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7화
57. 듀오 예선전(4)
“어디 갔다 오냐? 숙소에 있는 건 또 어떻게 알았고.”
“그냥 직감. 그것보다, 이놈들은 깼고?”
“아니, 깰 생각을 안 하네.”
숙소에 있던 건 어떻게 알았는지 자연스레 숙소로 들어온다. 누가 보면 위치 추적기라도 붙어 있는 줄 알겠다.
하여튼 문제는 따로 있었다. 코까지 골며 자는 8명의 학생.
“이 상태로면 우리끼리 본선을 치를 수도 있겠는데……. 어떻게 할 거야?”
“나도 모르겠다. 정순한 마기 효과가 얼마나 갈지도 모르겠고.”
보통 드는 사람이라면 하루 이틀 정도 푹 자고 끝이다. 하지만 이놈들은 그리 쉽게 일어나지 않을 것 같다.
‘안개가 옅긴 했으나, 오랫동안 있던 것 같았으니까.’
오래 있었으니, 일주일 정도는 이 상태로 있으리라 예상된다.
하여튼 정말 쓸모없는 놈들이다. 언제는 나보다 몇 수 위라면서 막 놀려대던데.
잠시 생각에 잠겨 있자 벌써 12시가 되었다.
“이제 1시간밖에 안 남았네.”
남은 시간은 고작 1시간 남짓.
남은 4시간 동안 차원 이동을 사용해 마을에나 다녀올까 했지만, 이번 주는 아쉽게도 사용하지 않기로 했다. 현실이 바빠 스승님을 다시 정할 시간조차 없었으니까.
“일단 가자.”
“오케이. 나는 뭐 좀 챙기고.”
“그래라.”
강수호가 먼저 자리에서 사라졌고, 숙소 안에서 잠시 머물러 있던 양유혁은 침대에서 편히 잠을 자는 그들을 한심하게 쳐다보며 말했다.
“멍청한 놈들.”
그러고서는 자신의 가방에서 지퍼백에 밀봉된 검은 안개를 꺼내었다.
지퍼백을 열자 코끝을 찌릿하게 만드는 향기가 퍼진다.
“그러게, 누가 마시래?”
화장실로 들어가 지퍼백을 열어 검은 안개를 변기에 넣고 물을 내렸다.
혹시 몰라서 가져왔는데, 이렇게까지 좋은 효과를 발휘할지는 생각도 못 한 까닭이다.
가방 안에 있던 모든 검은 안개를 버리고 난 후에 해맑게 웃으며 말했다.
“그래도 재밌었어.”
어느새 문을 열고 밖을 나왔고.
“이제 왔냐?”
“욜~ 나 기다리고 있…….”
“개소리하지 말고 따라와.”
“오케이~”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강수호와 함께 경기장으로 향했다.
* * *
“일단 방벽 같은 걸 세우는 파이어 월이 있으니까 식물 정도는 쉽게 막을 수 있겠고, 그다음은 얼음 마법이랑 불 마법이랑 동시에 사용해서 공격하면 편하겠네…….”
머릿속에 온갖 계획을 다 세웠다.
1대1의 개인전.
강수호 정도 능력이면 프로 헌터가 와도 상대 가능할 수준이니까.
“그런데 너는 왜 온 거냐? 어차피 1대1인데 대기실에 있으면 지겹지도 않냐? 숙소 가서 애들 깨는 거나 보고 오지?”
“별로? 혼자 있긴 심심하잖아.”
제일 궁금한 게 바로 양유혁이다. 굳이 여기까지 따라올 필요는 없었다. 1대1의 개인전은 자신 혼자서도 충분히 상대 가능했으니까.
갑자기 경기가 다인 전으로 변하지 않는 이상에야.
덜컥.
그때 마침 문이 열리면서 직원이 들어온다.
“이제부터 준비해 주셔야 합니다.”
“넵. 금방 나가겠습니다.”
“…….”
직원은 그 한 마디와 함께 그들을 이상한 표정으로 쳐다봤다. 몇 초 정도 그리 쳐다보다가 아무 말 없이 밖으로 나가 버린다.
“저 사람 왜 저래?”
“너 좋아하는 거겠지.”
“……말을 말자.”
양유혁의 말을 가볍게 무시하고 준비를 마친다.
전투복이라 할 것 없이 가벼운 운동 복장.
4t의 무게를 인벤토리에 넣으니 몸이 몇 배는 가벼워진다.
