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6화
36. 선발 대회(1)
이가 다 빠진 채로 기절한 암살자들. 복면으로 인해 얼굴은 자세히 보지 못했지만, 누가 보냈는지는 예상이 갔다.
‘양유혁…….’
이런 일을 저지를 사람은 그놈밖에 없었다.
동아리 선생님의 인맥을 이용해 이런 일을 벌인 게 분명했다. 아니면 암살자를 고용했다는 미친 짓을 했다든가.
“엄마가 너무 놀라서 얼굴을 쳐 버렸지 뭐야?! 침대에 누워 있는데 갑자기 칼을 들고 푹푹 찌르는 거 있지?”
“…….”
솔직히 말하면 칼로 베개를 찌르는 행동을 하는 엄마가 더 무섭다.
주먹 한 방으로 최소 C급 이상인 암살자의 이가 반쯤 빠진 채로 쓰러져 있으니까.
레릴 아줌마가 100년이나 연구해서 만든 엘릭서.
‘그래도 다행이네.’
하지만 오히려 끔찍한 상황이 이뤄지지 않아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엄마가 암살자에게 살해당했더라면 강수호가 살아 있는 이유 중 하나를 잃어버렸을 테니까.
“일단은…….”
“경찰한테 전화해야겠지? 아무리 그래도 사람을 이렇게 만들어 놨는데.”
“아니요.”
경찰보다는 119에 전화하는 게 낫다. 얼굴이 반으로 구겨진 그들은 멀리서 보면 시체로 보였으니까.
하지만 이럴 때는 경찰, 119보다 더 좋은 인맥이란 걸 이용하면 된다.
“엄마, 잠시만요. 굳이 그럴 필요 없거든요.”
휴대폰을 꺼내어 저장된 연락처를 살핀다. 그중에서 지금 상황에 제격인 이에게 전화를 걸었다.
띠리링. 띠리링.
잠시 신호음이 울리더니.
-하암~ 누구세요?
방금 일어났는지 잔뜩 하품하며 전화를 받은 얇은 목소리. 잔뜩 피곤한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와 강수호가 웃으며 말했다.
“신하림 님. 저 강수호입니다.”
-음? 강수호 학생?!
패왕 길드 부마스터, 신하림.
강수호는 인맥을 이용하기로 했다. 대한민국 최고 길드라는 인맥을.
* * *
“우애애앵! 나 쉬고 싶어!”
“닥치고 따라와. 나도 피곤하니까.”
“나 오늘 일한다고 2시간도 못 잤단 말이…….”
“마스터, 혹시 평생 자게 해 줄까?”
“……아니.”
구호의 멱살을 잡고 등장하는 신하림. 급하게 나왔는지 수면 바지에 잠옷 차림이다.
“자다가 왔나 봐요?”
“누구 때문에.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이냐?”
집 안으로 들어온 그녀가 복면을 쓴 사내들을 보고 인상을 잔뜩 찡그렸다.
C급 헌터 정도 되는 기세. 누가 봐도 평범한 좀도둑은 아니었다. 허리춤에 찬 단검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수호 길드 새끼들이네.”
“그걸 어떻게 알아요?”
암살자가 쓰고 있던 복면을 벗긴 그녀가 단언하듯 말했다.
사람을 찾는 스킬, 재능이 있다지만, 이렇게 단번에 찾아내리라고는 생각도 못 했기 때문이다.
“아, 별거 아니야. 원래 수호 길드 놈들은 다 못생겼거든.”
“네?”
정말 그녀의 말대로 암살자들은 그리 잘생긴 편이 아니었다. 벌렁거리는 코에 삐져나온 코털. 남자가 봐도 별로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으니까.
“풉.”
“음? 왜 웃으세요?”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이자 그녀가 웃음을 짓는다.
별거 아니라는 듯 그녀가 입을 열었다.
“당연히 구라지. 그걸 또 진지하게 받아들이냐? 은근히 웃기는 구석이 있단 말이야.”
“……아하.”
그저 그런 가벼운 농담이었다.
하긴, 물리계 프로 헌터에게 그런 재능이 있을 리 없었다. 강수호처럼 만능 잡캐가 아닌 이상에야.
“길드들은 모두 자기 길드의 문양을 문신하거든.”
“문양요? 길드라 말할 수 있는 대표 문양 말하는 거죠?”
“그렇지. 보통 어깨 같은 곳에 새겨 놓는단다.”
윗옷을 살짝 벗겨 보니 어깨에 중 갑옷에 방패를 든 사내가 그려져 있었다.
