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9화
39. 애완식물입니다(2)
“그러니까 말이야. 네가 내 팬이라는 거지?”
“응응!”
“…….”
오후 4시 밝은 교실 안.
팬이라 칭하는 여학생이 강수호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당연히 쉽게 믿지 않았다.
‘어휴, 개소리도 정도껏 할 것이지.’
강수호의 앞에 있는 여학생은 강한미.
인상을 찌푸리며 속으로 화를 낸 이유는 단 하나였다.
이 여학생 아빠가 국회의원이었으니까. 그것도 헌터 쪽에서 꽤나 유명한 국회의원.
‘물론 안 좋은 쪽으로.’
뇌물 받고 F급 헌터는 다 죽여야 한다는 이상한 정책을 내거는.
하여튼 좋은 거라고는 더럽게 없는 국회의원의 딸이다.
“웅! 나 사인해 주면 안 돼~? 나 네 팬이란 말이야~”
“……사인?”
“웅!”
토가 나오려다 말았다.
여우가 토끼로 변하는 광경을 두 눈으로 목격하고 있었다.
이 짓만 몇 분째인지.
“미안, 지금은 시간이 없어서. 기숙사에 밥 줘야 할 놈이 있거든. 밥 안 먹이면 사람을 물어서.”
“아, 그랭? 그러면 나랑 같이 가자? 무는 거라면 강아지인가?”
“같이 가는 건 안 돼.”
당연히 거절했다. 뭔가 속셈이 있는 것 같은 눈빛.
마을에서 저런 눈빛을 많이 봐서 이제는 익숙했다.
“그리고 강아지 아니야. 안 오는 게 좋을걸?”
“히잉. 너무해.”
“…….”
방금은 한 대 때려도 무죄다.
하지만 그녀는 강수호를 쉽게 놓아주지 않았다.
“나 네 고양이 보고 싶펑! 같이 가장!!”
“그래, 네 마음대로 해라…….”
어쩔 수 없이 고양이(식인 식물)를 보여줘야겠다.
깜짝 놀라서 기절이나 하지 않았으면 좋겠지만.
‘이때쯤이면 난폭해졌겠지.’
스승님의 말로 사람을 먹으면 버릇이 잘못 들어서 사람을 먹이로 인식할 수도 있다고 했다.
그럴 리는 없겠지만, 잘못하면 그녀를 한입에 꿀꺽할 수도 있으니.
“올 거면 와. 그 대신 마음의 준비나 하고 있어. 오늘이 마지막일 수도 있거든.”
“귀여워서 그렇지? 나처럼?”
“…….”
마지막 말에 인상이 구겨졌지만, 이를 꽉 물고 기숙사로 향했다. 이제 내일이면 길드를 골라야 해서 바쁠 테니까.
아카데미를 지나 곧바로 기숙사로 향했다.
“남자 기숙사는 이렇게 생겼구나.”
“정말 따라왔어?”
“그럼! 사감 선생님한테만 안 걸리면 돼. 그리고 우리 아빠 높은 분인 거 잘 알잖아!”
하여튼 빽 많은 놈들이란. 이 세상을 제 마음대로 해도 되는 줄 안다.
가볍게 한숨을 내쉰 채 기숙사 2층으로 향한다.
“보고 놀라지나 마. 고양이 같은 것도 아니니까.”
“고양이가 아니라고? 그러면 도대체 뭘까? 아니, 애초에 기숙사 안에서 뭘 키워도 돼?”
“키워도 되니까 갖다 놓았겠지. 그리고 티도 별로 안 나서 상관없어.”
궁금한지 질문 공세를 퍼붓는다.
살아 있는 생명체이며 티도 안 나서 기숙사에 놓고 가도 별 의심 없는 동물.
“동물 확실해?”
“모르지. 한 번 확인해 보든가.”
이제 막 2층에 도착하자 그녀가 이상하게 웃는다.
강수호는 자신의 방 앞까지 오자 뭔 상황인지 대충 눈치챌 수 있었다.
강한미는 그것도 모르고 자신을 가리키며 비웃기 바빴다.
“풉! 내가 네 팬을 하겠냐? 이 멍청한 놈! 강하다고 잘난 척하기 바빴지?”
“…….”
강수호는 그저 이마를 짚으며 한숨을 잔뜩 내쉴 뿐이었다.
이거 큰일이라도 아주 큰 일이 났다.
사람을 먹으면 식성이 조금씩 변하는 슬론.
“아이고, 멍청한 놈들아. 일을 만들어라, 만들어.”
슬론의 특성은 두 가지가 있다.
