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8화
58. 듀오 예선전(5)
꿀꺽!
“…….”
“…….”
깔끔하게 삼키는 소리와 함께 침묵이 돈 경기장. 다른 쪽은 여전히 시끄러웠지만, 유독 이 경기에서만 침묵이 찾아왔다.
갑자기 나타나서 소환수를 한입에 꿀꺽해 버린 원인 모를 식물.
“이게 무슨…….”
“그건 또 뭐야? 따끈따끈한 신제품이야?”
“나도 모르겠다.”
부산 아카데미 학생들은 그 자리에서 멈춘 채 입을 쩍 벌리고 있었다.
양유혁도 갑자기 나타난 식물에 꽤나 당황한 눈치였다. 길드 안에서도 보지 못했으니까.
‘저건 또 왜 커져?’
지금 양유혁의 궁금증을 알려줄 시간이 아니다.
상대방의 소환수를 삼킨 뽀삐.
‘나중에 훈련을 시키든가 해야지.’
강아지처럼 앉았다 일어났다라도 시켜야겠다.
저렇게 튀어나와 사고라도 일으키면 모두 자신의 책임이 되니까.
“크르릉. 헬름.”
“…….”
맛은 나쁘지 않았나 보다. 입술 주위를 핥으며 소환사를 보고는 입맛을 다신다. 식탐이 대단하다고 알고 있는데, 정말인 듯하다.
“이, 이럴 수가!! 내 소환수를 단 한 번에!!”
“부산 아카데미 대표 소환수를 서울 대표의 강수호라는 학생의 소환수가 단 한 번에 집어삼켰습니다!!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이죠?!”
개조형 무기만 금지되는 경기장.
관중들과 해설자 모두가 감탄하는 눈빛으로 쳐다봤다.
지금까지 저 소환수한테 당한 사람이 얼마나 많던가. 예선전 모두가 저 소환수에게 꼼짝도 하지 못해 떨어져 나갔다. 그런 소환수를 한 번에 삼켜내다니?
“이럴 수가!!”
“크기가 좀 커졌네?”
그와 반대로 하늘을 향해 울부짖는 부산 대표. 소환수를 다시 현실로 불러들일 수는 있지만 꽤나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더군다나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한입에 먹히다니.
물론 강수호에게는 큰 상관은 없었다.
“대충 1m는 큰 것 같네.”
5m의 크기. 감탄스러울 따름이다.
“이야!!”
한참 뽀삐의 상태를 살펴보고 있을 때 달려드는 아카데미 학생들. 자라난 뽀삐를 살펴보느라 경기 중이었다는 걸 깜빡했다.
대기실에서 가져온 보급형 검을 꺼내어 막아낸다.
깡!!
검을 다루는 것을 배우지는 않았지만, 우수한 신체 덕분에 충분히 커버 가능하다.
어렵지 않게 막아내자 양유혁이 정확히 남학생의 복부에 주먹을 꽂았다.
“커헉!”
“일단 한 명.”
“…….”
환상의 콤비.
의외로 양유혁과 강수호는 호흡이 척척 들어맞았다. 소름 끼칠 정도로.
앞서 나온 한 명은 제일 약한 놈인 듯 아홉 명이 동시에 치고 들어오자 점점 밀리기 시작한다.
‘그래도 3위 정도에 드는 아카데미라는 건가.’
자신이 잘났다 해서 방심하지 않았다. 오히려 더욱 집중해서 상대방의 수를 읽기 시작했다.
‘여기다!’
자신의 복부를 향해 정확히 들어오는 오른손. 하지만 그건 페이크였다. 복부를 치다가 갑자기 꺾어서 턱을 칠 모양.
한 걸음 뒤로 빠진 다음에.
“파이어볼.”
“히익!!”
쾅!!
턱을 칠 때의 빈틈.
복부에 파이어볼을 사용하여 빠르게 터트렸다.
주변이 먼지로 자욱해진 덕분에 달려들던 네 명의 학생이 어리둥절해한다.
길드에 들어간 학생이 대부분이지만, 아직 경험도 쌓지 못한 이들.
‘나는 여기서…….’
하지만 강수호는 마나를 감지해 내어 형태를 만들어 낸다.
그 덕분에 눈을 감고도 주변에 있던 학생들을 인지할 수 있었고.
“끄아아악!”
“으아악! 내 팔!!”
검은 먼지 사이를 누비며 행동 불능 상태로 만들었다.
자신을 향해 달려든 학생은 총 그들의 팔을 부러뜨리고, 움직이지 못하도록 다리를 짓밟고 나서야.