수호 길드라고 떡 하니 적어 놓은 문양.
“정말이네요?”
“그럼, 협회에서 혹시 모르니 모든 길드원들에게 다 새겨 놓으라고 했으니까. 그리고 이 문양은 수호 길드 암살자들이야.”
바보같이 계획을 세웠다. 다른 암살자를 사용했으면 적어도 들키지는 않았을 건데 말이다.
“너의 어머니가 지병도 있으시고, 많이 아프니까 걸릴 일은 없다 생각한 거겠지. 하지만 이번에는 네가 있었고.”
“…….”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한번 강수호의 실력을 인정한다. 아무리 그래도 C등급 암살자는 강수호 수준에서 이기기 힘들 텐데.
그리고 저번에는 B등급인 척하는 C등급 헌터를 압도한 적도 있으니…….
“그때도 네가 이겼으니까 별 상관없겠지?”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암살자 두 명을 이긴 것도 신기한 건 아니었다.
“일단 어머니를 한번 만나 봐야겠다. 여기 있으시지?”
“잠시만요!”
놀랐을 엄마를 걱정해서 저러는 건 알지만, 되도록 들어가지 않았으면 좋겠다. 꽤나 놀랄 게 분명했으니까.
강수호가 뭔가 말을 하기도 전에.
“들어가지 마세…….”
“…….”
“안녕하세요?”
“강수호 학생 어머니 되세요?”
“아, 넵.”
“…….”
3m 키. 버프 물약의 부작용보다 더욱 풍부해진 근육량.
패왕 길드의 정보가 처음으로 잘못된 순간이었다.
* * *
“엄마, 다음 주까지는 그런 몸으로 있어야 하는데 괜찮겠어요?”
-어휴. 걱정하지 말렴. 요즘 어린 것들이 시골에 오면 나를 개처럼 무시했는데, 요즘은 눈을 다 깔고 다닌다니까. 이대로 있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고.
어느새 시간은 월요일 아침. 아카데미에 등교하면서 간단히 엄마와 통화했다.
그저께 있었던 일에 별 충격을 받지 않아서 다행이긴 했다.
문제는 저 몸 그대로 있겠다는 것.
“엄마, 그건 좀…….”
-장난이야, 아들~ 얼른 아카데미 다녀와~
“어휴, 알겠어요. 그리고 패왕 길드 분들 있으니까 너무 걱정하지는 말고요. 그분들이 알아서 처리해 준다고 했으니까요.”
통화를 끊었지만 생각나는 건 여전하다.
3m의 거대한 키와 근육으로 다져진 몸. 엄마가 그런 꼴이 되는 건 두 눈 뜨고 볼 수 없다.
드르륵.
교실 문이 열리고 자리에 가려 할 때.
“왔어?”
“응.”
익숙한 쓰레기 같은 얼굴이 강수호의 시야에 들어온다.
언제 왔는지 입꼬리를 올리며 자신을 쳐다봤지만, 가볍게 무시한 채로 자리에 앉았다.
“오늘 토너먼트 선발 뽑는 거 알고 있어?”
“…….”
“혹시 모르는 거라면 나랑 같이 연습하는 게 어때?”
“…….”
질문에도 아무 말 없자 더욱 가까이 다가온다.
그게 약 2시간이나 이루어졌다.
물론 강수호는 마나 호흡법을 사용하며 가볍게 무시했다. 수호 길드와 양유혁의 연관을 깨달은 지금, 말조차 섞기 싫었으니까.
드르륵.
“흠흠. 모두 앉거라.”
곧이어 교실에 들어오는 담임 선생님.
간단히 조례를 하고는 중요한 정보를 전달한다.
“오늘은 토너먼트 선수 뽑는 거 알지?”
“넵.”
1년에 한 번씩 있는 아카데미 토너먼트.
3학년만 나갈 수 있는 토너먼트 선수를 뽑는 날. 오늘이 바로 그 날이다.
“원래는 1학년 때부터 이론, 실기 성적 A급 학생들만을 뽑는 토너먼트가 교장 선생님으로 인해서 모든 학생이 볼 수 있게 되었다. 모두 강당으로 나오도록.”
“……!!”
담임 선생님의 말에 교실 학생 모두의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성적표에 B급이 단 하나라도 있으면 시도조차 하지 못하는 토너먼트 선발전.
“우리도 시도할 수 있는 거야?”
“교장 머리에 머리털이라도 생겨났나?”
학생들의 입에 미소가 지어졌다.
