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6화
56. 듀오 예선전(3)
“마인?”
“그럴지도.”
붉은 눈. 파란 핏줄. 전형적인 마인의 모습이었다.
크게 신경 쓰지 않으려 해도 붉은 눈이 누가 봐도 마인의 모습과 닮았다.
“일단 달리고 보자. 10km 정도라면 5분 안에 끝날 것 같으니까.”
“오케이.”
붉은 바닥에 선 학생을 보고 환호하는 관중들. 약간의 문제가 있다면, 고작 두 명의 학생만이 그곳에 있다는 거다.
의문을 갖는 관중들. 하지만 서울 명문 아카데미이기에 의문은 곧장 사라졌다.
“전력 낭비 안 하려고 저러는 거 아닐까?”
“그렇겠지. 서울 명문 아카데미는 보통 1등 하거나, 정말 운 안 좋으면 2등 아니야?”
그들만의 방법이라 생각했다. 전략을 지금 낭비할 바에야 대표 한 명과 그다음 밑의 실력자를 데려와서 예선전을 치르겠다는 것.
그리고 그리 어려운 경기도 아니었으니까.
10km를 뛰어서 먼저 도착한 사람이 이기는 게임.
“준비하시고!!”
“알아서 잘 달려라.”
“당근빠따지.”
신호 발사기를 높게 든 심판.
준비하라는 말을 함께 전한 뒤에.
타앙!
방아쇠를 당겼다.
신호탄이 하늘로 높게 발사되면서 바통을 잡고 있던 두 학생이 빠른 속도로 질주했다.
둥근 트랙으로 이루어진 곳.
더 빠르게 치고 나간 학생은 양유혁이었다.
“크윽. 젠장!”
“좀 빠르네.”
헐떡이는 것 하나 없이 미소 지으며 달리는 양유혁과 다르게 인상을 잔뜩 찌푸리며 온갖 힘을 사용하며 달린다.
확연한 차이.
하지만 으쌰 아카데미의 그녀는 쉽게 뒤떨어지지 않았다.
“그런 식으로 말하면 못 이길걸?”
“개소리하지 말고. 나는 걷고 있는 수준…….”
말이 끝나기 무섭게.
“크윽!”
“……?”
그녀의 눈이 더욱 빨갛게 달아오른다.
장난삼아 놀리던 양유혁도 놀랄 만큼의 모습.
“하! 별꼴을 다 보겠네.”
“응?”
하지만 그건 한순간에 불과했다.
놀란 눈을 짓던 양유혁의 입꼬리가 하늘을 떠받을 정도로 높게 올라가 있었고.
“그거 그렇게 하는 거 아닌데.”
“……!!”
그녀의 기운과는 비교도 되지 않은 무언가 경기장에 피어나고 있었다.
놀란 그녀가 인상을 찌푸리며 입을 열었다.
“그걸 어떻게 경기장에서…….”
“아, 물론 네깟놈 상대하는 데 굳이 힘을 다 쓸 필요는 없지. 50%면 충분해.”
말이 끝나자 아까의 기운이 조금 적어졌다. 정말 50%만 사용했는지 조금 전보다는 힘이 적게 느껴졌지만.
“……!!”
“빨리 안 오면 우리가 이긴다?”
양유혁은 2분도 안 돼서 이미 1km를 달리고 난 후였다.
프로 헌터라 해도 믿을 정도의 속도.
관중들이 소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
뭔가 꺼림칙한 기운을 느껴서가 아닌.
“미친…….”
“저게 가능하다고? 1km를 단 2분도 안 돼서? 오늘 좋은 구경 하겠는데?”
말도 안 되는 광경을 본 까닭이다.
2분도 안 되는 시간으로 1km 거리를 주파하는 속도. 웬만한 프로 헌터들도 내지 못하는 속도였으니까.
“젠장!”
“말하지 말라니까? 그러면 더 느려져.”
“…….”
의외로 빠른 속도.
솔직히 양유혁이 지금까지 힘을 보여준 적은 극히 드물었다. 실습 시간에 두 번 정도? 그것이 전부였다.
인제 와서 이 녀석의 실력을 보니.
‘대단하네.’
절로 감탄이 나왔다.
저리 농락하는 것 보면 봐 주고 있는 게 분명했다.
‘그것보다 이제 두 바퀴째지.’
달리기 시작한 시간은 고작 2분. 이제 1바퀴를 달리고 있는 학생과 달리 두 바퀴를 넘고 마지막 한 바퀴만을 남긴 상태.
붉은 바닥 앞에 섰다.
곧이어 양유혁이 오고.
“잠시만.”
“뭐? 빨리 안 가면 지는데?”
“잠시만 기다려 줘. 재밌는 것 좀 하게.”
갑자기 천천히 걸어오는 양유혁.