굳이 전투 복장은 착용할 필요는 없었다. 미스릴의 신체를 만렙까지 찍은 덕분에 몸을 뚫는 공격이 아닌 이상에야 부상이 크지 않을 테니까.
직원의 뒤를 향해 천천히 걸어가 경기장으로 향한다.
“오. 신기하네.”
“그러게.”
경기장 풍경은 처음과 많이 달라졌다. 관중은 벌써 4분의 3이나 채워졌고, 예선전을 치르는 아카데미도 보였다.
“엄청 많네.”
“아카데미가 1,000곳은 넘으니까.”
“그런데 넌 왜 나왔냐니까?”
“그냥. 심심해서.”
개인전을 치르는 경기에서 양유혁이 오는 게 조금 이상하긴 했지만, 큰 상관은 없는 터라 무시하고 경기장에 들어섰다.
“음? 부산 아카데미도 심심해서 나왔나? 왜 저기에 나와 있지? 원래는 경기장 대기실에서 기다리고 있는 거 아니었어?”
“나도 모르지?”
상대편 수를 보자 느낌이 싸했다. 상대편 열 명 모두가 경기장 안으로 들어서 있었으니까.
그들의 표정이 보일 정도로 가까워졌을 때.
“이, 이게 무슨 일인가요? 왜 서울 아카데미는 두 명밖에 없죠?”
경기의 해설자가 해설을 시작한다. 두 명뿐이어서 그런지 해설자의 입에서 탄식이 흘러나왔다.
“야, 이제 빨리 나가. 저쪽도 이제 나갈 거 아니야?”
“음? 그게 뭔 소리야?”
“…….”
하지만 양유혁은 이곳에서 나가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자면 나갈 수 없었다.
“아마 전력을 낭비하지 않기 위해서 두 명만 온 듯합니다. 저번 예선 경기에서도 두 명밖에 오지 않았으니 양해 부탁드립니다!”
전력 낭비를 줄이기 위해서가 아니다. 단체전이란 이야기를 정확히 듣지 못했기 때문이다.
“양유혁.”
“음? 왜 그랭?”
“…….”
태연하게 고개를 갸웃거리는 양유혁. 얼굴에 주먹을 꽂을 뻔했다.
개인전이라던 말이 다 뻥이었으니까.
‘그러고 보니 예선전은 무조건 단체전이잖아?’
예선전은 무조건 단체전. 어떤 경우에서든지 예선전에서 개인전이 나올 경우는 제로였다.
이제야 예선전이 개인전일 리 없다는 게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내가 이놈을 믿은 죄야, 죄. 왜 개인전이라고 말한 거냐?”
“각자 싸우니까 개인전이지.”
“……그게 무슨 개논리야.”
해맑게 웃으며 강수호를 쳐다보는 양유혁. 여기서 더 말하면 오히려 자신만 손해라는 걸 깨달았다.
“말을 말자. 그래서 어떻게 할 건데?”
“싸워야지. 별수 있나.”
“고작 두 명이서 열 명을?”
아무리 강해졌다 해도 불리한 싸움이다.
2 대 10. 부산 아카데미 학생 정도면 일반 프로 헌터와 맞먹는 힘. 이제야 C급 헌터의 힘을 갖게 된 강수호로서는 불가능에 가까운 싸움이었다.
그래도 여기서 물러날 수는 없었다.
“일단 해 보자고.”
“오케이~”
경기장 안에 섰다.
관중들이 서울 명문 아카데미의 행동에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아무리 너희가 강하다 하라도 부산 아카데미는 고작 두 명이서 쉽게 뚫릴 이들이 아니라고.
그건 강수호도 인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어떻게 하냐.
‘자고 있는데.’
아무것도 모르고 편히 잠을 자는 이들.
두 명이라도 나가지 않는다면 예선전도 통과하지 못하는 것이 분명한 사실이었다.
“그래도 두 명이 어디냐. 한 명만 있으면 어떻게 할까 싶었는데.”
“그렇지?”
“닥쳐.”
물론 그 한 명이 양유혁이란 게 싫었다.
저 얄미운 미소를 봐라. 그냥 길드를 이적할까 싶다.
“우리가 그렇게 만만해 보였나?”
어느새 다가온 부산 아카데미 대표와 아홉 명의 학생. 강렬한 기운이 그들에게서 퍼지고 있었다.
열 명의 기세를 감당하는 건 너무나도 쉬운 일. 가볍게 옆으로 밀쳐내며 웃으며 대답했다.
