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1화
41. 이 길드로 하겠습니다(2)
“…….”
순식간에 정적이든 강당.
강수호라는 학생이 들어오고부터였다.
‘그 녀석인가?’
‘패왕 길드 마스터가 그리 신경 쓴다는 학생이군. 기세는 평범한데.’
‘과연 무슨 재능이 있을까?’
‘잡캐? 정말 쓸모도 없는 잡캐일까?’
길드 대표로 나온 이들은 저 학생이 누군지 잘 알고 있었다.
두 눈을 반짝이며 그를 스캔하기 시작했다. 그중에선 당연히 탐색 같은 스킬로 상태창을 보고 싶어 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파지직!
“크윽!”
“음? 무슨 일인가?”
“상태창을 보려 했는데 탐색 스킬이 통하지 않았다.”
“뭐? 자네 탐색 스킬 등급이…….”
“A지.”
“…….”
A급의 탐색 스킬.
그 정도 등급으로도 강수호의 상태창을 볼 수 없다니.
“그놈이 눈독 들일 만하군.”
“이 정도라니…….”
암살자 길드 부마스터의 탐지 마법을 막아내었다. 그것도 던전에서 굴러다니는 베테랑 헌터의 탐색 스킬을.
‘우리 길드로 데려와야겠어.’
저런 인재는 나중에 가면 어마어마한 괴물이 될 가능성이 높다. 지금이라도 돈과 영약을 찔러 넣어서 자신의 편으로 만들어야 한다.
“저기 학생…….”
암살자를 연상케 하는 검은 망토를 쓴 채 다가가는 강금찬. 무섭게 보일 수는 있겠지만, 지금 그런 걸 신경 쓸 때가 아니다.
세계 스타가 될 수 있을 정도의 거물.
그를 향해 다가가 손을 내밀던 그때.
“커헉!”
“하하! 오랜만이야. 잘 지냈어?”
“…….”
쾅!!
신하림이 빠른 속도로 다가와 가볍게 그를 쳐냈다. 어찌나 힘이 강한지 밀쳐내니 날아가 벽에 박힐 정도였다.
“잘 지냈긴 하죠. 그런데 저분은…….”
“너무 걱정 안 해도 돼.”
“암살 길드 같은데, 암살자면 몸이 약하지 않나요?”
“살짝 때린 거로 죽지는 않아. 당분간 걷지는 못하겠지만.”
“…….”
정말 이 여자와 친하게 지내야겠다. 스승님들보다는 약하지만, 그들이 지구로 올 수 있는 건 아니니까.
저번에도 늦은 밤에 먼 시골까지 와 주고.
“그런데 이구호 님은 안 보이시네요?”
고개를 두리번거리며 패왕 길드의 마스터를 찾았지만, 그는 보이지 않았다. 마치 원래부터 없었던 것처럼.
“마스터는 이번에 밀렵꾼들 잡는다고 자기가 직접 나섰어. 그놈들 때문에 제대로 된 식사를 못 한 지도 오래됐다나 뭐라나…….”
“그분답네요.”
오랜 친구와 이야기하듯 가볍게 말을 주고받았다. 그 모습에 대표로 온 길드원들이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저 정도로 친분을 쌓았다고? 도대체 뭘 도와준 거지?’
‘설마 저 학생 엄마한테 비싼 영약이라도 준 거 아니야?’
몇백 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하는 괴물 같은 재능. 그런 학생을 빼앗긴다면 마스터에게 어떤 말을 들을지 대충 예상이 가기 때문이다.
“저기 강수호 학생입니까?”
“네? 맞는데요? 누구시죠?”
“저는 이런 사람입니다.”
기규철이 다가와 명함 하나를 건넨다.
유명 대형 용병 길드.
대부분의 힘을 가진 강수호에게 맞는 길드지만.
“일단 생각해 보고 전화 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꼭 생각해 보십시오!”
강수호는 용병 길드를 선호하지 않는다.
수호 길드처럼 악감정 같은 건 없지만, 용병들이 모두 개방적이거나 산만하다는 걸 알고 있었으니까. 되도록 이런 곳엔 가고 싶지는 않다.
‘용병’이란 말과 다르게 자유롭지도 않고.
“여기 제 명함도…….”
“아, 방금 날아가신 분이죠?”
“저를 기억해 주시다니! 저는 암살자 길드의 부마스터 강금찬이라고 합니다. 혹시 뛰어난 정신 방벽 같은 스킬이 있나요? 어떻게 제 탐색 스킬을 막을 수 있는지…….”