마비 침을 사용하여 기절시켜 천천히 녹여 먹는 것. 그리고 한 방에 꿀꺽 삼켜 12시간 동안 소화되길 기다리는 것.
‘제발 전자여야 할 건데.’
후자는 절대로 안 된다.
소화되는 걸 직접 지켜봐야 하는 끔찍함.
한입에 집어삼키면 되돌릴 수도 없다. 팔이나 다리 하나가 무조건 녹아서 나올 것이다.
“보고 기절하기 싫으면 저기 있어라.”
“풉! 푸하하하! 걍 같이 보면 안 되냐? 완전 꼬시다, 꼬셔!”
아직도 정신을 차리지 못했는지 비웃기 바빴다.
그녀가 더 이상 입을 여는 꼴을 보지 못하겠어서 곧바로 문을 열었다.
문이 열리는 것과 동시에.
“어휴, 돌겠다.”
“이게 무슨…….”
방 전부가 넝쿨로 이루어져 있었다. 촘촘히 이루어진 넝쿨 사이로 보이는 기절한 두 명의 인영.
“그래도 숨은 쉬고 있네.”
멀리서 확인해 보니 다행히 후자의 경우는 아니었다.
문제는 자신을 쳐다보는 이놈이다.
“크와와왕!!”
“히익! 괴물이다!!”
“돌겠네.”
어느새 커진 슬론.
그나마 다행히도 아직까지는 사람의 양분을 섭취하지 않았다는 건데…….
“어쩔 수 없나.”
슬론을 되도록 죽이지 않으며 키우는 것이 과제의 핵심이었다. 하지만 그전에 이놈들이 먼저 죽을 것 같다.
“뭐, 그대로 죽어도 나쁘지 않을 것 같긴 한데…….”
그들이 싫더라도 자신의 방에서 누군가 죽는 일은 영 꺼림칙하다.
파이어 마법을 양손에 전개했다.
“크와와와왕!”
“너도 위험한 건 알구나.”
위험하다는 걸 알았는지 빠른 속도로 달려오는 슬론.
아직 아이 크기라 파이어 정도로 제압할 수 있었다. 아직은 E급 몬스터밖에 안 되니까.
그것도 붙어 있는 상태에서만 공격이 가능한 몬스터.
“잠깐 빌린다.”
“히익! 오지 마!”
강한미의 허리춤에 있던 검을 뽑았다. 도망갔지만, 지금 그것까지 신경 쓸 시간은 없었다.
엉켜서 날아오는 넝쿨을 베어내고 피해 냈다.
“검은 한 번도 안 사용해서 어색하네.”
단 한 번도 검을 잡아 본 적이 없어서 그런지 어색하다. 하지만 스탯 덕분에 크게 어렵진 않았다.
얼굴을 향해 날아오는 넝쿨을 피하는 것과 동시에 베어낸다.
아직 밥을 먹지 않았기 때문에 빠르지도 강하지도 않은 상태.
“됐다.”
처음에 한 행동은 양분을 흡수하기 위해 만들어 놓았던 줄을 자른 것. 위험을 느낀 슬론이 곧바로 그들을 한입에 삼킬 수 있기에 먼저 잘랐다.
“크아아앙!”
“다 안 자라서 의외로 쉽구나?”
스승님의 슬론과는 확연한 차이가 있었다.
당연하게도 이 녀석은 패턴이 너무 쉬웠다. 공격 또한 강하기만 강하지 속도는 느려터졌다.
“다른 놈을 구해야겠네. 이름이라도 있으면 정 같은 게 붙었을 건데. 아쉬워.”
아쉬움을 뒤로 한 채 검에 마법을 둘렀다.
가속과 파이어를 검에 두르고 휘둘렀다.
푸욱!
“크와와왕!!”
화르륵!
굵은 줄기에 검을 박아 넣자 덩굴이 빠르게 타오른다.
언제든지 화재를 진압할 수 있도록 워터 마법을 발동했다.
고통에 비명 지르며 머리까지 다 탈 때쯤에.
“워터.”
촤아악!
마법을 전개했다.
물이 방 안에 뿌려지면서 화재가 진압되었다.
“선생님! 여기요! 여기 괴물이 있어요!”
그때 마침 그녀가 선생님을 불러왔는지 자신의 쪽으로 달려온다.
사감 선생님은 무기를 착용하고 있었다. 그 모습에 강수호는 태연하게 재가 덮인 두 남녀를 바닥에 내려놓았다.
넝쿨의 내구성이 강한 덕분에 그들까지 태우지는 않은 상태.
“여기 괴물이…….”
“괴물이 어디 있는 거지?”
방을 두리번거리며 괴물을 찾는 사감 선생님들.
