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3화
63. 여행(1)
악마라 생각할 정도의 압박감. 그런 압박감이 이구호에게서 느껴지고 있었다.
“뭐 때문에 여기에 온 거냐?”
“먹을 거……. 먹을 거…….”
“괜히 물었네.”
말할 필요조차 느끼지 못했다.
검을 쥐고 몸에 버프 마법을 부여했다.
악마의 머리를 베는 데까지 걸리는 시간은 고작 2초.
촤아악!
스걱.
“…….”
악마의 피가 주변에 비산하며 목이 바닥에 떨어진다.
처참한 광경에 인상을 찌푸리긴커녕 입을 쩍 벌리며 감탄만 반복할 뿐이다.
압도적인 강함.
‘강하네.’
물론 강수호에게는 아니었다.
그저 고개를 끄덕이며 강하다고 생각한 것이 고작.
“괜찮냐?”
“아, 넵.”
“별로 놀란 눈치도 아니네. 하긴 그런 괴물 같은 남자를 스승으로 뒀는데 이거 가지고 놀라는 게 더 신기하지.”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나타난 스승님을 말한 것일 터.
고개를 끄덕이자 그가 자신에게 손을 내밀었다.
“가자.”
“넵.”
* * *
“후루룹.”
이번 아카데미 공식 경기에서는 정말 많은 일이 있었다.
갑자기 악마가 나타나지 않았나, 같은 팀이 정순한 마기를 복용하지 않나. 과연 열흘 동안 안전하게 경기를 끝낼 수 있을까 의문이 들 정도였다.
하지만 다행히 10일이란 시간은 무사히 지나갔고.
“1등 축하해!!”
“후루룹! 음? 아, 고마워.”
서울 아카데미가 1등을 차지했다.
최서현은 마지막에 서울 명문 아카데미에 진 것이 전혀 분하지 않았는지 미소 지으며 축하의 말을 전했다.
“그것보다 이제 방학 아니야?”
“그렇지.”
“너는 방학 때 뭐할 거야? 보통 학생들끼리 어디 여행 같은 데 간다고 하던데.”
벌써 여름이 되었다. 7월이 넘어간 지금, 곧 있으면 여름방학이 시작될 것이다.
‘여행이라…….’
그녀의 말에 먹던 푸라면을 잠시 식탁에 놓고 생각에 잠겼다.
돈이 없어서 한 번도 가지 못한 여행. 제주도도 가 본 적 없는데, 방학 때 15일 정도로 가면 나쁘지 않을 듯하다.
“괜찮겠네.”
“정말?! 그럼 나랑 같이…….”
“엄마랑 같이 갈까?”
“…….”
물론 누구랑 같이 간다는 생각은 버렸다.
효도! 지금까지 자신을 키워주신 엄마께 효도!
집도 아직 고르는 중이라 여행부터 하는 것이 맞는 듯하다.
“왜?”
“……아니야.”
최서현의 눈에 당혹감이 물들었지만, 곧이어 그녀가 고개를 저었다.
다시 먹는 것에 집중하자 이번에는 양유혁이 다가오며 묻는다.
“여행 갈래?”
“……갑자기?”
인상을 잔뜩 찌푸렸다. 이놈이랑은 세상이 멸망한다 해도 같이 가기 싫었으니까.
“너랑은 안 간다.”
“아니, 다른 녀석들이랑 가라고.”
“누구랑?”
강수호의 물음에 양유혁의 눈길이 최서현과 그 옆에 있던 조시현에게로 향한다.
여행을 가는 건 좋지만, 그리 친한 녀석들은 아니었다. 최서현과 조시현은 요즘 막 친해진 것뿐.
“그냥 엄마랑…….”
굳이 그들과 같이 갈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그렇기에 엄마랑 같이 가려 했지만.
“나도 같이 간다.”
“……?”
뒤에서 들리는 목소리. 고개를 돌려 목소리의 주인을 확인해 보니 한석유였다.
* * *
[어마마마 : 엄마 파리 갔다 올게. 이제 비행기 타니까 전화는 못 할 것 같아.]
“잘 갔다 오세요.”
간단히 문자 메시지를 보내고 주머니에 넣었다.
드디어 여름방학이 시작되었다.
아쉽게도 엄마와의 여행은 함께 가지 못했다. 그 대신 예전부터 알고 지내던 친한 친구와 함께 파리 여행을 보내주었다.
“이놈들은 왜 이렇게 늦는 거야?”