“끝이네.”
“…….”
경기가 마무리되었다.
숨 쉴 틈조차 없이 압도적인 경기.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연막 사이를 누비는 강수호를 보고 그저 감탄할 따름이다.
그건 양유혁도 마찬가지.
“나의 소환수를……!”
“내가 안 건드렸음.”
“그래도 너는 같은 친구잖아!”
양유혁을 향해 미친 듯이 달려드는 그녀.
마법을 사용하는 소환사이기에 전투 참여도가 높아 대표로 선발되었다는 말을 들었다. 왜 그런지 알 것 같은 움직임과 마법.
염력을 사용하여 나머지 네 명의 친구를 띄운 뒤에.
“죽으세요!!”
그를 향해 날린다.
네 명에게 깔리거나, 칼날과 마법에 다쳐 행동 불능이 될 수 있는 상황.
씨익.
“……!!”
그런 상황에서 오히려 양유혁은 미친X처럼 미소 지었다. 마치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양손을 높게 올려 가볍게 말했다.
“염력.”
1서클 마법도 되지 않은 염력. 마나를 이용해 물건을 띄우는 마법이지만…….
“고작 염력 같은 거로 우리를 이기는 건…….”
“뭐라고? 잘 안 들리는데?”
“…….”
저놈의 마나 수준은 평범한 인간과 달리한다. 매일 괴물들을 보는 강수호조차 놀랄 정도의 마나.
투명과 비슷한 색의 마나가 양유혁의 손에서 점차 뭉치더니.
“흡!! 염력.”
다시 한번 말하자 조금 전에 싸웠던 잔해가 주변에 빠르게 떠오른다.
둥글고 뭉뚝한 잔해가 날카로운 창처럼 변하더니.
“잘 가~”
“이런 미친!!”
“……어휴.”
빠르게 날아갔다.
고작 염력 따위가 아니었다. ‘무려’라는 단어가 나올 수준의 마법.
날카로운 잔해가 학생들의 몸을 난자한다.
“크아아악!”
“이런 미친X!!”
“적당히 좀 해라.”
이 상황을 즐기고 있는 듯 치명적인 급소는 일부러 비켜 맞춘다.
강수호의 말에 그제야 고개를 끄덕이며 잔해들을 바닥에 내려놓는다.
“이제야 속 시원하네.”
“사람 다치는 게 속 시원한 일이냐?”
“그래도 이기니까 기분 좋잖아?”
“몰라, 이놈아.”
날카로운 잔해가 비처럼 쏟아질 때 살아남은 사람은 고작 한 사람. 부산 아카데미 대표였다.
“이럴 수가…….”
“나도 좀 놀랐다. 그냥 놀고먹고 사는 줄 알았는데 싸움도 나쁘지 않게 하네.”
두 눈을 동그랗게 뜨는 모습에 고개를 끄덕였다.
입만 털 줄 알았지, 잘하는 모습은 그다지 보지 못한 까닭이다. 뭐, 지금은 봤으니 큰 상관은 없었다. 그저 이 경기를 이기고 편히 쉬고 싶을 뿐이다.
“할 거야? 말 거야? 나는 억지로 안 시켜. 그냥 네가 하고 싶으면 해도 돼. 그 대신에 너희 친구처럼 다치겠…….”
말이 다 끝나지도 않았는데.
촤아악!
“닥쳐.”
“아야.”
갑작스레 날아온 단검.
죽지 않도록 몸에 결계를 쳐놔도 아픈 건 마찬가지다. 오른뺨을 만지며 상처가 생겼는지 확인한다.
“아프네.”
미스렐의 신체에 상처 낼 힘. 아직 힘이 남아도는 듯하다.
“아직 내 능력은 안 끝났거든?”
말이 끝나기 무섭게.
“소환수의 힘을 그대로 받기라도 하냐?”
“그래.”
“…….”
점점 몸이 거대해진다. 그것 말고 변한 건 없었지만, 기세가 완전히 뒤바뀌었다.
“이건 좀 골치 아프겠는데?”
“……숨겨둔 수가 있었네. 재밌겠는데?”
“미친X.”
인상을 찌푸린 나와 반대로 미소 짓는 양유혁. 하여튼 저놈은 대체 뭔 생각을 하면서 사는지 모르겠다.
어울리지도 않은 보급형 검을 바닥에 내던지고 온몸에 버프 스킬들을 두른다.
양손에 충만해진 2서클 마법.
“이제 간…….”
모든 힘을 발휘해 쓰러트릴 생각이었다. 하루 정도는 쉬면서 마을도 한 번은 가야 한단 말이다.
