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4화
54. 듀오 예선전(1)
“우욱! 술도 안 먹었는데, 토가 나올 것 같네. 사이다를 얼마나 마신 거야?”
“내가 더 토할……. 우웩!”
“…….”
신입생 환영해가 끝나고 도착한 서울 명문 아카데미.
양유혁과 함께 도착해서 제일 먼저 한 일은 변기에 머리를 처박는 일이었다. 어제 선배님들에 의해서 너무 많은 사이다를 먹은 탓에 먹었던 게 올라온다.
그나마 다행인 건 강수호는 멀쩡하다는 거다.
“너는 왜 멀쩡하냐?”
“그야 나는 잘생겼으니까?”
“…….”
예상하지 못한 답변에 인상을 찡그렸다.
잘생겼다는 말은 강수호에게는 전혀 어울리지 않기 때문이다.
입가에 묻은 토사물을 닦아낸 양유혁이 잔뜩 한숨을 내쉬며 반으로 향했다.
“오랜만이네.”
드르륵.
오랜만에 보는 교실.
열리는 것과 동시에.
“…….”
“……?”
모든 시선이 문을 연 그들에게로 집중된다.
오늘부터 시작되는 토너먼트 예선전.
열흘에 걸쳐서 치러지는 토너먼트이기에 학교에 오지 않아야 할 학생들이 모두 와 있었다.
“수호야?”
“선생님?”
그건 담임 선생님도 마찬가지.
그의 손에 뭔가 들려 있었는데, 자세히 보니.
“토너먼트 대표, 축하한다?”
“…….”
토너먼트에 나가는 것에 대한 축하.
다른 반에서도 이벤트를 준비했는지 아카데미 전체가 소란스러워지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관중석이나 가세요.”
“…….”
물론 강수호는 그딴 축하 따위 바라지도 않았다.
토너먼트 대표, 만능 재능이기 이전에 평범한 학생. 그 학생이란 대우조차 해 주지 않은 이들에게 축하는 오히려 독이 된다.
“이만 가자. 아카데미 괜히 왔네.”
“오케이.”
“…….”
아카데미는 강수호에게 지옥과 같았다.
2년이나 버틴 이유는 단 하나. 돈이라도 벌면서 다른 것을 준비하기 위해서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런 자신을 보며 비난을 하던 사람들.
드르륵.
다시 문이 열리고.
쾅!!
강하게 닫힌다.
침묵에 잠긴 학생들과 선생님.
이미 후회하기에는 늦었다.
어떤 상처보다 깊은 상처가 강수호의 심장을 파고들어 아물 시간조차 주지 않고 계속 덧나고 있었으니까.
“…….”
침묵에 잠긴 학생들도 어떤 말도 하지 못하고 조용히 짐을 챙겨 아카데미를 나갈 뿐이었다.
* * *
“그래도 돼?”
“뭘.”
“반 보니까 아침부터 와서 준비한 것 같은데.”
“시끄러워.”
서울 명문 아카데미에서 나와 곧장 토너먼트 경기장으로 향했다. 길드 차에 올라타니 그때와 똑같이 이석현 헌터가 운전하고 있었다.
양유혁의 말을 가볍게 무시한 채 그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그런데 헌터님은 이제 정말 활동 안 하시는 거예요?”
“나 말이니? 허허, 그럼. 이제 나도 나이가 들어서. 그래도 우리 손녀랑 제자 하나는 한국에 남겨서 다행이지.”
인심 좋은 할아버지처럼 웃음 짓는 이석현. 몇 년 전만 해도 근육 빵빵한 그를 TV에서 보았는데 말이다.
나이는 어떤 짓을 해도 시간과 함께 흘러간다. 문제는 나이가 들면 자신만 늙을 뿐, 세상은 흘러가 더욱 발전한다는 것.
“나이가 늙으면 영락없는 할아버지지.”
끼이익.
그때 마침 그가 브레이크를 밟았다.
창문을 보니 어느새 토너먼트 경기장에 도착해 있었다.
서울 명문 아카데미에서 경기장까지 도착하는 데 최소 1시간은 걸리는 거로 알고 있었다.
“20분도 안 돼서 도착했네요?”
“내가 한 운전 실력 하지.”
“그런데 이건 뭐예요?”
무려 40분의 단축.
약간은 의심스러웠지만, 별 생각하지 않고 내리려던 그때 보이는 종이 뭉치.
뭔가 싶어 물어보니.
“아, 신호 위반하고 과속 때문에 돈 내라는 거.”
“…….”
괴물은 늙어서도 괴물이다.
