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2화
62. 세뇌(4)
“시작됐군요.”
“그래그래. 아주 재밌겠어.”
아무도 없는 VIP 관중석. VIP석을 통째로 구매한 특혜였다.
오른손에 와인 잔을 잡은 그가 와인을 쭉 들이켰다.
“몇 년 산이지?”
와인 잔에 담긴 붉은 와인을 돌려가며 물었다.
맛이 좋아서 그런 게 아니다.
“더럽게 맛없군.”
“20년 산입니다. 인간들이 먹는 걸 드셔서 그럽니다. 이걸 드십시오.”
부하로 보이는 그가 조심스레 검은 비닐봉지를 건넸다.
피비린내를 가득 풍기는 비닐봉지 안. 주변을 가득 에워싸는 피비린내를 즐기며 검은 봉지에 손을 넣었다.
“그래. 이거지.”
“특급으로 준비했습니다.”
물컹거리는 붉은색의 무언가를 집어 입 안에 넣었다.
“크으! 이런 걸 먹어야지. 우리가 무슨 인간이냐? 마인들은 이런 걸 먹어야 한다고!”
붉은 무언가의 정체는 선지. 동물의 피로 만든 평범한 선지였다.
금세 흡입하고는 경기장 한구석에서 시작되는 생존 게임을 유심히 쳐다봤다.
“그런데 왜 갑자기 3년 전부터 저 난리를 치는 거야?”
천으로 손을 닦아내며 양유혁을 바라보며 물었다.
너무나도 궁금한 질문. 그 답변을 알아야 했으나…….
“저도 자세히는 모르겠습니다.”
“또 그 소리지? 하여튼 도움이 안 돼요. 너는 아는 게 없냐?”
“죄송합니다. 하지만 정말 그분께서는 저한테 어떠한 것도 이야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래, 네가 무슨 잘못이 있겠냐.”
자신이 모르는 걸 부하가 알 리 없었다.
아쉬움을 뒤로 한 채, 문서 하나를 집었다.
“이게 저놈 거야?”
“넵.”
“흠…….”
강수호의 정보들이 들어 있는 문서를 한참 뒤지더니 고개를 저었다.
“왜 이런 놈한테 관심을 가지는 거지? 난 또 숨어 있는 재벌인 줄 알았네. 별 볼 일 없는 놈이잖아.”
재벌 같은 것도 아니라는 것. 그렇다면 딱 한 가지로 설명할 수 있었다.
“새로운 장난감인가?”
“그럴 가능성이 큽니다.”
“호호. 그렇군. 새로운 장난감이라…….”
새로운 장난감. 그거라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심심한 거겠지. 우리는 조용히 관람이나 하고 있자고. 우리가 만든 장난감이 얼마나 재밌는 짓을 하는지 봐야 하잖아.”
“예.”
그들 또한 장난감을 만든 참이었다.
흐리멍덩한 눈에 아무리 잔인하고 해괴망측한 짓이라도 하는 감정 없는 괴물들.
이번 경기는 꽤나 잔인한 살육의 현장이 될 것이다.
물론 실제로 죽지는 않겠지만.
뭐, 죽을 수도 있고.
“즐겨 보자고.”
해맑게 미소 지은 그가 와인 잔을 바닥에 떨어트렸다.
* * *
“다 먹었으면 깡통은 줄에 묶어서 은신처 주위 전체를 둘러싸. 줄기하고 깡통 개수는 충분하니까. 알겠지?”
“어!!”
대충 은신처를 만들고 학생들을 진두지휘하는 강수호. 고작 2시간이란 시간 만에 만든 결과였다.
은신처도 어느 정도 모양이 갖춰졌다.
“일단은 장비 점검부터 시작하자.”
그다음으로는 장비 점검.
보급품으로 얻은 히든 장비 3개, 일반 장비 7개. 그리고 하루 정도는 버틸 수 있는 식량까지.
“열 명이서 충분히 먹을 수 있겠어. 일단 이것부터. 상태창.”
석궁 하나를 집어 곧바로 상태창을 열었다.
[석화 석궁]
내구도 : 100/100
공격력 : 14
효과 : 일반 화살이라도 석화의 힘을 넣어 맞출 시에는 맞춘 곳에서부터 서서히 석화가 진행된다.
“……!!”
“에이, 별거 아니잖아. 이 정도면 디버프 계열 마법이니까 없애는 건 쉽겠네.”
석화 석궁부터 시작해서.
