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9화
59. 세뇌(1)
“허헉! 안 돼!”
처음과 다르게 어느 정도 도망을 칠 정도로 수준까지 올라가 있었다. 물론 고작 3m 거리 도망친 것이 전부.
두세 발자국을 더 내딛자 무언가가 강수호를 낚아챈다.
“으아악!”
아무것도 보이지 않은 투명함. 갑작스럽게 자신을 낚아채는 것에 당황하는 것도 잠시.
“오랜만이네?”
“네? 저를 본 적은 있으시겠지만, 누구…….”
익숙한 목소리. 하지만 얼굴이 보이지 않아 누군지 몰랐다.
한참 머리를 감싸 생각하다가.
“안녕?!”
“어? 그 절대정신 방벽 주신 분?”
몇 달 전에 있었던 물약을 판매할 당시, 정신 방벽 계열이 필요해서 갔던 예쁜 누님의 집. 그 누님이 스킬을 준 덕분에 일을 쉽게 마무리할 수 있었다.
“암살자시죠?”
“그럼. 내가 예전에 죽기 전에 암살 길드원 중에 1등을 차지했다고. 지금도 놀고먹지 않고 열심히 훈련하고 있지.”
암살자.
이번 훈련으로 얻을 수 있는 게 꽤나 많을 듯하다.
예를 들어서 절대 은신 같은 거. 나쁜 짓을 할 생각은 없었다. 은신 같은 스킬은 의외로 많은 일을 할 수 있으니까.
“에이, 아쉽네.”
“알아서 하겠지. 우리는 이만 가자고.”
어느새 도착한 예비 스승님들은 아쉬움을 뒤로한 채 여느 때와 똑같이 빠르게 사라진다.
“우리 둘밖에 안 남았네?”
“그렇죠! 오늘은 뭘 배울 건가요?”
이번 스승님과의 훈련은 너무 걱정할 필요 없는 듯하다. 저번에 딱 한 번 만나 보긴 했지만, 헬창 스승님들처럼 무식하게 훈련을 시키지 않을 테니까.
그리 생각하고 해맑게 미소를 지으니.
“뭐 해? 뛰어.”
“……?”
“스킬이 그때처럼 막 생기는 줄 알아?”
갑자기 변한 분위기.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살기가 가득 넘치는 말. 저번에는 인심 좋은 옆집 누나처럼 행동했는데…….
“안 뛰냐? 뛰게 만들어 줄까?!”
“아, 아닙니다!!”
“체력이 다 할 때까지 뛴다. 딱 죽지 않을 정도로, 반 죽을 만큼 뛴다.”
“네!!”
처음 스승님을 뵌 것처럼 일단 무작정 뛰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빠각!
“아악!”
“그렇게 뛰지 말고 제대로 맞춰서 뛴다!!”
“도대체 어떻게 맞추라는 건…….”
“토 달지 않는다!”
“…….”
완전 악마 교관 아닌가.
지금까지 어떤 스승님도 이러지 않았다.
물론 무작정 뛰는 게 아닌, 강수호를 따라오면서 자세를 맞춰준다. 더욱 빠르게 뛸 수 있으면서도 인기척, 소리조차 나지 않는 그런 자세.
“오오…….”
“닥치고 뛰어!”
“아, 넵!”
처음에는 사서 고생이란 말을 하고 싶었지만, 지금은 달랐다. 자세를 바꿔나갈수록 더욱 빨라지고 안정적으로 뛸 수 있었다.
발을 맞추고 허리를 곱게 세우니 전과는 다른 더욱 빠르고 조용한 달리기가 되었다.
그렇게 약 2시간을 달리니.
“전혀 안 힘드네요?”
“흠흠. 그것이 내가 가르쳐 줄 스킬이다. 이건 디스크 형태가 존재하지 않아서 완벽히 익히기 위해선 족히 한 달은 걸리는 스킬이지. 아마 돌아가서도 많은 연습을 거쳐야 할 거다. 아, 그리고 이제야 말하지만 내 이름은 샬론이다.”
“넵!”
외모와는 다르게 단호한 말투. 처음 만났던 스승님이 그리울 정도다.
그렇게 2시간을 더 뛰고 나서야 쉴 겸, 황금 노움을 보러 갈 수 있었다.
“그러니까 거름도 충분히 줘야 하고…….”
“맞습니다. 왕께서 그것을 더욱 잘 자라게 하기 위해서는 충분한 거름이 필요합니다. 그렇다고 인간의 똥으로 했다가는 곤욕을 치를 겁니다.”
이제는 태도가 많이 변한 총 관리자 노움이 친절하게 설명해 주었다.
황금 노움의 왕이어서 그런지 할 일이 많다.