뭔가 싶어 그를 유심히 쳐다보자.
“허헉!”
1km를 채운 그녀 독기가 어린 눈으로 양유혁을 쳐다보며 달려오고 있었다.
그런 그녀에게 미소 지은 채 천천히 다른 트랙 쪽으로 발을 내밀자.
“이런 것 따위 안 속…….”
“그렇게 피하는 거 아닌데.”
“……!!”
검은 무언가.
처음에는 양유혁의 발을 가뿐하게 피했다.
하지만 그 앞에 다리 모양 같은 검은 무언가 대뜸 자리 잡고 있었다.
철푸덕.
“아악!”
“흐흐, 재밌어라~”
“……저 미친 새끼.”
바닥에 넘어져 붉은 바닥에 얼굴이 갈린다.
정말 악마라고 해야 할 정도로 잔인했다.
쓰러진 그녀를 부축하긴커녕 해맑은 웃음으로 다가와 바통을 건네준다.
“이제 가.”
“……내가 왜 패왕 길드에 들어왔는지.”
잔뜩 한숨을 내쉰 강수호가 바통을 잡고 달리기 시작했다.
* * *
어느새 끝난 예선전.
경기라 할 것도 없이 너무나도 압도적으로 끝난 탓에 다음 예선전까지 시간이 남아돌았다.
대기실에 앉아 중국 음식을 시킨 그들은 잠시 앉아 휴식 시간을 가졌다.
물론 조금 전 있었던 일을 물으며.
“그런데 너, 아까 왜 그랬냐?”
“심심해서.”
“……말을 말자.”
별거 아닌 듯 넘어가는 말에 더 이상 묻지 않기로 했다.
“정말 안 가르쳐 줄 거야?”
“때가 되면. 너도 잘 알 거니까 그때 가르쳐 주면 고개 끄덕일걸?”
“그래그래. 마음대로 해라.”
멀리서 느껴지는 이질적인 기운. 대기실에 있었기에 정확히 느끼지는 못했다.
그저 이놈과는 친구로 남아 있으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채울 뿐.
“그것보다 마인이란 건 어떻게 눈치챈 거야?”
“아, 그거?”
강수호는 햄스터처럼 입에 짬뽕 면을 넣으며 물었다.
늦게나마 밝혀진 악마의 피를 마신 정황이 드러난 으쌰 아카데미.
그전에도 양유혁이 뭔가 눈치챈 듯싶었으니까.
“그냥 좀 거슬리더라고. 뭔가 이상하고 찝찝한 기분이랄까? 팬티를 입지 않고 달리기를 하는 기분?”
“…….”
한 번 찍어 본 건데 맞았다는 뜻이다.
그럴 줄 알았다며 중얼거리던 강수호는 다시 짬뽕과 탕수육을 입 안 가득 넣었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물 한 잔으로 배를 채웠기에 밥은 무조건 먹어줘야 한다.
“아, 그것보다 다음 경기는 뭐냐?”
다시 탕수육과 짬뽕을 입 안에 집어넣은 강수호가 물었다.
하루 사이에 모든 예선전이 끝난다. 그리고 주어지는 짧은 휴식 시간.
이틀 만에 예선전을 모두 치르고 본선으로 가야 한다. 본선으로 가기 위해서 두 경기를 더 이겨야 하는 상황.
“다음 경기? 잠시만.”
양유혁이 젓가락을 내려놓고 휴대폰을 꺼내 다음 경기를 살펴봤다.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다가 그가 입을 열었다.
“……오호.”
“네 입에서 오호란 말이 나올 때도 있냐?”
경기 내용은 자세히 모르겠지만, 양유혁이 저 정도면 꽤나 충격적인 경기일 터.
곧이어 그가 말한다.
“개인전인데?”
개인전. 혼자서 진행하는 경기. 물론 아카데미 대표가 직접 나가서 치르는 개인전 경기다.
“벌써?”
토너먼트식으로 올라가는 경기. 그렇기에 개인전은 본선에서 치러야 할 과제 중 하나로 생각했는데, 벌써부터 개인전 경기를 시작하다니.
“그러고 보니 왜 갑자기 관중들이 많아졌는지 알 것 같네.”
갑작스레 관중들이 생겨난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대표들끼리 붙는 개인전 경기. 대표 말고 다른 학생들도 참여할 수 있겠지만, 그럴 확률은 제로에 가까웠다.
“그러면 대표끼리 붙겠네? 그래서 이렇게 많구나.”
팻말을 들고 있는 관중들. 그중에서 제일 눈에 띄는 관중은 부산 명문 아카데미라고 적힌 팻말을 든 남자였다.
“이번에 우리가 상대해야 할 아카데미가 부산 아카데미야?”
“후루룹. 응.”
“대표가 어떤 재능을 지녔는지 알고 있어?”