[출혈의 검]
내구도 : 100/100
공격력 : 13
효과 : 검날에 닿아 상처가 생긴 즉시 피가 넘쳐흐를 정도의 출혈이 생긴다. 제때 막지 않으면 사망에 이를지도…….
“…….”
“고작 출혈? 히든 장비치고는 너무 부실…….”
“시끄러워.”
“…….”
자신이 보기에도 이건 헌터로 장비로서 부족함이 많았다.
물론 헌터 장비로서만 부족할 뿐, 아무런 능력이 없는 생존 게임에서는 어떤 것보다 큰 가치를 할 것이다.
“여기가 어딘지 잘 기억해. 우리가 지금 당장 디버프 무기에 다치면 치료할 수 있어?”
“아니?”
“출혈이 생기면 우리의 뛰어난 회복 속도로 치료할 수는 있고?”
“…….”
전혀 아니다. 오히려 출혈을 막다가 손해만 잔뜩 보고 죽고 말 것이다.
그러니 이 히든 장비는 지금 상황에서는 금보다 귀한 보물이다.
“지금 상황을 생각해. 이게 얼마나 귀한지.”
“그렇네.”
고개를 끄덕인다.
각성자가 아닌, 평범한 인간의 신체로 이런 무기에 맞으면 전투 불능 상태에 빠지는 건 뻔한 일이다.
10분 정도에 걸쳐 정리를 끝냈고.
“방어조와 공격조를 나누자. 지금 공격조는 어차피 탐색만 잠깐 갔다 올 거기 때문에 히든 무기를 사용할 수 있는 사람들만 가면 돼.”
공격조와 방어조가 정해졌다.
히든 무기를 잘 다루는 이들이 공격조. 나머지는 모두 방어조.
다친 이가 있기에 3대7로 나누었다.
“주변 탐색부터 시작할게.”
지피지기면 백전백승. 나를 알고 적을 알면 100번의 결투에서 100번 승리한다는 뜻.
하지만 지금은 상대방을 정확히 알지 못하기에 천천히 주변부터 살펴봐야 했다. 상대방이 이곳에 들어왔을 때, 재빠르게 대처할 수 있도록.
“양유혁, 조시현.”
“어.”
“오케이.”
“우리는 먼저 앞을 둘러보고 온다. 땅따먹기 알지? 빠르게 말고 천천히 살펴보면서 올라갈 거야.”
세 명은 당연히 히든 장비를 잡은 이들. 제일 강하기도 하고, 히든 장비를 잘 다룰 줄 알았으니까.
“상처 입은 사람은 굳이 보초 세울 필요는 없어.”
“알겠어.”
그렇게 당부한 뒤에 사라진다.
발걸음을 옮겨 땅따먹기 식으로 밟을 수 있는 땅을 넓혀 나간다.
“보급품에서 가져온 스프레이 줘봐.”
“여기.”
빨간색 스프레이로 나무에 X자를 쳐 놓는다.
여기는 확인한 구역. 한마디로 말하자면 이미 통과한 구역이다.
그렇게 빠른 속도로 2시간 정도 달린 결과.
“후우, 찾았다.”
그렇게 광활한 숲은 아니었는지 조은 아카데미가 있는 곳에 도착할 수 있었다.
“저것들, 뭐 하는 거냐?”
“나도 몰라.”
수풀 사이에 숨어서 볼 수 있는 건 나무 기둥을 의자 삼아 앉은 이들. 그리고 입을 조금씩 벌리며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었다.
“일단 시작한다.”
“그래.”
탐색만 할 거라 생각했지만, 이런 기회를 쉽게 놓칠 수 없었다.
가져온 화살을 끼우고 머리에 정조준한다.
정확히 헤드라인에 들어섰을 때.
피융.
바람을 가르는 소리와 함께.
푸욱!
“명중.”
한 남자 학생의 머리에 꽂혔다.
“@[email protected]#$.”
“……?”
하지만 그들은 일절 반응하지 않았다. 정말 세뇌에 걸린 것처럼.
놀라지 않은 그들의 행동에 잠시 멈칫거리자.
“@%$%@#!!”
“뭐야?”
그들의 목소리가 점차 커진다.
알 수 없는 언어가 들리더니.
쿠궁!
지반 전체가 울리기 시작했다.
머리가 뚫려 죽은 친구는 생각하지 않고 외우는 이상한 주문.
뭔가 이상함을 느낀 그들이 저마다 무기를 꺼내어 휘둘렀지만.
“헤헤.”
“……미친.”
그들이 외우던 주문이 끝난 상황.
핏빛 마법진이 생기더니, 거대한 무언가 나타난다.
악마를 닮은 생명체.