강금찬. 암살 길드에 별 관심이 없어도 대부분의 헌터들이 아는 유명한 헌터다.
‘혼자서 던전 하나를 몰래 쓸어 버렸다 해서 유명해졌지.’
그의 재능인 절대 은신. S급 이상의 몬스터가 아닌 이상에야 절대로 들키지 않는 개사기 재능.
잘만 하면 A급 던전도 손쉽게 클리어 가능한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
“아, 감사합니다. 제가 아직 암살 같은 거에 재능은 없는지라. 일단 명함은 받고 생각나면 전화 드릴게요.”
“네, 알겠습니다! 꼭 연락 부탁합니다!”
왜 높은 사람들이 강수호를 잘 대해 주는지 모르겠다.
어제만 해도 세 명의 무리가 쥐잡듯이 괴롭힌 탓에 피로가 쌓였는데.
“미, 미친. 이게 도대체 뭐야?”
“수호 길드 빼고는 1위부터 10위까지 강수호 옆에 다 모였어.”
“음? 진짜네? 강수호, 뭐냐?”
어느새 강당 안으로 들어온 학생들.
강수호 주변에 길드 대표로 온 부마스터들을 보고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자신의 길드로 들어와 달라는 제의를 한두 명도 아닌, 무려 1위부터 10위까지 모든 길드가 제안하고 있었으니까.
그 모습에 놀라지 않을 학생은 없었다.
“여기 제 명함…….”
“여기 제 것도!”
넘쳐나는 명함.
다 받으니 주머니와 인벤토리는 어느새 그들이 준 영약과 명함으로 가득 찼다.
영약들은 어차피 자신에게 그리 큰 쓸모가 없었다. 고향에 택배로 부쳐야겠다는 마음으로 마지막 영약을 인벤토리에 넣었다.
“자, 그러면 이제부터 천천히 이야기해 볼까요?”
대충 정리를 마친 강수호가 10위 길드 부스에 앉았다.
공평하게 이루어지는 스카우트 권리. 중소 길드도 있기에 다 둘러보려면 오랜 시간이 걸릴 듯하다.
* * *
“안녕하세요?”
“안녕!!”
처음으로 찾아간 곳은 10위 길드의 부스. 비밀 유지를 위해서 마법으로 만들어 놓은 특수한 공간이다.
강수호는 그곳에서 부스 안을 잠시 구경했다.
“제작 길드군요.”
“하하, 그래. 세계적으로도 유명한 제작 길드! 힘은 강하지는 않지만, 아이템 제작 하나만큼은 누구보다 뛰어나다는 자신 있거든!”
옷의 오른쪽 가슴에는 ‘이설아’라고 적혀 있었다. 만능 제작이라는 S급 재능을 가진 제작 계열 각성자.
그녀에 대해서 들어본 적 있기에 잘 알고 있었다.
‘마스터랑은 급이 다르지만, 뭐든지 제작할 수 있는 재능. 저 재능 하나 덕분에 부마스터 자리까지 오를 수 있었고.’
대형 길드 대부분이 이런 괴물들이 넘쳐난다.
제작에 대해서는 괴물을 보지 못했기에 강수호는 그저 신기할 뿐이었다.
“저게 다 누님이 만드신 거예요?”
“응! 그럼! 당연하지! 대장간이 아니라서 만드는 건 보여주지는 못하지만, 이거 내가 전부 만든 거 맞아!”
육안으로 봐도 뛰어난 품질이다.
장비에서는 새하얀 빛이 반짝이고 있었고, 어디 하나 틈 없이 말끔하게 제련되어 있었다.
물론 제작 계열의 길드에 들어가는 것도 나쁘지 않은 선택이다. 돈도 많이 벌고, 인맥도 많이 쌓을 수 있으니까.
하지만 강수호의 목적은 고작 인맥이나 쌓고 돈이나 많이 버는 게 아니다.
“죄송해요. 제작도 좋긴 하지만, 별로 당기지는 않네요.”
“어?! 그래도 돈도 많이 벌 수 있는데? 나중에 실력이 쌓이게 되면 세계급 헌터 장비도 만들 수 있다고!”
“저는 돈을 많이 버는 목적이 아니라. 강해지고 싶거든요.”
강해지는 것. 강해져서 자신의 것을 지키겠다는 마음은 지금까지도 변치 않았다.
아쉬운 마음을 뒤로 한 채 9위 길드를 향하고, 8위, 7위는 없기에 2위 길드까지 갔을 때.
“죄송해요.”
“아니야, 네가 마음에 들어야지. 그래도 관심 있으면 찾아와~”
“넵.”