설명을 다 듣고 곧장 고블린5를 만나러 갔다.
“오랜만이다.”
“취이익. 또 왔군. 엄청 쉬운 연습 상대.”
“……쉬운 연습 상대라 미안하다.”
말 몇 마디를 나누고 곧장 싸움에 돌입한다.
검은 아직까지 배우지 못했기에 주먹 다툼과 마법을 사용해 승리를 가져온 듯했지만.
“취이익. 역 캐스팅.”
“크윽! 아니, 어떤 고블린이 사람 마법을 역 캐스팅하냐고!”
“취이익. 내 마음이다. 꼬우면 너도 배우든가.”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었다.
마법을 사용하면 곧바로 역 캐스팅하고, 마법 사용을 막으려 해도 너무 빠른 탓에 막히지 않았다.
몇 달의 시간으로도 저놈을 이기지 못할 것 같다. 그래도 처음과는 다르게 압도적으로 밀리지는 않았다.
“또 졌네.”
“취이익. 인간, 또 졌다. 언제 나를 이기려고 그러는가?”
“이만 간다. 시간이 다 돼서.”
30분 정도 더 싸우고 차원 이동을 사용했고.
“오오. 텔레포트?”
“내 방에는 왜 들어왔어?”
각각 배정된 방. 자신의 방에 양유혁이 있었다.
잔뜩 인상을 찌푸리자 별거 아니라는 듯 손짓하며 식당을 가리킨다.
“밥 먹자고.”
“내가 너랑 왜?”
굳이 양유혁이랑 먹을 필요는 없었다. 같은 길드, 같은 아카데미를 나왔다는 이유로 친해질 필요는 없었으니까.
“나 혼자 먹을 테니까 가.”
“그래? 후회할 텐데?”
“왜?”
후회라는 말에 인상이 찌푸려졌다.
무슨 일이라도 벌였는가 생각했지만.
“네가 생각하는 그런 거 아니야. 오늘 저녁에 여기에서 직접 만든 투움바 파스타가 나온다고. 빨리 나와서 먹어. 그리고 그건 메인 메뉴! 뷔페 형식으로 되어 있어서 마음대로 먹어도 될걸?”
“…….”
그런 일이 아니었다. 오히려 강수호에게 이득 되는 것들.
‘개꿀.’
인상은 찌푸려져 있었지만, 속에는 행복이란 것이 가득 채워져 있었다.
시간은 대략 저녁 6시. 딱 저녁 먹을 시간이기에 망설임 없이 식당으로 내려갔다.
* * *
“오우야.”
“신기하지? 나도 저번에 왔을 때, 얼마나 신기하던지. 이 밥 먹으면 엄마 밥은 절대로 못 먹을걸?”
어느새 도착한 식당 안.
패왕 길드 식당도 대단한 편이었지만 이 식당은 차원이 달랐다.
“미친.”
“빨리 가서 먹자. 투움바 파스타 말고 다른 음식도 있거든.”
“혼자 먹을 거임. 꺼져.”
왜 아카데미 학생들이 세상에서 제일 가고 싶은 곳이 토너먼트 경기장인 줄 알겠다.
숙소와 훈련장만 제공되는 게 아니었다. 살면서 맛볼 수 없는 비싼 음식들. 비싸기만 한 맛 없는 음식도 아니었다.
“캐비어에 크래커 올린 거?”
학생증만 보여주면 공짜로 들어올 수 있는 뷔페 식당. 음식을 고르는 중에 보이는 캐비어라는 음식. 곧바로 접시에 가져와 의자에 앉아 맛보았다.
“미친.”
알이 톡톡 씹히는 식감과 부드러운 알의 식감. 분명 짜기만 하고 더럽게 맛없다는 거로 알고 있었는데, 이건 언제 먹어도 질리지 않을 것 같다. 좀 짜서 많이 먹으면 고혈압이 오겠지만.
“투움바 파스타 나왔습니다.”
그때 마침 나오는 메인 메뉴.
뷔페 형식이지만, 이런 식으로 대표 메뉴를 지정하고 뷔페처럼 사이드 메뉴를 먹을 수 있었다.
망설이지 않고 곧바로 입 안으로 빨아들였다.
“후루룹!”
크리미한 크림과 마늘과 쪽파의 알싸한 매운맛. 부드러우면서도 마늘과 쪽파가 들어가서 그런지 느끼한 맛을 한껏 잡아준다.
접시를 다시 잡아 초밥과 비싸 보이는 음식만 접시에 담아왔다.
“잘 먹겠습니다!”
그리고 곧바로 먹방을 시작한다.
음식은 고급스럽지만, 먹는 건 머슴처럼 먹는다.
“저런 천박한…….”
“……어디서 저런 녀석이 왔는지.”