색다른 와이셔츠와 반바지. 누가 봐도 ‘나 여행 왔어요!!’라는 느낌이 물씬 풍기는 깔맞춤 의상이었다.
끼이익.
“음?”
10분 정도 더 기다리자 공항 앞에서 검은 밴 하나가 정차했다. 그리고 그 밴 안에서 익숙하면서도 잘 알고 있는 한 사람이 내렸다.
드르륵.
문이 열리는 것과 동시에 얼굴이 보인다.
호위대가 그를 보호했고.
“좀 평범하게 갑시다. 어차피 평범한 친구들끼리의 여행인데 이렇게까지 경비가 삼엄하면 더 의심할 것 같습니다만?”
“죄송합니다. 마스터의 말이라 저희도 쉽게 물러날 수는 없습니다.”
“……조시현?”
“음? 먼저 와 있었네.”
신왕 길드 마스터의 아들 조시현. 그가 첫 번째로 공항에 도착했다. 마스터의 아들답게 경계가 철저했다. 그나마 다행인 건 호위대가 여행까지는 따라가지 않는다는 것.
“다른 애들은?”
“아직.”
“많이 늦네.”
비행기 시간까지는 아직 30분 정도 남았다.
강수호와 그들이 빨리 온 거긴 하지만, 비행기를 타기 전에는 빨리 와야 하지 않겠나.
“나 왔어!!”
“어, 왔냐.”
10분이 더 지나자 최서현이 왔고.
“나 왔다.”
“하와이? 왜 나랑 비슷한 복장이냐?”
“네가 날 따라 한 거지! 왜 나랑 같은 복장이냐!”
“내가 할 말인데.”
10분이 더 지나자 한석유가 도착했다. 같은 복장이라 인상이 찌푸렸지만, 그러려니 했다.
“이제 가자.”
“우효! 여행이다! 여행!”
남은 시간은 대략 10분. 곧 있으면 비행기가 출발할 시간이었기에 곧장 티켓을 끊고 비행기에 오르자.
“나 빼고 다들 어디 가?”
“…….”
뒤에서 들리는 익숙한 목소리.
천천히 고개를 돌리자 익숙한 얼굴이 눈에 보였다.
“양유혁?”
양유혁이 있는 곳에서 이야기했지만, 그는 초대하지 않았던 거로 기억한다. 같은 길드원이라도 그와 같이 다니는 건 뭔가 매우 찜찜했으니까.
“그런데 너 비행기 티켓이…….”
“있는데? 오전 9시 꺼.”
“……있구나.”
“흐흐흐.”
티켓이 없기만을 빌었다. 하지만 그의 주머니에서 나오는 비행기 티켓은 정확히 오전 9시 표.
어쩔 수 없이 불편한 동행이 시작되었다.
다른 이들도 그리 싫어하지는 않는 것 같으니.
“표 확인하겠습니다.”
“여기요.”
“비즈니스석은…….”
제주도까지 가는데 무려 비즈니스석을 타고 간다. 굳이 그럴 필요 없다 했는데, 모두 조시현 덕분이었다.
대부분의 예약은 신왕 길드와 패왕 길드 쪽에서 해 주었다. 방학 기념으로 잠시 쉬었다 오라고.
“귀신이냐?”
“뭐가?”
“우리가 탈 자리는 어떻게 알았대?”
사소한 문제가 있다면 바로 양유혁이었다.
자신의 바로 좌석은 어떻게 알았는지 바로 옆에 앉고는 웃으며 고개를 갸웃거린다. 저 얼굴이 얼마나 얄미운지.
“싫어?”
“……마음대로 해라.”
무시하고 눈을 감았다. 새벽까지 훈련하느라 몸이 어찌나 피곤한지.
“아, 맞다. 상태창.”
30분 정도 자기 전에 상태창을 열었다. 산전수전 다 겪었기에 얼마나 상승했는지 궁금했다.
[강수호]
레벨 : Lv. 35
체력 – 153 민첩 – 133 힘 – 152 마나 – 138 감각 – 136
스탯 포인트 : 0
재능 : 차원 이동(SSS급)
스킬 : [트롤의 재생력(S급) : Lv. 4], [절대정신 방벽(S급) : Lv. 3], [미스릴의 신체(B급) : Lv. MAX], [괴물 같은 체력(C급) : Lv. MAX], [2서클 마법급 : Lv. 5], [황금 노움들의 왕(SS급) : Lv. MAX]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스킬, ‘괴물 같은 체력(C급)’의 레벨이 MAX가 되었습니다.
‘많이 올랐네.’
예상외로 많이 오른 스탯과 스킬 레벨.
