹는 게 국룰이지.”
마지막 후식은 당연히 라면이다.
보글보글 끓는 물에 수프를 넣어 발화점을 높인다. 면을 넣고 다 끓을 때까지 기다리자.
“됐다.”
꿀꺽.
뜨거우면서도 감칠맛 나는 라면이 완성되었다.
젓가락과 종이컵을 준비하고 집게와 국자로 면발과 뜨끈한 국물을 종이컵에 퍼 담는다.
그렇게 한참이나 먹방이 시작되고.
“이제 더는 못 먹어.”
강수호가 먼저 배를 두드리며 포기를 선언했다.
라면 양은 그리 많지 않았으나, 고기로 배를 너무 채웠다.
“나 소화도 할 겸 밖에 나가서 산책 좀 할게.”
“나도! 나랑 같이 가자!”
“그래? 그럼.”
최서현도 많이 먹어서 더부룩했는지 함께 바닷가를 산책하러 나갔다.
시간은 오후 6시. 벌써 하루가 지나간다.
각성자라 음식 소화 능력이 일반 사람보다 몇 배는 빠르지만, 방금 먹은 고기와 라면이 최소 10인분은 되는지라 몇십 분은 걸어야 할 듯하다.
“근데 너는 별로 안 먹지 않았어?”
“음? 아니야. 나 많이 먹었어. 배 봐 봐.”
배를 두드리며 많이 먹었다는 걸 표현하는 그녀. 강수호를 보느라 밥도 별로 먹지 않았던 거로 기억하는데 말이다.
밥 먹는 데에만 집중했었기에 그러려니 고개를 끄덕이며 바닷길을 걸었다.
“예쁘네.”
바다를 등지며 해가 지는 노을. 절로 미소가 지어지는 풍경이었다.
이렇게 아름다운 걸 휴대폰 화면으로만 보고 있었다니.
“예쁘지. 그러니까 나 좀 봐 봐.”
“왜?”
노을을 보고 있자 그녀가 강수호의 볼을 두 손으로 감싸 쥔다.
그녀는 자신을 한참 동안 쳐다보고 있다가 입을 열었다.
“나 너…….”
뭔가 대충 예상이 갈 듯한 대답.
조용히 듣고 있던 그때.
“너를.”
“쿨럭!”
“좋아.”
“쿨럭!”
“하는데…….”
“뭐라고? 잘 안 들려?”
“…….”
누군가의 기침 소리에 파묻힌 목소리.
그녀의 표정이 처참히 구겨진다. 고백 0인데, 차임 1인 것 같은 느낌이 들었으니까.
“누가 이렇게 기침을…….”
폐렴이 아닌 이상에야 기침을 저렇게까지는 하지 않을 것이다.
뭔가 싶어 주변을 천천히 둘러보자.
“……!!”
“뭐야?”
“으어어억……. 쿨럭! 쿨럭!”
의자에서 기침을 반복하는 한 남자.
문제는 그것이 평범한 기침이 아니라는 거다. 기침을 한 번 할 때마다 피를 토하며 눈동자의 색이 사라져 갔다. 얼굴색이 새파랗게 변하며 각혈을 반복한다.
“……제발. 쿨럭! 살려 줘…….”
“살려 달라고요?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관광지라 그런지 사람이 북적였다.
호텔 근처에 맛집도 있었기에 이 남자를 이렇게 만든 사람을 찾기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아무리 주변을 둘러봐도 이 남자의 혈향을 풍기는 범인은 찾기 힘들었다.
“일단 살리고 보자.”
“응.”
범인이 사라진 지금, 사람부터 살리는 것이 우선이었다.
휴대폰을 들고 119에 전화한 뒤에 상처를 확인했다.
‘복부에 칼이 찔렸네. 검은색은 뭐지??’
복부에 찔린 상처. 찢어진 상처에서 핏물이 솟구쳐 나온다.
그뿐만이라면 다행이겠지만.
“이 사람 게거품 물어!”
“뭐? 갑자기?”
독까지 중독되었다. 극독까지는 아니더라도 사람을 죽일 수 있을 만큼 치명적인 독.
“……일단은.”
해독제는 없었다. 중독을 억제하는 해독제보다.
“찾았다.”
“응? 그 물약은 또 뭐야?”
“쉿. 이거 봤다고 말하지 마.”
“……?”
마을에서는 쓰레기 취급받는 SSS급 최상급 물약.
이걸 사용하는 게 해독제를 사용하는 것보다 100배는 나을 거다.
“복부에 바르고. 천천히 마시세요.”
“크윽. 쿨럭!”
반은 찢어진 상처에 바르고, 나머지는 입 안에 들이붓는다. 그러자 서서히 치료 효과가 나타난다.
-검상이 회복되었습니다.
-검상이 회복되었습니다.
무수히 떠오르는 상태창 메시지와.
“쿨럭!”
후두둑.
“……!!”
치료해도 계속해서 떨어지는 피와 찢어진 내장 조각들.
뭔가 이상했다.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는 것처럼 물약을 사용해도 치료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뭐지?’
SSS급 최상급 물약. 마을에서는 쓰레기 취급을 받는다지만, 여기에서만큼은 아니다.
‘일반인이 사용하면 만병통치약일 텐데?’
어떤 병이든 치료할 수 있는 물약. 더해 말하자면 어떤 독이든 치료할 수 있다는 뜻이다.
“다시.”
“…….”
한 병으로는 안 될 위급한 상태라 그런 거라 생각했다. 인벤토리에서 다시 SSS급 최상급 물약 한 병을 꺼내어 방금과 같이 치료했지만.
“……뭐지?”
변하는 건 없었다.
남자는 또다시 각혈했고, 각혈에는 피와 조각난 내장들이 섞여 있었다.
머릿속에 의문으로 가득 찼다.
엘릭서와 비슷한 만병통치약. 유명 길드들이 이 물약 한 병을 얻기 위해 얼마나 애를 썼던가.
‘설마?’
갑작스레 머릿속에 떠오른 단 하나의 생각.
혹시 몰라서 지금까지 떠오른 상태창 메시지를 천천히 뒤지기 시작했다.
‘분명히 비슷한 메시지가 있었던 것 같았는데…….’
원하는 게임을 찾는 게이머처럼 한참 스크롤을 내렸다.
원하는 단어가 보이기 전까지 상태창 메시지를 계속해서 뒤져보았고.
“찾았다.”
곧이어 원하는 단어를 찾을 수 있었다.
-마독(魔毒)에 중독되었습니다.
-마독(魔毒)에 중독되었습니다.
-마독(魔毒)에 중독되었습니다.
……
……
“……마독?”
마독. 어디서 많이 들어본 단어다. 어디선가 많이 들어봤는데, 머릿속에 잘 떠오르지 않았다.
머리를 감싸 쥐듯 쥐며 고민하고 있을 때.
“마인들이 사용하는 특이한 독 말하는 거야?”
그녀가 중얼거리듯 말하는 것을 들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마기가 섞은 독. 그것을 마독이라 하는데.
“마독이면…….”
SSS급 최상급 물약이라도 해독할 수 없다.
최상급 물약이 듣지 않았던 이유가 이제야 밝혀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