발을 움직여 주먹을 휘두르려 할 때.
털썩.
“…….”
갑작스레 그녀의 얼굴이 파랗게 질리며 쓰러진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음에도 저리되는 것을 보면 능력의 부작용인 것 같다.
그렇기에 별 생각하지 않고 심판을 쳐다봤는데.
‘왜 저래?’
얼굴이 누구한테 맞은 듯이 심각했다.
심판이 빠르게 달려와 그녀의 상태를 확인하고는 곧바로 의료진을 불렀다.
여기까지는 좋았다. 예상했던 부분이었으니까. 하지만 그다음이 문제였다.
“해독제?”
의료진의 가방에서 초록색 물약인 해독제가 나왔다.
그걸 그녀에게 빠르게 먹이자 파랗게 질린 얼굴이 서서히 평소대로 돌아오기 시작했다.
“야, 뭔 짓을 저지른 거야?”
강수호는 독을 쓰지 않았다.
그걸 쓰면서까지 이길 마음은 없었다. 독을 사용하지 않아도 충분히 이길 수도 있었고.
혹시 몰라서 양유혁에게 물었다. 이런 쓰레기 같은 놈이라면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니까.
“응? 뭐가?”
“……미친 새끼.”
“아, 이거?”
바닥에 흩뿌려진 검은색 액체. 뭐가 어떻게 되었는지 대충 알 것 같았다.
“너냐?”
“음……. 독을 사용한 걸 묻는다면 내가 한 거지.”
“…….”
이 자식이 독을 사용했다. 그것도 사람의 숨을 막힐 수 있게 한 끔찍한 독을.
“어휴, 이 미친 새끼야. 독을 사용하지 말라는 규제는 없었지만 그렇다고 예선전에 독을 사용하면 어떻게 하냐?”
“헤헤, 재밌지 않아?”
“…….”
인상을 찌푸리며 고개를 젓는다. 요즘 따라 저 말투와 행동이 너무나도 신경 쓰인다.
‘누가 보면 악마 같은데 말이야.’
마인들을 지속적으로 만들어 내어 피해를 주는 악마들. 악마들에게도 직위라는 게 있는데 저놈이 악마라면 최소 상급 악마는 될 거다. 사람 하나 병X으로 만드는 건 최고니까.
“승자는 서울 명문 아카데미입니다!!”
“승자가 결정되었습니다! 안타깝게도 부산 아카데미는 1패를 하고 가네요!”
곧이어 승자가 결정되고 경기장을 빠져나온다.
경기장에는 관중들의 환호가 계속해서 이어졌다.
* * *
“와. 그건 또 어디서 챙겨 온 거야?”
“넌 몰라도 돼.”
“왜? 나도 가르쳐 주면 안 되냐?”
“꺼져라.”
“히잉…….”
어느새 도착한 숙소.
강수호가 마을에서 들고 온 해독제와 각성제를 섞어 만든 물약 여덟 병을 들고 있었다.
침대에 누워 있는 그들의 입에 천천히 넣어준다.
“으윽…….”
“어떻게 된 거지?”
“이제 일어났냐?”
조금씩 정신을 차리는 학생들. 이런 중요한 날에 이상한 마기에나 중독 되어있다니. 이 모습을 교장 선생님이 본다면 쌍욕을 박았을 것이다.
“어떻게 된 거냐?”
도대체 어떻게 됐는지 궁금했다.
방에 들어오니 마기가 옅게 껴 있었으니.
한참 머리를 감싸 쥐던 그가 정신을 차리더니 양유혁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 자식 때문이다.”
“또 왜?”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저 자식이 우리에게 그것을……. 크윽!”
“뭐라는 거야?”
말은 끝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그가 갑작스레 고통을 호소하며 숨을 헐떡이다 눈을 뜨더니.
“아니다. 갑자기 기억이…….”
“그러니까 이상한 거 좀 하지 마. 너 그러다가 헌터 협회한테 잡혀간다고. 오늘 마인도 나와서 얼마나 식겁했는데?”
기억 상실증처럼 한순간에 기억을 잃어버렸다. 마기가 독해 그럴 수 있다 생각했다.
“일단 정신부터 차리고 훈련하자. 예선전은 다 끝냈어.”
“…….”
간단한 이야기와 함께 오늘은 쉬기로 했다. 물론 강수호는 예외.
곧바로 차원 이동을 사용해 마을로 이동했다.
그리고 그곳에서는.
“…….”
“안녕?”
익숙한 풍경을 마주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