10명이 선발되는 중요한 자리. 그런 자리에 나갈 수 있는 것 자체가 그들에게는 엄청난 기회다.
물론 몇백 명이 치르는 경기인 만큼 경쟁은 매우 심하다.
“이번에는 내가 나간다!”
“꼭 내가 나가야겠어.”
들뜬 학생들은 눈을 빛낸 채 강당으로 향했다. 손에 무기와 방어구가 잔뜩 쥔 채로.
‘뽑는 방식도 토너먼트라…….’
꽤나 특이한 경우다.
강당에서 3학년 학생만 모아 놓고 시작되는 토너먼트.
보기만 하던 선발 대회에 직접 나갈 수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 들떠 있었다.
‘내가 나간다라…….’
솔직히 토너먼트 같은 건 기대조차 하지 않았다.
1학년 때부터 성적 유지를 하는 학생만 갈 수 있는 토너먼트. 사실상 A급도 10명밖에 없는 거로 기억한다.
‘이번에는 내가 되겠지.’
C급 헌터인 선생님도 이겼던 몸이다.
아직 고블린 간부의 상대도 안 되지만, 아카데미 학생들보다는 충분히 강하다. 차원 이동을 한 마을에서는 뉴비일지 몰라도 여기서는 고인 물이다.
“오늘 한 번 제대로 놀아볼까?”
강수호는 한껏 미소 지으며 강당 안으로 들어섰다.
* * *
“선생님들은 누가 이길 것 같습니까?”
넓은 강당 관중석에 앉은 서울 아카데미 선생님들. 머리가 반짝이는 교장이 주변을 둘러보며 물었다.
그러자 얼마 지나지 않아 한 선생님이 입을 열었다.
“당연히 반장은 조시현 학생 아닙니까? 그다음에는 한석유 학생과 양유혁 학생이겠죠.”
“하긴,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실기도 항상 90점 이상은 받던 놈들이니까요.”
1등부터 3등. 그 뒤도 있었지만, 이 세 명은 확실하다.
서울 명문 아카데미를 유지할 수 있도록 해 주는 학생 세 명.
“그런데 교장 선생님. 이번에 왜 모든 학생이 시험을 볼 수 있게 한 겁니까?”
그때 마침 한 선생님이 궁금한 투로 물었다.
성적 A만 받아야 하는 지옥 같은 조건. 그 조건을 안 지키는 학생은 받지 말아야 하는 시험이지만.
“하하! 원래 토너먼트는 실력 아닙니까? 학생들이 얼마나 좋은 능력을 사용하는지 궁금해서 이렇게 열어 봤습니다!”
“교장 선생님의 깊은 뜻이 있었군요!”
이번만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물론 교장 선생님에게는 깊은 뜻 같은 건 없었다.
‘네가 얼마나 나약한지 적나라하게 드러내 주지!’
바로 강수호라는 학생 때문에 바꾼 시험. 중간고사 시험 때, 자신을 깎아내리던 모습이 생각났기 때문에 규칙을 바꾼 것이다.
“그래요. 그래도 이번 반장은 누가 될지 궁금하군요.”
강수호가 패왕 길드와 인맥이 있다고 해도 아직 길드에 가입한 것도 아니다. 들어간다고 예정된 것도 아니고.
교장은 강수호를 한참이나 쳐다보다 다른 곳으로 눈길을 돌렸다.
강당에 들어온 강수호는 강당 전부를 천천히 둘러보았다.
“여기가 토너먼트 전 예선전 같은 건가.”
밝은 조명이 주변을 감싸 안으며 비췄다.
실습 빼고는 몇 번 와 보지도 않은 강당. 오랜만에 와 보니 색다른 느낌이 든다.
“곧 있으면 토너먼트 학생을 뽑을 토너먼트가 시작될 테니 번호를 받아 주시기 바랍니다!”
그때 마침 들려오는 마이크 소리. 시험의 시작을 알리는 소리였다.
“나는 몇 번이지…….”
마이크 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이동해 자신의 번호를 살폈다.
156번.
자신의 이름이 불리기까지 한참은 걸릴 거라 생각하고 관중석에 앉아 있던 그때.
“156번! 강수호 학생은 경기장에 올라와 주시기 바랍니다!”
“……?!”
곧바로 자신의 번호와 이름이 불렸다.
강수호는 망설임 없이 일어서 곧바로 경기장으로 향했고, 마주한 학생은.
“조시현?”
“…….”
첫 경기에 전교 1등인 그가 서 있었다.