부산 명문 아카데미는 서울 명문 아카데미보다는 떨어지지만, 단연코 3등이라 치부할 수 있는 인재들이 모인 곳이다.
계획을 짜야 했기에 재능을 알 수 있다면 좋았다.
“정확히는 모르겠는데, 내가 알기로는 이상한 식물을 사용하는 소환사라고 했던가.”
“소환수?”
정령을 사용하는 재능만큼이나 희귀한 소환사 재능. 그것도 대표로 있다면 뛰어난 실력자인 건 당연한 사실.
“식물 같은 걸 사용해서 상대방을 묶는다는데? 식물이 자아를 가지고 있어서 전 경기 때 식물 때문에 사고가 난 적이 있었대.”
“…….”
뭔가 느낌이 쌔하다.
전 스승님의 소환수를 말하는 듯한 느낌.
“그러면 일단 불 마법 같은 걸 사용해야겠네. 식물을 소환수로 사용하니까.”
“뭐, 그렇겠지.”
지금까지 배운 불 마법을 머릿속에 떠올리기 시작했다.
고작 2서클 중간 단계지만, 학생 수준의 힘.
“일단은 이것부터 먹고 연습하자. 시간은 많이 남았으니까.”
“오케이.”
일단 밥부터 먹기로 했다.
시간은 고작 오전 9시.
점심시간이 지나고 두 번째 예선전을 치르려면 4시간이나 남아 있었다.
“후루룹!!”
따끈따끈한 국물. 거기에 촉촉하고 탱글탱글한 면발까지. 빠르게 흡입하여 꿀꺽 삼켰다.
“아, 잠시만. 나 어디 좀 갔다 올게.”
“음? 4시간 뒤에는 와라.”
“오케이~”
한창 먹고 있을 때쯤, 짜장면을 비운 양유혁이 조심스레 대기실을 떠났다.
* * *
‘이런 젠장!!’
헌터 전용 수갑이 채워진 채 헌터 협회로 연행되는 한 사람. 으쌰 아카데미 지도 교사, 이민겸.
헌터 전용 경찰차로 이동하고 있기에 도망칠 수도 없었다.
그가 여기까지 온 이유는 단 하나.
‘그 유혹에 빠져들지만 않았어도!’
악마의 피를 마시면 마인이 될 수 있다. 살과 피에 대한 탐욕으로 찌들게 되지만, 엄청난 힘을 얻기 때문에 악마의 피를 마셨다.
그렇기에 이번 우승은 자신들 거였다.
예선전도 붙지 못했던 오명을 날릴 기회. 그 기회는 서울 명문 아카데미 때문에 처참히 사라져 버렸다.
“이거 놓아! 이거 놓으라고!”
“거참. 이게 무슨 소란입니까? 조용히 좀 갑시다, 조용히 좀.”
“……이런 젠장!!”
내릴 수도 없는 지금, 그가 할 수 있는 건 눈물을 흘리는 것밖에 없었다.
그렇게 한참을 달린 끝에 도착한 헌터 협회.
“내립시다. 방금처럼 난리 피우면 정말 제대로 묶어 버립니다?”
“…….”
침묵으로 응답하자 그가 조심스레 헌터 협회를 향해 끌고 간다.
천천히 걸어가며 헌터 협회에 있는 유치장으로 향하던 그때.
스아아아.
“이게 무슨…….”
그의 몸 전체를 덮는 검은 무언가.
경찰관들도 당황했는지 빠르게 뒤로 물러났다.
콰직!! 쩌적!
“으아아악!!”
“……!!”
아무것도 보이지 않은 상태에서 들리는 끔찍한 소리. 뼈가 부서지고 살갗이 찢기는 소리가 한참 들리다가…….
털썩.
“…….”
검은 무언가는 사라지고 시체가 된 이민겸이 바닥에 쓰러진다. 피가 무수히 떨어지며, 고약한 악취를 풍긴다.
“의, 의료진 불러!! 빨리!”
“젠장. 또 이렇군. 마인만 잡아 오면 이러냐? 다른 학생들도 확인해 봐!!”
그건 경찰차를 타고 온 학생들도 마찬가지였다.
엉망진창이 된 몸과 장기. 경찰차가 피가 범벅이 될 정도로 심한 몰골이었다.
휴대폰을 든 119에 전화를 하기 시작했고.
“끝났나.”
얼굴이 햇빛에 가려진 한 남자가 멀리서 그 모습을 보며 입을 열었다. 누구도 눈치채지 못할 위치.
어딘가 익숙한 모습에 눈길이 간 그의 모습이지만.
“그만 떠나야겠군. 여기도 오래 있었어.”
옥상에 있던 그의 모습은 이미 사라지고 난 후였다.
원래부터 아무것도 없었던 것처럼 깨끗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