“아니.”
“……?”
예상치 못한 대답.
아무리 강수호라고 해도 이런 괴물들을 동시에 상대하기는 불가능에 가깝다.
“그러면 왜?”
너무 궁금한 나머지 물었다.
강하다는 것도 알고, 무시하지도 않았으면서 왜 이렇게 왔냐고.
“사정이 있다 했잖아?”
“사정? 그런 같잖은 거짓말…….”
어차피 말도 듣지 않을 것 같았다.
옆에서는 파리지옥과 같은 생김새의 식물이 날아다니고 있었다. 슬론과 닮았지만, 뭔가 닮지 않은 느낌.
“크르르릉.”
“워워, 진정해. 아, 미안. 원래 못생긴 사람들을 보면 우리 아이가 울음소리를 내거든.”
“…….”
무시하는 말이 가득했다.
굳이 신경 쓰지 않았다. 애초에 서울 아카데미에서 두 명밖에 오지 않는 거로 그들의 실력을 무시한 거나 다름없으니까.
“그러면 3초 뒤에 경기를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관중분들은 저와 함께 카운터를 세어 주시기 바랍니다!”
그때 마침 시작되는 경기. 해설자의 말에 그들도 뒤로 빠진다.
‘혹시 몰라서 들고 왔는데 될까 모르겠네.’
그와 동시에 강수호는 들고 온 아공간 가방 안에서 화분 하나를 꺼냈다.
스승님이 직접 키우라고 준 슬론. 오늘 이걸 이곳에서 쓸 예정이다. 물론 사람을 먹으면 안 된다는 교육까지 해 놓은 상태.
“저기 보이는 사람도 먹으면 안 돼? 지지야, 지지!”
“크르르릉.”
전부터 말은 어느 정도 알아듣고 있는 듯하다.
고개를 끄덕이며 울음소리를 내뱉는 뽀삐.
다시 가방에 넣어 시작하자마자 사용하려 했지만.
“크르르릉?”
“왜?”
뭔가에 반응한 듯 4m 정도 되는 거대한 몸뚱어리를 밖에 내보이고 파리지옥같이 생긴 식물을 쳐다본다.
“크르릉?”
“음? 먹어도 되냐고?”
“크르릉!”
“…….”
손가락같이 생긴 줄기로 식물을 가리키며 먹는 듯한 모습을 취한다.
2초밖에 남지 않은 시간. 당황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너 식물도 먹냐?”
“크르릉!”
“그래그래. 먹어라. 어차피 소환수니까 다시 소환할 수도 있을 테고.”
먹는다고 큰 문제는 생기지 않을 거다. 소환수는 현실에서 죽을 뿐, 다른 차원에서 죽지 않은 채 다시 재생되어 돌아올 테니까.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하니 뽀삐의 입에서 침이 주르륵, 새어 나왔다.
‘분명 아침밥 든든하게 챙겨 줬을 텐데.’
길드 전체를 집어삼킬 것 같아서 들고 온 뽀삐. 오늘도 사람 먹지 말라고 양념된 참치 조각을 세 개나 던져주었다.
그런데도 저 소환수를 보고 침을 흘린다?
“크르릉?”
“왜 그러니?”
소환수가 자신을 쳐다본다는 기분을 느꼈는지 빠르게 아공간으로 들어가 기운을 감췄고.
“시작합니다!!”
곧바로 경기가 시작된다.
부산 아카데미의 학생들이 자신들을 향해 달려들고, 양유혁과 강수호도 달려들려던 그때.
“크르릉!!”
“음?”
허리춤에 차고 있던 아공간 가방에서 뽀삐의 울음소리가 들려온다. 아공간 가방 안에서 잔뜩 침이 새어 나오더니.
“크와와왕!”
“뽀삐야! 벌써 나오면 어떻게 해!!”
뽀삐가 화분 통째로 방에서 나오더니 소환수에게 달려들었다.
거대한 입. 파리지옥같이 생긴 소환수와 비교도 되지 않은 크기로 빠르게 소환수 쪽으로 향하더니.
“크르르?!”
“왕!”
“…….”
부산 아카데미 쪽의 3m의 소환수.
고작 4m, 나이로 치면 아직은 유년기인 뽀삐가 몇 년을 기른 소환수를 압도적인 크기로 입을 벌려 한입에 집어삼켜 버렸다.
“그걸 다 먹…….”
말이 끝나기 무섭게.
꿀꺽!
“…….”
완전히 소환수를 삼켜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