강수호의 마음에는 그리 맞지 않았다.
좋은 복지와 돈, 던전만 생기지 않는다면 쉴 수 있다지만.
‘다 좋은데 자유가 없잖아.’
5시간 정도의 자유.
언제 생길지 모르는 던전 때문에 지금까지 본 길드 모두가 5시간이란 자유시간을 주지 않았다.
“어서 와.”
마지막으로 기대한 패왕 길드.
부스 안으로 들어가자 그녀가 활짝 웃으며 반겨준다.
자리에 앉자마자 시작되는 이야기.
처음에는 간단한 복지부터 시작해서 언제 던전에 들어갈 건지, 그리고 데뷔전은 어떻게 치러질 건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렇게 10분 정도 지나자 이야기는 끝나고.
“어때? 우리 길드 들어올래?”
“흠…….”
“우리 길드는 다른 길드보다 할 수 있는 것도 많거든.”
패왕 길드는 대부분 재능을 다 갖춘 길드원이 많은 편이다.
제작부터 시작해서 연금술사 등등.
여기에서 재능을 펼치는 게 좋을 정도로.
하지만 아직 중요한 건 묻지도 않았다.
“혹시 5시간 정도 자유시간을 줄 수 있나요? 당연히 자는 시간 빼고요.”
“흠…….”
강수호의 물음에 신하림은 입술을 삐쭉이며 시선을 돌렸다.
불가능에 가까운 물음. 고민하는 것만으로 그녀에게 감사함을 표해야 한다.
‘사람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상황에서 5시간이라는 자유시간을 주는 건 말도 안 되지.’
헌터는 연예인이 아니다. 사람의 목숨을 구하는 소방관과 같은 역할. 그런 역할을 가진 자에게 5시간이란 자유시간을 준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소리다.
그리 생각하고 아쉽지만, 자리에서 일어나던 그때였다.
“좋아.”
“역시 그러실 줄……. 네?”
“좋다고. 5시간 정도야 슈퍼 루키한테 충분히 줄 수 있는 시간이지. 그 정도 조건이면 충분하지 않겠어?”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어느새 마스터와 협의도 마쳤는지 그녀의 손에는 메시지 화면을 켜 놓은 휴대폰이 들려 있었다.
“정말입니까?”
강수호가 궁금함에 다시 묻자 그녀가 고개를 세차게 끄덕였다.
불가능에 가까울 것 같은 제안. 사실상 길드에도 타격이 가는 제안이었다.
“일단 우리는 너라는 가치를 높게 보고 있거든. 실적 같은 건 적어도 상관없지만, 그 대신 클리어율 같은 건 높아야 한다?”
“…….”
멍하니 입을 쩍 벌렸다.
자는 것 7시간, 먹는 것 1시간, 자유시간 5시간 빼고는 남은 시간은 고작 11시간.
11시간 안에 성적을 채워야 하는 건 힘든 일이지만.
“오늘부터 잘 부탁합니다!”
“흐흐. 우리 길드 들어온 걸 축하해.”
강수호는 그저 기쁘기만 했다.
모두 거절한 제안을 수락한 패왕 길드. 실적을 챙겨야 하겠지만, 스승님들의 훈련이 있다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그렇게 계약은 길드에 만나서 하겠다며 강당을 빠져나왔고.
“다음 학생, 들어오세요.”
패왕 길드 신하림은 다음 학생을 기다렸다.
대형 길드 1위부터 10위까지 갈 만한 성적을 가지고 있었다.
물론 스카우트 같은 게 있다면 강수호처럼 성적 상관없이 갈 수 있겠지만, 커튼이 열리는 것과 동시에 보이는 얼굴.
“안녕하세요?”
“음? 장천우 아들 아니야?”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은 양유혁이 부스 안으로 들어갔다.
1위부터 3위까지 성적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 들어가는 건 큰 상관이 없었다.
문제는 수호 길드 아들이 왜 여기에 왔냐는 것.
“아빠가 시켰어?”
“아니요.”
“그러면 여기는 왜 왔어?”
서로 사이가 좋지 않은 터라 입양한 아이라 할지라도 봐주는 건 없었다.
인상을 잔뜩 찌푸리며 물어보자 그는 별거 아니라는 듯 입을 열었다.
“길드 가입하러 왔죠.”
“…….”
입을 다문 그녀의 말을 뒤로 양유혁이 말했다.
“물론 아버지한테는 허락 맡고 왔어요. 저 정도면 꽤 괜찮은 인재 아닌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