하지만 아무리 찾아도 괴물이라 불릴 만한 몬스터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검은 재로 더럽혀진 방만 보일 뿐.
“수호 학생.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요?”
자신의 방을 본 선생님들의 인상이 찌푸려졌다.
검게 타오른 방 안. 워터로 응급처치는 했다만 마나로 만들어진 불은 주변의 것들을 대부분 태워 나갔다.
당연히 옛날 같았으면 자신의 잘못이라며 고개를 숙였을 테지만.
“사감 선생님! 당연히 이놈이 그랬…….”
“이 친구들이 제 방에 장난을 좀 친다고 그랬던 게 불까지 나 버렸지 뭡니까. 그래서 제가 워터 마법으로 일단 응급처치는 해 놓았습니다.”
“아니라고요! 이 녀석이…….”
“고등학생 3학년이면서 하는 게 참.”
태연하게 웃으며 말한다.
그 모습에 난리를 피우는 그녀였지만, 당연히 가볍게 무시당했다.
명문 아카데미에서는 누가 더 강하거나 좋은 인맥을 가진지에 따라 귀 기울일 대상이 변한다.
“아하, 그렇군. 그러면 이놈들이 잘못했단 말이지요?”
“넵, 그렇습니다. 제 문을 클리어 마법으로 따고 들어왔더군요.”
“…….”
자신이 왕이 아니라는 걸 깨달은 그녀의 표정이 처참히 구겨진다. 국회의원도 S급 헌터에 비할 바가 아니라는 걸 그녀도 알고 있었으니까.
“그렇다면 수호 학생은 이놈들을 어떻게 하고 싶나요? 이 정도면 명문 아카데미 퇴학 감인데 말입니다.”
“…….”
“흠…….”
아카데미 기숙사의 기물 파손. 그리고 기숙사 방 무단 침입에 방화까지. 아카데미 밖에서도 이 정도의 행동은 중범죄다.
물론 길드 마스터 아들, 딸. 그리고 국회의원의 딸이라면 언제든지 벗어날 수 있겠지만.
“아니요, 퇴학까지는 바라지도 않습니다.”
어차피 다른 아카데미에 가서도 이런 짓을 할 건데 굳이 퇴학시킬 필요는 없었다. 그저 작은 괴로움을 원할 뿐.
“이 방 청소는 누가 하십니까?”
“당연히 청소 업체를 불러서 제대로 청소하고 다시 인테리어도 해야 합니다. 이 정도면 안까지 다 탄 것 같으니까.”
까맣게 탄 방 안. 이전과 같은 상태로 되돌리려면 최소 몇 달은 걸릴 것이다.
“흠. 그러면 이놈들이 고치게 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은데요?”
“오호. 그런 방법이 있군요.”
퇴학은 바라지도 않는다. 어차피 다른 곳에서 잘 먹고 잘살 바에야 조금이라도 고통스러운 모습을 보고 싶었다.
이런 소소한 고통도 그들에게는 지옥과도 같을 테니까.
“이 방은 다 탔으니까 다른 방을 줄게. 일단 따라오거라.”
“넵.”
“너희도 따라와! 네가 기절한 아이들 붙잡고.”
“넵…….”
사감 선생님의 전혀 다른 태도. 힘만 바뀐다면 언제든지 바뀔 태도지만, 최소한 지금은 아니었다.
그렇게 사감 선생님의 뒤를 따라가고 있던 찰나 궁금했는지 그가 조심스레 물었다.
“그런데 얘들은 뭘 보고 괴물이라고 한 건가?”
“아하. 그거 말씀하신 거죠?”
알고 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당연히도 그 괴물의 주인은 바로 강수호였으니까.
“별거 아니에요. 파리나 곤충 잡아먹는 식충 식물이에요. 좀 크긴 하지만.”
“하하하하!”
강수호의 대답에 사감 선생님이 호탕하게 웃기 시작했다.
고작 식충 식물. 화분에 담긴 작은 식물. 움직이지도 못해서 미끼를 만들어 직접 사냥하는 불쌍한 식물이니까.
“똑똑한 줄 알았더니만 많이 멍청한 놈들이었구만. 고작 식충 식물 하나에 놀라서 기숙사를 이렇게 만들다니.”
“…….”
“이런 처벌로 끝낸 거에 감사해라. 모두 수호 덕분이니까.”
한심한 듯 쳐다보는 눈빛과 말투.
그저 고개를 숙여 입을 다물 뿐이었다. 그들도 지금 자신의 상황이 불리한 걸 알고 있었으니까.
그렇게 한참이 지나 도착한 사감실에서 강수호는 다른 방을 배정받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