“…….”
천천히 주변을 둘러본다. 이 세계에 적응하고 있는 듯 한참을 둘러본 끝에.
“도착했구나.”
중얼거리듯 입을 열었다.
최하급 악마라 해도 최소 B급 헌터 수준은 된다.
“정말 악마야?”
“뿔이 있으니까 그렇겠지. 완전 망했군.”
“와. 별걸 다 보네.”
모두 몸이 굳었다.
난생처음으로 보는 악마. 마인은 봤어도 악마라는 존재는 처음 봤다. 그들은 마인처럼 쉽게 나타나는 이들이 아니었으니까.
‘그나마 다행인 건 방금 나와서 힘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한다는 건가.’
그나마 다행인 건 원래 그대로 힘을 사용할 수는 없다는 것. 이 안에서는 원래의 힘을 사용할 수 없다. 스탯과 레벨이 내려가고, 스킬을 사용할 수 없다.
물론 악마의 힘은 그것만이 전부는 아닐 테지만.
콰직!!
“……뛰어!!”
악마의 힘은 원래부터 상태창에서 비롯되지 않는다.
본연이 가지고 있는 힘. 강인한 체력과 강인한 힘. 그리고 탐욕.
“맛있는 음식.”
“달리라고!!”
멍하니 서서 보는 이들에게 소리쳤다.
이런 상황이 올 거라 대충 예상하긴 했지만, 악마가 나오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죽지는 않는다지만, 피가 분산되면서 모든 학생이 죽는다.
그리고 여기서부터 문제가 된다.
-에러. 에러. 에러. 에러. 에러. 에러.
-Error. Error. Error. Error. Error.
가상 현실에서 한 팀이 모두 죽었기에 이 경기는 끝나야 한다.
끝나야 하는데 악마가 나왔기에 에러가 발생했다.
안 좋은 일은 동시에 일어난다는 말이 있듯이.
-모든 스킬, 스탯, 레벨이 풀렸습니다.
“오우야.”
에러가 나면서 이곳에서 나갈 수 없게 되었다.
잘못하면 이곳에서 죽을 수 있는 상황.
“헤헤. 먹을 거……. 먹을 거…….”
피융!
석화 화살을 하반신에 발사하며 속도를 늦춘다. 이제는 쓸모없는 무기가 되었지만, 속도를 늦추는 데는 충분하다.
푸욱!
“크윽! 고작 이딴 거로 나를 막을 수 없다!”
다리 한쪽이 석화화가 진행된다.
아무리 강수호라 해도 저런 괴물을 상대할 수는 없었다.
“일단 흩어진다.”
“오케이.”
“응.”
일단은 흩어졌다. 자신들이 잡을 수 있는 괴물이 아니다.
어제 했던 훈련이 후회되지 않는 듯한 발걸음. 강수호가 빠르게 이동하여 다른 애들에게 이 사실을 전하러 갔다.
빠른 속도로 이동해 도착한 은신처.
“빨리 일어나!!”
“벌써 왔…….”
“빨리!”
지금 상황을 설명해 줄 시간도 없다.
7명의 이들을 빠르게 일으켜 세우며 출구를 찾기 위해 달려 나갔다. 가상 현실 세계라지만, 빠져나갈 출구는 있을 테니까.
“찾았…….”
드디어 찾은 출구.
그곳을 향해 달려가 문을 열려던 그때.
“찾았다. 먹을 거.”
“…….”
“……악마?!”
뿔을 가진 인영이 웃으며 말했다.
양유혁과 조시현은 잘 도망친 듯하지만, 자신만큼은 아니었다.
2m 정도의 거대한 키. 평범한 붉은 몸집에는 압도적인 힘이 깃들어 있었다.
손이 강수호의 몸을 빠르게 낚아채려던 찰나.
쾅!!
“으아악!”
어디선가 전해지는 거대한 충격파. 그것이 정확히 악마의 머리에 꽂혀 나가떨어진다.
“뭐야?”
“누구지?”
학생들도 신기했는지 주변을 둘러봤다.
악마를 이렇게까지 압도적인 힘으로 뭉개버리는 사람은 유일무이하니까.
“아이고.”
“……?”
그때 마침 출입구에서 들리는 목소리.
고개를 돌려 목소리의 주인을 확인하자.
“이구호 님?”
“하이하이. 이런 일이 있을 거라고 대충 예상은 했는데, 시작하자마자 개판이 될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네.”
한국 헌터 힘으로 치면 현 1위.
자신의 길드 마스터이기도 한 그가 직접 경기장에 내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