어떻게 해서 40분이나 단축이 되었는지 머릿속에 대충 상상이 갔다.
짧은 놀라움을 뒤로 하고 차에서 내렸다.
“꼭 이겨야 한다.”
“넵!”
간단한 인사를 마치고 그는 사라졌고.
“크네.”
거대한 건물.
아직 경기장엔 도착하지 않았다. 이곳은 그들이 머물러야 할 숙소 겸, 훈련장. 한국에서 최고로 큰 건물이 그들의 눈앞에 있었다.
큰 경기를 치를 때만 사용하는 건물. 또는 돈 많은 사람들이 들어가는 한국에서 가장 비싼 호텔이다.
“들어가자. 아마 최서현도 안에 있을 거야.”
“응.”
토너먼트에 참여하면 모든 유명 아카데미 학생이 있을 거다.
문을 열자마자 보이는 고급스러운 풍경. 그곳에 많은 학생과 선생님이 존재하고 있었다.
아카데미에 간 이유도 이곳에 와서 뭘 해야 하는지 모르기 때문에 선생님을 지도 삼아 가려 했던 것이다.
‘큰 상관은 없겠지.’
문을 열자 모든 이의 시선이 양유혁과 강수호에게로 향한다.
강자 견제 같은 거로 생각했지만.
“풉. 선생도 없는 것 보니 약한 놈들이네. 신경 쓰지 말고 우리 할 거에 집중하자.”
“넵.”
“…….”
담당 선생님도 없어서 우리를 무명 아카데미로 보는 듯하다.
그들을 가볍게 무시한 뒤에 서울 명문 아카데미라는 이름을 찾기 시작했다.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여기에서 발급되는 학생증이 있어야 하니까.
“어디 보자. 서울…… 서울…….”
“이거 맞냐?”
“어, 그거. 다른 애들은 다 왔나 보네. 먼저 와서 약이라도 빨고 있는 거 아니야?”
“개소리 말고 빨리 가기나 하자. 밤새웠더니 잠 온다.”
대표까지 포함해서 열 명으로 이루어진 토너먼트 조. 8명 정도가 가져간 거 보니 다른 이들은 벌써 도착했나 보다.
“그러면 이제…….”
강수호가 먼저 학생증을 잡고 가려던 찰나.
“워워, 지금 어디에 손을 대는 거죠?”
“……?”
“이건 서울 명문 아카데미 학생 거지, 당신들이 쓰라고 만든 게 아닙니다만.”
“…….”
갑작스레 다가오는 꼰대 한 명.
누군가 싶어 얼굴을 살펴보니.
“누구세요?”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유명하지도 않은 사람이다. 아마 이 건물의 관리인 정도 되는 사람인 듯하다. 아니면 그저 그런 오지랖 넓은 사람이든가.
예의상 한 번쯤은 듣기로 했다.
“A급 헌터로 화려하게 데뷔해서 지금은 강남 아카데미의 대표를 육성시킨 선생님이지! 유명한 사람인데 혹시 들어…….”
조용히 듣고 있었다. 되도록 사람을 깎아내리는 짓은 하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뭐라는 거야, 돼지 새끼가.”
“뭐라고?”
“아, 미안. 내가 병X 같은 놈을 보면 욕하는 버릇이 있거든.”
물론 양유혁은 달랐다. 강수호와 다르게 곧바로 욕을 내뱉었다.
그는 화가 머리끝까지 차올랐는지 눈살을 찌푸리는 것과 동시에 날카롭게 자신들을 노려본다.
“지금 강남 명문 아카데미 대표 선생님을 무시하는 건가?”
“아니, 그냥 널 무시하는 건데. 내가 그렇게까지 쓰레기는 아니라서.”
다시 한번 자신들에게로 시선이 집중된다. 정말로 꽤 유명한 사람인 것 같다.
“양유혁. 그냥 가자.”
그를 붙잡고 가려 했다. 하여튼, 이놈이랑 같이 다니면 항상 문제가 생긴다.
“가만히 있어 봐.”
“어휴, 이러니까 내가 널 싫어하지.”
권력이 있더라도 그 권력을 마음대로 휘두르는 건 강수호의 취향이 아니다. 나중에 가서 직접 참교육해 주는 것이 취향이지.
하지만 양유혁은 그와 반대였다.
“우리 대표가 누군지…….”
“설마, 그 혈쿠로 변신한 X이냐?”
“그 입 닥쳐! 다시 한번 입 놀렸다가는 찢어…….”
“꼰대 머머리 주제 말 더럽게 많네.”