지나가던 학생들과 선생님이 강수호를 한심하게 쳐다봤지만, 가볍게 무시하며 먹방 BJ처럼 싹쓸이하고 있을 때.
“맛있어?”
“음? 최서현?”
누군가 자신의 앞자리를 차지했다.
양유혁인 줄 알고 꺼지라고 말했으면 큰일 날 뻔했다.
아카데미 체육복을 입은 채 웃으며 강수호를 반기는 그녀.
“강남 아카데미 대표라고 했지?”
“응. 이제 기억나? 오늘 점심부터 너 찾고 있었는데.”
“잠시 까먹었어.”
간단히 인사를 마치고 다시 파스타 면을 빨아들인다.
이거 먹을수록 중독되는 맛이다. 느끼함과 매콤함의 조화가 말도 안 된다.
“그렇게 맛있어?”
“응. 너도 먹어봐. 파스타는 살면서 한 번도 안 먹어서 모르겠는데, 지금까지 먹었던 것 중에서는 제일 맛있어. 캐비어란 것도 맛있고.”
천국이란 게 있으면 바로 여기일 거다. 셰프가 미다스의 손을 가진 듯하다.
다시 먹방에 집중하고 있을 때, 그녀가 강수호를 계속해서 쳐다본다. 앞에 있는 음식은 신경도 안 쓰고.
“너는 안 먹어?”
“아, 응. 배가 별로 안 고파서.”
“그래?”
“혹시 다 먹으면 나랑 같이 산책…….”
뭔가 말하기도 전에.
“그거 안 먹을 거면, 나 줘.”
“……어, 어? 어.”
샐러드로 도배된 접시를 가리킨다.
조금은 당황하며 접시를 건네자 아삭한 샐러드를 빠르게 입 안으로 집어넣는다.
아삭.
“샐러드까지 맛있네.”
맛없는 게 없었다. 아삭한 샐러드를 생으로 먹는데도 달달하고 맛있다.
샐러드까지 다 먹고 나서야 배가 불렀는지 이쑤시개로 이를 쑤시며 최서현에게 물었다.
“아, 그러고 보니 너희도 예선전 끝났지?”
“어! 우리가 2등일걸? 너희는 오후 1시쯤에 끝났잖아. 우리는 1시 반쯤에 끝났거든!”
강남 아카데미답다. 무패.
물론 서울 아카데미도 한 번도 지지 않고 올라왔지만. 그것도 두 명이서.
“그러고 보니 너희는 양유혁이랑 너, 둘만 나왔다고 해서 지금 엄청 난리 났어. 정말 계획 같은 거야?”
“뭐, 사정 같은 게 있었어. 당연히 계획은 아니지.”
절대로 계획 같은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약 빨고 쳐 잤다는 말은 할 수는 없었다. 누가 이번 사태를 일으켰는지도 모르겠고.
그렇기에 고작 두 명이 예선전을 치른 거니까.
“그러면 이만 가 볼게. 밥을 먹으니까 잠이 오네.”
늘어지게 하품을 하며 자리에서 일어난다. 마을도 갔다 왔으니 씻고 편히 자고 싶었다. 이런 비싼 숙소에서 자는 날이 또 언제 오겠나?
“그러면 나 갈…….”
“잠시만!!”
일어나려 하자 그녀가 강수호를 붙잡는다. 한참 심호흡을 반복하다 입을 열었다.
“나랑 같이 훈련장 갈래?”
“갑자기?”
“응?”
갑작스러운 질문. 같이 훈련장에 가자는 말에 잠시 고민했지만.
“뭐, 자기 전에 훈련장 가는 것도 나쁘지 않겠네.”
“그렇지?! 원래 자기 전에 운동 한 번 하고 씻는 게 개운하고 좋잖아!”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훈련하는 것도 좋지만, 숙소만큼이나 훈련 시설이 좋다는 걸 알고 있었다. 훈련 시설이 얼마나 잘되어 있는지도 궁금하고.
“가자. 배가 불렀으니 소화를 시켜야지!”
통통해진 배를 두드리며 훈련장으로 향했다.
최서현은 어디가 아픈 건지 양 뺨이 붉게 물들었지만 크게 상관하지 않았다.
엘리베이터를 타 한참을 올라갔다.
곧이어 도착한 훈련장.
“오호. 완전 최신식인데?”
아름답게 장식된 훈련장. 쇠질이나, 마나만 다루는 그런 훈련장이 아닌 수준 높은 훈련장이었다.
안으로 들어가자.
“음?”
“…….”
훈련하고 있는 이들의 시선이 모두 강수호와 최서현에게 집중되었다.
강수호만 잘 모르고 있는 것. 2인 듀오 예선전 클리어로 인해서 유명인사가 되었다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