상태창을 확인한 강수호는 희미한 웃음을 띠며 잠이 들었다.
* * *
“드디어 제주도다!!”
정확히 30분이 조금 지난 뒤 제주도에 도착했다.
공항에서 나오자 해맑은 햇빛이 그들을 반겨주었다.
“오셨습니까?”
“안녕하세요!”
공항에서 나오자 신왕 길드 마스터 비서로 보이는 여자가 그들에게 인사를 건넸다. 반갑게 인사를 건네고는 곧장 차에 올랐다.
“바다가 보이는 야경이 좋은 곳으로 예약해 놓았습니다. 천천히 놀다가 2주 정도 뒤에 돌아오시면 될 것 같습니다. 좀 있으면 신입생들의 데뷔전이 시작되니까요.”
“오오오.”
며칠 정도 이렇게 노는 것도 나쁘지 않다. 태어날 때부터 지금까지 계속해서 달려오기만 했으니까. 며칠 정도의 쉬는 시간은 줘야 살아갈 수 있을 터.
얼마 지나지 않아 도착한 숙소.
“대박.”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50층의 거대한 높이의 호텔. 근처에 바다도 있기에 호텔로 들어가 곧장 수영복으로 갈아입었다.
남자와 여자 따로 숙소가 있었고.
“이게 아침 풍경이야?”
50평 정도의 큰 호텔.
밖을 보니 아름답게 펼쳐진 해안가와 사람들이 보였다. 미소가 저절로 지어질 정도로.
“오길 잘했네.”
가난이란 단어 하나 때문에 한 번도 가 보지 못한 여행. 그런 여행을 유명한 신입 헌터가 되어서야 와 보게 되었다.
사소한 문제가 있다면.
“뭐해? 안 나와? 빨리 바다 가자!”
“…….”
이런 좋은 곳에 양유혁과 함께 있다는 것.
양유혁만 없다면 오늘이 제일 행복한 것 같지만.
‘뭐, 감수해야지.’
여행에 장점만 있는 법은 없다.
그리고 단점이 한 가지라면 충분히 감수할 만하다.
“그래그래. 가자, 가.”
억지로 손목을 붙잡혀 바다로 향했다.
띠리링~ 띠리링~
“음? 누구 전화야?”
갑작스럽게 울리는 전화.
강수호에게 전화할 사람은 없었다. 친구도 별로 없고, 이번에 여행을 같이 온 그들이 유일한 친구였으니까.
더군다나 강수호의 폰에서 울리는 전화가 아니었다.
“아, 미안. 먼저 나가 있어. 전화 좀 받고 나갈게. 꽤나 급한 전화인 것 같거든.”
“그래…….”
전화벨의 주인은 양유혁.
강수호가 나가자 그가 휴대폰의 초록색 버튼을 당기며 귀에 대었다.
“무슨 일이지?”
갑작스레 변한 목소리. 바보 같고 헤실헤실 웃던 목소리는 사라졌고, 위협이 가득한 굵직한 목소리로 변해 있었다.
-제주도에 있다 해서 이렇게 연락드립니다.
“그래, 그런데.”
처음에는 간단한 물음과 대답.
제주도에 있다. ‘그런데 어쩌란 말인가’라는 답변으로 이어가려던 찰나.
“그런데 어쩌란 말인…….”
-저희가 오늘 그곳에서 파티를 벌이기로 했습니다만.
“파티?”
-넵. 아주 성대하고 재미있는 파티죠.
“…….”
양유혁이 잠시 입을 다물었다. 인간들에게 파티란 더할 나위 없이 즐겁고 행복한 시간.
잠시 고민하던 양유혁이 조금씩 입을 열었다.
“얼마나?”
-대략 1,000 정도? 이번 규모는 꽤나 작게 치러질 예정입니다. 몇몇 분들이 심심하다고 여러 일을 벌인 탓에 감시망이 단단하거든요.
“1,000이라…….”
작은 규모. 그나마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1,000 정도면 크게 신경 쓰지 않아도 될 테니까.
“최대한 우리에게 들키지 않도록 해라.”
-네, 알겠습니다. 그 대신에 윗분들께서 이제 장난감 가지고 적당히 노시라는 충고가…….
말을 하기도 전에,
“시끄럽다.”
붉은 버튼을 눌러 버렸다. 그딴 충고는 더 이상 듣고 싶지 않았다.
휴대폰을 다시 집어넣고는 곧장 바다로 향했다.
자신에게 피해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기에 다시 한번 울리는 전화를 무시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