화가 머리끝까지 솟아올랐다. 누구든지 저 말을 듣는다면 쉽게 화를 가라앉히지 못할 거다.
주먹을 꽉 쥔 그가 지켜야 할 사항을 가볍게 깨고 주먹을 휘둘렀을 때.
“샘!!”
“어?”
갑작스레 그를 향해 소리 지르는 한 여학생.
뭔가 싶어 그녀를 쳐다본다.
“음? 최서현?”
“하아, 돌겠네. 선생님! 이 애들, 서울 명문 아카데미 학생 맞다고요!”
“…….”
강남 아카데미의 대표, 최서현이 한숨을 잔뜩 내쉬며 소리를 질렀다.
집중되는 시선에는 놀라움이 깃들어 있었다.
‘서, 서울 명문 아카데미라고? 괴물들만 다니는 곳?’
괴물들이 다니는 곳. 그런 곳이 바로 서울 명문 아카데미다. 물론 꼴등도 있게 마련.
소문은 과장되었지만, 아카데미 이미지가 좋아서 나쁠 건 없었다.
“미안, 새로 오신 선생님인데 워낙 자기가 대단한 줄 아셔서.”
“나는 상관없긴 한데…….”
“야.”
“…….”
서울 아카데미라고 하자 선생님의 표정이 달라진다. 한심함이 가득 차 있던 표정에서 건드리지 말아야 할 괴물 같은 존재를 건드렸다는 표정.
그것을 알고 있던 양유혁이 그에게 다가가 날카로운 미소를 지으며 속삭이듯이 말했다.
“적당히 해라. 이건 약과니까. 내 장난감을 괴롭히면 안 되지.”
“무, 무슨……!”
원인을 알 수 없는 말. 그와 동시에 아무도 눈치채지 못할 어두운 기운이 남자의 목을 감싸더니.
“커헉!”
후두둑!
“1시간 동안 많이 고통스러울 거야. 이건 내가 주는 특별 벌. 나한테 나댄 특별 벌이야.”
“끄아아악!”
고통에 몸부림치는 그.
뭔 상황인지 몰랐기에 강수호는 인상을 잔뜩 찡그리며 물었다.
“뭔 짓을 한 거야?”
“아, 그냥 심심해서 수호 길드 권력 좀 사용했지.”
그 말에 잔뜩 한숨을 내쉬었다.
딱 봐도 거짓말인 대답. 뭔가에 잔뜩 두려움을 가지고 고통스러워하는 모습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이래서 내가 널 좋아할 수가 없어.”
“칭찬이지?”
“마음대로 생각하든가.”
이런 놈이 악마가 아닐까 생각했다.
뭔가를 저질렀음에도 무표정으로 강수호를 쳐다보며 말을 건다. 이러니까 도저히 친해질 수가 없는 상대다. 1학년 때도 이유 없이 말을 걸고 그걸 즐기는 놈이었으니까.
“너 혹시 사이코패스냐?”
“그럴 수도?”
“어우, 소름 돋아.”
되도록 이 녀석과는 가까이 지내면 안 될 것 같다. 팬티를 입지 않은 것처럼 찝찝했으니까.
한참 이야기를 나누고 있자 당황스러워하는 최서현이 고개를 숙여 미안함을 표했다.
“미안해. 내가 정리해 놓을 테니까 먼저 가 있어. 그리고 너희한테 절대로 안 질 거니까 알고 있어!”
“그럼. 먼저 올라가 있을게. 심심하면 연락하고.”
“오케이~”
엘리베이터를 타 이동하는 동안의 긴 침묵. 별다른 이야기도 없이 방 안에 도착했다.
“크네.”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방이 얼마나 큰지 직감할 수 있었다. 트럭 10대는 거뜬히 들어갈 수 있을 것 같은 크기.
8켤레 신발이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었다.
“나 왔는데…….”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자 지독한 마기 냄새가 코끝을 자극한다.
천천히 주변을 둘러보자 곧바로 인상이 찡그려진다.
“이거, 누구 짓이야?”
“헤헤…….”
멍청한 웃음을 짓는 이들. 한 명도 빠짐없이 정신 상태가 반쯤 나가 있었다.
“어떤 놈이…….”
말이 끝나기도 무섭게.
“……!!”
공기 중에 발견한 검은 안개.
양유혁이 조심스레 다가가 갑자기 손을 휘젓더니.
“와. 미친 새끼들이네.”
곧바로 비속어가 섞인 욕을 내뱉는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 공중에 떠 있는 건
“마기잖아?”
“마기?”
옅은 색을 띤 마기였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